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갚아주시는 선행 (눅14:12-14)
본문
생활의 여유가 많아지면서 접대하고 접대받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신과 고립으로 인한 이웃과의 단절이 심화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것으로서 따뜻하고 인정 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권장되어야 할 일입니다. 본문은 바로 이 접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의 한 두령이 초대한 식사자리에 참석하셔서 두 가지 교훈을 주셨습니다. 하나는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를 향해서 주신 겸손의 교훈이고(7-11절), 또 하나는 초대한 주인에게 주신 접대와 관련된 교훈입니다. 본문은 이 두 번째 교훈을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종류의 접대가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첫째로, 이 땅에서만 반짝하는 접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집 주인에게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초대하는 대상은 일가친척이나 친구나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도 같은 집단에 속해 있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대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현실인데도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초대를 자주 해서 서로간의 우의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데 왜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 해답이 12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지금 예수님은 “갚음”이라는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초대받은 사람은 다음 번에는 자기가 초대하여 신세를 갚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초대한 사람의 일에 도움을 준다든가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신세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초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들은 대체로 무엇인가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동기를 가질 수도 있고 다음에 상대방의 호의를 구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도 있고 청탁을 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동기를 가진 접대가 접대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 땅에서 갚아지므로 크게 칭찬받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수재의연금을 모금할 때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까지 크게 텔레비젼이나 신문에 보도되는데 그렇게 됨으로써 당사자의 선행은 그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값싼 것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음 세상까지 빛을 발하는 접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대하라고 하는 대상은 가난한 자들, 병신들, 저는 자들, 소경들입니다. 그들이 초대받고 나서 감사의 말은 하겠지만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으므로 신세진 것을 되갚을 수는 없습니다. 초대한 사람 역시 그들로부터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접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것이고 장차 의인들의 부활 시에 하나님으로부터 갚음을 받는 것입니다. 이 교훈을 굳이 접대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나그네를 접대하며 고아와 과부를 선대하라는 가르침이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이것 역시 본문의 교훈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대하여 선을 좇고 선을 행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살전5:15) 마태복음 6장은 선을 행할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의를 행하는 것은 좋지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얻지 못합니다(마6:1). 구제할 때에 나팔불며 선전하는 것이 사람의 영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상을 받지는 못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때 즉 은밀하게 구제할 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2-4절).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는 데서 기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경건하다는 칭찬은 받겠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골방에서 은밀하게 드리는 기도를 응답하십니다(5-6절). 금식할 때에 사람들에게 고통스럽고 슬픈 기색을 내는 것은 상을 잃는 행위입니다.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16-18절).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우리의 선행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 그것으로 이미 상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뽐내려는 의도로 선을 행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2,5,16절). 그러나 우리가 은밀히 선을 행하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갚아주십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헤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6:35) 우리는 접대받기를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접대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진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가진 것이 얼마없더라도 마음만 정해져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벼농사의 절반을 뚝 떼어 남모르게 불우이웃을 도운 농부가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보령시 주교면 신대리에서 2천9백70㎡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보복씨(39). 이씨는 지난 93년과 94년 자신이 수확한 쌀중 부인과 3자녀 등 가족들의 1년간 먹을 양식 7가마를 제외한 나머지 4-5가마씩을 당시 보령군청 정문 앞에 몰래 갖다놓았다. 이씨는 올해에도 쌀 4가마를 보령시청 정문에 슬그머니 놓고 돌아가다 이를 이상히 여긴 경비원에게 발견돼 숨겨왔던 3년 선행이 들통나고 말았다. 이씨가 남모르는 선행을 실천하게 된 사연은 어릴 적 가난으로, 돈을 벌면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마음 먹었다.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이씨는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의 부지런함을 알아준 마을 이장의 추천으로 지난 83년 군으로부터 축산자금 2백만원을 융자받아 한우 2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천성이 착하기로 소문난 이씨는 4년만에 2마리의 한우를 25마리로 번식시키켰다. 그러나 이같은 기쁨도 잠시, 소를 처분해 양계를 시작한 이씨는 닭값 폭락으로 전재산을 날렸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이씨는 또 다시 4년만에 축산농가로 재기했고 93년에는 2천9백70㎡의 논을 살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이씨는 이 곳에서 생산되는 쌀의 절반 정도를 매년 군청 및 시청정문에 갖다놓아 불우이웃에 전달되도록 했다. 이씨는 "별것 아니라 남 모르게 도우려고 했는데 세상에 알려져 오히려 쑥스럽다"며 "비록 넉넉치는 않지만 앞으로 힘 닿는데까지 이웃을 돕겠다"고 말해 노태우 전대통령의 엄청난 비자금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조선 꽃동네를 돌보고 있는 오 웅진 신부님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냥하는 한 할아버지가 앞을 못보거나 사지를 못쓰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자신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 깨달은 진리였습니다. '월요 인터뷰' 막사이사이賞 수상 오웅진 꽃동네신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어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도 모르게 말 없이 죽어가는 분들을 거둬 먹여주고 치료해주며 장례까지 치러주는 충북 음성 꽃동네가 올해로 세워진지 20년을 맞았다 . 76년 당시 32세의 젊은 사제 오웅진(吳雄鎭)신부의 오로지 한 소명감으로 방 다섯 칸짜리 블록집에서 시작된 꽃동네는 이제 결핵노인심신장애요양원과 고아의 집,그리고 자체 병원을 갖추고 경기도 가평에 같은 시설을 갖춘 글자 그대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지상 천국 이 되었다. 꽃동네는 오는 10월이면 한꺼번에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랑의 연수원을 준공, 이제는 행려병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국민정신교육도량 으로 거듭 태어난다. 아시아의 노벨상 인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 위원회는 吳신부에게 막사이사이상을 수여키로 결정, 작으나마 吳신부의 헌신에 고마움을 표했다. 저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못 올라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선친이 살아계실 때도 가난했습니다만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몰래 우리보다 더 가난한 이웃에 곡식을 갖다 주는 걸 보고 자랐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집 쌀독은 늘 비어 있었지요. 625때 가마니학교를 파한 후 개울물로 배를 채우고 집으로 가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을 봤습니다. 다리 한짝이 떨어져 죽어가는 아버지와 딸이 새우 한마리를 서로 먹이려고 다투고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사랑의 위대함이 깨우쳐졌고 저런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살겠노라 결심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에게 은혜를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어머니 말씀을 하기 전에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말씀을 해야겠군요. 제가 중학교에 못 가 열등감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이 공책 몇 권, 연필 몇 다스와 함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친애하는 오웅진 군. 젊어 고생은 금으로도 못 사네. 배워야 사는 거네 라며 통신강의록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제가 중학고등과정 공부를 계속할수 있는 계기가 됐지요. 76년 5월 청주 내덕동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석달 뒤 음성군무극리 무극천주교회 본당신부로 가게 됐는데 9월 어느날 해 질무렵 성당 앞을 넝마를 걸친 웬 거지 할아버지가 동냥깡통을 들고 지나가기에 나도 모르게 따라갔다가 태어나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광경을 목도하게 됐습니다. 할아버지가 들어선 움막에는 앞을 못보거나 사지를 못쓰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자신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崔할아버지는 혼자 동냥을 해 그들을 먹여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런 처지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랑이 샘솟다니. 그날 밤 한숨도 못잤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다짐해온, 때로는 실천했노라 자부도 했던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내 마음을 근본적으로 다시 바꾸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崔할아버지는 동냥도 꼭 집집이 설거지 할 때만 했고 돈이나 과일 등은 안받았다고 합니다. 주는 사람의 처지도 생각하는, 정말 살아있는 성자였습니다. 긴 밤의 고뇌 끝에 얻은 가르침이 바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였지요. 발행일:96년7월21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6-48)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그분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없더라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사람들이 보지 않더라도 궂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음지에서 묵묵히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를 위한 간구 준 것은 기억지 않게 하시고 받은 것은 잊지 않게 하소서 손으로 들어온 것은 크게 자랑할지라도 손에서 나간 것은 금방 망각하게 하소서 선행 후 칭찬받고픈 유혹에서 나를 건지시고 사람들의 평가와 수근거림에 너무 민감하지 않도록 나를 도우소서 이젠 더 이상 날 위한 네(너)가 아닌 널 위한 내(나)가 되게 하시며 네 속의 내(나)가, 내 속의 네(너)가 되어 우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첫째로, 이 땅에서만 반짝하는 접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집 주인에게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초대하는 대상은 일가친척이나 친구나 가깝게 지내는 이웃이 대부분입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도 같은 집단에 속해 있는 친구들과 이웃들을 초대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현실인데도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초대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여건만 된다면 초대를 자주 해서 서로간의 우의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데 왜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그 해답이 12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라.” 지금 예수님은 “갚음”이라는 관점에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초대받은 사람은 다음 번에는 자기가 초대하여 신세를 갚겠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초대한 사람의 일에 도움을 준다든가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든가 하는 방법으로 신세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초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그들은 대체로 무엇인가 이기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신분과 부를 과시하기 위한 동기를 가질 수도 있고 다음에 상대방의 호의를 구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도 있고 청탁을 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동기를 가진 접대가 접대받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 땅에서 갚아지므로 크게 칭찬받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불우이웃돕기 성금이나 수재의연금을 모금할 때 성금을 낸 사람들의 이름과 사진까지 크게 텔레비젼이나 신문에 보도되는데 그렇게 됨으로써 당사자의 선행은 그만큼 하나님 보시기에 값싼 것으로 변질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음 세상까지 빛을 발하는 접대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초대하라고 하는 대상은 가난한 자들, 병신들, 저는 자들, 소경들입니다. 그들이 초대받고 나서 감사의 말은 하겠지만 가진 것도 없고 능력도 없으므로 신세진 것을 되갚을 수는 없습니다. 초대한 사람 역시 그들로부터 어떤 대가를 기대하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무런 대가도 기대하지 않고 베푸는 접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것이고 장차 의인들의 부활 시에 하나님으로부터 갚음을 받는 것입니다. 이 교훈을 굳이 접대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나그네를 접대하며 고아와 과부를 선대하라는 가르침이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데 이것 역시 본문의 교훈과 일맥상통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을 대하여 선을 좇고 선을 행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살전5:15) 마태복음 6장은 선을 행할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의를 행하는 것은 좋지만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행하는 것이라면 하나님으로부터 상을 얻지 못합니다(마6:1). 구제할 때에 나팔불며 선전하는 것이 사람의 영광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상을 받지는 못합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때 즉 은밀하게 구제할 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실 것입니다(2-4절).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여러 사람들의 눈에 띄는 데서 기도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경건하다는 칭찬은 받겠지만 하나님으로부터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한 골방에서 은밀하게 드리는 기도를 응답하십니다(5-6절). 금식할 때에 사람들에게 고통스럽고 슬픈 기색을 내는 것은 상을 잃는 행위입니다. 오히려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할 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십니다(16-18절).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5:46) 이상을 종합해 볼 때 우리의 선행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면 그것으로 이미 상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뽐내려는 의도로 선을 행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2,5,16절). 그러나 우리가 은밀히 선을 행하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선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장차 갚아주십니다.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헤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눅6:35) 우리는 접대받기를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접대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가진 것에 너무 연연하지 마십시오. 가진 것이 얼마없더라도 마음만 정해져 있다면 할 수 있습니다. 벼농사의 절반을 뚝 떼어 남모르게 불우이웃을 도운 농부가 있어 귀감이 되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보령시 주교면 신대리에서 2천9백70㎡의 논농사를 짓고 있는 이보복씨(39). 이씨는 지난 93년과 94년 자신이 수확한 쌀중 부인과 3자녀 등 가족들의 1년간 먹을 양식 7가마를 제외한 나머지 4-5가마씩을 당시 보령군청 정문 앞에 몰래 갖다놓았다. 이씨는 올해에도 쌀 4가마를 보령시청 정문에 슬그머니 놓고 돌아가다 이를 이상히 여긴 경비원에게 발견돼 숨겨왔던 3년 선행이 들통나고 말았다. 이씨가 남모르는 선행을 실천하게 된 사연은 어릴 적 가난으로, 돈을 벌면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겠다고 마음 먹었다.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이씨는 빈농의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자신의 부지런함을 알아준 마을 이장의 추천으로 지난 83년 군으로부터 축산자금 2백만원을 융자받아 한우 2마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천성이 착하기로 소문난 이씨는 4년만에 2마리의 한우를 25마리로 번식시키켰다. 그러나 이같은 기쁨도 잠시, 소를 처분해 양계를 시작한 이씨는 닭값 폭락으로 전재산을 날렸다. 그러나 이에 좌절하지 않고 이씨는 또 다시 4년만에 축산농가로 재기했고 93년에는 2천9백70㎡의 논을 살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이씨는 이 곳에서 생산되는 쌀의 절반 정도를 매년 군청 및 시청정문에 갖다놓아 불우이웃에 전달되도록 했다. 이씨는 "별것 아니라 남 모르게 도우려고 했는데 세상에 알려져 오히려 쑥스럽다"며 "비록 넉넉치는 않지만 앞으로 힘 닿는데까지 이웃을 돕겠다"고 말해 노태우 전대통령의 엄청난 비자금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요즘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조선 꽃동네를 돌보고 있는 오 웅진 신부님이 있습니다. 이분이 자주 하는 말 중에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동냥하는 한 할아버지가 앞을 못보거나 사지를 못쓰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자신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나서 깨달은 진리였습니다. '월요 인터뷰' 막사이사이賞 수상 오웅진 꽃동네신부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얻어 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어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아무도 모르게 말 없이 죽어가는 분들을 거둬 먹여주고 치료해주며 장례까지 치러주는 충북 음성 꽃동네가 올해로 세워진지 20년을 맞았다 . 76년 당시 32세의 젊은 사제 오웅진(吳雄鎭)신부의 오로지 한 소명감으로 방 다섯 칸짜리 블록집에서 시작된 꽃동네는 이제 결핵노인심신장애요양원과 고아의 집,그리고 자체 병원을 갖추고 경기도 가평에 같은 시설을 갖춘 글자 그대로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을 위한 지상 천국 이 되었다. 꽃동네는 오는 10월이면 한꺼번에 1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사랑의 연수원을 준공, 이제는 행려병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사랑의 복음을 전하는 국민정신교육도량 으로 거듭 태어난다. 아시아의 노벨상 인 필리핀의 막사이사이상 위원회는 吳신부에게 막사이사이상을 수여키로 결정, 작으나마 吳신부의 헌신에 고마움을 표했다. 저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에 못 올라갔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지요. 선친이 살아계실 때도 가난했습니다만 저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 몰래 우리보다 더 가난한 이웃에 곡식을 갖다 주는 걸 보고 자랐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집 쌀독은 늘 비어 있었지요. 625때 가마니학교를 파한 후 개울물로 배를 채우고 집으로 가다 참으로 비참한 광경을 봤습니다. 다리 한짝이 떨어져 죽어가는 아버지와 딸이 새우 한마리를 서로 먹이려고 다투고 있었어요. 어린 마음에도 사랑의 위대함이 깨우쳐졌고 저런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살겠노라 결심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서로에게 은혜를 줄 수 있는 존재입니다.어머니 말씀을 하기 전에 초등학교 담임선생님 말씀을 해야겠군요. 제가 중학교에 못 가 열등감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선생님이 공책 몇 권, 연필 몇 다스와 함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친애하는 오웅진 군. 젊어 고생은 금으로도 못 사네. 배워야 사는 거네 라며 통신강의록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제가 중학고등과정 공부를 계속할수 있는 계기가 됐지요. 76년 5월 청주 내덕동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석달 뒤 음성군무극리 무극천주교회 본당신부로 가게 됐는데 9월 어느날 해 질무렵 성당 앞을 넝마를 걸친 웬 거지 할아버지가 동냥깡통을 들고 지나가기에 나도 모르게 따라갔다가 태어나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광경을 목도하게 됐습니다. 할아버지가 들어선 움막에는 앞을 못보거나 사지를 못쓰거나 정신장애가 있는, 자신의 힘으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崔할아버지는 혼자 동냥을 해 그들을 먹여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런 처지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랑이 샘솟다니. 그날 밤 한숨도 못잤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다짐해온, 때로는 실천했노라 자부도 했던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내 마음을 근본적으로 다시 바꾸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崔할아버지는 동냥도 꼭 집집이 설거지 할 때만 했고 돈이나 과일 등은 안받았다고 합니다. 주는 사람의 처지도 생각하는, 정말 살아있는 성자였습니다. 긴 밤의 고뇌 끝에 얻은 가르침이 바로 얻어먹을 수 있는 힘만 있어도 그것은 주님의 은총입니다 였지요. 발행일:96년7월21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5:46-48)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그분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없더라도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고 사람들이 보지 않더라도 궂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음지에서 묵묵히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를 위한 간구 준 것은 기억지 않게 하시고 받은 것은 잊지 않게 하소서 손으로 들어온 것은 크게 자랑할지라도 손에서 나간 것은 금방 망각하게 하소서 선행 후 칭찬받고픈 유혹에서 나를 건지시고 사람들의 평가와 수근거림에 너무 민감하지 않도록 나를 도우소서 이젠 더 이상 날 위한 네(너)가 아닌 널 위한 내(나)가 되게 하시며 네 속의 내(나)가, 내 속의 네(너)가 되어 우리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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