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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회개 (눅15:11-19)

본문

누가복음 15장의 탕자 비유는 참 회개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 째는 아들 탕자는 아버지께 철저하게 참 회개를 하고 본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 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눅 15:17-19)
둘째 아들 탕자는
첫째, 자기 죄를 철저히 깨달았습니다.
둘째, 자기 죄를 고백했습니다. 세번째,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네번째, 아버지께로 돌아왔습니다. 다시말하면 지성적으로 깨닫고, 감성적으로, 고백하고, 자기를 낮추며, 의 지적으로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기독교의 이상과 목적은 천국건설이며 천국건설은 회개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의 설교는 회개의 설교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전 이스라엘 향하여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나 (마 3:30)고 외치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3:8)고 하였 습니다. 주님도 전도의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마 4:17)고 하셨 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사는 길은 전국민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것이었습니다. 특별히 이스라엘의 지도급들이 회개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 들이란 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백성과 장로와 랍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회개하지 아니했습니다. 보통사람들과 서민들과 당시 죄인최급을 받았던 사람들은 회개운동에 참여했으나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냉담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요한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 이미 도끼가 나무 의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 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리라 .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 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마 3:7-12)고 외쳤습니다. 우리 주 님도 당시 이스라엘의지도자들이 회개하지 않은 반면 그들에게 죄인취급받으며 멸시 천대 받는 사람들이 회개하는 일에 대하여 탕자 비유(눅 15:11-30) 를 말씀하셨고 또 두 아들에 대한 비유를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마 21:28-31)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 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 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 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그리고 주님께서 두 아들에 대한 비유의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 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 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 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 21:31-32) 여기 위의 두가지 비유에서 두 아들은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
첫째 아들은 이스라엘 민족이요 이스라엘 지도자들이며,
둘째 아들은 이방인 이요 당시 죄인 취급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의 지도자들은 회개하지 아니 했지만 이방인과 당시 죄 인 취급받은 사람들은 회개 했습니다.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이방종교는 회개라는 말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구원의 첫 걸음이 회개입니다 신약교회의 첫 출발은 회개로 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있는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것이라 (행 2:38-39) 그리하여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하루에
3,000명 (행 2:41) 5,000(행 4:4)명 씩 세례를 받았습니다. 회개란 말은 구약 히브리어 나함으로서 후회(생각)한다는 뜻과 수부로서 돌 이킨다(행동)는 뜻입니다. 신약 헬라어는 메타노에오로서 방향을 전향한다는 것 이며 생각과 행동을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좀더 풀이를 한다면 회개는 이성적으 로 잘못을 깨닫고 행동적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인데, 세상은 향해서 살던 삶 을 바꾸어 하나님을 향해 사는 윤리적 결단입니다. 성도가 성령님에 의하여 구원의 과정을 이루어 가는 일에 있어서 회개는 중생 다음 오는 두번째 순서입니다. 중생은 성도의 잠재 의식속에서 일어나며 회개는 중생의 결과로서 의식생활 곧 감각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중생한 성도에게 최초 로 나타난 것은 회심입니다. 세상을 향해 살던 삶이 하나님께로 방향을 전환하는 회심은 단회적이지만 회개는 반복적입니다. 혹이 잘못된 어떤 사람들은 성도가 처음 예수믿을때 한번 회개 했으면 되었 지 왜 계속 반복해서 회개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반문합니다. 이들에 의하면 중 생한 사람은 죄를 범치 아니 하기 때문에 반복해서 회개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회심은 원리적으로 단번에 완전해지지 만 사람은 항상 죄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범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를 계속해서 해야합니다. 개혁신학의 구원의 과정에서는 중생이 먼저이고 회개가 다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논리적 순서이며 중생과 회개는 동시에 됩니다. 중생은 성도의 잠재의식 에서 되기 때문에 쉽게 잘 알 수 없습니다. 고로 중생한 성도라고 할찌라도 자 기가 중생했는지에 대해서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는 감각적이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으며 중생은 결과를 회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생은 전폭적으로 성령님의 단독사역이지만 회개는 성령님의 사역임과 동시에 인간의 의지에 관계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중생하라고 가르칠 것이 아니라 회개를 촉구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 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 기의 죄를 철저히 깨닫고(지성) 그 죄에 대하여 괴로워 하고 (감성) 그리고 그 죄를 과감하게 떨쳐 버리고 새롭게 윤리적 결단을 내려 행동의 변화(의지)를 나 타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참 회개는 지,정,의 전인의 것이며 이것이 성경적 회개입니다. 이렇게 볼때 천주교의 회개관은 잘못된 것입니다. 천주교는 회개를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통해서 합니다. 천주교는 회개를 의식 화(형식화)시켰습니다. 천주교인들은 자기들의 죄를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통해 직접 고하고 그리고 신부로부터 직접 용서를 받습니다. 이때 신부는 범죄를 고백하는 자에게 그 범죄를 성격에 따라 보속을 지시하는데 그 보속의 내용은 고행과 회개헌금입니다. 신자가 보속을 하게 되면 그것이 공로가 되어 죄사함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분히 사람의 보속심리를 이용한 것이 됩니다. 천주교의 잘못은 자기 죄를 하나님께 직접 고하지않고 신부에게 고하는 일이 며 또 신부가 죄를 사해 준다는 것이요 보속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고로 중세대 의 면죄부와 회개헌금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어찌보면 신자가 눈에 보이는 신부에게 고하고 눈에 보이는 신부로부터 용서함을 받았다고 선언받았을때 심리 적 위안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진리요 비성경적이요 비기독교적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직접 고하고 하나님께 직접 사함을 받습니다. 성직자는 중 보자가 아닙니다. 캐토릭은 신부를 중보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교리가 나 옵니다. 성도들이 성직자에게 상담은 할 수 있으나 고해 성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독교 신자들은 사죄가 눈과 귀로 (감각으로)확인되지 못한다 하여 마음의 불안을 가지고 정신 질환을 앓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성직자들 중에는 이점을 이용하여 회개헌금을 요구합니다. 참으로 은혜의 종교를 율법 곧 인간의 공로 종교로 변질시킵니다. 교회가 진리를 떠날때 교회만큼 타락한 곳이 없고 교회만큼 자기를 못고치는 곳도 없습니다. 참 회개는 죄사함 얻는 일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참 회개는 구원얻는 일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참 회개는 이땅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일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참 회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전개되는 개혁운동에 절대로 필요합니다. 지금 새로운 민정정부는 새한국 민주국가를 이룩하기 위해 부정부패 척결 을 우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법적 제도적인것도 해야 할일이지만 개인개인이 잘못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동안에 빚어진 엄청난 부정부패, 인권탄 압, 축재등에 대하여 스스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는 커녕 오히려 합리 화 하고 숨기고 또 반항하고 있습니다. 지금 부정부패는 정치권과 특정층만 아 니라 총체적입니다. 가장 신성해야 할 학원들이 부패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가장 신성하고 존엄해야 할 교회도 극히 일부이지만 부정부패로서 강도의 소 굴이 되지 안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공직자 재산 공개 과정에서 참으로 잘못되었다고 회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 습니다. 고로 김영삼 대통령은 탄식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너나 할것이 없이 삭개오(눅 19:1-10)같이 회개해야 합니다. 유대인으로서 친로마파가 되어 세금을 징수하는 세무공직자 위치에서 불의하 게 재물을 축재했던 삭개오는 주님을 만나 참 회개를 했습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것을 토색하는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눅 19:8) 이때 주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 이로라 (눅 19:9)고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앞에서 죄인입니다. 아담의 원죄가 그대로 전가되었습니다. 불신자들은 신분적으로 죄인이면서 상태적으로도 죄인입니다. 원죄의 죄책 이 있음으로 신분적으로 죄인이요 원죄를 오염이 있으므로 상태적으로 죄인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원죄를 죄책은 그리스도의 공효로 제거되었기 때문에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원죄의 도덕적 오염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상태적으로는 죄인입니다. 도덕적 오염이 그대로 있기 때문에 본 죄를 지을수 있고 이 본 죄때문에 죄책과 오염이 발생됩니다.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도덕적 오염 때문에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중생한 우리도 범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성도가 매일 회개하지 않고 축적하면 불감증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다윗의 고백과 같이 내 죄가 내 앞에 있나이다 (시 51:31)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사야와 같이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사 6:5)라고 해 야 합니다. 베드로와 같이 주님의 무릎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고 해야 합니다. 참 회개 하는 곳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화, 구원과 축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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