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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 (눅1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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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우연히 창동역에 나갔다가 창동농수산물물류센타에 들러 중소기업제품 전을 구경했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제품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좀 불편하 지만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발명품이 되어 제품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전자파를 차단해주는 플러그, 자동차의 기름을 배나 아껴 쓰게 하는 제품, 전기 청소기가 필요 없는 걸레, 세제가 필요 없는 행주 등등… 갑자기 필요한 것도 많 아지고, 사고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습니다. 발명은 현실과 타협할 때 생기지 않습니다. 현재의 불편을 예리하게 관찰할 때 거기서 발명품이 탄생합니다. 세상나라의 발전도 현실에 대한 예리한 비판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한 바리새인의 두령 집에 초대받아 가셨습니다. 안식일 만찬이었기에 그렇게 푸짐한 초대자리는 아니었습니다. 거기에서 예수님은 고창병 들린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분명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한 평범한 사건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고 계셨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예수님만 초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동료들도 많이 초대하 였습니다. 이들은 신분이 신분인지라 서로 상좌에 앉기 위해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당시의 사회상으로 보면 충분히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리하게 보셨습니다. 바로 그 상황에서 두 가지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원 리를 끄집어내어 가르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둔하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사회적 관행이야 하면서 대충 보아 넘겨서도 안됩니다. "너처럼 그렇게 예리하게 꼬집고 비판하고 하면 세상 살아갈 수 없어. 세상은 대충 그렇게 사는 거야." 이런 말에 속지 마십시오. 세상을 대충, 비판의식 없이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 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세상과 타협하는 사람들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정죄하기 위해서 예리하게 세상을 바라보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리한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지난 날 세상과 교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사사건건 부정적이고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분은 부정, 정죄 그 자체를 즐기고 있 었습니다. 그분에게는 구원의 시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청함 받은 사람들의 상좌 택함을 예리한 눈으로 관찰하셨습니다. 우리 도 세상 나라를 예리한 눈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거기에서 하나님 나라 의 원리를 찾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사물을 세상적 시작으로 그대로 받아들여 서는 안됩니다. 거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현재의 불편을 예리하게 관찰할 때 발명품이 나오듯이, 현재의 삶과 관행을 예리하게 바라봐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어떤 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을 말씀하십니까.
1. 섬김의 원리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낮아짐의 원리를 교훈하셨습니다. 이런 비유를 드셨습니다.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상좌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저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어 주라 하리니 그때에 네가 부끄러워 말석으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있으리라" 배경 유대나라의 혼인잔치 좌석은 직사각형의 식탁 둘레에 긴 편자모양(U자 모양)으 로 배열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의자에 드러누워 먹는 로마식 풍습이 유대 사회 에도 들어와 있었습니다. 연결된 로마식 식탁과 소파를 트리클리니움(Triclinium) 이라고 합니다. 네모의 삼 면에는 의자를 놓고 한쪽 면만 비워 하인들이 거기 들 어가 음식 시중을 들 수 있게 했습니다. 손님의 자세는 왼팔에 상체를 기대고 누 워 머리를 들고 쿠션에 등을 기대고 하체는 쭉 뻗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손님의 머리는 첫 손님의 가슴 반대편에 있어 비밀히 할 얘기가 있으면 그의 가슴에 기 대야 했습니다. 보통 가장 존경받는 사람이 식탁의 맨 가운데 상좌에 앉아 기대어 눕고,
둘째와
셋째 서열에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의 왼쪽과 오른 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각 의자는 세 사람씩 앉도록 되어 있는데 중앙에 앉은 사람이 상좌에 앉은 사람입니다. 식탁의 상좌 왼쪽에 놓여 있는 의자에는 서열상 그 다음 사람들이 앉고 그 오른 쪽 의자에는 그 다음 서열의 사람들이 앉습니다. 유대인 손님들은 마땅한 식탁좌석을 찾기 위해서 그 당대의 사회적 예절을 따랐 습니다. 그렇게 될 경우 랍비들이 가장 중앙자리를 차지하게 되겠지요. 주인이 좌석의 위치를 정해줄 때는 별문제가 없지만 재량에 맡겨질 때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는 심리 요즈음도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집니다. 공항에 가면 귀빈실 이 있습니다. 높고 귀하신 의원 나리들께서 행차하시는데, 귀빈실로 안내 안했다 가 혼쭐이 나는 기사를 종종 접하곤 합니다. 항공기 1등석에도 자리의 서열이 있 나봅니다. 고관대작들께서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인다는 소식 도 들립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할까요 사람들은 자기의 신분에 맞는 대접을 받기를 원합니다. 대접이 소홀하면 자기를 깔본다고 생각합니다. 바리 새인들도 늘 자기들의 지위와 신분에 신경 쓰는 사람들입니다. 일반 서민들과는 다르기 때문에 신분에 맞는 자리를 차지해야 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지 요. 이런 것을 허영심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바리새인들에게는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종교유지에 꼭 권위가 필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민중을 장악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백성과 함께 호흡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자신을 내세우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외적인 무엇을 가지고 자신을 포장하지요. 바리새 인들은 백성들이 자신들을 존경하도록 "모든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예수님은 마23:5에서 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하셨 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백성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이 백성을 장악하고 나가는 게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늘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차고 다니는 경문을 넓게 하고, 온에 큰 수술을 달고, 잔치에 서는 항상 상석을 차지하고 회당에서는 상좌를 택했습니다(23:6). 유대종교의 유지를 위해서는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서 그들 은 항상 대접받는 자리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대접 받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충돌이 일어났습니다. 오해하는 사람들 그때 예수님은 "청함을 받았을 때 차라리 가서 말석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 에 영광이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삶의 에티켓 정도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몇 달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였습니다. 당선자가 국회의사당 앞에서 연설하고난 후 기념촬영이 있었습니다. 계단에 수많은 사람들이 대통령당선자와 함께 사진 찍으려고 서 있었는데, 이런 방송이 들렸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분들은 내려 가 주십시오." 누가 내려갔는지는 카메라로 비추지 않았지만, 거기에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너의 지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를 때는 말석에 있다가 청빙자가 부르면 올라가 라. 그러면 창피를 안 당하지 않느냐 인생은 이렇게 지혜롭게 살아가는 거야너희들, 가급적 창피를 당하지 않도록 미리 지혜롭게 피하고 먼저 자기를 겸비 하여 나중에 그로 말미암아 영화를 얻도록 하여라" 이런 식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솝 우화의 교훈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즈음 가장된 겸손을 부리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범인들은 정치가들을 만날 기회가 잘 없지만, 막상 만났을 때 그들의 겸손함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겸손한 척 다 들어줄 것처럼 해놓고, 감감 무소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계 산된 정치가는 자신이 아주 겸손한 척 가장합니다. 이것이 표밭 다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네가 지금 겸손히 행하면 너는 반드시 성공할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지금은 자존심 버리고, 수치도 감래하라" 예수님의 말씀을 이런 식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1절을 보십시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나님 나라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는 나라 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만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만 존경받으십니다. 하나님만 높으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 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 에 계신 자시니라. 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 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8-10,12). 하나님의 왕권 앞에 선 자는 낮아집니다. 그리스도의 주권 앞에 선 자는 겸손해 집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복음을 진정으로 체험한 자는 낮아지는 자리 를 찾습니다. 섬길 자리를 찾습니다. 자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기독교 역사상 바울보다 더 주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한 인물이 어디 있습니 까 그러나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엡3:8) 그는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겸손 입니까 실제로 자기는 위대한 사도임을 알고 있었지만, 겸양의 표현으로 이렇게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에베소서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가 하나님의 은혜 앞에 섰을 때 실제로 그렇게 느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섬김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의상 낮아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왕되심 앞에, 그분의 복음의 은혜를 깨닫지 않고 낮아지는 것은 가식이요 위선에 불과합니다. 이런 외식을 하지 마십시오. 생긴 대로 노십 시오. 그래야 속지 않습니다. 그래야 "당신은 복음이 필요합니다" 충고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속마음은 안
그런데 겉으로, 겸손한 척 하면 그 사람은 이미 복음을 다 아는 것으로 간주하고 더 이상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만하면 교만한대로 노십시오. 그래야 복음으로 충고 받을 수 있습니다. 그 래야 하나님께 한 대 맞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왕되심을 깨달았다면, 주의 교회에서, 직장에서, 사 회에서 낮아지려고 애 쓸 것입니다. 제 주변에 직장에서 승진되지 않는다고 직장 을 그만두고 나온 분이 있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때 진작 좀더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깊이 더 잘 설명해 주었더라면 그렇지는 않았을 텐 데후회가 되고 안타깝습니다. 혹시 직장에서 승진 안된다고 스트레스 받고 있 습니까 그러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는 다 종들인데 종들끼리 서열을 정해봤 자 무슨 소용 있습니까 저는 오랫동안 교육대학선교단체 사역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교사가 되어 나가 면 가장 방해되는 것이 있습니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는 점수를 따야 합니다. 교 사들이 점수의 종이 되지요. 점수를 잘 따면 40대 초반에 교감으로 승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복음전파에 가장 방해되는 것입니다. 학교수업만 잘해 서 점수를 딸 수 없습니다. 부수적인 것들을 많이 해야 합니다. 또 점수를 더 많 이 주는 급지로 옮겨야 하고그래서 "만약 여러분이 진정으로 선교하려면, 교포 파에 가입하라"고 했습니다. 교포파에 가입하지 않는 한 진정한 선교란 없다고 외쳤습니다. 교포파는 교장, 교감 포기파를 말합니다. 대접받을 것 다 받고, 승진 하는 것 신경 쓰고 언제 하나님 나라 사역을 합니 까 그런 것 신경 쓰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높여주십니다. 또 세상에서 안높여주면 어떻습니까 하늘나라에 가면 주께서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신분이 "왕노릇"한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주께서 선히 은혜를 베푸셔서 새로운 건물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식구들도 늘어나게 되겠지요. 그때가 되면 여러분은 개척멤버가 되지요. 개척맴버라고 재지 마십시오.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들 중에 누가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면, 시기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가 개척멤버의 오만함입니다. 그들 때문에 고통 당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늘 자신을 낮추십시오. 복음을 아는 자가 자기를 낮추는 자입니다. 저는 누가 자 기를 자랑하거나 자기를 높이면, 아직 복음을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불 쌍히 여깁니다. 자기의 의견이 채택 안되었다고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내가 주도해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주도하시고 우리는 따라가면 되는 종들 입니다. 내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하십시오. 누가 무시하면 속으로 화내지 말고, 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 훈련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2. 보상에 대한 가치관 예수님은 초청 받은 자리에서 또한가지 하나님 나라 삶의 방식에 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가 이 잔치에 초청 받았는가를 예리하게 관찰하셨습니다. 유명한 바리새인은 식사자리에 손님을 청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초대 를 할 때 친한 친구나, 형제나 친척들을 초대합니다. 그리고 부유한 가정을 그 대상으로 삼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누가 초청 받았습니까 그들은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존경받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식사 자리에 상좌에 앉기 위해서 혈안이 된 자들이었습니다. 보상을 바라는 대접 예수님의 말씀을 가만히 보면, 이 바리새인은 잔치를 베풀어 놓고 노리는 것이 많았습니다. 적어도 그는 자기와 같은 레벨 이상의 사람을 초청합니다. 나중에 자기도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받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회를 살다가 보면 끼리끼리 모입니다. 의사들은 의사들끼리 모이고, 교사 들은 교사들끼리 모입니다. 저도 목회자 모임이 있습니다. 이런 모임에 가면 서 로 생각하는 것이 같기 때문에 쉽게 토론도 하고 공감대도 잘 형성됩니다. 서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모임에 가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잘 아는 사람끼리 서로 초청해서 교제하는 것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 은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교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초대하거나 돕거나 은혜를 베풀 때에 미래의 무엇을 생각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만 하더라도 민주화투쟁하고 감옥에 같 이 가고 실컷 고생했는데, 따르던 보스가 대통령이 되어서, 장관이랑 감투자리를 임명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민주화투쟁은 잘했는데, 야당할 때 반대는 잘했는데, 막상 일을 하려니 경험이 있어야지요. 그래서 대통령은 국정경험이 있는 사람을 임명하려 합니다. 한평생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벌떼처럼 일어납니다. 결국 정치 적으로 갈라먹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보상을 바라고 한평생 보스를 위해서 충성을 다했던 것이지요.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앞으로 우리교회 미혼자들이 당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결혼을 좀 신선하게 하려고 초청대상도 줄이고 간소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려다 보면 부모님과 부딪힙니다. 결혼 계라는 것을 들어놓아 서, 옛날에 내가 누구누구 집에 부조 많이 했는데 이제는 거둘 차례다고 말씀합니다. 집안 경사를 통해 옛날 베풀었던 것을 거두려고 하지요. 따라가다 보면 옛 날 방식의 결혼식을 하고 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초청의 문제에만 국한시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초청은 하나의 예에 불과합니다. 정작 예수님의 메시지의 초점은 보상을 바라고 하는 모든 종류의 대접과 섬김입니다. 어떤 한 성도가 개척교회 목사님을 열심히 도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나 사모 님이 고맙다는 말씀을 안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고 시험이 들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시험이 들면 그만하십시오. 하나님 의 일은 보상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적 보상을 포기하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 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 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베푸는 것이 기본입니다. 예수님은 베푸는 삶을 전제로 하 고 말씀하십니다. 베푸는 부분이 아직 잘 안된다면,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신가, 아니면 물질인가 지금 누구를 돕고 있습니까 그에게서 받을 보상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인사 안 한다고 시험 들지 마십시오. 우리는 세상적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베풀어야 합니다. 결혼식에 부조했습니까 다음 우리 집 경사 때 부조하지 않는다고 섭섭하 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 일일이 계산하고 있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합당치 않습니다. 내 것을 가지고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보상이 없으면 섭섭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의 것인데 나는 전달자에 불과하다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달라집니다. 저는 도움 을 받은 일도 많지만, 도울 수 있는 기회도 하나님이 종종 허락하십니다. 그때마 다 내 것을 가지고 적선한다고 생각해 본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전달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저와 우리교회를 후원하신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적 선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분들을 통해서 내게 베푸시는 것 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돕는 분들에게 조금도 굴리지 않습니다. 필요이상 의 과잉 감사도 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제게 도움 받는 사람들이 필요이상으로 굽실거리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을 제가 대신 가로채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헌금 좀 많이 한다고 교회에서 행세하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교회에는 모두 무기명으로 헌금하기 때문에 행세할 일도 없습니다. 처소헌금도 무기명으로 했습니다. 뻐길 일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하고 있는 아주 좋은 제도가 있습니다. 지목헌금제도입니다. 도와주는 사람을 모르니, 도움 받는 사람도 떳떳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정신입니다. 혹시 누가 도움을 주더라도 비 굴하지 마십시오. 떳떳하십시오. 만약 보상을 기대한다면 돕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 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세상에서 그 보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여간 보람있는 일이 아닙니다. 교사들도 보 람있는 직업입니다. 열심히 제자 양성을 해놓았는데, 나중에 유명 인이 되어서,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에서 스승을 찾을 때 한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목 회자들도 보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말씀을 가르침 받은 사람들이 제자의 삶을 훌륭히 살 때, 보람을 느낍니다. 한번씩 전화를 걸어오거나, 조그마한 성의를 표 시할 때, 기쁨을 느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보상심리를 여지없이 깨십니다. 사람들은 베풀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어느 정도 기대를 가집니다. 그러나 경험상 하나님은 그런 기대 를 여지없이 허무십니다. 성경공부를 잘 시켜 놓아서, 그 은혜를 기억하고 있겠 지 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냉대를 받아본 적도 있습니다. 실망이 큽니다. 여러분 은 그런 적이 없습니까 세상적 보상을 기대했다면 포기하십시오. 하나님 나라의 삶은 이런 보상을 포기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보상받지 못하는 것이 복이다.
사람들은 받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받지 못하는 것을 복이 라고 하십니다. 왜 복이 되느냐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 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본문은 표준 새번역의 번역이 더 낫습니다. "그러면 네가 복될 것이다. 그들이 네게 값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의인들이 부활 할 때에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실 것이다." 사람들에게 보상받지 않는 것 자체가 하나님 나라의 복입니다. 주고 안 받는 것 이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주고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섬기고 섬 김을 받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대접하고 대접을 받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사람 들로부터 보상받을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복 받는 비결 입니다. 기대했던 사람이 전혀 반응이 없을 때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하늘나라의 복이 내게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보상을 기대하라 세상의 보상 대신 하늘의 보상을 기대하십시오. 그 날은 "의인들이 부활할 때 하나님께서 내게 보상해 주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마10:42)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 라"(갈6:9) 결언 14장은 예수님의 안식일 해방선포로부터 시작합니다. 안식일에 잔치가 있었고, 안식일에 병자가 고침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잔치의 나라 요 안식의 나라임이 계시되었습니다. 안식의 나라는 왔지만, 그 나라에 들어가는 백성은 수준미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무조건 들어가서 구정물을 일으키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을 삶의 주로 모시고 사는 나라입니다. 적어도 하나님 나라에서 살려고 하면 그 나라의 삶의 방식을 익히고,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오늘 두 가지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의 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로 높아지려 하고, 서로 상좌를 차지하려고 한다면, 하나님나라 백성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섬 김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낮아짐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둘째는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보상만 기대하는 나라입니다. 세상적 보상 을 포기해야 합니다. 오히려 세상적 보상을 받지 않는 것이 복입니다. 보상을 기 대하고 베풀면 안됩니다. 보상을 기대하고, 섬기면 안됩니다. 세상적 보상을 포기 하십시오. 하나님 나라 백성은 자신의 신분을 알기에 하나님이 받으셔야 할 영광 을 자기가 가로채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주로 모시는 것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입술로만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나의 왕이여" 하면 손을 높이 들고 우러러본다고 되는 것이 아 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의 방식을 실제로 배워야 합니다. 실제로 내 삶에 하나님이 주로 나타나시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포기되어야 합니다. 내가 높아지려는 마음이 포기되어야 합니다. 내가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포기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만이 진정한 하나님 나라 백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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