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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감을 느낄 때 (눅15:25-32)

본문

탕자의 비유는 예수님의 비유 중 유명한 비유의 하나이다. 예수께서 죄인들을 가까이 하시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불평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신앙을 바로잡고자 이 비유를 들었다. 이 비유의 등장인물, 주제와 의도, 구성은 다음과 같다. 등장인물:아버지-하나님 형-바리새인과 서기관들 동생-죄인 주제:죄인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의도:바리새인들의 그릇된 신앙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것. 구성:1부-돌아온 아들을 맞아서 기뻐하시는 아버지(11-24) 2부-형의 잘못된 태도를 깨우치는 아버지(25-32) 1부의 마지막 부분은 집을 나갔던 작은 아들이 돌아와 아버지의 환영을 받으며 즐거운 잔치가 베풀어지는 것으로 끝난다. 형과 아버지의 대화
1. 잔치를 대하는 형의 태도
1) 형은 밭에서 일을 하다 집에 돌아왔다. 풍류와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종을 통해 동생이 돌아온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동생을 기뻐하며 잔치를 베푼 것도 알았다.
2) 죽은 동생이 돌아왔다. 아버지가 너무나 좋아하신다. 이웃들이 축하한다. 자신도 행복하고 남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러나 형은 노하여 들어가기를 즐겨하지 아니 했다.
3)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데 형은 홀로 그렇지 못했다. 그는 소외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가정에서 소외감을 느낀다.-여러분은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는가-비유 속에 나오는 형이 소외감을 느낀 이유는 여러분에게도 그대로 적용될지도 모른다.
2. 형이 소외감을 갖게 된 네 가지 이유(29-32) '분노한 형'을 달래기 위해 아버지가 손수 나왔다. 그에게 잔치 자리에 들어갈 것을 권했다. 안에 있던 아버지가 밖에 있던 형이 노한 것을 알았다는 것은 형이 분노하여 소란을 피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대화에서 형이 소외감을 갖게 된 네 가지 요인을 찾아 볼 수 있다.
1) 자기 공을 내세우며 타인과 비교 한다. “나는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었는데-” “아버지의 살림을 창기와 함께 먹어 버린 이 아들-”-나는 이렇게 하였는데-저 사람은 해를 끼쳤을 뿐인데-타인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되거나 성공하면-자기보다 노래를 잘 부르거나, 얼굴 예쁜 사람을 만나도-어떻게 해야 하는가-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그리스도 안에서 자신고 그를 보아야 한다.-주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 나는 초라하지 않다. 그 사람도 귀하고 나도 귀하다.
2) 자신을 스스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분리 시킨다.-형은 자기의 동생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하며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짓지 않는다.-당신의 아들이라는 표현에서 그의 냉냉한 마음을 읽는다.-소외감은 자신을 스스로 분리시킴에서 일어난다.-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그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와 한 마음을 이룬다. “(빌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님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빌2: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다른 사람이 받는 은혜를 질시 한다. “(눅15:29)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눅15:30)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자신은 지극히 작은 것(염소, 그것도 새끼 염소)도 받지 못했다고 불평한다.-동생을 위해서는 큰 것(송아지, 그것도 살찐 송아지)을 주었다고 불평한다.-상대방이 받은 은혜는 과분하게 큰 것이라고 상상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를 기뻐하며 사랑의 태도를 가진다.-사랑은 한계가 없다. 많은 것을 주고도 더 주지 못하여 아쉬워하는 것이 사랑이다.-율법적 태도는 이만하면 됐지하는 것이다.-사랑의 태도는 많이 하고도 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부부 생활에도 서로 자기 공로만 내세우면 그 때부터 사랑의 맛은 싹 가시고 만다.-자기 공로는 뒤에 감추고 서로 사랑의 아쉬움만 갖자. 거기에 삶의 축제가 있다. 이 때에 본인은 물론이고 모두가 행복하게 된다.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 4) 자신이 받은 은혜를 기억하지 아니한다. “(눅15:31)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눅15:32)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아버지와 항상 같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아버지의 사랑, 보호, 돌보심, 재산이 다 포함된다.-큰 은혜를 알지 못한 것이 큰 아들의 어리석음이다.-“아버지”라는 말도 탕자는 몇 년만에 모처럼 불러 보는 이름이지만, 형은 하루에도 수 없이 불렀던 이름이다.-송아지 한 마리는 작은 것이다. 어리석은 자에게는 작은 것이 크게 보인다. 우리는 어떠한가-날마다 주님과 함께 하는 그 큰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날마다 은혜 속에 살고 있기에 그 은혜를 잊지는 않았는가-부부 생활에서도 평소에는 부부의 의미를 잘 모른다. 그러나 어느 한 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그 무덤 앞에 서서야 부부의 의미를 안다고 한다.-신앙 생활에서도 특별하고 가장 큰 은혜는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날마다 잊지 않고 감사하는 것이다. 그 때에 삶의 신선미가 생동력을 얻게 된다. 요약 소외감을 느끼십니까 다른 사람이 여러분보다 은혜를 더 받은 것처럼 보입니까 오늘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애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 아니냐 그는 네 동생, 네 혈육이라. 그는 죽었다가 다시 살았고,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이 아니냐 우리가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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