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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의 비유 (눅15:11-32)

본문

한 마리의 양을 잃었다가 다시 찾게되는 이 잃은 양의 비유는 많은 사람들이 일컬어 복음 중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아마 그 많은 비유의 말씀 중에 대표 적인것으로 우리들의 귀에 이숙하고 아름다운 복음적 비유라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이상과 같은 이유'
1.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 하시는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은 뜻을 계시해주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한 비유 라고 할 수 있습니다.
2.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잃은 양을 찾아가는 목자,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모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갖은 고생과 어려움을 무릅쓰고 찾아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적인 사랑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비유를 말씀하신 동기' 예수님께서 대단히 중요하고 적절한 계기에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계기 가어떤 계기입니까"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 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가로되 이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15:1-2)이것이 바로 기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죄인과 세리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저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죄인들과 세리들을 미 워하였습니다.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저들을 아예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저들을 영접하실 뿐만 아니라 함께 식사도 하시고 그러 한 사람의 집에 유숙하기도 하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저들은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이였습니다. 이 때문에 본문에 기록된 대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원망했습니다. 즉 예수님을 볼 때 말하는 것이나 그 가르치는 것을 보면 지혜가 많고 훌륭한 분인데 하필이면 왜 저런 사람들과 친하느냐는 것입니다. 어쩌자고 저런 사람들을 영접하며 함께 어울려 다니는지 이것이 못마땅 하여 원망했다는 것입니다. 이 원망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이제 내 이야기를 좀 들어보하시며 잃어버린 양 한 마리의 비유를 말씀하시게 되었습니다. 참으 로 좋은 기회에가장 적절한 소재로서 이 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성분을 생각해 봅시다.' 일반적으로 볼 때 당시의 사람들은 종교인이 있고 비종교인이 있었습니다. 이 들은 물론 양쪽 다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들이지만 그러나 저들은 엄격히 이 둘을구분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전문적인 종교인이요 하나는 보통의 평범한 요즈음 말로 표현한다면 민중계층의 신앙인들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전문적인 종교인들이 신앙 생활의 규범과 율법을 너무나 까다롭게 만들었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이 법대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좌우간 안식일에 대한 것만도 917 가지의규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을 켠 대로였으면 끄면 안된다. 커 져 있으면 켜면 안된다. 또한 옷고름이 풀어진 채라도 매지 말라. 매었으면 풀 지 말라는 등 하여간 이처럼 까다로운 항들을 많이 만들어 가지고는 이대로 지켜야된다ㄴ느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켜야함은 물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해야 하고 갖가지절기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다가보면 먹는 것, 입는 것을 비롯하여 기거 동작전부가 미슈나라고 하는 율법에 매이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이거미줄 같은 율법의 생활을 할 수가 없어서 조금 하다가는 포기하 고마는 것입니다. 그저 안식일이나 지킬 정도에서 그치고 그 외의 것은 아무래 도 지킬 자신이없으니 아예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이 율법들을 엄격히 지키는 사람들은 이것을 지킴으로 해 서교만해집니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다."하고는 그대로 못하는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율법주의자가 되고 그 율법을 지킴으로서 교만하여 지키지 못하는 사람을 멸 시하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을 예수님은 외식주의, 율법주의, 형식주의 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어서 포기하고 사는 일반적인 사람들을 당시 의종교지도자들은 대단히 멸시했습니다. 심지어는 너절한 낮은 인간들이라는 뜻에서 땅의 사람이라 부르면 스르로를 격리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나온 말이 곧 바리새인이라는 말입니다. 이 바리사이오스아고 하는 헬라말은 본래 "구별 한다."는 뜻입니다. 즉 구별되게 잘 믿고, 구별되게 종교 생활을 철저히 하며 거룩하게 산다고 하여 바리새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비바리새인들에 대하여 규례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들에게 돈을 맡기지 말라 저들을 믿을 수가 없으니까. 저 사람들이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에 증인으로 서 주지 말라, 저들은 도대체 신실하지 못하니 까. 저들 앞에서는 비밀을 말하지 말라, 그 인격이 시원차가 않아 비밀을 지키지 못하니까. 저들에게 고아를 위탁하지 말라 처음에는 양자로 잘 키우겠다고 하 고서는 나중에는 내어버릴테니까. 저들과 함께 여행을 하지 말라 언젠가 손해 를 볼테니까."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는 죄인드롸 세리들, 즉 비종교인들과 예수님이 가까 이지내자 이들은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예수님께서 오늘 비 유의말씀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옛날 그당시의 목자들은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기는 하지만 요 즈음처럼 목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풀이 넉넉한 것도 아닙니다. 메마른 사막 에서사막으로 이어지는 중동 지역에서는 어쩌다 조금씩 있는 풀을 찾아 먹이느 라 이곳 저곳을 찾아헤매며 따라다녀야 합니다. 때로는 무서운 맹수를 만나고, 강도를 만나서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합니다. 양을 지키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 과 생명을 걸고 양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함께 지내는 가운데 양과 목자는 대단히 가까 와지고 아주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관계 에서오늘 본문은 백 마리의 양 중에서 한 마리의 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 그까짓한 마리쯤은 없어져도 보았댔지"하며 갈 길만 재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목자는 왜 양을 끝까지 찾습니까
1)그 양의 생명때문입니다. "저 양 한 마리가 그만 죽겠구나! 어딘선가 맹수 에찢겨 죽겠지! 무참하게 낭떨어지에라도 떨어진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 다가죽을꼬"하는 안타까움입니다. 양의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얼마나 고통스러울까"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이 목자는 양이 처할 수 있는 갖가지의 위험과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상상하며 그러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반드시 도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상대편을 먼저 생각하는 것임을알아야 합니다.
3)더욱 중요한 것은 양은 제 발로 찾아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돌아 올능력이 없으니 내가 도우지 않으면 저는 죽는 것입니다. 이는 결정적인 사건이요 보나 마나한 결과입니다. 이 양이라는 동물은 순하기는 하여도 멍청합니다. 그래서 갔던 길도 돌아오지 못하고 제 집도 못찾아옵니다. 그러니까 이 목자 의입장에서 생각하면 내가 저에게 가지 않으면 저는 내게로 올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바가 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있는 것 이지 우리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은 없습니다. 이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요, 전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것입니다. 지금 목자의 입장에서는 바로 그 점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가 지금 불쌍한 처지에 있을 뿐더러 내가 가지 않으면 저는 죽는다는 것입니다. '왜 이양은 혼자 길을 잃었습니까'
1.멍청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 큰 대열에서 떨어졌다면 이것은 어리석다 기보다는 멍청한 소치란 말입니다.
2.유혹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유혹에 빠져서 목자와 그 많은 다른 양들이 가는 것을 몰랐습니다. 풀이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는데 아무리 맛있는 풀을 먹고 있더라도 목자가 가자 하면 가야되는 것입니다. 또한 안된다하면 가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저기 좋은 풀, 맛있는 물이 있는 것같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독초 가았음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이양은 이런 저런 유혹에 끌려 한눈을 팔다가 그만 대열에서 이탈 하게되어 길을 잃고 맙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도취에서 향락을 찾았습니다만 거기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목자의 인도보다 세상 즐거움을 더 좋아 하며 따라갔더니 헤어자지 못할 독소가 있더란 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목자의 마음과 태도입니다. '목자의 생각과 태도' 목자는 저를 원망하거나 심판하지 않습니다. 오직 초조한 마음으로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찾을 때까지 찾아 해메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찾도 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리고 찾 아어깨에 메고 왔으며 그리고 잔치를 벌렸습니다. '비유가 주는 교훈'
1.하나님은 찾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만히 앉아 기다히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멀리서 팔장끼고 불쌍한 인간들이 언제고 돌아오기는 기다리고만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찾아가시는 하나님! 찾기 위해 행동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2.본문에 나타난 중요한 복음은 한 마리 양이라는 점입니다. 이 목자는 아흔아 홉마리의 양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는다는 것은 사랑은 개인적인 것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진정 사랑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캐시의 이야기)목자는 이 하나를 사랑합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 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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