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오신 예수 (눅15:8-10)
본문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는 견해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어디에 관점을 두고 보느냐에 따라서 예수님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인식되고 평가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병든 사람이 예수를 볼 때 그 예수님은 병을 고치는 예수님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 내용은 대부분 병을 고쳐 달라는 기도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가난한 사람이 예수님을 쳐자볼 때는 부자를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으로 인식될 것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기도를 하게 되면 대부분이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또 죄를 지은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 볼 때는 그 예수님이 사랑이 많으신, 용서하시는 예수님으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앞에 엎드려 눈물로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병도 없고, 가난하지도 않고, 스스로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에서 아쉬울 것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예수님을 바라보게 될 때 그 예수님은 분명 성인 예수로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의 신앙 내용은 대부분 윤리적인 신앙 차원을 넘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관점에서 예수님을 바라보십니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더냐 물으신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 (마16:14) 가로되 더러는 세례 요한,더러는 엘리야,어떤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믿느냐 하실 때에 “ (마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베드로처럼 이렇게 믿습니까 이것은 모두 자기 입장에서, 필요에 따라서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나온 각기 다른 견해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어떻게 보았고, 어떻게 소개하였고, 어떻게 정의를 내렸는지 보겠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을 보면 당신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당신 자신의 모습을 자상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첫 번째로 설교하신 내용입니다. 이를태면 부임 설교라고 할 수 있고, 취임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는 잃어버린 자를 찾으러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고, 당신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잃어버린 자에 대한 말씀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만 잃어버린 자에 대한 비유가 세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목자가 일백 마리의 양을 치고 있습니다. 목자는 열심히 물이 있고, 풀이 있고, 쉴 만한 곳을 찾아 다니면서 양들을 쳤습니다. 모든 양들은 목자를 믿고 따라다니면서 꼴을 먹고 자랍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의 양은 고집이 셉니다. 목자를 잘 따르지 않고,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서 돌아다니고 이탈을 잘합니다. 그러다가 이 양이 혼자서 길을 잃게 됩니다. 온종일 혼자서 벌판을 헤매다가 목자를 찾지 못해서 애를 태웁니다. 목자는 목자대로 이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맵니다. 성경을 보면 온전한 양 99마리를 놓아 두고는 이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을 헤매며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니다가 이 목자는 마침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지쳐 쓰러져 있는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냅니다. 그때 이 목자는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기쁘게 돌아와서는 집안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표현되는 길을 잃고 돌아 다니는 양은 오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돌아 다니는 현대의 탕자들을 가리키고, 그렇게 애타게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골몰하는 목자의 심정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 즉 부성(父性)입니다. 부성에게는 몸이 성한 99마리의 양도 소중하지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그 허기진 한 마리의 존재에 더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건강하고 잘 사는 자식보다는 건강치 못하고 잘살지 못하는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홀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짚신 장사를 하였고, 또한 아들은 우산 장사를 하였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많이 팔 아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짚신 못 팔 아들을 생각해서 울었고, 날이 좋은 날에는 짚신 많이 팔 아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우산을 팔지 못할 아들을 생각해서 울었던 그 모성,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물론 건강하고, 잘 따르고, 순종 잘하는 99마리의 양도 목자에게는 소중했지만, 그 목자에게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존재 역시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 헤매는 목자의 심정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잃은 자 사상입니다. 두 번째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성실했고, 근면했고, 열심히 일하며, 효성스럽고 나무랄 데 하나 없는 그런 아들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습니다. 놀기를 좋아하고, 성실치가 않습니다. 그러다가 집을 나갔습니다. 그 아들이 집을 나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가서 방탕 생활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싫도록 고생을하고, 나중에는 병까지 들어서 낙오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잊지 못합니다. 아버지에게는 일 잘하고, 순종 잘하고, 효성스러운 큰 아들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해 했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늘 마음 한쪽으로는 집 나간 아들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밤마다 문을 열어 놓고는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잠을 자지 아니하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큰 아들이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속을 썩이고,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 망신을 시킨 동생이 미웠고, 괘씸했고, 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마음은 형의 마음과 다릅니다. 집 나간 아들이 때로는 괘씸했고, 화도 났지만, 지금 어디서 고생하고 있을 그 아들의 모습을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옵니다. 그래서 밤이 깊어 가고 있지만 그 깊은 밤에도 문을 열어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살고 있는 며느리가 해주시는 반찬이며 온갖 정성은 별 칭찬이 없으시던 시어머니가 일년에 한 두 번 오는 딸들과 다른 형제분들이 고기라도 사오고 술이라도 사오고 용돈이라도 조금 주면 자랑이 끝이 없습니다. 그럴때면 모시고 사는 자식과 며느리는 속이 상함이다. 등글거준 공은 하나도 없고 그저 딸자랑 사위자랑이지 어디 며느리 칭찬한번 하면 어디가 덧납니까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보지못하던 자식이 눈앞에 있으니 그것이 좋고 기쁠 따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같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그렇게 잃어버린 탕자를 찾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동전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목적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열 개의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드라크마는 당시 헬라에서 사용하고 있던 은전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니까 이 여인이 열 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찾아보았지만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빗자루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곳 저곳을 쓸어서 겨우 잃어버렸던 동전을 찾아 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너무나 기뻐서 벗들을 불러다가 그 동전을 찾음으로 해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경제적인 가치로 보면 은전 하나보다 잔치를 베푼 경비가 더 들었을 것입니다. 동전 하나를 찾은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그것을 찾았다고 사람들을 불러다가 많은 경비를 들여서 잔치를 베풀기까지 할 것입니까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해가 안 되니까 사람들은 동전 하나를 무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거지들도 동전 하나를 주면 우습게 여깁니다. 언젠가 거지 세명이 사무실까지 찾아와서는 한푼 달라고 해서 동전 하나씩을 주니까 그 거지가 그럽니다. “누굴 거지로 아느냐”고, 그래서 두 개씩을 주니까 그냥 돌아갔습니다. 여기 이 여인이 열 개의 동전 가운데서 하나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다고 잔치를 배설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 은전 열 개를 실에 꿰어서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악세사리로 달고 다닌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이 왜 동전을 꿰어서 목걸일 달고 다녔느냐 하면 그래야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점쟁이에게 가서 돈을 많이 주고 부적 사듯이 동전 열 개를 사서 이것을 엮어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악귀가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던 때입니다. 그 당시는 악귀가 굉장히 많았던 때입니다. 그래서 사복음서를 보면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 일이 하나의 중요한 일인 만큼 그때는 귀신 들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동전 가운데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줄이 끊어져서 그 열 개의 동전 가운데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열 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나머지 9개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동전이 주는 효과도 없어져 버렸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말은 또 이제는 악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찾아올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어찌 밤을 새워서 이 동전을 찾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다급한 마음으로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찾아보아도 없으니까 빗자루를 들고 다니면서 집안 전체를 쓸어서 겨우 찾았습니다. 그때 이 여인이 얼마나 기뻐하며 안도를 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상이 하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사상”입니다. 여러분, 하나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곧 전부입니다. 하나가 없으면 전체가 무용 지물이 됩니다.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전체가 도움이 되고, 전체에게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가 중요합니다. 주께서 보실 때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또 하나가 없음으로 해서 모두가 불행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있으므로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아프면 모든 가족이 다 아픕니다. 한 사람이 아픔으로 그 한 사람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기쁨이 없어지고, 신명을 잃게 되고, 가정 전체가 평안이 없어지고, 가족 모두가 우울해집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실패를 하면 온 가족이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온 가족이 힘을 잃게 되고, 온 가족 모두가 낙심을 하게 되고, 기쁨을 잃게 됩니다. 손가락 하나에 조그만 가시가 박혀 보십시오. 그러면 손가락 하나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몸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가 전체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한 사람 실패하고 여러분 한 사람 주일성수하지 못하면 온 교회가 기쁨을 잃게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체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습을 오늘 보시고 매우 흡족해 하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형제자매를 인하여 근심하며 걱정하실 줄 믿으시기 바라니다. 여러분, 가족들이 모두 신앙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모두가 신앙 안에서 한 뜻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중에서 단 한 사람의 탕자가 있어 보십시오. 그 한 사람의 탕자 때문에 전체 가족들의 마음이 기쁘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기쁘다가도 그 탕자를 생각만 하면 기쁘던 마음이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그 탕자가 끝내 주께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방탕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떠났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가족들은 두고두고 마음에 기쁨을 잃고, 근심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 보면 철 없는 자식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철없는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썩이다가 싫은 소리라도 하게 되면 하는 말이 “나만 죽으면 그만이다.”하고 화를 냅니다. 이것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습니다. 어째서 나만 죽으면 그만입니까 정말 나 하나만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그만인 것입니까 내가 죽어 없어짐으로 인해서 마음 아파할 사람이 한두 사람입니까 나 한사람 빠지면 표시도 안나겠지 하나님도 모르실거야. 그러나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한 사람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내 집에 있는 한, 그 가정에는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지 않고는 몸 성한 99마리의 양이 곁에 있어도 마음이 기쁘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자는 그 양을 찾기까지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찾아야만 기쁨이 오고, 평안이 와서 잠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나 하나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을 하는 것이고, 모두가 기쁘게 되는 것이고,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말입니다. 나 하나가 바로 서면 모두가 바로 서게 됩니다. 그리고 나 하나가 변화를 받으면 모두가 함께 변화를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 하나가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이 같은 값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자주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시고 자랑스러운 복된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했던 야곱은 에서를 제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잃어버린 양은 누구입니까 집나간 탕자는 누구입니까 잃어버린 동전은 누구입니까 혹시 내 자신은 아닙니까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잃어버린 여러분의 가정을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먼저 내 자신이 변화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먼저 변화되면 주님의 평강이 넘치는 축복이 가득한 행복이 가득한 가정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것은 주님앞에 돌아오는 길입니다. 주님에게 여러분의 가정을 다 맡기시고 더욱 의지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그중 한 마리의 양은 고집이 셉니다. 목자를 잘 따르지 않고,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혼자서 돌아다니고 이탈을 잘합니다. 그러다가 이 양이 혼자서 길을 잃게 됩니다. 온종일 혼자서 벌판을 헤매다가 목자를 찾지 못해서 애를 태웁니다. 목자는 목자대로 이 길 잃은 양을 찾아 헤맵니다. 성경을 보면 온전한 양 99마리를 놓아 두고는 이 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서 하루 종일을 헤매며 다녔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다니다가 이 목자는 마침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지쳐 쓰러져 있는 그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냅니다. 그때 이 목자는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어깨에 메고 기쁘게 돌아와서는 집안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표현되는 길을 잃고 돌아 다니는 양은 오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돌아 다니는 현대의 탕자들을 가리키고, 그렇게 애타게 잃은 양을 찾기 위해서 골몰하는 목자의 심정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 즉 부성(父性)입니다. 부성에게는 몸이 성한 99마리의 양도 소중하지만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그 허기진 한 마리의 존재에 더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부모의 마음은 건강하고 잘 사는 자식보다는 건강치 못하고 잘살지 못하는 자식에게 마음이 더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홀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한 아들은 짚신 장사를 하였고, 또한 아들은 우산 장사를 하였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많이 팔 아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짚신 못 팔 아들을 생각해서 울었고, 날이 좋은 날에는 짚신 많이 팔 아들을 생각한 것이 아니고 우산을 팔지 못할 아들을 생각해서 울었던 그 모성, 그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물론 건강하고, 잘 따르고, 순종 잘하는 99마리의 양도 목자에게는 소중했지만, 그 목자에게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존재 역시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 헤매는 목자의 심정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고 있는 잃은 자 사상입니다. 두 번째는 “탕자의 비유”입니다. 어떤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성실했고, 근면했고, 열심히 일하며, 효성스럽고 나무랄 데 하나 없는 그런 아들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습니다. 놀기를 좋아하고, 성실치가 않습니다. 그러다가 집을 나갔습니다. 그 아들이 집을 나가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나가서 방탕 생활을 합니다. 그러고 나서 싫도록 고생을하고, 나중에는 병까지 들어서 낙오자가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잊지 못합니다. 아버지에게는 일 잘하고, 순종 잘하고, 효성스러운 큰 아들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해 했느냐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늘 마음 한쪽으로는 집 나간 아들이 걱정입니다. 그래서 밤마다 문을 열어 놓고는 그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면서 잠을 자지 아니하고 하염없이 기다립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큰 아들이 볼 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속을 썩이고, 가산을 탕진하고, 집안 망신을 시킨 동생이 미웠고, 괘씸했고, 보기도 싫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마음은 형의 마음과 다릅니다. 집 나간 아들이 때로는 괘씸했고, 화도 났지만, 지금 어디서 고생하고 있을 그 아들의 모습을 생각만 하면 잠이 안 옵니다. 그래서 밤이 깊어 가고 있지만 그 깊은 밤에도 문을 열어 놓고 하염없이 기다리고 앉아 있는 아버지,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함께 살고 있는 며느리가 해주시는 반찬이며 온갖 정성은 별 칭찬이 없으시던 시어머니가 일년에 한 두 번 오는 딸들과 다른 형제분들이 고기라도 사오고 술이라도 사오고 용돈이라도 조금 주면 자랑이 끝이 없습니다. 그럴때면 모시고 사는 자식과 며느리는 속이 상함이다. 등글거준 공은 하나도 없고 그저 딸자랑 사위자랑이지 어디 며느리 칭찬한번 하면 어디가 덧납니까 이것이 부모님의 마음입니다. 오랫동안 보지못하던 자식이 눈앞에 있으니 그것이 좋고 기쁠 따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도 같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그렇게 잃어버린 탕자를 찾으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탕자의 비유입니다.
세 번째 비유는 “동전 드라크마 비유”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목적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느 여인이 열 개의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드라크마는 당시 헬라에서 사용하고 있던 은전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니까 이 여인이 열 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찾아보았지만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빗자루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이곳 저곳을 쓸어서 겨우 잃어버렸던 동전을 찾아 냈다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너무나 기뻐서 벗들을 불러다가 그 동전을 찾음으로 해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경제적인 가치로 보면 은전 하나보다 잔치를 베푼 경비가 더 들었을 것입니다. 동전 하나를 찾은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해서 그것을 찾았다고 사람들을 불러다가 많은 경비를 들여서 잔치를 베풀기까지 할 것입니까 이해가 잘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해가 안 되니까 사람들은 동전 하나를 무시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즘에는 거지들도 동전 하나를 주면 우습게 여깁니다. 언젠가 거지 세명이 사무실까지 찾아와서는 한푼 달라고 해서 동전 하나씩을 주니까 그 거지가 그럽니다. “누굴 거지로 아느냐”고, 그래서 두 개씩을 주니까 그냥 돌아갔습니다. 여기 이 여인이 열 개의 동전 가운데서 하나를 잃어버렸다가 찾았다고 잔치를 배설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여인은 지금 은전 열 개를 실에 꿰어서 목에 걸고 다녔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악세사리로 달고 다닌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이 왜 동전을 꿰어서 목걸일 달고 다녔느냐 하면 그래야 악귀를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점쟁이에게 가서 돈을 많이 주고 부적 사듯이 동전 열 개를 사서 이것을 엮어 목걸이를 하고 다니면 악귀가 가까이 하지 못한다는 믿음이 있었던 때입니다. 그 당시는 악귀가 굉장히 많았던 때입니다. 그래서 사복음서를 보면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시는 일이 하나의 중요한 일인 만큼 그때는 귀신 들린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동전 가운데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줄이 끊어져서 그 열 개의 동전 가운데 하나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여기서 열 개 중에서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말은 나머지 9개가 있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 동전이 주는 효과도 없어져 버렸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 말은 또 이제는 악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기 위해서 찾아올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이 여인이 어찌 밤을 새워서 이 동전을 찾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다급한 마음으로 등불을 들고 다니면서 찾아보아도 없으니까 빗자루를 들고 다니면서 집안 전체를 쓸어서 겨우 찾았습니다. 그때 이 여인이 얼마나 기뻐하며 안도를 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을 불러다가 잔치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사상이 하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 사상”입니다. 여러분, 하나가 중요합니다. 하나는 곧 전부입니다. 하나가 없으면 전체가 무용 지물이 됩니다.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전체가 도움이 되고, 전체에게 기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가 중요합니다. 주께서 보실 때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모두 귀중한 존재들입니다. 하나가 있음으로 해서 모두가 행복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은 또 하나가 없음으로 해서 모두가 불행해질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이 있으므로 여러분의 가정이 행복합니다. 여러분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교회가 축복을 받습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아프면 모든 가족이 다 아픕니다. 한 사람이 아픔으로 그 한 사람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기쁨이 없어지고, 신명을 잃게 되고, 가정 전체가 평안이 없어지고, 가족 모두가 우울해집니다. 여러분, 가족 중에서 한 사람이 실패를 하면 온 가족이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온 가족이 힘을 잃게 되고, 온 가족 모두가 낙심을 하게 되고, 기쁨을 잃게 됩니다. 손가락 하나에 조그만 가시가 박혀 보십시오. 그러면 손가락 하나만 아픈 것이 아닙니다. 몸 전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하나가 전체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한 사람 실패하고 여러분 한 사람 주일성수하지 못하면 온 교회가 기쁨을 잃게 됩니다. 여러분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지체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이며 우리 모두 하나님의 자녀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믿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모습을 오늘 보시고 매우 흡족해 하시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형제자매를 인하여 근심하며 걱정하실 줄 믿으시기 바라니다. 여러분, 가족들이 모두 신앙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모두가 신앙 안에서 한 뜻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데, 그중에서 단 한 사람의 탕자가 있어 보십시오. 그 한 사람의 탕자 때문에 전체 가족들의 마음이 기쁘지가 않습니다. 마음이 기쁘다가도 그 탕자를 생각만 하면 기쁘던 마음이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그 탕자가 끝내 주께로 돌아오지 않고 그대로 방탕을 하다가 사고를 당해서 세상을 떠났다고 해보십시오. 그러면 가족들은 두고두고 마음에 기쁨을 잃고, 근심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한 사람이 차지하는 비중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 보면 철 없는 자식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 철없는 자식들이 부모의 마음을 썩이다가 싫은 소리라도 하게 되면 하는 말이 “나만 죽으면 그만이다.”하고 화를 냅니다. 이것처럼 무책임한 말이 없습니다. 어째서 나만 죽으면 그만입니까 정말 나 하나만 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그만인 것입니까 내가 죽어 없어짐으로 인해서 마음 아파할 사람이 한두 사람입니까 나 한사람 빠지면 표시도 안나겠지 하나님도 모르실거야. 그러나 아닙니다. 여러분을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한 사람의 존재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잃어버린 양을 찾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가 내 집에 있는 한, 그 가정에는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지 않고는 몸 성한 99마리의 양이 곁에 있어도 마음이 기쁘지가 않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목자는 그 양을 찾기까지 헤매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찾아야만 기쁨이 오고, 평안이 와서 잠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나 하나가 성공하면 모두가 성공을 하는 것이고, 모두가 기쁘게 되는 것이고, 모두가 행복해진다는 말입니다. 나 하나가 바로 서면 모두가 바로 서게 됩니다. 그리고 나 하나가 변화를 받으면 모두가 함께 변화를 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나 하나가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부여된 이 같은 값을 알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을 자주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자주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시고 자랑스러운 복된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했던 야곱은 에서를 제치고 장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같은 축복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잃어버린 양은 누구입니까 집나간 탕자는 누구입니까 잃어버린 동전은 누구입니까 혹시 내 자신은 아닙니까 주님은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잃어버린 여러분의 가정을 구원하실 분이십니다. 먼저 내 자신이 변화되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먼저 변화되면 주님의 평강이 넘치는 축복이 가득한 행복이 가득한 가정이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것은 주님앞에 돌아오는 길입니다. 주님에게 여러분의 가정을 다 맡기시고 더욱 의지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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