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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세계에서 들려오는 부르짖음 (눅16: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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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외신 중 중요 뉴스 가운데 하나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의 헤브론 철수 협정이 타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도시는 67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해 온 요단강 서안에 위치한 지역으로 아랍인과 유대인 모두가 쉽사리 포기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이 17일 요르단강 서안 헤브론시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번 철군은 지난 15일 체결된 철군협정에 따른 것으로 이스라엘이 지난 67년 중동전쟁때 이곳을 점령한지 거의 30년만에 이뤄진 것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16일 기자회견을 통해 헤브론 철군에 이어 향후 18개월에 걸친 요르단강 서안 농촌지역에서의 3단계 철군 작업이 예정대로 이뤄질 것이라며 ˝다만 철군 규모와 속도는 우리의 보안기준에 맞춰 팔레스타인과 협상 없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우리는 67년 중동전쟁 이전의 상황으로 회귀하길 원하지 않으며 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창설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많은 자치를 향유하길 바라나 그것이 주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헤브론 주둔 이스라엘군은 협정체결 다음 날인 16일부터 각종 장비와 상자를 대형 수송트럭에 실어나르고 사령부를 비우는 등 철수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팔레스타인 수백명은 이스라엘군의 철수가 임박하자 군사령부 밖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발행일:97년1월17일 중앙 아브라함은 여기에서 거주했으며 그와 그의 아내가 여기에 있는 굴 속에서 매장되었습니다. 아랍 족속은 이스마엘의 후예로서 아브라함을 공동 조상으로 받들고 있기 때문에 자연히 아랍의 성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유태인의 입장에서는 더욱 이 도시가 친밀한 곳이다.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 그리고 야곱과 그의 아내 레아가 여기에 묻혔으며 다윗이 이스라엘 12지파 전체의 왕으로 추대되기 전 7년 6개월 동안 여기서 유다 지파의 왕으로 다스린 유서 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유대인과 아랍인 모두에게 헤브론에 대한 향수를 갖게 하는 장본인인 아브라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아브라함과 음부에서 고통당하는 부자의 대화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이들의 대화에서 언급되는 말 가운데 증거(28절), 회개(30절), 들음, 권함(31절)이 있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본문이 전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같은 본문을 가지고 하는 네 번째 설교입니다. 음부와 지옥의 모습만 언급하고 마무리할 수 없어 한 번 더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전도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사후세계에서는 전도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천주교에서는 연옥이라는 희한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세례받기 전에 지은 죄들만을 처리한다고 가르칩니다. 세례받은 사람이 죄를 범하면 고해성사를 통해서 사제가 해결해 주기도 하지만 모든 죄를 다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죽는 순간까지 용서받지 못한 죄들은 연옥에서 씻어야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교리는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부추기게 되었고 그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많은 액수의 헌금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지상에 남아 있는 친척들이 그를 위해서 기도를 더 많이 하고 헌금을 더 많이 낼수록 이러한 죄들이 연옥에서 더 빨리 처리되며 그는 연옥에서 더 빨리 나갈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연옥 교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이 모든 죄를 씻기에 충분치 않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반대로 말합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10:14) 또한 이 교리는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는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죽은 후에는 연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이 있습니다. 본문이 가르치는 것도 그것입니다. 일단 사람이 죽게 되면 구원 유무에 따라서 구원받은 자는 천국으로, 구원받지 못한 자는 음부 즉 지옥으로 가게 될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26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천국에서 지옥으로 건너갈 수도 없고 지옥에서 천국으로 건너올 수도 없습니다. 이 말은 일단 사람이 죽으면 또 다시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상급 받을 기회도 이 땅에 살아 있을 때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전도하여 상급을 받으며 대상자가 살아 있을 때 전도하여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둘째로, 사후세계에서 복음 전도를 간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도를 명령하시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특이하게 전도를 명령으로가 아니라 간청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음부에서 고통받는 부자는 자신에 관한 한 더 이상 어떠한 소망도 가질 수 없음을 뼈져리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통받는 것은 자기 한 사람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지상으로 보내어 자기 형제들에게 증거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간청마저 사후세계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없었습니다. 이 부자가 너무 애처로와 보이지 않습니까 우리는 지금도 이 부자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전도자를 자기 아버지 집에 보내 달라고 간청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전도자로 자기 형제들에게 증거하게 해 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고통에 직면한 사람을 보고 본 척 만 척하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제자 된 사람의 참된 표시가 바로 사랑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13:34,35) 부자는 죽어서 음부로 갔습니다. 그가 거기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장차 불신자가 처하게 될 지옥이 어떠한 곳일지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지옥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고통받는 곳입니다. 어떠한 소망도 이룰 수 없는 곳입니다. 그리고 지난 삶에 대한 후회로 회한에 젖는 곳입니다. 그곳에 우리의 부모 형제가 구원받지 못한다면 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어떻게 방관만 하고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북한에서 일가족 16명이 망명하여 화제가 되었습니다. 칠순이 넘은 아버지가 5살 때 헤어진 딸이 북한에서 열악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가슴 아파하다가 극적으로 동토의 땅에서 자유세계로 탈출시킨 눈물의 드라마였습니다. 그런 사랑과 열심과 각오로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간청하는 자는 음부의 부자뿐만이 아닙니다. 나사로처럼 아브라함 품에서 안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전도를 통해서 천국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믿고 있었지만 막상 와보니 너무나 좋은 곳이기 때문에 자기 부모에게, 형제에게, 친척에게, 이웃에게 꼭 증거해 달라고 간청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셋째로, 전도가 구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부자의 간청을 들어주지는 않았지만 전도에 관하여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29절) 여기서 “모세와 선지자들”이란 모세와 선지자들이 기록한 성경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은 기록된 성경 말씀을 읽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듣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불신자들은 성경을 기꺼이 읽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그 말씀을 설명해 주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10:17)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10:14,15) 우리는 삶으로 전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으로는 기껏해야 불신자가 기독교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결코 그것만으로는 불신자를 구령할 수 없습니다. 입을 벌려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칠 때 비로소 그가 회개하고 구원의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체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아무리 그 체험을 말한다 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는 하겠지만 구원을 주지는 못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죄 문제가 다루어지고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깨닫게 될 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입을 벌려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가장 확실한 구령방법입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31절) 전당포 주인이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 다음 주위 사람에게 전도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권면했다. 그때 술취한 사람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여보슈. 내가 정말 지옥과 천당이 있고 구원이 있다는 걸 확신한다면 당신처럼 이렇게 소신 없게 전도하지는 않겠소. 나는 더 열성적으로 전도할 거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크리스천은 그때부터 열렬하게 전도하며 구제활동을 폈다. 그가 1978년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암 부쓰이다. 예수님께서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를 하신 것은 사후세계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시기 위함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하는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전도하는 데 좀더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많은 세상 사람들이 눈물을 덜 흘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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