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하나에 대한 관심 (눅15:1-10)

본문

세리와 죄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달랐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온 것은 표적을 구하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을 비난할 근거를 찾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 위하여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그 자리에는 세리와 죄인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랍비라는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같이 음식을 먹는다고 예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서 주님은 15장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에 대한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마에 대한 비유,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오늘은 처음과 두 번째 비유를 살펴보면서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첫쨰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개인을 소중하게 여기십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에서 목자는 100마리 양을 치다가 한 마리라도 눈에 띄지 아니하면 99마리를 안전하게 놓아두고 그 없어진 한 마리를 찾아 다닙니다. 근처에서 발견하지 못하면 여기저기 범위를 넓혀서 찾아 다니고 찾기까지 그런 노력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많이 있으니 하나쯤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목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드라크마에 관한 비유도 찾는 이의 열정을 생생하게 나타내 줍니다. 드라크마는 로마의 데나리온에 상응하는 헬라의 은전(銀錢)입니다. 이 여인이 가지고 있던 열 개의 은전은 결혼 때 남편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머리띠에 결혼의 징표로 묶어두었던 것입니다. 이 중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부부 사이에 금이 갈 수도 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결혼반지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잃어버렸으니 이 여인이 얼마나 당황했겠으며 그것을 찾으려고 얼마나 애썼겠습니까 이 비유에서 목자나 여인은 하나님을 나타내며, 양이나 동전은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목자가 한 마리의 양까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이, 그리고 결혼한 여인이 은전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시며 개개인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바닷가의 무수히 많은 모래알 하나에 불과한 하찮은 존재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 당신은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개인 하나하나에 대한 관심을 가지신다는 진리는 하나님께서 작은 것에 대한 관심도 가지신다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작은 것이라고 해서 소홀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개인을 소중하게 여기시는데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의 대상은 의인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죄인도 포함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이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 세리와 죄인들을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멀리하시기는커녕 그들을 영접하셨으며 함께 음식을 먹기까지 하셨습니다. 앞서 그들이 같은 일로 비방했을 때에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말씀이 5:31-3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이처럼 예수님은 죄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셨고 그 관심을 성육신하여 그들을 찾아나서고 영접하는 행동으로 나타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죄인들을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분께서 그들이 저지르는 죄를 가볍게 보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베데스다 연못 가에 누워 있는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시고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고(요5:14),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돌려보내시면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요8:11).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죄인을 외면하고 멀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덕적인 결함을 가진 죄인에게도 관심을 가지신다는 진리는 신체적인 결함을 가진 장애인에게도 관심을 가지시고 지적인 결함을 가진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관심을 가지신다는 믿음을 갖게 합니다. 어떤 마을에 부자가 있었는데, 그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이웃의 가난한 집에 찾아가 아들을 양자로 주면 대학까지 졸업시키고 모든 재산을 상속시키겠다고 했다. 이 말에 가난한 집 내외는 일곱 아들들을 떠올리며 누구를 보낼 것인가 상의하기 시작했다. 큰 아들은 맏아들이라 안되겠고,
둘째 아들은 얼굴이 복스러워서 안되겠고,
셋째 아들은 영민하고 재주가 많아서 안되겠고,
넷째 아들은 몸이 약해서 안되겠고, 다섯째 아들은 할아버지를 닮아 안되겠고, 여섯째 아들은 우애와 효성이 지극해서 안되겠고, 일곱째 아들은 막내둥이라 안되겠다는 결론이 났다. 그래서 그들은 부자를 찾아가서 줄 아들이 없어서 안되겠다고 사정했다. 이렇듯 많은 자식 중에 하나를 주는 것도 힘이 들어 못 주는데, 하물며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참으로 귀하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성경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53:6)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이 그릇 행하고 있고 자기 멋대로 생활하고 있으며 목자를 떠나 잃어버린 상태에 있는 양과 같다고 지적해 줍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하나하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시고 되찾기 위해서 지금도 힘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5:17) 사람의 몸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죄인을 영접하시고 음식을 같이 먹으신다는 사실이 기쁜 소식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3:20) 잃어버린 양을 되찾은 목자는 너무 기뻐 그냥 있을 수 없었습니다. 드라크마 한 개를 되찾은 여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벗과 이웃을 불러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죄인이 회개하고 그분께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우리로 깨닫게 합니다. 죄인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만 기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있는 하늘의 천사들에게 기쁨이 됩니다. 가족에게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뭐니뭐니 해도 죄인 자신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잃어버린 죄인을 찾는 기쁨을 누리셨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잃어버린 죄인을 찾으러 나가 돌이키게 할 때 그분이 누리시는 기쁨을 우리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20:21) 양은 그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길을 잃었지만 동전은 여인의 부주의 때문에 잃어버렸습니다. 가정에서 우리가 부주의하여 부모나 배우자나 자녀의 영혼을 버림받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혼을 우리가 되찾기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무관심으로 잃어버리는 것 중에는 시간도 있습니다. 계획되지 않은 시간은 쓴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리는 시간을 되찾는 것도 틀림없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63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