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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본심 (눅13:31-35)

본문

본문의 바로 앞에 있는 22-30절에서는 주님의 냉정하고도 차가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문을 닫고 아무리 애원해도 열어 주지 않는 집 주인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25절).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27절).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마지막 때에 이와 같이 배척하실 것입니다. 이와 달리 본문에서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그분을 배척하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헤롯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리던 지역에 머무르셨던 것 같습니다. 그때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헤롯이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가 단정할 수는 없지만 헤롯은 충분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을만한 위인이었습니다. 침례 요한을 죽인 사람도 바로 그였습니다. 그는 형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한 죄를 저질렀으며 이에 대해서 침례 요한의 책망을 받자 그를 구속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들춰내고 지적하는 사람을 그대로 놔둔다면 통치자로서의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잔치석 상에서 자기가 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으면 통치자로서의 체면이 손상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침례 요한을 참수형에 처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의 활동과 사역이 주위에 퍼지자 헤롯은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죽은 침례 요한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요한을 경계한 것 같이 예수님을 경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헤롯을 가리켜 여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힘은 없지만 교활한 통치자임을 빗대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지만(9:9) 예수님은 그와 상종하려 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에서 붙잡히셨을 때 헤롯 앞에서도 재판받으셨지만 그가 묻는 말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대답하시지 않았습니다. “빌라도가 듣고 묻되 저가 갈릴리 사람이냐 하여,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소하더라. 헤롯이 그 군병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눅23:6-12) 요한계시록 5:5은 예수님을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라고 소개합니다.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계5:5) 헤롯이 예수님을 제거하려고 하는 것은 여우가 사자를 제거하려는 것과 같이 분명한 반란입니다. 그는 자기 권세를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배척했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둘째로,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헤롯의 음모를 예수님께 알려준 것은 그분을 염려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헤롯에게 가서 전하라고 말씀하신 데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헤롯의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민족주의자들인 바리새인들은 사실상 에돔인의 핏줄을 이어받은 헤롯을 경멸했지만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하여 협력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동정을 헤롯에게 틈틈이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그의 음모를 알려주면서 그 지방을 떠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헤롯의 관할권 내에 있는 한, 우유부단한 헤롯이 비록 그분께 적개심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언제 그분을 제거할지 알 수 없고,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계획대로 신속히 그분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등장 이후 율법의 수호자로서 자처해온 그들의 위치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의 종교적 생활에 대한 영향력도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네가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자로서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롬2:17-20) 유대인의 종교지도자들은 자기들이 그 동안 누려온 특권을 잃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배척했고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인데 섬김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제거하려고 했으니 헤롯과 마찬가지로 반란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셋째로, 다수의 일반 유대인들도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사람들뿐만 아니라 유대인들 모두를 가리킵니다. 그분에 의하면 이들은 선지자들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죽이는 자들이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눅11:47-51) 일반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도 했고 행하시는 이적을 보기도 했고 소문으로 듣기도 했지만 종교지도자들이 반대하고 적대하니까 덩달아 그분을 배척했습니다. 나중에는 빌라도 총독 앞에서 그분을 십자가에 못박아야 한다는 다수 목소리를 내는 데 일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었습니다(히1:2). 그분은 생명의 주가 되십니다.
그런데 그분을 힘 입어 사는 사람들이 생명의 주 되시는 그분을 배척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하셨는데, 이때의 그분의 심정을 사무엘하서 18:33에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루에 올라가서 우니라 저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를 왕위에서 축출했을 뿐만 아니라 온 군대를 거느리고 쫓겨가는 아버지를 추격하여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다윗과 그의 신복들은 결사항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숫자는 다윗의 군대가 절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최후 결전을 위해서 진군하기 직전에 다윗은 신복들에게 수차 압살롬을 너그럽게 대하라고 당부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18:5) “삼가 누구든지 소년 압살롬을 해하지 말라”(12절)-다윗의 신복 중 한 사람이 이해한 말 다윗이 승리의 소식을 전하러 온 사람에게 맨 처음 물은 것이 전장의 형세가 아니라 압살롬의 안부였습니다. “소년 압살롬이 잘 있느냐”(29절) 두 번째 사자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32절) 며칠 전에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선고공판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통령으로 재임 중 어느 누구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뒤늦게 법정에 서서 각각 사형, 징역 22년 6개월이라는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재판을 보면서 반역죄가 얼마나 무섭게 다루어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재임 중에는 심판을 받지 않았지만 결국 행위대로 심판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배척하는 사람들도 실상 그분께 반역죄를 짓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왕이 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마지막까지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헤롯이 죽이려 한다는 말을 듣고서도 그곳에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셨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과 그곳에 올라가면 죽게 될 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곳을 향해 올라가기로 굳게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그렇게 하시려는 것입니까 그 해답을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는 것 같이. 잃어버린 양을 우리로 모으려 하는 것 같이 그들을 여러 차례 모으려고 애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께로 돌아오지 않았고 원치도 않았습니다. 따라서 그로 인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그분께서 심판하시기를 좋아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분의 공의가 반역자를 심판하시게 하는 것입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국민의 법 감정이 그들을 법정에 세우게 된 것과 같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그를 용서하려고 신복들에게 그를 관대하게 대하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신복들은 압살롬 때문에 겪은 고초와 고난 때문에 그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과 같습니다. 자고로 반역죄는 가장 엄하게 처벌되었습니다. 살인죄는 당사자만 처형되면 그만이지만 반역죄는 삼족을 멸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눅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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