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크신 사랑 (눅15:1-2,11-32)
본문
두 아들을 가진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해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탕자의 비유의 첫부분임을 즉시 알아 차릴 수 있을 만큼 오늘의 본문은 모두에게 친숙한 말씀이다.
1. 아낌 없이 주는 사랑 과열 대학 입시다, 청소년 문제다, 랩송이다, 환각제사용이다, 가뜩이나 말이 많은데, 걱정하는 목소리들에 하나도 걸리지 않는 것이 없는 아들을 키우는 부모가 있었다. 평소 공부하기도 싫어하고 건달처럼 돌아다니기만 좋아하던 아들로 인해 속도 많이 썩었고 돈도 많이 들었지만, 언젠가 저 아이도 정신 차릴 날이 일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기로 작정한 날부터 오히려 그 아버지의 마음은 편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기도할 뿐, 아이가 걱정될 때마다 더 사랑하고 용납하기로 마음을 작정한 후에 이 아버지는 그가 죽고 나서라도 아버지가 그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냈다.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는데, 사랑으로 살아 있는 아들의 마음을 못 녹이겠는가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갈수록 거칠어지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 보는 것도 괴로웠다. 그러나 할 수만 있으면 아들에게 잔소리하기보다는 그 아들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고 노력했다. 어느날 그 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 저는 형처럼 공부로 성공하기는 틀린 것 같으니까, 아예 지금부터 제 재능을 살려 서울에 나가 장사를 좀 해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유산을 물려 주시는 셈치고 장사 밑천을 좀 대 주십시오.” 그나마 일 년이면 반절은 나가던 학교도 그만 두겠다는 말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믿어 주기로 작정한 다음이라, “그래 무슨 장사를 해 보려고 그러는데”하고 울었다. 아직 어린 그가 장사해서 돈을 벌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도 없었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던 성실하지 않은 아이에게 믿음이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아버지는 그 아들의 말을 믿어 주기로 했다. 지금껏 수십 번 아버지를 속여서 돈을 가져갔지만 번번이 아버지는 아들에게 속아 주었다. 속고 또 속아 주었는데, 이번에도 속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믿어 주기로 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아들을 끝까지 믿고 그의 평생에 피땀 흘려 농사 지어 모은 재산이었지만 기분 좋게 자식이 원하는 것보다 아예 더 주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버지는 전답의 일부를 팔고 수중에 가진 돈을 모아 아들에게 주었다. 돈을 가져가기 위해 순한 양처럼 되어 나타난 아들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바램도 없이 옛날처럼 늘 미소로 받아 주시는 아버지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계면쩍은 돈을 받아 집을 떠났습니다. 개망나니 같은 아들에게 무엇을 믿고 돈을 주느냐고 아내는 야단이었지만 “네가 이 돈을 다 쓰고라도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선뜻 돈을 아들이 원하는 대로 주었다. 아니 돈을 준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타 들어가는 아버지의 심장의 일부를 나누어 준 것이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읽었던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한 책의 이야기를떠올렸다. 끝없이 요구하는 소년에게 꽃도 주고, 열매도 주고, 그가 매달려 놀 수 있는 놀이터도 되어 주고, 그가 낮잠을 잘 때는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주고, 그리고는 그가 청년이 되어 멀리 외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는 그의 몸통을 잘라 배를 만들어 타고 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이제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는 다 늙어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된 그가 지치고 피곤해 할 때 쉴 수 있는 받침대가 되어 주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못된 짓을 해도 왜 밉지가 않을까 그 아버지는 그의 가슴 깊이 밀려오는 아들에 대한 깊은 사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끝까지 너를 믿어 줄 것이고, 내가 너에게 줄 수 있을 때까지 줄 것이다.”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아버지는 눈물을 지었다.
2. 긴 기다림 속에서 돈을 받아 간 아들은 집을 떠난 이후 한 통 전화도, 편지도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장사를하고 있다면 그럴 리가 없는데, 준 돈으로 방탕하게 지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저 말 없이 손 모아 기도하면서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경제적인 불황이 겹쳐 모두가 어렵다는 요즘에 장사를 시작했다 해도 거덜을 냈을 것이 분명한 아들인데,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방탕하게 지냈다면 이제 돈이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찾아와 무슨 구실을 대면서 또 돈을 달라고 한다면 또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믿어 주지 않으면 그 아들이 어떻게 새 사람이 되겠는가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기다림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밤에는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잠든 지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아들이 분명히 올 것이기 때문이다. 면목이 없어서 문이 잠겨 있으면 되돌아갈까 봐 문을 열어 놓으라고 한 것이다.
3. 잘 왔다 내 아들아! 아들이 집을 나간 지 7개월이 훨씬 지나가는 어느 날 초췌한 모습을 하고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힘겹게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의 직감은 그것이 분명 내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텁수룩하게 길은 수염, 언제 세탁은 해 입었는지 땟국물이 흐르는 옷을 입고 걸어오는 아들은 옛날의 아들이 아니었다. 눈물을 그득 안고 무릎을 꿇은 아들을 껴안았을 때, 아버지는 그 아이가 뭔가 변했다고 느꼈다. 아버지에게 송구스러워 고개를 못 드는 아들, 용서하시라는 말을 반복하는 아들, 아들 자격도 없는 불효자라며 흐느끼는 아들, 다른 집 아버지는 야간을 치고 주먹질까지도 서슴치 않는다는데, 그렇게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를 실망만 시켜 드리는 아들은 차라리 죽어 없어져야 하는데, 주먹으로 굵은 눈물을 훔치는 아들을 아무 말도 없이 품에 아버지는 꼭 안았다. “아들아 잘 왔다. 네가 반드시 돌아올 줄 았았다.” 아버지 피땀 흘려 농사하셔서 평생 모은 재산, 1년도 되기 전에 허랑방탕하게 놀던 아들은 서울에 나가 돈 떨어지자 한 달 반 동안은 거지가 되어 무척이나 고생한 모양이었다. 목욕을 시키고, 냄새 나는 옷을 벗기고 새옷을 입혀 식탁에 앉았는데, 5-6인 분은 거뜬히 먹고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철부지 아들이 부모 품을 떠나 객지에서 허랑방탕하다 돈 떨어져 한 달 남짓 고생하고 나더니 제 정신을 차리고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아니 고생을 행다고 해서였겠는가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던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그 아들은 새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죽은 아들을 살렸고, 집 나간 아들이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죽은 아들을 살린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에게 일어난 우리의 이야기이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사람들은 이와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독생자를 희생시키셔서 우리들의 죄값을 지불하신 하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다시 살려내신 것이다.
1. 아낌 없이 주는 사랑 과열 대학 입시다, 청소년 문제다, 랩송이다, 환각제사용이다, 가뜩이나 말이 많은데, 걱정하는 목소리들에 하나도 걸리지 않는 것이 없는 아들을 키우는 부모가 있었다. 평소 공부하기도 싫어하고 건달처럼 돌아다니기만 좋아하던 아들로 인해 속도 많이 썩었고 돈도 많이 들었지만, 언젠가 저 아이도 정신 차릴 날이 일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그저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기로 작정한 날부터 오히려 그 아버지의 마음은 편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으니 기도할 뿐, 아이가 걱정될 때마다 더 사랑하고 용납하기로 마음을 작정한 후에 이 아버지는 그가 죽고 나서라도 아버지가 그 아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깨닫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에 더 열심을 냈다.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하다는데, 사랑으로 살아 있는 아들의 마음을 못 녹이겠는가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음먹었지만 갈수록 거칠어지는 아들의 모습을 지켜 보는 것도 괴로웠다. 그러나 할 수만 있으면 아들에게 잔소리하기보다는 그 아들을 이해해 주려고 노력하고 노력했다. 어느날 그 아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아버지 저는 형처럼 공부로 성공하기는 틀린 것 같으니까, 아예 지금부터 제 재능을 살려 서울에 나가 장사를 좀 해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저에게 유산을 물려 주시는 셈치고 장사 밑천을 좀 대 주십시오.” 그나마 일 년이면 반절은 나가던 학교도 그만 두겠다는 말에 서운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믿어 주기로 작정한 다음이라, “그래 무슨 장사를 해 보려고 그러는데”하고 울었다. 아직 어린 그가 장사해서 돈을 벌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도 없었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던 성실하지 않은 아이에게 믿음이 가는 것도 아니었지만 이번에도 아버지는 그 아들의 말을 믿어 주기로 했다. 지금껏 수십 번 아버지를 속여서 돈을 가져갔지만 번번이 아버지는 아들에게 속아 주었다. 속고 또 속아 주었는데, 이번에도 속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믿어 주기로 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아들을 끝까지 믿고 그의 평생에 피땀 흘려 농사 지어 모은 재산이었지만 기분 좋게 자식이 원하는 것보다 아예 더 주리라 마음을 고쳐먹었다. 아버지는 전답의 일부를 팔고 수중에 가진 돈을 모아 아들에게 주었다. 돈을 가져가기 위해 순한 양처럼 되어 나타난 아들은 아무런 조건도 없이, 아무런 바램도 없이 옛날처럼 늘 미소로 받아 주시는 아버지를 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계면쩍은 돈을 받아 집을 떠났습니다. 개망나니 같은 아들에게 무엇을 믿고 돈을 주느냐고 아내는 야단이었지만 “네가 이 돈을 다 쓰고라도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선뜻 돈을 아들이 원하는 대로 주었다. 아니 돈을 준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타 들어가는 아버지의 심장의 일부를 나누어 준 것이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읽었던 “아낌 없이 주는 나무”라는 한 책의 이야기를떠올렸다. 끝없이 요구하는 소년에게 꽃도 주고, 열매도 주고, 그가 매달려 놀 수 있는 놀이터도 되어 주고, 그가 낮잠을 잘 때는 시원한 그늘도 만들어 주고, 그리고는 그가 청년이 되어 멀리 외국으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는 그의 몸통을 잘라 배를 만들어 타고 갈 수 있도록 해 주고, 이제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는 다 늙어 허리가 구부러진 노인이 된 그가 지치고 피곤해 할 때 쉴 수 있는 받침대가 되어 주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못된 짓을 해도 왜 밉지가 않을까 그 아버지는 그의 가슴 깊이 밀려오는 아들에 대한 깊은 사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끝까지 너를 믿어 줄 것이고, 내가 너에게 줄 수 있을 때까지 줄 것이다.” 떠난 아들을 생각하며 아버지는 눈물을 지었다.
2. 긴 기다림 속에서 돈을 받아 간 아들은 집을 떠난 이후 한 통 전화도, 편지도 없었다. 그가 정신을 차리고 장사를하고 있다면 그럴 리가 없는데, 준 돈으로 방탕하게 지내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저 말 없이 손 모아 기도하면서 자식에 대한 그리움을 대신했다. 경제적인 불황이 겹쳐 모두가 어렵다는 요즘에 장사를 시작했다 해도 거덜을 냈을 것이 분명한 아들인데,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방탕하게 지냈다면 이제 돈이 떨어질 때가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이 찾아와 무슨 구실을 대면서 또 돈을 달라고 한다면 또 줄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가 믿어 주지 않으면 그 아들이 어떻게 새 사람이 되겠는가 아버지는 시간이 갈수록 기다림 속에서 보내고 있었다. 밤에는 대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잠든 지가 벌써 몇 개월이 지났다. 아들이 분명히 올 것이기 때문이다. 면목이 없어서 문이 잠겨 있으면 되돌아갈까 봐 문을 열어 놓으라고 한 것이다.
3. 잘 왔다 내 아들아! 아들이 집을 나간 지 7개월이 훨씬 지나가는 어느 날 초췌한 모습을 하고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힘겹게 걸어오는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아버지의 직감은 그것이 분명 내 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텁수룩하게 길은 수염, 언제 세탁은 해 입었는지 땟국물이 흐르는 옷을 입고 걸어오는 아들은 옛날의 아들이 아니었다. 눈물을 그득 안고 무릎을 꿇은 아들을 껴안았을 때, 아버지는 그 아이가 뭔가 변했다고 느꼈다. 아버지에게 송구스러워 고개를 못 드는 아들, 용서하시라는 말을 반복하는 아들, 아들 자격도 없는 불효자라며 흐느끼는 아들, 다른 집 아버지는 야간을 치고 주먹질까지도 서슴치 않는다는데, 그렇게 사랑해 주시는 아버지를 실망만 시켜 드리는 아들은 차라리 죽어 없어져야 하는데, 주먹으로 굵은 눈물을 훔치는 아들을 아무 말도 없이 품에 아버지는 꼭 안았다. “아들아 잘 왔다. 네가 반드시 돌아올 줄 았았다.” 아버지 피땀 흘려 농사하셔서 평생 모은 재산, 1년도 되기 전에 허랑방탕하게 놀던 아들은 서울에 나가 돈 떨어지자 한 달 반 동안은 거지가 되어 무척이나 고생한 모양이었다. 목욕을 시키고, 냄새 나는 옷을 벗기고 새옷을 입혀 식탁에 앉았는데, 5-6인 분은 거뜬히 먹고 곤한 잠에 빠져들었다. 철부지 아들이 부모 품을 떠나 객지에서 허랑방탕하다 돈 떨어져 한 달 남짓 고생하고 나더니 제 정신을 차리고 새사람이 되어 돌아왔다. 아니 고생을 행다고 해서였겠는가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던 아버지의 사랑으로 인해 그 아들은 새사람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은 죽은 아들을 살렸고, 집 나간 아들이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했다. 아버지의 사랑이 죽은 아들을 살린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에게 일어난 우리의 이야기이다. 오늘 하나님의 백성이 된 모든 사람들은 이와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독생자를 희생시키셔서 우리들의 죄값을 지불하신 하늘 아버지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를 다시 살려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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