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를 찾으시는 예수님 (눅15:7)
본문
우리는 오늘 본문 속에서 세 가지의 잃었다가 다시 찾는 비유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 거하심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서 주께서 정말로 나와 같은 죄인을 열심히 찾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세 가지의 비유가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 봅시다. 하나는 3-7절로 백 마리의 양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애타는 심정을 비유해 주셨습니다.
둘째는 10개의 드라크마 중에 한 개의 잃어버린 동전을,
셋째는 두 아들 중에 방탕의 길로 빠진 한아들을 다시 찾는 아버지의 기쁨을 비유해 주셨습니다(11절이하). 이 세가지의 비유는 비유의 대상이 다 각기 다르지만 잃었다가 다시 찾는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줍니다. 그 깨우침을 몇 가지로만 요약해 봅시다.
1. 우리는 다 주님의 잃어버린 자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숨었을 때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던 것처럼 죄악의 모습 속에 숨어있는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다 함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함이요. 재산을 탕진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하고 자신의 쾌락과 죄악을 위해서만 썼다는 것입니다.
2. 잃어버린 자는 본인이 잃어버리는 도중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양도 그렇고
둘째 아들도 자기가 나가는 길이 당시에는 최고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죄짓는 중에는 깨닫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깨닫는다 해도 우리의 죄성이 돌이키질 못하게 합니다. 죄는 초기에 잡아야 합니다. 최종까지 가서 아차할 땐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3. 잃어버린 자보다는 주인이 더 애타게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잃어버린 당사자보다는 주인이나 아비가 더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헤메시는 주님의 모습은 계속될 것입니다.
4. 잃어버린 자가 돌아오는 길은 회개하는 길입니다. 당신이 양처럼 바위 틈에 끼어있다면 주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울부짖어야 합니다. 당신이 마루밑 캄캄한 틈새에 끼어있는 드라크마와 같다면 더 이상 마루밑으로 들어가지 말고 주께서 보실 수 있도록 환하게 빛나야 합니다. 또 당신이
둘째 아들과 같다면 18절처럼 죄를 자복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바로 죄인 한 사람이 이처럼 회개하는데 있습니다(7,10,32). 지금 곧 당신을 찾으시는 주님 앞에 엎드려 당신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5. 잃어버린 자가 돌아오면 천국에서는 잔치를 벌입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올수록 하늘에서는 잔치를 벌입니다(6,9,23). 바로 당신이 천국잔치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당신을 찾으시는 주님 앞에 더 이상 숨지 말고 두손 높이 들고 나아오십시오. 그래서 주를 만나십시오. 지금 곧 “주님! 제가 여기있나이다. 저를 용서하옵소서”라고 외칩시다. 6.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낮이나 밤이나 들에서나 집안에서나 타향에서나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양의 비유는 들판에서 된 일이고, 드라크마의 비유는 집안에서 되어진 일이며, 탕자는 집 밖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100 대 1에서 10 대 1로 축소되고, 2 대 1로 축소되고 주인공은 남자에서 여자로, 급기야는 아들로 바뀝니다. 때는 낮에서 밤으로, 밤에서 밤낮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들에서도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100명이 모인 곳에서나 10명이 모인 곳에서나 2명이 모인 곳에서나 당신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남자나 여자나 집안식구속에서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릅쓰고 항상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잔치를 준비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이 귀한 것을 알았습니다. 양은 목자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맡겨진 달란트를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았습니다. 달란트를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간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습니다. 주신 달란트를 아버지와 아들과 식구들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을 깨달았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이 가장 좋은 곳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주의 길을 떠난 잃어버린 양으로 오늘까지 망나니 같이 살아왔습니다. 저의 죄악을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위치를 감당치 못하고 달란트를 탕진하며 쾌락과 죄악을 위하여 살아온 죄를 용서하옵소서. 이제부터는 죄악의 길을 벗어나서 돌아온 탕자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다시는 죄악의 자리에 들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런데 이 비유는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과 함께 거하심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비유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서 주께서 정말로 나와 같은 죄인을 열심히 찾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세 가지의 비유가 무엇인지를 한번 살펴 봅시다. 하나는 3-7절로 백 마리의 양 중에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목자의 애타는 심정을 비유해 주셨습니다.
둘째는 10개의 드라크마 중에 한 개의 잃어버린 동전을,
셋째는 두 아들 중에 방탕의 길로 빠진 한아들을 다시 찾는 아버지의 기쁨을 비유해 주셨습니다(11절이하). 이 세가지의 비유는 비유의 대상이 다 각기 다르지만 잃었다가 다시 찾는다는 데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에도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이 비유는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줍니다. 그 깨우침을 몇 가지로만 요약해 봅시다.
1. 우리는 다 주님의 잃어버린 자들과 같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숨었을 때 그들을 하나님께서는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던 것처럼 죄악의 모습 속에 숨어있는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다 함은 자신의 위치를 지키지 못함이요. 재산을 탕진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하나님을 위해 쓰지 못하고 자신의 쾌락과 죄악을 위해서만 썼다는 것입니다.
2. 잃어버린 자는 본인이 잃어버리는 도중엔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양도 그렇고
둘째 아들도 자기가 나가는 길이 당시에는 최고인 것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죄를 짓는 사람은 죄짓는 중에는 깨닫지 못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니 깨닫는다 해도 우리의 죄성이 돌이키질 못하게 합니다. 죄는 초기에 잡아야 합니다. 최종까지 가서 아차할 땐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3. 잃어버린 자보다는 주인이 더 애타게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찌된 일인지 잃어버린 당사자보다는 주인이나 아비가 더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까지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헤메시는 주님의 모습은 계속될 것입니다.
4. 잃어버린 자가 돌아오는 길은 회개하는 길입니다. 당신이 양처럼 바위 틈에 끼어있다면 주인이 알아들을 수 있게 큰 소리로 울부짖어야 합니다. 당신이 마루밑 캄캄한 틈새에 끼어있는 드라크마와 같다면 더 이상 마루밑으로 들어가지 말고 주께서 보실 수 있도록 환하게 빛나야 합니다. 또 당신이
둘째 아들과 같다면 18절처럼 죄를 자복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본문의 핵심은 바로 죄인 한 사람이 이처럼 회개하는데 있습니다(7,10,32). 지금 곧 당신을 찾으시는 주님 앞에 엎드려 당신의 죄를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일이 생길 것입니다.
5. 잃어버린 자가 돌아오면 천국에서는 잔치를 벌입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올수록 하늘에서는 잔치를 벌입니다(6,9,23). 바로 당신이 천국잔치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시렵니까 당신을 찾으시는 주님 앞에 더 이상 숨지 말고 두손 높이 들고 나아오십시오. 그래서 주를 만나십시오. 지금 곧 “주님! 제가 여기있나이다. 저를 용서하옵소서”라고 외칩시다. 6. 주님은 잃어버린 양을 낮이나 밤이나 들에서나 집안에서나 타향에서나 항상 기다리고 계십니다. 양의 비유는 들판에서 된 일이고, 드라크마의 비유는 집안에서 되어진 일이며, 탕자는 집 밖에서 되어진 일입니다. 그리고 100 대 1에서 10 대 1로 축소되고, 2 대 1로 축소되고 주인공은 남자에서 여자로, 급기야는 아들로 바뀝니다. 때는 낮에서 밤으로, 밤에서 밤낮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들에서도 집안에서도 집밖에서도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100명이 모인 곳에서나 10명이 모인 곳에서나 2명이 모인 곳에서나 당신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부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남자나 여자나 집안식구속에서도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무릅쓰고 항상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며 잔치를 준비하시며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이 귀한 것을 알았습니다. 양은 목자가 필요한 것을 알았습니다. 여인은 맡겨진 달란트를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깨달았습니다. 달란트를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간직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깨달았습니다. 주신 달란트를 아버지와 아들과 식구들을 위해 사용해야 할 것을 깨달았습니다. 탕자는 아버지의 집이 가장 좋은 곳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 하나님! 저는 주의 길을 떠난 잃어버린 양으로 오늘까지 망나니 같이 살아왔습니다. 저의 죄악을 용서하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위치를 감당치 못하고 달란트를 탕진하며 쾌락과 죄악을 위하여 살아온 죄를 용서하옵소서. 이제부터는 죄악의 길을 벗어나서 돌아온 탕자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옵소서. 다시는 죄악의 자리에 들지 않게 도와 주옵소서.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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