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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야 할 드라크마 (눅1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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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기의 저 유명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 Luther)는 '사랑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이요, 생명 없는 형상이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사랑은 온갖 양선(良善)의 빛을 충만히 발하는 신성(神性)의 살아있는 본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신성의 사랑은 죄인을 찾아오심에서 나타났습니다. 그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를 세상에 보내심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예수께서 직접 들려주신 세 비유 곧 잃은 양을 찾는 목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 잃은 자식을 찾는 아버지의 비 유는 죄인을 찾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사랑을 묘 사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두 번째 비유인 '찾아야 할 드라크마'라는 비유를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I. 드라크마의 중요성 누가복음 15장 8절에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 중에 사용하신 '드라크마'는 당시 헬라 의 화폐인 '은전(銀錢)'의 명칭입니다. 로마 화폐의 '데나리온'에 해 당되는 것입니다. B.C. 300년경에는 양 한 마리의 값에 해당되었습니다. 예수 당시에는 노동자의 하루 품삯에 해당되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결혼할 때, 딸이 얼마나 귀한가를 깨닫게 하기 위 해서 장가드는 남편이나 남편의 아버지 편에서 신부의 아버지에게 신 부를 데려오는 값을 지불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부 에게는 선물을 주었는데 그 선물이 바로 '열 드라크마의 은전을 줄에 꿰어서 신부에게 보낸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날의 결혼반지와 같은 종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드라크마의 중요성은 그 값의 고저에 있지 아니하고, 신 랑이 신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랑의 증표로서의 중요성과 의미를 담 고 있는 것입니다. 그 예물을 받은 신부는 일생 동안 그 줄에 꿰인 열 개의 드라크마를 하나도 잃어버리지않고 잘 간직하고 소중히 여 겨야만 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사랑해 주는 남편에 대한 자기 애정 과 수절과 존경의 표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유대 여자들은 이 열 드라크마의 은전으로 엮여진 줄을 목에 걸거나 머리에 쓰는 베 일에 엮어서 걸고 다닐 정도로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남편에 대한 애정과 순정과 존경의 표식인 동시에 또한 다른 남자들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방어적 수단도 되었습니다. 여자들이 드라크마를 목에나 머리 수건에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랑 하는 남편이 있는 표식으로 여기고 남자들이 다른 마음을 품지 못하 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열 드라크마는 자신의 신분과 생명을 대신하는 표식과 도 같은 것입니다.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랑의 증표인 동 시에, 또한 여인 자신이 남편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랑의 증표라는 사 실에서 드라크마의 의미와 가치와 그 중요성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의 비유 중에 사용하신 드라크마는 이렇게 '사랑의 증표' 로서 큰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 은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라고 하였습니다.
Ⅱ.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봅니다. 누가복음 15장 8절에 다시 말하기를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이라고 하였습니다.
1. 여자가 잃어버린 드라크마입니다.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받은 선물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어버 린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남편의 것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여 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2. 열 드라크마 중 그 하나를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중 양은 백 마리 가운데 한 마리, 곧 100:1의 비율 입니다. 드라크마는 열 드라크마 중 한 드라크마 곧 10:1의 비율입니다. 그녀는 자기를 사랑하는 남편으로부터 열 드라크마를 받았습니다. 그 중에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럼에도 그 드라크마가 없으면 잃어버리지 않은 아홉 드라크마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녀가 남편에게 받은 본래 의 드라크마가 '열'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자기의 순 정과 사랑과 존경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열 드라크마가 꿰 어져 있지 않은 은전은 구멍 뚫린 자기 모습을 남편과 세상에 보여 주는 수치였습니다.
3. 집에서 잃어버린 드라크마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 8절 중에 …집을 쓸며 찾았다는 말씀이 이 사실 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녀의 상실은 외부적인 이유가 아 닌 내부적인 이유였습니다. 멀리가 아니라 가까운 곳에서의 상실이었 습니다. 남(타인)이 아닌 자기로부터 일어난 문제였습니다. 여기 비유에 나타난 여자는 영적으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이 세상 에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교회의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는 우리의 신랑으로, 우리는 그의 신부로 비유되고 있습니다(마 25:1-13).
그렇다면 교회에 주어진 '드라크마'는 주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증표인 각양 은사들이 됩니다. 주님께서 자기 피로 우리를 값 주고 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조상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벧전 1:18-19). 그 보배로운 피야말로 사랑의 증표 정도가 아니고 사랑 그 자체요, 그의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자기 피를 지불하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신 주님은 우리에게 거기에 따라오는 여러 가지 사랑의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중대한 비유 적 교훈은 여자 자신이 드라크마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교회 자 체가 주께로부터 받은 생명이나 또 생명에 따르는 여러 은사들을 잃 어버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여자의 집에서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교회 안에서 잃어버려진 드라크마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 여인의 고통이 있고, 아 픔이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오늘 교회 자체 안에 문제성이 있 고 아픔과 통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Ⅲ. 찾아야 할 드라크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들려주신 비유의 초점은 '드라크마'에 있습니다. 그 드라 크마를 가진 '여자'에게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 여자가 잃어버린 드 라크마를 찾아야만 한다는데 이 비유의 중심이 있는 것입니다. 찾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찾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꼭 찾아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필연적으로 찾아야 된다는 사실을 말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한 드라크마가 없으면 나머지 아홉 드 라크마도 잃어버린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입니다. 아니 신랑이 보낸 사랑의 증표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도로 찾아 본래와 갖게 되지 않고는 그 여인의 존재의미나 가치나 목적마저 상실 당하고 말기 때 문입니다. 어떻게 찾았던가
1. 등불을 켜 들고 찾았습니다. 본문 15장 8절 중에 …잃으면 등불을 켜고… 찾지 아니하겠느 냐 라고 하였습니다. 당시 가난한 서민의 집에는 적당한 창문이 없어서 낮이라도 밤과 같이 방이 어두웠습니다. 그래서 어둠을 밝히는 등불을 켜 들고 잃어 버린 은전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빛을 받은 은전은 반짝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회인 여인이 자기의 잘못으로 은전을 잃어버린 줄을 알고, 각 성하고 회개하면서 성령님과 말씀 중심으로 되돌아가 빛을 발휘하면서 죄인을 찾는 상태를 보여줍니다. 주께로부터 받은 사랑의 증표인 드 라크마는 본래 교회의 것이 아니고 주께로부터 받은 것들입니다. 그 렇기 때문에 주의 빛을 받아서 찾아야 합니다.
2. 집을 쓸며 찾았습니다. 본문 15장 8절은 또 말하기를 …집을 쓸며… 찾지 아니하겠느 냐 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돈을 잃은 자가 '방을 쓸 듯이' 정성스러이, 주밀하게, 용 의주도하게 전도운동, 회개운동을 전개해야 될 것을 가리킵니다. 각 자 각자가 분명하고, 각근(恪近)하고, 철저하게 접촉하면서 찾는 운 동을 가리킵니다.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두 다 복음으로 돌아오도 록 그물을 펴고 고기를 잡듯이 만전을 기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찾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 안됩니다. 복음의 불을 받 아 뜨겁고 열정적으로 그 개인의 영혼을 사랑으로 녹여야 합니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 가면서 찾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3. 부지런히 찾았습니다. 본문 15장 8절 중에 또 말하기를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 겠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등불을 켜고 온 집을 쓸면서 찾는 용의주도한 계획이 있을 지라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찾도록 부지런히 찾아야 된다는 말은,
1) 필연적인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찾아도 괜찮고 찾지 않아도 괜찮고, 찾으면 찾지 않음보다 좋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찾도록 찾아야 된다는 필연적인 목적이 전제가 됨 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녀에게 생사문제와 직결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2)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상습적이 되고, 그것이 삶의 의미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끝까지 찾고야 마는 수고의 인내가 따름을 의미합니다.
4) 찾도록 찾지 않으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하는 책무적 사명감으로 찾아야 될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구원받을 영혼의 파수꾼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린도전서 9장 16절 말씀처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 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 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 한 사실 때문입니다. 로마서 1장 14절 말씀처럼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고 한 사실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잃어버린 드라크마는 기어이 찾고 말아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강세목적이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하였습니다(눅 19: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은 사람의 영혼을 찾아 예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은 바로 별들 의 전쟁입니다. 그 사람은, 그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별과 같이 빛나는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단 12:3). 별들의 전쟁은 집밖에서만 벌이는 것은 아닙니다. 별들의 전쟁은 집안에서도 이루어집니다. 내 개인의 영적 생활에서도, 내 육신의 가 정에서도, 내 섬기는 교회에서도 벌어져야 할 전쟁입니다. 그 이유는 집안에서도 주께로부터 받은 은총의 드라크마를 잃어버리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기독신자들과 교회는 이미 주께로부터 받은 많은 드라크마를 잃어버리는 줄도 모르고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살기가 좋아진다고 하는 이른바 문명과 문화생활들 중에서 특히 그러합니다. 오늘 개인과 가정과 교회들은 먼저 구원의 복음 그 자체에 대한 확 인을 다시 해야 합니다. 구원인 의식, 그리스도인 의식 말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죄 사유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인)가 된 영생인 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한 종교인으로서의 교인으로 살고 있는가 기독교적 문화인으로 살고 있는가 구원인으로 살고 있는가 십자가 적 구속인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성경을 갖고 있으면서 실상은 성경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독경생활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또 그 성경이 요구하는 삶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도로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 드리는 수많은 예배들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주일예 배, 밤예배, 수요예배, 기타 길흉사 간에 드리는 예배를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도로 찾아야 합니다.
예배는 삶의 목적이고 중심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살기 위하여 드리는 기복적 예 배, 수단으로서의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 섬기는 사람의 사람된 제일 의 본분으로서의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엿새 동안의 모든 삶은 주일 에 하나님 섬기는 예배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어야 합니다. 잃어버린 가정예배를 찾아야 합니다. 직장예배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예배를 빼앗기거나 놓치거나 잃어버리면, 사실상 사 탄에게 내 인생을 빼앗겨버린 상태입니다. 우리는 주께 드리는 기도를 도로 찾아야 합니다. 바쁘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주께 도움을 받고 살아가게 하는 기도를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많은 일, 바쁜 일 때문에 기도를 빼앗기기 말고, 많은 일 바 쁜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기도를 찾아야 합니다. 일이 기도를 잡아 먹게 하지 말고, 기도가 일을 잡아먹도록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 드리는 많은 찬송들과 감사들을 참으로 많이 생략하 고, 또 잃어버려 갑니다. 십일조 생활이나 여러 류의 감사 헌물을 도 로 찾아 주께로 가져와야 합니다. 우리는 주께 드리는 많은 봉사들과 희생들을 도로 찾아야 합니다. 엿새 동안의 모든 삶을 하나님과 관계없이 산다고 하면 그는 살았으 나 실상은 죽은 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의 드라크마들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찾기를 좋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 찾은 결과는 큰 잔치였습니다. 죄인 한 사람의 영이 하나님 앞에서 잘 되는 일은 하나님의 기쁨이요, 그의 사자들의 기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또 하나 다른 류의 별들의 전쟁입니다. 교회 자체가 받은 은사 회복 운동 말입니다. 병든 영이 새롭게 되는 운동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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