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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가 받은 큰 은총 (눅15:11-32)

본문

오늘 읽으신 본문은 너무도 유명한 탕자의 비유입니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유명한 소설가가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를 읽고 무척 감동을 받아서 이렇게 깊은 진리를 짧은 글에 또 아주 간결하면서도 세밀하게 기록을 탖구나! 이런 말씀을 예수님이 하셨구나! 그래서 속에서 의욕이 났습니다. 나도 한 번 내 나름대로 이 탕자의 비유를 내가 한 번 다시 (개작) 만들어 봐야겠다. 그래가지고 열심히 만들고 또 비교해 보고 그렇게 열번 이상하고 나서는 마침네 손을 들었답니다. 아! 안돼겠구나 예수님의 말씀인 탕자의 비유 이상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구나! 그래서 세삼스럽게 " 야! 우리 예수님은 참 놀라운 소설가시다" 그렇게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탕자의 비유는 너무도 잘 알려졌고 익숙한 말씀이기 때문에 그럴수록 익숙하고 잘 알려진 말씀일수록 깊이 묵상을 해야 됩니다. 그래야 그 말씀에 샘이 열리고 새로운 은혜를 받게 됩니다. 저도 이 말씀을 다시 새롭게 묵상하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오늘 이 귀한 탕자의 비유 말씀이 이 어려운 때 여러 가지로 많은 문제가 있고 또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에게 큰 위로와 소망이 되시고 또 내 문제는 아!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구나 하는 문제해결의 열쇠를 찾게 되시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되시길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한 탕자의 비유의 핵심은 단순하고 명료합니다. 우리의 삶에 중심과 근거는 여호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두어야 된다. 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말씀한 탕자의 비유에 진리입니다. "아버지를 떠났다가 돌아온 탕자" 아버지를 떠난 아들이기 문에 탕자라고 합니다. 이 탕자가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세가지 큰 은총을 받게 됩니다. 탕자가 받은 세가지 은총을 차례차례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같이 은혜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탕자가 받은 은총은 고난의 은총입니다. 고난의 은총 그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앞뒤가 안맞다. 고난의 은총이라니! 무슨말인고 하니 이 탕자가 지금 큰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처참하게 실패를 했습니다. 돼지를 치는 그런 자리에 떨어져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도 얻을수가 없어서 최저의 생계 이하에 굴러떨어진 그런 처참한 실패를 당한 이것이 탕자에게는 큰 은총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이 탕자의 경우를 보면 탕자가 계속해서 원하는 대로 잘되고, 성공하고, 계속해서 멋있게 살고, 재미있게 살았더라면 이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겠습니까 절대로 돌아올 사람이 아닙니다. 이 교만하고 방자스러운 탕자가 아버지집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 것은 그가 가진 모든 것 재물과 그 자신에 대한 자고함, 자만심 "나는 아버지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이 교만한 마음이 철저하게 부서지고 깨진 다음에야 비로소 아버지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탕자가 이런 실패와 처참한 낭패를 당한 것은 탕자에게 있어서는 은총이었습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는 수많은 어려움과 낭패와 실망을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리고 내가 당한 이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깨닫지 못하고 다만 고난은 고통으로만 끝나버리는 아무 의미없는 고통은 단순한 파괴와, 멸망과, 저주와 불행으로만 끝나 버리는 그런 사람도 이 땅에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그에 당한 고난이 아무 의미없는 고난입니다.
그런데 이 탕자는 낭패와 큰 실망을 당하므로 해서 잃어버린 것은 많이 있었지만 그대신에 잃어버린 것 보다 훨씬 더 큰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탕자는 잃어버린 것 보다 큰것을 얻게 됐으니 탕자가 당한 고난은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집사님 가운데 어느 부부가 있는데 최근에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많이 듣던 말이지만 그 정리해고라는 현실이 자기들 앞에 떨어지니까 너무도 기가 막혔데요. 그게 남의 이야기니까 좀 그런줄 알았는데 자기들의 이야기로 됐다는 거에요. 자기들의 발등상에 정리해고라는 것이 닥쳐왔습니다. 너무도 고통스러웠답니다. 지금까지 회사에 충성하고 온갖 정성을 다해서 몸 받치고 살았던 것이 물거품이 되고 보니 남는 것 아무것도 없다는 거에요. 그래서 너무너무 괴로워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한가지 변화가 왔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자기가 자랑하고 의지했던 세상것이 떠나감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찾게 됐다는 거에요. 믿는 사람인데 무슨 소리냐 그랬더니. 신앙생활을 10년 전부터 했는데 지금까지 건성으로 했대요. 그저 교회다 이름만 걸어놓고 그렇게 신앙생활 했는데 이번에 이런 일을 당하고 보니까 하나님만 찾아 지는데 비로서 하나님을 만났다는 거죠. 그래서 두 내외가 정리해고 당한 것은 기막힌 슬픔이고 고통이지만은 그러나 이로 인해서 훨씬 더 귀한 것을 찾았다. "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고서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됩니다. 오늘 여기서 참으로 간절히 바라는 것 한가지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다 고통가운데 있습니다. 예외가 없어요. 나라전체가 흔들리고 있어요. 이런 위기 가운데 우리 모두 다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고통이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가 당하고 있는 고통이 그저 지나가는 의미가 없는 그저 괴롭기만 하는 것으로 불행한 것으로만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 말할수 없는 고통이 변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큰 은총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지 아니하면 우리가 당한 고통은 너무도 애석합니다. 저런 고통을 당하고도 저런 어려움을 당하고도 아직도 깨닫지 못한다면 이건 정말로 슬픈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탕자의 고난은 큰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훗날 멀지 않는 날에 오늘의 이 어려운 시절을 뒤돌아 보면서 사랑하는 우리 성도 여러분! 우리 모든 성도들 입에서 " 그 어려운 시절이 나에게는 참 은총의 기회였다. 내가 그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났다고" 간증할 수 있게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로 탕자가 받은 은총은 회개하는 은총입니다. 이 탕자가 말 할수 없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아버지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지금 금의 환영이 아닙니다. 아버지 집을 나갈때는 큰 소리치고 나갔던 아들이 완전히 망해서 거지가 되어가지고 떠났던 그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죽기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차라리 이대로 죽으면 죽었지 어떻게 내가 아버지 집에 다시 가느냐" 도저히 용기가 안나는 것입니다. 거지가 됐어도 자존심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탕자가 이렇게 돌아올 수 없는 죽기 보다 더 어려운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고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아니면 은혜가 아니면 돌아올 수 없는 발걸음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탕자가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영어로 번역하면 came to himself 곧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그 말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이제 정신이 났다." 지금까지 탕자는 정신없이 살았다. 제 정신이 아니었다. 만일에 탕자가 제 정신이 좀 있는 사람 같으면 어떻게 아버지를 떠나갑니까 살아있는 어버지를 보고 죽은 다음에 물려 받은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 그런 자식이 어디있습니까 그거 제정신이 아니죠. 그리고 아버지를 떠났어요. 아버지의 슬픔도 아랑 곳 하지않고 저 혼자만 잘났다고 떠나가는 이 둘째 아들이야 말로 정신없는 녀석이요. 패역한 자식입니다.
그런데 이 탕자가 정신이 번쩍 든것입니다. 정신이 들고 보니까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것이 너무도 가슴이 아픈거에요. 내가 왜 이렇게 살았나! 내가 정신없이 살았구나! 내가 미쳤구나! 탕자가 제정신이 난것과 그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죽은자가 다시 깨어난 것과 똑같은 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이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께서 너무도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24절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고 기뻐합니다. 이 탕자의 회개에서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세가지 표식이 따라야 합니다.
첫째는 진정한 회개는 많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도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직도 회개한다면서 부끄럽다고 하고 부끄러워서 숨어버린다든지 부끄러워서 도망간다든지 하면 그건 아직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둘째로 진정한 회개는 자기의 죄를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 탕자가 18절과 2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늘과 어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라고 고백합니다. 하늘에 죄를 지었다. 하늘 아래에서, 하늘이 보는 대낮에 백주에 내가 이런 엄청난 죄를 지었구나! 하는 고백입니다. 하늘이 내려다 보는데도 그걸 모르고 . 그것이 깨달아 지는거에요. 그리고 아버지께 죄를 지었구나 ! 이 말은 "아버지를 떠났다" 하는 슬픔보다도 "아버지를 떠났다" 하는 그 죄 자체보다도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내가 그렇게 하므로 인해서 내가 아버지를 떠나므로 인해서 아버지가 얼마나 애통하시고 슬퍼하셨느냐" 그 말입니다. 진정한 회개라는것은 "내가 도둑질 했습니다. 사기를 쳤습니다." 그런 죄를 자백하는 것도 회개지만 조금 더 들어가서 " 내가 그렇게 살았으므로 인해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받은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것이 깨달아 질때에 진정으로 가슴이 참으로 아픈것입니다.
셋째로 진정한 회개는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이 있을 자리가 어디입니까 비로소 자기 자리로 찾아 온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내가 앉아야 할 자리가 있습니다. 내가 앉아야 할 자리가 있어요 여러분! 여기 보십시오. 여기에 천명이 있고 만명이 있어도 하나님 아버지가 찾는 사람은 딱 한사람 있습니다. 누굴까요 그 아들이 앉아야 할 자리가 비어있는 그 아들 . 아버지는 그 비어있는 자리밖에 안보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못느낍니까 여러분 자녀중에 가출해 보세요 아들이 열이라도 가출한 아들이 앉아있는 그 빈 의자, 그 빈 책상 그것밖에 안보입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저도 다 겪어 봤어요. 책가방을 둘러매고 가는 애들이 전부 내 자식으로 보여요. 보고 싶어요.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아들,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 남편, 남편의 자리가 비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내 아들 어디갔나 그래요. 여기 있는 천명 안 봐요. "김집사 어디갔나! 내 아들 어디갔나!" 하나님 아버지께서 찾습니다. 그 자리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다시는 아버지 마음을 슬프게 하지 않고 내 자리에 있어야 내 남편, 내 아내도 내 부모도 기뻐합니다. 이러한 진정한 회개가 가슴속에서 일어나시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이 탕자가 받은 은총이 있습니다. 이 세 번째 은총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 탕자가 받은 은총을 받아주시는 은총이라 합니다. "받아주시는 은총" 그것을 다른 말로 회복의 은총이라 합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이 탕자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한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절뚝거리면서 아버지 집으로 왔습니다.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입니다.
그런데 문을 안 열어주면 어찌합니까 이 둘째 아들이 돌아왔을 때 그 형은 동생을 맞이 하지 않았습니다. 내 붸아 버리라고 했습니다. 만일에 아버지께서도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를 " 나는 너를 맞이할 수 없다." 하고 거절했더라면 아무리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지만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성도 여러분! 내가 회개했기 때문에 내가 산게 아닙니다. 내가 돌아왔기 때문에 산게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받아주시기 때문에 내가 산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열번, 백번 회개한들 아버지 하나님께서 받아주지 아니하시면 나는 소망없는 인생입니다. 이 받아주시는 은총에는 두가지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탕자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크고 부끄럽습니까
그런데 이 탕자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집으로 왔을 때 늙은 아버지가 먼저 달려갔습니다. 아버지가 기다렸던 것입니다. " 저건 누구냐" 눈이 흐린 늙은 아버지의 눈에 익숙한 모습입니다. 거지인데, 거지가 걸어오는데 "이게 누구냐
둘째 아들이 아니냐 틀림없구나! 나간 자식이구나!" 늙은 아버지는 그대로 달려갔습니다. 달려가서 돌아온 탕자를 끓어 안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때에 이 아버지 마음에 아버지을 떠난 이 망령된 자식에 대한 유감, 미움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돌아온 아들을 비록 끌어 안을 지라도 거기는 냉기가 있습니다. 차요! 끌어 안아도 차가워요.
그런데 이 아버지 마음은 그게 없습니다. 끌어 안았습니다. 완전한 용서입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누가 내 죄를 용서하겠습니까 여러분! 내가 회개하고 운다고 해서 죄가 없어집니까 회개하니까 더 가슴이 아픕니다. 차라리 죄를 몰랐을때는 모르니까 살았는데 죄가 보이고 나니까 너무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다고 해서 내 죄가 없어지나요 내 지은 만가지 죄,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그 죄를 보게 하시고 그리고 회개하게 하신 다음에 내 하나님 아버지께서 탕자만도 못한 이 자식을 품에 품으시고 내 모든 죄를 완전히 용서해 주셔서 그러니까 삽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도 아버지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부끄러워 하지 마세요. 그 죄 그대로 짊어지고 오십시오. 문열어 놓고 기다려요. 돌아오면 맞아주실 뿐 아니라 완전히 용서해 주십니다. 받아주시는 은총중에 두 번째 것이 가장 중요한 은총입니다. 돌아온 탕자를 아들로 다시 새워주시는 것입니다. 아들의 지위 , 아들의 신분, 아들의 권세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가 너무도 마음이 죄송스러웠습니다. 그래서 19절에 "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고 말했어요. "품군의 하나로." 품군이란 말은 종도 못되는 거에요. 날품팔이예요. 탕자의 마음이 너무 죄송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들에게 이런 탕자에게 아버지가 환영하고 끌어 안아준 다음 이렇게 부끄러워서 견딜수 없는 탕자에게 아버지가 뭐라고 했느냐 "아들아! 누가 뭐라 하든지, 누가 너를 보고 심지어 네 형이 너를 정죄 할지라도 나를 보고 이 애비를 보고 힘을 내라" 그 말입니다. "내가 너를 용서했고 그리고 너는 변함없는 내 아들이야! 너와 나 사이에 아무것이 없다. 나를 보고 너를 용서하고 너를 아들로 다시 세운 이 애비를 보고 힘을 내라 " 그래서 이 아버지는 종들을 불렀어요 " 제일 좋은 옷을 내다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런 다음 살찐 송아지를 잡아라"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제일 중요한 문제가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탕자잖아요. 우리도 회개하잖아요. 나도 탕자처럼 회개합니다. 아버지 앞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남아 있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품군 의식" 입니다. 탕자처럼 부끄럽고 죄송해요. 비록 하나님 나를 받아주셨고 내 모든 죄 용서해 주셔서 감사하고 기쁘지만은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이 부끄러움! 이건 어떻게 합니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아들의 자리에 서지 못하게 만들고, 품군의 자리로 내려 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내 마음속에 있는 이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그렇게 목메어 부르고 싶었던 이름인데 " 아버지! 아바 아버지" 란 소리를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 수 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는데, 여기 앉아 있는 수 많은 자녀들도 대부분이 돌아온 탕자와 같은 품꾼의식속에 눌려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끄러워요 죄송해요 하나님 뜻대로 못살았어요. 회개하면서도 하나님의 집에 돌아왔으면서도 이렇게 앉아 있으면서도 감히 입을 열어 하나님을 " 아바 아버지" 라고 부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입이 안 열리는 거에요. 돌아온 탕자가 아버지가 입힌 제일 좋은 옷을 또 벗어 버리고, 손에 낀 가락지를 빼내버리고, 발에 신은 신을 내 버리고 "너 왜 그러냐 죄송해서요. 죄송해서요" 그러면 아버지가 기뻐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형제들이여 자매들이여! 이 아버지의 마음을 오늘 분명히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아들이야! 다른 것 생각하지 말어! 지난날 생각하지 말어! 너의 죄를 생각지 말어! " 너는 내 아들이야. 나를 아바 아버지라 불러라 내 앞에 가까이와 이 집이 네 집이야. 내것이 네것이야 당당하게 살아라" 바로 이것이 마지막 은총입니다. 우리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도 품군의 자리로 도로 떨어져 버립니다. 아버지 집에 돌아왔어도 다시 가난뱅이로 살아요. 자유가 없어요. 평안이 없어요. 권세가 없습니다. 내가 아들로 설 수 있음은 단 하나 입니다. " 아버지 때문에 " 아버지가 그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아버지가 주시는 마지막 은총 나를 아들로 세우시고, 또 아들로 살라고 하시는 이 아버지 하나님이 주시는 권세를 단단히 붙잡고 아바 아버지로 부르면서 사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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