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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를 찾는 생활 (눅15:1-7)

본문

1. 잃었던 것을 되찾는 기쁨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소유물을 잃었을 때 아무리 대범한 사람이라고 해 도 섭섭함과 아쉬움 그리고 또 허전한 심정에 사로잡혀 간절하게 찾으려고 들 애쓴다. 그러나 그 잃었던 것을 되찾을 때는 그것이 작고 크고 간에 또 그 값의 고하간에 기쁨과 즐거움을 갖게 된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처음부터 활동의 목표를 잃어버린자들을 찾아 내시는 것에다 두시고 이것을 위해 전력을 경주하셨다는 것을 성경은 밝혀 지구 있다. 그래서 예수는 이런 목표완성을 위해 협동과 협력해 줄 동반자, 즉 제자들 을 선정하시는 일에서도 그 당시 유대 민족사회에서 지도적 위치에 있던 유 능인사들이나 권력자들 중에서 물색하시지를 않고 오히려 그 사회에서는 별 로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상태에 있던 사람들 중에서 선택을 하셨기 때문에 그에게 비난을 받으셨다. 예수의 열두 제자들 중에서 레위라는 마태는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완전히 죄인시되어 버림받고 있던 세관장 출신이었고, 예수의 수제자격 인물인 베 드로 형제나 야고보 형제들을 갈릴리 호수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노동자 게 급에 속해 있던 어부 출신이었다. 한때 하늘을 치솟던 예수에 대한 군중들의 인기와 존경심이 힐난과 비난으 로 바뀌게 된 것은 바로 예수의 이런 처사에서 그 싹이 트게 된 것이었다. 한번은 예수께서 변방 두로와 시돈 지방에 가셨다가 가나안 여인을 만나신 자리에서 "인자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다"(마 15:24) 고 제자들에게 언명하신 일조차 있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근본 목적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역사의 경륜을 성취 하셔서 하나니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것에 있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성취하셔야 할 하나님의 역사의 경륜은 바로 죄인을 죄에 서 구원하여 내는 일이었다.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함을 받은 인간이 죄 때문에 하나님께 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속에서 다시 회복되고 또 죄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한 님께 복귀하게 하는 것에 있었다. 예수께서 "잃어버린 자"라고 말씀하신 자들은 하나님께 범죄하고 하나님의 품에서 이탈한 죄인간을 지칭하는 것이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마당히 있어 야 할 것이 그 자리에 없을때 이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람들 중 에서 잃어버려진 자라고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우리 사람들 중에서 잃어버 려진 자라고 하면 그는 제 위치를 지키지 못한 자, 그리고 그 소유를 온전 히 보관하지를 못하는 자를 말한다. 이런 견지에서 볼 때 우리 죄인들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세계에서 추방되 었기 때문에 그 모두가 버림받은 자들인 동시에 하나님께는 잃어버려진 자 들이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바로 이런 상태에 있는 자들을 찾아내시어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에 있었던 것이다.
2. 잃어버려진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 우리는 오늘 아침에 예수께서 들려주신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내려는 목자의 이야기를 함께 읽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들려주신 경위를 살펴보자. 예수께는 언제나 세상이 외면하고 싫어하는 세리들과 죄인들이 몰려와 진을 치고 예수를 독점하다시 피 하기 때문에 제 딴에는 예수와 같은 분은 나나 우리 같은 사람이라야 가 히 상종할 수 있는데 무엇 때문에 저런 세리와 창기같은 죄인들이 찾아와 북새를 놓느냐고 하여 불평을 짓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 비유를 들 려 주셨다. 예수의 이야기 속에는 얼른 이해하고 또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몇가지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
첫째는 백 마리 양을 치던 목자가 잃어진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아흔아 홉 마리의 양을 들에다가 팽개쳐 두고 찾아나갔는 말이 있다. 이는 아무리 선의로 해석하려고 해도 무지한 짓이라고 밖에는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수치에 있어서 하나 하고 아흔아홉 하고 어느 것이 많으냐는 것이다 올바 른 판단을 한다면 누구나 많은 수에다가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목자는 적은 수에다가 중점을 두었다는 것이다.누구나 재산의 가치로 판 단해도 많은 것에 중점을 두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목자는 아흔아 홉을 두고 하나를 찾아 나섰다. 동시에 여기에는 큰 모험과 위험과 희생이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 목자에 게는 그의 처사가 자기의 소유에 대한 희생만이 아니고 자기 자신의 생명마 져도 위협을 받는 일이었다. 이 지방은 일몰이 되어 땅거미만 지면 맹수들 이 출몰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생명도 위험하게 된다. 한 마리 잃어 버린 양을 찾아나가는 이 목자의 행위 속에는 이와 같은 그 재산의 전체와 자기 자신의 생명마저 걸린 위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자는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이렇게 큰 위험을 건 것이다. 이것은 양을 먹이고 양과 얼킨 깊은 사연과 애정 없이는 생각조 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와 같은 막대한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가기까지 목자의 결단은 대단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해서 자기 생명이나 재산이 귀하게 여겨지지 않고 또 아깝게 생각되지 않았을 리 만무였을 것이다. 목자의 이 처사에는 양 한 마리의 재산의 가치보다는 그 생명에 대한 가치 를 더 중시했기 때문이다. 만일 생명을 가진 동물이 아닌 그의 재산이나 소 유였따면 그는 그 밤을 지나 날이 밝을 때까지 그의 행동을 미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잃은 양은 생명을 가진 동물이었기 때문에 그 밤에 들에나 그 대로 팽개쳐 둘 수가 없었다. 양은 그 본성이 온순하고 힘이 약한 동물이라 서 자기 생명을 지킬만한 자체 능력이 없었다. 양은 시력이 약해서 멀리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적의 공격에서 피할 수가 없고 또 적을 대항할 어떤 방어력도 갖추지를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양은 무 리속에 끼어 떼를 이루고 있어야 하지 단독으로는 자위할 수 없는 동물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목자가 지켜주어야 하고 또 목자가 인도하여 풀 밭과 물가로 끌고 다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양을 잃어버린 상태에 그 냥 팽개쳐 두고 하루 저녁을 미뤄둔다면 그 양의 생명은 절대로 보존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목자는 자기의 전 재산과 자기의 생명까지도 걸고서도 양을 찾아나간 것이다. 목자의 이 무모한 처사는 그 의미가 허사로 돌아가 지 않았다. 잃어버렸던 양을 되찾게 되었고 또 돌아왔을 때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들에 게도 이상이 없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목자는 이 미 잃어버렸던 한 마리의 양을 위시하여 잃어버릴 위험 속에 직면되었던 자 기의 아흔아흡 마리의 양과 자기 자신의 생명의 안전을 거둘 수 있었던 하루의 일이 기뻐서 온 동리 사람들을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자기의 행복과 기쁨을 동리 사람들과 나누었다는 것이 바로 예수의 비유 내용이다. 예수는 이 이야기를 들려 주시면서 죄인들이 예수께 돌아와 상종한다고 해 서 불평짓는 자들에게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고 이야기를 매듭지으셨다. 이 과정에서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들에 그대로 버려두채 잃어버리지 않은 아흔아흡 마리의 양과 자기 자신의 생명만을 온전히 보전하여 집에 돌아갔 다고 하면 그 집에 돌아온 목자에게 하루의 생활에서 기쁨이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걱정스럽고 또 잃어버린 양으로 인한 재산의 손실에서 아쉽고 마음 아팠을 것이 당연하였으리라 목자의 기쁨은 잃어버렸던 양을 되찾는 것에 있다는 것을 예수는 강조하시면서 하나님의 기쁨이 어디 있다는 것을 귀뜸해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 죄인들이 잃어버렸던 자기의 상, 즉 하나님께 창조하심을 받을 때 받았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는 것에서 참 기쁨을 느끼시고 계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범죄하고 타락하여 변질되고 변형된 우리 죄인들은 두 가지 면에서 잃어버려진 상태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그 하나는 자기, 즉 자아를 상실하였고 다른 하나는 자기의 위치, 즉 자기 세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므로 죄인같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잃어버려진 자기 자신의 상을 찾 아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나 새로 창조 함을 받은 피조물, 즉 새 사람이라고 하였다.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겉 사람, 즉 육체의 사람은 나이를 늙어지면 접 차로 쇠해지고 약해질 수밖에 없어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져 가고 또 강해 져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벧이라는 사람은 세상에서는 비록 젊어서 죽었으나 그는 죽기 전에 그의 생애 세계를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살아서 말하고 있다고 성경은 우리들에 게 증언해 주고 있다. 그리고 또 에녹이라는 사람도 360여 년간이나 세상에 살았어도 사람을 벗삼지 않고 하나님과 동행한 것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 게 한 자라는 인정을 받아 죽지 않고 하나님께로 승천하였다고 한다.
3. 자아반성 우리는 예수의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오늘 아침에 우리 자신을 찾아보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과연 우리는 아직도 하나님께 잃어버려진 상황에 있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우리 자신의 원상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회복하 였느냐 또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생의 위치가 아직도 하나님께 잃어진 상태에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교인들과 함께 하는 교회생활에서 이탈되면 그는 잃어 진 상태의 생활에서는 자신을 지킬 수도 그리고 또 하나님을 기쁘세게 할 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명년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생활에 충실한 것에서 자신 의 위치를 확보하고 자신의 생명을 보전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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