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시대를 사는 청지기의 삶 (누가15:11-14)
본문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비유말씀 가운데 2/3가 돈에 관한 것임을 알게될 때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께서 영적인 것에 관해서만 말씀해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의 비유 말씀중 2/3를 돈에 관한 것으로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관하여 3가지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가난의 신학(theology of poverty)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된다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어느 관헌에게 주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18:18-20에 보면, 어느 유대관헌이 예수님께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이 관헌은 내가 어려서부터 이 말씀들을 다 지키며 살았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유대인 지도자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기에.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그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가난의 신학을 주장하는 분들은 모든 크리스챤은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회사를 보아도 이태리의 앗씨시의 성 프란시스같은 분은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물질생활을 누리다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부모로 받은 상속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자기 자신은 가난한 수도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그의 생애 마지막 즈음에 자기 농토를 처분하고 농노를 해방시켰고,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사유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죄악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사는 것이 더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에서는 영적인 삶을 살기위해 가난해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을 통해 영성이 증진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 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지 돈 자체는 죄악된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5-8절에는 구제를 은사로 말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베풀기 위하여는 줄 것이 있어야 함으로 크리스챤이 정직하게, 근면하게 일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은 영적인 은사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모든 사람은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백여년 전에 칼 마르크스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는 사회공산주의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사회공산주의는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챤들 가운데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사도행전 2장 44-45절의 말씀을 항상 인용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또한 사도행전 4장 32절에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사랑의 영인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마음은 물론 물질도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유 재산을 포기하고 사회공산체제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근거하여 사회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이용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오순절교회 한국에서는 주로 순복음교회라고 알려져 있는에 이 오순절교회의 영향을 받아 번영의 신학(theology of prosperity)또는 건강과 부의 복음(health and wealth gospel)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크리스챤은 불신자보다 몸이 더 건강해야되며, 더 잘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시편37:4절을 인용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한후, 내 마음속에 고급승용차인 벤츠나 BMW, 또는 자가용 비행기나 대궐과 같이 큰 저택을 원하면 하나님이 이뤄 주신다고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오순절계통의 설교자들은 주장합니다.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분들이 즐겨 인용하는 다른 성경말씀은 고후 8:9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지, 우리를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오순절계통의 설교자, 한국의 조용기 목사같은 분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우리는 왕처럼 살아야지 가난하고 병들면, 왕이신 우리 하늘 아버지를 모독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수치로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으로 기독교인들 가운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내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왕답게 부유하게 살지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감까지 가지게끔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물량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성경전체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해석입니다. 이처럼 크리스챤은 가난하게 살아야 영적인 삶을 살수 있다는 주장, 진실된 크리스챤은 사유재산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 믿는 사람은 왕처럼 잘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성서는 우리 크리스챤은 어떠한 물질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성서는 우리가 청지기의 삶을 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서는 우리가 청지기의 신학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신실하게 충성되게, 그리고 책임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청지기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믿습니다. 나의 생명, 나의 자식, 나의 가정, 나의 모든 재산과 물질이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얻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 가운에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임을 인정합니다. 삶은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로 삶은 하나의 특권(privilege) 이지, 나의 권리(right)가 아님을 믿습니다. 내가 부유하건 가난하건 나의 모든 소유물이 다 주님의 것임을 청지기는 인정합니다. 그러하기에 주신 물질을 책임있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투자하며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탕자는 책임있는 청지기로 살지를 모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이나, 사랑,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 정직, 책임보다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소유하게 되면,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하게 되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본문 말씀 12절에 보면, "그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나워 주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최근 감성지수를 주장하는 분들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순간적인 만족을 맛보기 보다는 미래를 위하여 그러한 욕망을 참고 인내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부의 현대인들은 미래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의 만족을 맛보고자 하는 욕망을 지연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 순간의 만족감을 맛보고자 합니다. 텔레비젼의 광고 마다 우리에게 당장 이 물건을 사서 줄기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없어도 은행의 신용카드로 당장 이 물건을 사서 즐기라고 광고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 순간을 즐길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광고는 우리에게 구매충동을 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비자카드를 잃어버렸는데도 어느 남편은 은행의 도난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비자카드를 훔친사람이 자기 아내보다 카드로 물건을 적게 살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탕자처럼 미래를 생각지 아니하고 순간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탕자는 돈을 잘못된 일에 낭비하였습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둘째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30절에 보면 큰 아들은 동생이 창기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물을 책임있게 사용하지 못하고, 허랑방탕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나이트 클럽이나 룸살롱에는 아직도 밤마다 고급외제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술 한병에 1백 50만원씩 나가는 위스키를 마시고 30만원씩의 팁을 거침없이 뿌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최신 신문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모피소비국인데 싯가 9천5백만원이나 나가는 최고급 롱코트도 심심치 않게 팔리고 있으며, 한벌에 1천만원씩하는 코트가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술소비량도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 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금년 10월까지 1년동안 한국 국민들이 소비한 맥주, 소주, 탁주, 위스키등 한해 60억병이 넘게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연간 담배 소비량도 세계 제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같은 기간동안 흡연인구 1인당 담배소비량은 4만1천53개비로 일인당 평균 연간 253만원을 담배연기로 날려버린 것입니다. 무속인숫자도 최하 60만명으로 인구 6.6명당 한명꼴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해동안 무속인들에게 가져다 주는 복채는 1조 4천억원이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같은 천문학적인 수치의 복채보다 한국민을 나약하게 숙명과 운명론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만드는데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음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화투나 카드놀이에 미쳐가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탕자는 어려운때가 오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14절에 보면,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서 궁핍한지라." 탕자는 물쓰듯이 낭비하는 돈이 항상 지갑에 남아있으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형통할때가 있으면 어려운때도 온다는 것을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내일일을 알수가 없기에 항상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 내일 일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민족은 경제사정이 좋을때가 있으면, 어려울때도 다가 온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니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일시적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이 좀 잘된다고해서 정부에서는 공무원을 대거 해외 연수시키며, 국민들에게도 해외여행을 가서 일만 달러씩 쓸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구조조정과 국제 경쟁력강화를 위한 준비는 하지 않고, 값비싼 외국 사치품만 수입하여 팔거나, 고가의 출연료를 주고 외국의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음악회를 하는등 달러를 물쓰듯이 했습니다. 세월이 좋을 때에 어려운 때에 대비하여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탕자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상으로 소비를 했습니다. 14절에 보면 "다 없이한 후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서 궁핍한지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래도 자기가 감당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살았습니다. 현금이 없으면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은행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금이 당장 없어도 은행카드올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금으로 물건을 사는 것 보다 카드로 물건을 사면 34%나 물건을 더 산다고 합니다. 즉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사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비자나 마스터카드로 3천 8백 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며, 매달 은행 이자돈만 50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있다고 합니다. Walter Cavanaugh라는 사람은 취미로 신용카드를 수집하고 있는데, 그는 1,199개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연봉이 약 8만달러가 되는데,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 1,199개중 800개로 일백사십만 달러의 물건을 외상으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일년에 8만 달러 버는 사람이 하루에 일백 40만달러의 물건을 산다고 하면 그는 일평생 빚을 못갚게 되어 파산선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적인 파산선고를 했습니다. 물건을 수출하여 버는 돈보다 쓰는돈이 너무나 많았고, 단기 외채의 높은 이자돈들을 갚을 능력이 없어 국가적으로 파산선고를 하고 경제위기에 돈을 빌리게 된것입니다. 개인이건, 가정이건, 국가이건 자기의 수입범위내에서 살어야지, 자기 능력이상으로 사치로운 삶을 살게 되면 파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탕자는 다행스럽게도 회개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갔습니다. "이어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애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 15:17-20) 탕자는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가 이제는 책임있는 청지기로 살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탕자를 아버지는 사랑으로 용납하여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탕자는 이제는 책임있는 청지기, 아버지의 아들로서 살기를 원했다. 그러면 청지기의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청지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수입의 첫 열매의 십일조를 드릴수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증거입니다. 최소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우리는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과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내가 드리는 십일조의 금액은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드린 십일조는 내가 하나님의 정원에 심는 종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십일조를 취하셔서 많은 수확을 거둬 드릴 수 있도록 복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을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3:9-10절에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또한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내려 주시기 위하여 수입의 첫 열매인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는 삶을 간소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미국의 수도 워싱톤 디씨를 수학여행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국회의사당, 국립묘지,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 그리고 스미소니안 박물관등 여러 유명한 곳에 다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준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번 여해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어느 때였느냐고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공원에 앉아 햄버거를 먹었을때와 공원 호숫가를 거닐며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었을 때가 가장 즐거웠었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재물을 더 많이 소유할수록 simple한 일. 소박하고 간소한 일에 행복을 맛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삶의 행복과 기쁨은 재물을 더 많이 소유하고, 호화롭고, 사치스러운일에 있지 않고, 소박하고 단순한 일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바라볼 때, 맑고 푸른하늘을 바라볼 때,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때, 한적한 곳을 거닐 때, 맑은 시냇물을 바라볼 때, 다정한 친구와 따뜻한 말을 나눌 때, 이러한 소박한 일에서 우리는 만족감을 맛볼수 있어야 겠습니다. 어느 학교 선생님이 값비싼 스포츠형의 차인 코르벳트를 가지기를 원하여 몇 년간 저축을 한후, 비싼 차를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싼 차를 산 후 항상 걱정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땅이 큰 나라라 주차장의 주차공간 면적이 매우 넓습니다. 차 사이에도 상당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선생의 옆에 차를 세우는 사람이 차문을 열 때 내 차에 닫는 것이 아닌가 내차가 움푹 파지거나, 페인트가 벗겨지는 것은 아닌가 항상 신경이 쓰여졌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두 개의 자동차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자기차 한 대를 주차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항의 하는 편지를 자동차 윈도의 와이퍼에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선생은 아무도 주차하지 않는 먼곳에 자기 차를 세워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 세워둔 내 차를 혹시나 누가 훔쳐가면 어떻하나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선생님은 자기 차에 도난방지장치를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도난방지 알람이 크게 울려 동네 사람들의 잠을 깨워놓기도 여러번 했습니다. 그는 고급차를 산 까닭에 마음이 편안하고 기쁘기 보다는 오히려, 더 신경만 쓰이고 걱정만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그 선생은 고급차를 팔아버리고, 중고차를 사서 쓰게된 이후에 마음이 그렇게도 편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삶에 기쁨과 행복은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일에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일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박하고 작은 것에 삶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청지기는 계획성 있게 살아갑니다. 어느 기독교 경제전문가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는
1)꼭 있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것, must have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소유의 것이건, 전세를 낸것이건 간에 잠을 잘 집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이 있어야 합니다.
2)필요한 것, should have가 있습니다. 의복, 가구, 냉장고
3)가지기를 원하는 것, like to have가 있습니다. 자동차, 컴퓨터, 새옷, 휴가,에어콘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경기시대에는 우리는 가지기를 원하는 것들(like to have)은 아니가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새차를 가지고 싶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차를 몇 년 더 사용하는 것, 새 컴퓨터를 가지고 싶지만, 지금 사용하는 것을 더 업그레이드시켜 사용하거나, 새옷을 사는 것을 미루는 것등이 필요합니다. 가계를 계획에 의해 운영하는 한 여자분은 식료품점에 물건을 사러갈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것저것 사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녀가 계획한 것 이상으로 식료품을 사게 된다고 합니다. 기독교 경영상담가인 래리버컷트에 의하면 물건을 구매하는데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낫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여자들은 충동에 의해 물건을 산다면, 남자들은 터무니없이 낭비하는 물건들을 살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새옷을 산다면, 남자들은 너무나 몇십배 비싼 컴퓨터나, 스포츠 자동차나, 심지어 보트까지 생각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도 몇 년전 어느 세미나에 갔다가 발바닥을 전기로 맛사지하는 기계를 40만원에 주고 사왔습니다. 그 기계로 발바닥을 매일 맛사지하면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을 것처럼 선전하는 것에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를 사온 후 몇번 밖에 사용하지 않고 집안 한구석에 쳐박혀 있으며, 그 기계는 지금은 10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습니다. "지혜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잠21:20)고잠언의 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지혜를 가지고 계획성있게 재정을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이웃과 나눌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 기독교 재정연구원의 통게에 의하면, 미국인의 경우 저소득층인 연수입 일만달라의 수입이 있는 사람은 자선단체에 자기 총수입의 5%의 돈을 기부했고, 중간저소득층인 연수입 5만달러의 수입이 있는 사람은 자기수입의
3.2%를 자선단체에 기증을 했으며, 고소득층인 연수입 10만달러 이상이 되는 사람은 자기수입의
2.9%를 자선단체에 기증을 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사정을 알기에 부유한 자보다 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억만장자인 CNN뉴스의 소유주인 데드 더너는 나누지 못하는 부유한자들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그의 글에서 나무라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권위잇는 경제잡지인 Forbes에서 해마다 가장 부유한 사람 400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러지 말고 가장 많이 베고픈 사람 명단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나누지 못하는 것을 바라볼 때 분노심을 느낀다고 테드 터너는 말하면서,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는 나누는 삶을 살게 될 때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아니했는가라고 말합니다. 테드 터너는 빌 게이츠와 같은 억만장자들에게 좀더 너그러운 삶을 살라고 권면한 적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120억 달러를 버는 것과 110달러를 버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그러나 10억달러를 가지고 대학 하나를 세울 수 있지 않느냐고 테드 터너는 반문합니다. 작년도 미국의 대형교회를 순방할 때 빈야드 교회를 방문했을 때 받은 깊은 인상은, 그들이 구제사업에 매우 활발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본당의 3배나 되는 방에 교인들이 안 입는 옷, 그리고 기증한 통조림 요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가난한 멕시칸들이나 흑인들이 와서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가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친힌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 에수께서는 산상보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 6:19-21)4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께서 영적인 것에 관해서만 말씀해주신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삶에 물질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의 비유 말씀중 2/3를 돈에 관한 것으로 할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에 관하여 3가지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가난의 신학(theology of poverty)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자가 된다는 것은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어느 관헌에게 주신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18:18-20에 보면, 어느 유대관헌이 예수님께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고 말씀하시자, 이 관헌은 내가 어려서부터 이 말씀들을 다 지키며 살았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다시 말씀하시기를 "네가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유대인 지도자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사랑했기에.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그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가난의 신학을 주장하는 분들은 모든 크리스챤은 이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회사를 보아도 이태리의 앗씨시의 성 프란시스같은 분은 부잣집의 아들로 태어나 풍족한 물질생활을 누리다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부모로 받은 상속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자기 자신은 가난한 수도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도 그의 생애 마지막 즈음에 자기 농토를 처분하고 농노를 해방시켰고,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사유재산을 소유하는 것을 죄악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게 사는 것이 더 영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성경에서는 영적인 삶을 살기위해 가난해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난을 통해 영성이 증진되지 않습니다.
사도바울은 디모데 전서 6장 10절에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지 돈 자체는 죄악된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5-8절에는 구제를 은사로 말하고 있습니다. 남에게 베풀기 위하여는 줄 것이 있어야 함으로 크리스챤이 정직하게, 근면하게 일하여 재물을 모으는 것은 영적인 은사중 하나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모든 사람은 재물을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백여년 전에 칼 마르크스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그는 사회공산주의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사회공산주의는 개인 소유를 인정하지 않으며,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크리스챤들 가운데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사도행전 2장 44-45절의 말씀을 항상 인용합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고,"또한 사도행전 4장 32절에 보면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사랑의 영인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마음은 물론 물질도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사유 재산을 포기하고 사회공산체제를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과 4장에 근거하여 사회 공산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을 잘못 이용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오순절교회 한국에서는 주로 순복음교회라고 알려져 있는에 이 오순절교회의 영향을 받아 번영의 신학(theology of prosperity)또는 건강과 부의 복음(health and wealth gospel)을 주장하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크리스챤은 불신자보다 몸이 더 건강해야되며, 더 잘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흔히 시편37:4절을 인용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이 말씀대로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한후, 내 마음속에 고급승용차인 벤츠나 BMW, 또는 자가용 비행기나 대궐과 같이 큰 저택을 원하면 하나님이 이뤄 주신다고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오순절계통의 설교자들은 주장합니다.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분들이 즐겨 인용하는 다른 성경말씀은 고후 8:9절의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함이지, 우리를 물질적으로 부유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번영의 신학을 주장하는 오순절계통의 설교자, 한국의 조용기 목사같은 분들은 말합니다. 우리는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기에 우리는 왕처럼 살아야지 가난하고 병들면, 왕이신 우리 하늘 아버지를 모독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구속을 수치로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으로 기독교인들 가운데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은 내가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왕답게 부유하게 살지 못한다고 스스로 자책감까지 가지게끔 잘못 인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물량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성경전체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해석입니다. 이처럼 크리스챤은 가난하게 살아야 영적인 삶을 살수 있다는 주장, 진실된 크리스챤은 사유재산을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 믿는 사람은 왕처럼 잘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다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성서는 우리 크리스챤은 어떠한 물질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성서는 우리가 청지기의 삶을 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서는 우리가 청지기의 신학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신실하게 충성되게, 그리고 책임있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청지기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나의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믿습니다. 나의 생명, 나의 자식, 나의 가정, 나의 모든 재산과 물질이 내 힘과 내 능력으로 얻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은혜 가운에 나에게 선물로 주신 것임을 인정합니다. 삶은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특별하신 선물로 삶은 하나의 특권(privilege) 이지, 나의 권리(right)가 아님을 믿습니다. 내가 부유하건 가난하건 나의 모든 소유물이 다 주님의 것임을 청지기는 인정합니다. 그러하기에 주신 물질을 책임있게 하나님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투자하며 사용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탕자는 책임있는 청지기로 살지를 모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믿음이나, 사랑, 부모와 형제, 그리고 친구와의 관계, 정직, 책임보다 물질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소유하게 되면, 그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행복하게 되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하기에 오늘 본문 말씀 12절에 보면, "그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나워 주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최근 감성지수를 주장하는 분들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순간적인 만족을 맛보기 보다는 미래를 위하여 그러한 욕망을 참고 인내하는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부의 현대인들은 미래를 위하여 지금 이 순간의 만족을 맛보고자 하는 욕망을 지연시키지 못합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 이 순간의 만족감을 맛보고자 합니다. 텔레비젼의 광고 마다 우리에게 당장 이 물건을 사서 줄기라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갚을 능력이 없어도 은행의 신용카드로 당장 이 물건을 사서 즐기라고 광고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이 순간을 즐길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광고는 우리에게 구매충동을 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비자카드를 잃어버렸는데도 어느 남편은 은행의 도난신고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비자카드를 훔친사람이 자기 아내보다 카드로 물건을 적게 살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탕자처럼 미래를 생각지 아니하고 순간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려고 합니다. 탕자는 돈을 잘못된 일에 낭비하였습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그 후 며칠이 못되어둘째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30절에 보면 큰 아들은 동생이 창기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해 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물을 책임있게 사용하지 못하고, 허랑방탕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의 나이트 클럽이나 룸살롱에는 아직도 밤마다 고급외제 승용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술 한병에 1백 50만원씩 나가는 위스키를 마시고 30만원씩의 팁을 거침없이 뿌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최신 신문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세계 최대의 모피소비국인데 싯가 9천5백만원이나 나가는 최고급 롱코트도 심심치 않게 팔리고 있으며, 한벌에 1천만원씩하는 코트가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또한 술소비량도 한국이 세계 1위를 차지 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10월부터 금년 10월까지 1년동안 한국 국민들이 소비한 맥주, 소주, 탁주, 위스키등 한해 60억병이 넘게 술을 마셨다고 합니다. 연간 담배 소비량도 세계 제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같은 기간동안 흡연인구 1인당 담배소비량은 4만1천53개비로 일인당 평균 연간 253만원을 담배연기로 날려버린 것입니다. 무속인숫자도 최하 60만명으로 인구 6.6명당 한명꼴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해동안 무속인들에게 가져다 주는 복채는 1조 4천억원이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같은 천문학적인 수치의 복채보다 한국민을 나약하게 숙명과 운명론에 사로잡힌 사람들로 만드는데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수많은 사람들이 놀음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화투나 카드놀이에 미쳐가는 사람들이 한국사회에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탕자는 어려운때가 오리라는 것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14절에 보면,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서 궁핍한지라." 탕자는 물쓰듯이 낭비하는 돈이 항상 지갑에 남아있으리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형통할때가 있으면 어려운때도 온다는 것을 예측하고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내일일을 알수가 없기에 항상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14절에 보면, " 내일 일은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민족은 경제사정이 좋을때가 있으면, 어려울때도 다가 온다는 것을 알고 미리 준니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일시적으로 반도체를 비롯한 수출이 좀 잘된다고해서 정부에서는 공무원을 대거 해외 연수시키며, 국민들에게도 해외여행을 가서 일만 달러씩 쓸수 있도록 했습니다. 기업체에서는 구조조정과 국제 경쟁력강화를 위한 준비는 하지 않고, 값비싼 외국 사치품만 수입하여 팔거나, 고가의 출연료를 주고 외국의 음악가들을 초청해서 음악회를 하는등 달러를 물쓰듯이 했습니다. 세월이 좋을 때에 어려운 때에 대비하여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탕자는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상으로 소비를 했습니다. 14절에 보면 "다 없이한 후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저가 비로서 궁핍한지라"고 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그래도 자기가 감당할수 있는 범위내에서 살았습니다. 현금이 없으면 물건을 사지 않는 것이 통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은행신용카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금이 당장 없어도 은행카드올 물건을 살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현금으로 물건을 사는 것 보다 카드로 물건을 사면 34%나 물건을 더 산다고 합니다. 즉 필요한 것 이상으로 물건을 사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인들은 평균적으로 비자나 마스터카드로 3천 8백 달러의 빚을 지고 있으며, 매달 은행 이자돈만 50달러 이상을 지불하고 있다고 합니다. Walter Cavanaugh라는 사람은 취미로 신용카드를 수집하고 있는데, 그는 1,199개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의 연봉이 약 8만달러가 되는데, 그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신용카드 1,199개중 800개로 일백사십만 달러의 물건을 외상으로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일년에 8만 달러 버는 사람이 하루에 일백 40만달러의 물건을 산다고 하면 그는 일평생 빚을 못갚게 되어 파산선고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국가적인 파산선고를 했습니다. 물건을 수출하여 버는 돈보다 쓰는돈이 너무나 많았고, 단기 외채의 높은 이자돈들을 갚을 능력이 없어 국가적으로 파산선고를 하고 경제위기에 돈을 빌리게 된것입니다. 개인이건, 가정이건, 국가이건 자기의 수입범위내에서 살어야지, 자기 능력이상으로 사치로운 삶을 살게 되면 파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탕자는 다행스럽게도 회개하고 아버지 집에 돌아갔습니다. "이어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애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눅 15:17-20) 탕자는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아가 이제는 책임있는 청지기로 살기를 소원했던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탕자를 아버지는 사랑으로 용납하여 아들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탕자는 이제는 책임있는 청지기, 아버지의 아들로서 살기를 원했다. 그러면 청지기의 삶은 어떠한 삶입니까 청지기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수입의 첫 열매의 십일조를 드릴수있어야 합니다. 십일조란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최소한의 증거입니다. 최소한 십일조를 드림으로 우리는 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과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됩니다. 내가 드리는 십일조의 금액은 하나님께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드린 십일조는 내가 하나님의 정원에 심는 종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십일조를 취하셔서 많은 수확을 거둬 드릴 수 있도록 복을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을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고 하셨습니다. 잠언 3:9-10절에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하여 또한 우리에게 넘치는 복을 내려 주시기 위하여 수입의 첫 열매인 십일조를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청지기는 삶을 간소하게 사는 사람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자기 교회의 어린이들을 데리고 미국의 수도 워싱톤 디씨를 수학여행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아이들에게 국회의사당, 국립묘지, 대통령이 사는 백악관, 그리고 스미소니안 박물관등 여러 유명한 곳에 다 데리고 다니며 구경을 시켜준 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이번 여해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어느 때였느냐고 목사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공원에 앉아 햄버거를 먹었을때와 공원 호숫가를 거닐며 오리들에게 먹이를 주었을 때가 가장 즐거웠었다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나이가 먹어갈수록 재물을 더 많이 소유할수록 simple한 일. 소박하고 간소한 일에 행복을 맛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삶의 행복과 기쁨은 재물을 더 많이 소유하고, 호화롭고, 사치스러운일에 있지 않고, 소박하고 단순한 일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꽃 한송이를 바라볼 때, 맑고 푸른하늘을 바라볼 때, 깨끗하고 맑은 공기를 마실 때, 한적한 곳을 거닐 때, 맑은 시냇물을 바라볼 때, 다정한 친구와 따뜻한 말을 나눌 때, 이러한 소박한 일에서 우리는 만족감을 맛볼수 있어야 겠습니다. 어느 학교 선생님이 값비싼 스포츠형의 차인 코르벳트를 가지기를 원하여 몇 년간 저축을 한후, 비싼 차를 샀다고 합니다.
그런데 비싼 차를 산 후 항상 걱정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땅이 큰 나라라 주차장의 주차공간 면적이 매우 넓습니다. 차 사이에도 상당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선생의 옆에 차를 세우는 사람이 차문을 열 때 내 차에 닫는 것이 아닌가 내차가 움푹 파지거나, 페인트가 벗겨지는 것은 아닌가 항상 신경이 쓰여졌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두 개의 자동차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자기차 한 대를 주차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항의 하는 편지를 자동차 윈도의 와이퍼에 남겨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선생은 아무도 주차하지 않는 먼곳에 자기 차를 세워놓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 세워둔 내 차를 혹시나 누가 훔쳐가면 어떻하나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선생님은 자기 차에 도난방지장치를 해놓았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도난방지 알람이 크게 울려 동네 사람들의 잠을 깨워놓기도 여러번 했습니다. 그는 고급차를 산 까닭에 마음이 편안하고 기쁘기 보다는 오히려, 더 신경만 쓰이고 걱정만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그 선생은 고급차를 팔아버리고, 중고차를 사서 쓰게된 이후에 마음이 그렇게도 편안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삶에 기쁨과 행복은 사치스럽고 호화스러운 일에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일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박하고 작은 것에 삶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실한 청지기는 계획성 있게 살아갑니다. 어느 기독교 경제전문가에 의하면, 우리의 삶에는
1)꼭 있어야만 하는 필수적인 것, must have가 있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자기소유의 것이건, 전세를 낸것이건 간에 잠을 잘 집이 있어야 합니다. 음식이 있어야 합니다.
2)필요한 것, should have가 있습니다. 의복, 가구, 냉장고
3)가지기를 원하는 것, like to have가 있습니다. 자동차, 컴퓨터, 새옷, 휴가,에어콘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경기시대에는 우리는 가지기를 원하는 것들(like to have)은 아니가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새차를 가지고 싶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차를 몇 년 더 사용하는 것, 새 컴퓨터를 가지고 싶지만, 지금 사용하는 것을 더 업그레이드시켜 사용하거나, 새옷을 사는 것을 미루는 것등이 필요합니다. 가계를 계획에 의해 운영하는 한 여자분은 식료품점에 물건을 사러갈 때,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이것저것 사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녀가 계획한 것 이상으로 식료품을 사게 된다고 합니다. 기독교 경영상담가인 래리버컷트에 의하면 물건을 구매하는데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낫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여자들은 충동에 의해 물건을 산다면, 남자들은 터무니없이 낭비하는 물건들을 살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새옷을 산다면, 남자들은 너무나 몇십배 비싼 컴퓨터나, 스포츠 자동차나, 심지어 보트까지 생각없이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도 몇 년전 어느 세미나에 갔다가 발바닥을 전기로 맛사지하는 기계를 40만원에 주고 사왔습니다. 그 기계로 발바닥을 매일 맛사지하면 어떠한 병에도 걸리지 않을 것처럼 선전하는 것에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기계를 사온 후 몇번 밖에 사용하지 않고 집안 한구석에 쳐박혀 있으며, 그 기계는 지금은 10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습니다. "지혜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잠21:20)고잠언의 저자는 말합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지혜를 가지고 계획성있게 재정을 관리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청지기는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이웃과 나눌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 기독교 재정연구원의 통게에 의하면, 미국인의 경우 저소득층인 연수입 일만달라의 수입이 있는 사람은 자선단체에 자기 총수입의 5%의 돈을 기부했고, 중간저소득층인 연수입 5만달러의 수입이 있는 사람은 자기수입의
3.2%를 자선단체에 기증을 했으며, 고소득층인 연수입 10만달러 이상이 되는 사람은 자기수입의
2.9%를 자선단체에 기증을 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사정을 알기에 부유한 자보다 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억만장자인 CNN뉴스의 소유주인 데드 더너는 나누지 못하는 부유한자들을 뉴욕타임즈에 기고한 그의 글에서 나무라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의 권위잇는 경제잡지인 Forbes에서 해마다 가장 부유한 사람 400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그러지 말고 가장 많이 베고픈 사람 명단을 발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나누지 못하는 것을 바라볼 때 분노심을 느낀다고 테드 터너는 말하면서, 크리스마스 캐롤에 나오는 구두쇠 스크루지는 나누는 삶을 살게 될 때 행복한 사람이 되지 아니했는가라고 말합니다. 테드 터너는 빌 게이츠와 같은 억만장자들에게 좀더 너그러운 삶을 살라고 권면한 적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120억 달러를 버는 것과 110달러를 버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 그러나 10억달러를 가지고 대학 하나를 세울 수 있지 않느냐고 테드 터너는 반문합니다. 작년도 미국의 대형교회를 순방할 때 빈야드 교회를 방문했을 때 받은 깊은 인상은, 그들이 구제사업에 매우 활발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우리 본당의 3배나 되는 방에 교인들이 안 입는 옷, 그리고 기증한 통조림 요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가난한 멕시칸들이나 흑인들이 와서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가지고 가는 것이었습니다. "예수의 친힌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사도행전 20:35). 에수께서는 산상보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 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태 6:19-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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