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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눅13:29-34)

본문

I. 종교의 형식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나라 우리는 예수에 대해 생각할때, 세속과 분리되어 살았으며 엄격한 종교적 관 습이나 규율에 얽매여 사신 분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복음서의 예수는 특별한 종교적 관습이나 규율에 얽매이지 않은 매우 단순하고 자유로운 분 으로 묘사되어 있다.
1. 종교적 관습에 대하여 자유로운 예수 예수는 사회적으로 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분은 레위 지파도 제사장 출 신도 아니었고, 율법학자나 서기관이 될 수 있는 정규교육을 받은 분도 아 니었다. 그는 가난한 목수의 가정에서 태어나 목수의 직업을 가지셨다. 그의 이야기 솜씨도 매우 소박하고 단순하였다. 그는 신앙고백서나 교리를 외우 게 하지 않았고, 하늘의 신비한 비밀에 대해 명상하지도 않았으며, 단지 전 설이나 설화, 격언을 이용하여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셨다. 이와같이 예수님 은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지켰으며 또 지킬것을 요구하였던 모든 종교적 관습에 대해 자유로운 태도를 취했으며 그것들을 상대화시켰다. 예를 들어 사두개파와 바리새파들이 강조하던 십일조도 강조하지 않았으며, 종교적 표 시가 달린 의복을 입고 다니지 않았으며, 바리새파처럼 월요일과 목요일에 정기적으로 금식하지도 않았으며, 하루 3번씩 기도하는 관습을 지키지도 않 았다.
왜냐하면 예수에게 중요했던 것은 십일조를 바치느냐 않느냐의 문제 가 아니라 먼저 자기의 마음과 삶을 바치는 것이었으며, 또 어떤 고정된 틀 에 자신을 묶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때, 가능할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즉, 중요한 것은 종교적 형식 자 체가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의와 자비를 지키는 문제였다.
2. 율법을 상대화시키는 예수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이었다. 율법은 모세 를 통해 주신 구원의 길이었으며 하나님의 계약과 택한 백성에 대한 표지로 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지날수록 삶의 상황과 조 건들이 다양해지며 변화되었기 때문에 이 613가지의 율법의 계명들로 이 모 든 새로운 상황들에 다 적용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할라하(Hallach)라는 율법에 대한 거대한 해석체계가 형성되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 할라하 가 너무나 방대하여 모든 피조물의 행복을 실현해야 할 본래의 목적을 상실 하고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는 종교적 계율로 전락되었다. 따라서 예수님 당 시에는
1 율법을 전수 해석하며 가르치며 지킬 수 있었던 율법학자들, 랍 비들, 바리새인 계층-'의인'계층과
2 시간적, 물질적 이유로 인해 율법을 지킬수 없었던 평민 계층-죄인 계층으로 이분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예수는 율법을 상대화시킨다.
왜냐하면 예수에게 중요한 것은 율법조항의 준수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기 때문이다.
3. 예루살렘 성전과 제의의 상대화 예수는 율법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성전과 이 성전에서 거행되는 모든 제의도 상대화시킨다. '근거'1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막11:14)-예수는 잎사귀는 있으나 열매를 맺 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다. 무화과나무는 예루살렘성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형식은 있으나 본래의 의미와 목적을 상실한 예루 살렘 성전의 저주, 포기를 뜻한다.
2성전의 상행위를 금지하는 사건(요2:13)-당시 예루살렘 성전안에는 제물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로 항상 소란했다.
왜냐하면 제사장들은 제사에 바치는 모든 제물을 성전안에서 살것을 요구하였고, 이스라엘자체의 화폐만 사용할 것을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은 이과정에서 몇배 의 이득을 취하였고 이 불의한 돈은 제사장들과 연결되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체의 상행위를 금지하셨다. 예수는 더 나아가 아 무나 기구(기구)들을 가지고 성전뜰을 질러 다니는 것을 금하였다. (막11:16) 여기서 기구들은 제사에 사용되는 물건들을 말하며 따라서 이러한 예수의 행위는 성전의 상업적 기능은 물론 종교적 기능, 제사적 기능마저 중단시킴 을 의미한다. 즉, 성전의 정화가 아니라 성전의 무효화를 의미한다.
3성전휘장이 찢어진 사건-예수가 운명하는 순간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 까지 두폭으로 찢어졌다는 보도도 이방인, 여인, 이스라엘 남자, 레위인, 대 제사장만이 들어갈 수 있는 장소의 구분을 폐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4. 이스라엘의 혈통, 의와 불의의 판단 기준의 상대화
1이스라엘 혈통의 상대화-예수는 이스라엘의 혈연적, 민족적 공동체의 선민의식을 상대화시킨다. 혈연적 이스라엘 공동체를 선민으로 생각하던 사 상은 후기 유대교에서 흔들리기 시작했고, 예수당시에는 참이스라엘이라 주 장하는 다양한 종교집단들이 생겨났다. (하시딤, 바리새파, 엣세네파파, 젤롯 당-) 이들은 의로운 자들을 영입하여 세력확장에 힘썼다.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 상황에서 예수는 어떤 삶을 살았는가 그는 거룩한 자들을 모아 세 속으로부터 구별되는 특별한 공동체를 형성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는 세 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다. (마11:19)'그는 이점에서 구약 예언자의 전통 에 서 있었고 따라서 예언자로 불려진다. (마21:11)' 물론 복음서의 예수의 활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제한되어 있다. 제자들을 파송할때도 그 대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로만 국한되었다. (마10:5) 그러나 예수는 이스라엘의 선 민의식과 특권의식을 여지 없이 흔들어 놓았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하인 을 고쳐준 사건(마8:11), 혼인잔치의 비유(눅14:16)등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 어서 이스라엘의 혈통이냐 아니냐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함을 말한다.
2의와 불의의 판단기준의 상대화-예수는 더 나아가 의와 불의, 경건과 불경건의 사회적 판단기준을 상대화시킨다. 자칭 의인인 먼저된 자들은 나 중 될 것이고, 불의하고 불경건한 자들은 먼저 될 것이다. 옥합을 깬 여인의 사건(눅7:44-48),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10:30-37),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눅18:11), 부자 청년의 이야기(눅18:21), 삭개오의 이야기(눅19:2)는 바로 이점을 말한다. 의인과 죄인의 기준은 당시 바리새인등이 주장하는 종교적 형식과 계율에 대한 복종여부가 아니라 율법의 골자인 하나님의 의와 자비 를 행하느냐 아니냐에 있다. 다시말해 구원의 기준은 당시 사회에서 통용되 던 기준이 아니라, 예수안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하는 능력을 믿느냐 믿 지 않느냐, 예수에게 전폭적으로 맡기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5. 엣세네파, 쿰란 공동체와 예수의 차이 엣세네파는 전에 살펴본 바와 같이 하시딤이 하스몬왕가를 떠날때, 바리새 파와는 달리 강경한 입장을 취하며 세속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경건한 생활 을 하려한 집단이다. 예수당시에는 4,000명의 엣세네파들이 사해언덕을 중심 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공동생활, 결혼금지, 노동, 상급자에게 복종을 생활규범으로 삼았고, 음식은 굶주림을 피할 정도만 먹었다. 또한 이들은 안 식일, 정결에 관한 계명을 엄격하게 준수하였다. 이 엣세네파중에서 극단적 인 사람들은 쿰란 고원에 수도원을 짓고 고행과 은둔의 생활을 하였다. 그 렇다면 예수와 이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1엣세네파 사람들은 이 세계의 모든 속된 것을 피하기 위하여 사람들로 부터 자신을 분리시켜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나 예수는 속세를 떠나지 않고 그 한복판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복음을 전파했다.
2쿰란의 수도사들은 세계를 이원론으로 구분했다. 쿰란 수도원안에는 진리 와 빛이 있고 구원이 있지만, 바깥 세계는 어두움이 있다. 애초에 하나님은 두가지 부류의 사람들을 지으셨다. 그러나 예수는 본래 모든 사람이 하나님 의 자녀이며 누구나 회개할때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3엣세네파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보다 더 엄격하게 율법을 지켰다. 특히 안식일법을 더욱 철저히 지켰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에 대하여 자유로운 태도를 취하셨다.
4엣세네파 사람들은 금욕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예수는 금욕주의자가 아니 었다. 단 한차례 40일간 금식기도하셨다는 기록이 있을 뿐이며, 제자들에게 도 금식을 요구하지 않았다. 예수는 오히려 가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만 드셨으며, '먹고 마시기를 탐하는 자'라는 말을 들으셨다. 5쿰란의 수도사들은 철저한 계급질서를 가지고 있었다. 상급자에대한 불복 종은 엄한 벌을 받았다. 그러나 예수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을 요 구하셨을 뿐이다. 6쿰란의 하루 생활은 엄격하게 규칙화되어 있었다. 하루생활은 '기도→오 전노동→몸을 씻고 흰옷을 입고 함께 식사→오후노동 →함께 식사'였으며, 함께 모였을때는 침묵을 지켜야 했다. 신입회원은 입단식때 이 규약들을 지 킬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예수의 공동체는 수련기간이나 입단식때의 맹 세, 규칙적인 기도시간 등이 없었다. 6. 종교의 형식들을 상대화시키는 이유 예수가 이처럼 일체의 종교적 형식과 제도는 물론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의 존재를 상대화시키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인가
1근본적인 원인은, 예수가 선포하며 일으키려 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다림과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의 하나님의 나라는 당시 유대인들이 가진 민족적 틀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자연 까지 포함하는 보편적, 우주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민족적 이스라엘 공동체를 상대화시킨 것이다. (눅13:29-30)
2종교의 본래목적은 종교자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를 땅위에 세우는 데 있다. 성전, 율법등은 그 자체가 절대적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 불과한 상대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D. Bonhoeffer의 말처럼 종교의 모든 형식들과 제도들은 비종교화되야 한다. 즉 모든 절대성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자 기를 상대화시켜야 한다. 또한 예수의 존재 자체때문에 이 모든 것은 상대 화되어야 한다. 예수 자신이 성전보다 더 큰 분이므로 성전은 상대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성전의 목적은 인간의 죄를 중보하고 하나님나라를 실현하는 것인데 그 목적이 바로 예수에게서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눅13:34)
3의와 불의, 경건과 불경건의 기준은 종교적 형식의 준수여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지키느냐 않느냐, 하나님나라를 세우느냐 않느냐에 있다. 따라서 모든 종교적 관습과 형식들은 상대화 될수 밖에 없다.
4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그 사회의 종교가 요구하는 모든 관습들과 형식들 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없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후자는 종교의 세 계에서 소외되며, 더우기 그 종교가 사회의 지배종교일때는 사회로부터도 소외되어 버린다. 종교의 목적은 모든 인간의 상실된 가치와 존엄성을 회복 하는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종교가 '종교적인' 인간으로 자처하는 상층계급과 불경건한 계급을 2분화 시킨다. 예수는 이러한 소외된 사람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당시 사회의 모든 관습과 가치체계를 상대화시킨 것이다. 5예수가 선포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세계'이다. 종교와 율법의 목적도 바로 이것인데, 종교가 인간 의 생명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이 된다면 이는 잘못된 종교이다. 율법의 목적도 하나님 앞에 있는 모든 피조물의 행복에 있는데, 당시에는 그것이 오히려 행복을 억압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예수께서 당시 유대인 들의 율법체계를 상대한 시킨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율법을 완성하는 하나님의 나라-율법과 예수
1. 율법의 본래 목적과 전도(전도) 율법의 기능에 대한 2견해
1부정적 견해-전통적인 신학은 율법의 기능을 '죄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게 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루터는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인간을 심판하는 반면, 복음을 통하여 인간을 구원한다'고 본다. 이같은 율법 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구약성서와 유대인들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연결 되고 결국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사건도 정당화 시키는 유태인 배척주의(anti semitis)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이들은 바울의 견해중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다'(롬7:12), '율법은 신령하다'(롬7:14)는 귀절에 대해서는 침 묵하였고, '율법의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으며(갈3:10), '그리스도는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다(갈3:13)는 귀절만을 강조하였다.
2긍정적 견해-그러나 K. Barth,
D. Bonhoeffer는 구약과 율법을 긍정적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결국 신학자들의 입장은 정치적입장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럼 율법을 어떻게 볼것인가 율법은 크게 나누어 ㉮하나님에 대한 제의나 종교적 의식에 관한 종교법(cultic law)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사회생활에 관한 도덕법(moral, civil law)으로 구성되 있다. 이 율법의 기본 정신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이웃과 자연에 대한 사랑이다.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적 의무를 지킬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보호하며 특히 약한 자들의 생명의 기본 권리를 보호하여 주라고 명 령한다. (신24:4, 14, 안식일계명, 안식년, 희년의 계명) 즉 율법의 근본목적 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깨닫는데 있지 않고, 인간을 위시한 모든 피 조믈의 평화로운 삶의 세계를 실현하는데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다"(롬7:12)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는 율법 의 본래 목적을 망각하고 율법주의에 빠졌다. 이제 율법의 본래 목적은 사 라지고, 율법의 세부조항을 지키느냐 않느냐는 형식주의가 형성되었다. 그 결과, 율법은 인간이 자기의 의를 주장할수 있는 수단이 되어 자기 교만에 빠진 인간을 양성했고, 반대로 그 율법조항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을 죄인 으로 정죄하게 되었다. '바리새인과 과부의 기도, 간음한 여인 사건' 또 율 법주의는 율법을 지킨다는 미명으로 하나님의 참뜻을 교묘하게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다. 인간적인 계명들과 사회의 통념적 윤리와 도덕을 지키지만, 하나님이 요구하는 의와 자비는 실천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자기를 의로운 자로 착각하며 다른 사람의 과실을 보았을때는 무섭게 정죄하는 인간을 양산한 것이다.
2. 율법의 정치적 기능 예수당시 율법은 종교적 기능뿐만 아니라 정치적 기능도 담당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유대사회는 종교와 정치가 결합되어 있었고 종교지도자는 사 회, 정치적 지도자의 위치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대사회를 결 속시키는 힘은 율법에 있었는데, 이 율법은 당시 종교, 정치, 사회지도자들 의 전유물이었다. 이들은 모든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는데, 일반 평민이 그 복잡한 율법조항을 외우고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따라서 율법은 친 로마적인 정치, 사회, 종교지도층의 전유물로 그들의 신분과 특권을 보장하 여 주었으며 그 결과 그 사회의 체제를 보장해 주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비 판하신 것은 단순히 종교적 이유만이 아니라 그들이 그 사회의 기존체제를 유지하고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특권을 보호하는데에 율법을 이용하였기 때 문이다.
3. 율법의 상대화-사회체제의 상대화 가. 예수는 정결에 관한 할라하를 상대화시킨다. (막7:17-23) 예수는 손을 씻 지 않고 음식을 먹어도 좋다고 했다. 중요한 문제는 마음의 정결이기 때문 이다. 이로써 예수는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제의적 구분을 폐기한다. 이는 "하나의 종교사학적 전환"이다. 나. 예수는 안식일에 대한 할라하를 상대화시킨다. 바빌론 포로시대 이후 할 례와 안식일은 가장 중요한 '계약의 표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안식일 계 명에 대하여 자유로운 태도를 취한다. 안식일에도 밀이삭을 따먹어도 좋다 고 말하며, 병자 치료는 거의 안식일에 일어난다. 인간은 안식일의 주인이 며,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일을 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예수는 종교-정치지도자들의 위선을 비판한다. 그들은 할라 하를 지키는 것 같지만, "교묘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며"(막7:9-13), 율법 의 정의와 자비는 저버린다. (마23:27) 또한 예수는 율법과 모세의 권위를 상대화 시키고 자신의 권위를 더 높게 세운다. (산상설교의 6명제-"나는 이 렇게 말한다") 이런 태도는 예루살렘성전과 제의를 상대화시키는 데까지 확 대된다. 예수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할 필요가 없다, 이 성전을 헐라. 3일만에 다시 세우리라라고 말하며,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 과부의 두 렙돈(156원정도)을 더 기뻐하신다. 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사회에서 율법 을 상대화시키는 이러한 예수의 행위는 곧 정치체제의 상대화를 의미했다.
4. 왜 예수는 율법을 상대화시키는가 가. 결의론(Kasuistik)에 의해, 삶의 구체적인 상황이 생길때마다 계속 새로 생겨난 계명들이, 하나님의 참뜻을 실천하기는 커녕, 오히려 율법의 본래의 목적을 저버리며, 정말 인간이 해야 할 일을 감추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나. 선한일에는 항상 상이 따르기 마련인것처럼, 율법의 조항들을 지켰을때 이에 상응하는 하나님의 상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또 그 이상을 지켰을때는 더 특별한 상을 기대하게 되고, 이는 혹 율법을 지키지 않았을때의 상쇄수 단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다. 예수가 율법을 상대화시킨 목적은 "하나님의 요구의 철저화"에 있다. 예수는 교회사가 생각하는 것처럼 '새로운 율법의 시여자'가 아니다. 그는 결 의론이나 율법의 체계를 만들려 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율법의 글자가 아니라 율법의 정신이요, 중요한 것은 모든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뜻 을 실행하는데 있었다. 라. 율법의 본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가운데 계시며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비와 평화속 에서 함께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물론 모든 규범과 질서가 철폐되 어서는 안되지만, 피조물의 행복을 위해 봉사하지 않고 오히려 피조물의 생 명을 억합하고 파괴하는 규범이나 제도는 상대화 되야 한다. 마. 율법이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고 있던 당시 사회속에서 인간으로서의 가 치를 박탈당하고 소외된 사람의 인간적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을 해방하고자 할때, 예수는 그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율법을 상대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5.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다"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을 묻는 율법사의 질문에 예수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는 이중계명으로 대답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이웃사랑으로 증명 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웃의 고통이 자기의 고통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선 한 사마리아 비유에서 사마리아사람은 아무 종교적 이유없이 강도만난 사람 에게 사랑을 베풀었다. 이는 그 마음속에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예수는 사랑의 이론이나 학설이 아닌 실천을 요구했다. 사 실 온 인류와 피조물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하기는 쉽지만 바로 곁에서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구체적으로 자비를 베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먼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한것이다. 그럼 이웃을 얼마나 사랑 해야 하는가 네 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곧 자기자신에 대 한 사랑이 이웃사랑의 기준이 되야한다는 것이다. 그럼 예수가 말하는 이웃 은 누구인가 지금 나의 도움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곧 나의 이웃이다. 예수는 이웃사랑을 요구할뿐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한다. (마5:43-48) 즉 예수의 사랑은 혈통과 인종과 민족과 국경의 한계를 초월한 사랑이다. 이런 예수의 사랑은 단지 개인적 차원의 것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인 공적인 차원을 가진다. 억압과 착취당하는 이웃을 돕고자 하는 사람은, 그들을 억 압, 착위하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6. 예수 자신이 율법의 완성이다. 예수가 율법을 상대화시킨 것은 율법을 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목적을 세우기 위함이었다. 율법의 근본목적은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 이 완성된, 슬픔과 고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새하늘과 새땅인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함이며, 예수는 이를 자신의 삶과 죽음으로써 완성하셨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희년의 계명을 선포하고, 정의를 외치며 율법을 상대화시키는 예수의 행동은 불의한 자들에 의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죽음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는 예수의 자기 증명이요 율법의 궁극적 완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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