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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지 않는 전도 (눅14:15-24)

본문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천국복음'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의 첫 선포는 때가 찼고 여호와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 1:15)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생의 마지막 시간에 빌라도 총독 앞에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었더면 내 종들이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고 하였습니다(요 18:36). 그래서 그는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에 들어갈 자들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창조이래 지구를 지나간 사람치고 이렇게도 확실하고, 뚜렷하고, 분명한 자기 처세의 목적을 나타낸 자가 예수 외에 또 누가 있 었습니까 그는 이 세상나라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를 찾고, 부르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그러했듯이 그의 제자된 우리에게 가리지 말고 천국백성을 찾는 전도를 명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가리지 않는 전도를 명했습니다. I. 예수는 천국에 가서 누리는 구원을 큰 잔치에 비유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했다고 하였습니다(눅 14:16). 여기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비유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 2절에는 '어떤 임금'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했다고 하였습니다. 왜 큰 잔치라고 했는가
1 자기 아들(예수)을 위하여 배설한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2 임금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3 혼인잔치, 곧 기쁨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복음 의 잔치(구원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4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잔 치이기 때문입니다. 왕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준비한 잔치라 고 하였습니다(눅 14:17). 곧 완성된 구원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고 하신 속죄성취의 복음이 기 때문입니다. 5 바로 이 잔치를 가리켜 예수께서는 내 잔치 라고 하 였습니다(눅 14:24). 예수의 살과 피의 성찬으로 이루어진 완전한 구원의 잔치, 기쁨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비유로 나타내신 이 큰 잔치, 곧 모든 것이 준비된 잔치는 '구원의 복음', '완성된 복음', '영생의 복음', '희락의 복음', '은혜의 복음', '사랑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 '하나님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Ⅱ. 가리지 않는 초청(전도)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시간을 가리지 않는 초청(전도)입니다. 사실상 이 잔칫집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혼인잔치에 손님을 청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7절에 잔치할 시간 을 정해 놓았던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1차, 2차, 3차에 이르도록 잔칫집에 손님을 초청하기 위하여 종들을 보내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눅 14:17, 21, 22, 23). 마태복음 20장에 나타난 포도원 비유 속에는 이른 아침 시간, 3시(9시), 6시(12시), 9시(오후 3시), 11시(오후 5시)가 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늦 은 오후까지 포도원 주인은 장터(세상)에 놀고 있는 자들을 포도원으로 부 르고 있습니다. 사실상 저 에덴동산 문 밖인 역사의 이른 새벽부터 예수 재림하는 역사 의 저녁까지, 하나님의 정해 놓으신 시간은 큰 임금의 잔칫집에 사람을 초 청하는 시간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꾸며가는 역사의 시간은 알고 보면 하나님의 택자 구원을 위한 복음 운동의 시간입니다. 여기에 시간의 참된 의미와 본질이 있는 것입니다.
2. 장소를 가리지 않는 초청입니다. 먼저 제일 가까운 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사실상 예루살렘이었습니다. 그 청하였던 종들이 살고 있던 지역입니다(눅 14:17). 이것은 예수님의 최 후 분부 중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첫 지역이 예루살렘이 었습니다(행 1:8). 그 다음 지역이 시내의 거리와 골목 이었습니다(눅 14:21). 사실상 복음 전파의 두 번째 지역인 유다를 의미합니다. 여자적(如字的)으로 말하 면 '거리'는 '넓은 길', '골목'은 '좁은 길'을 뜻합니다. 이른바 시내의 길을 말하고 있습니다(행 1:8). 세 번째 지역은 길과 산울 가 (눅 14:23)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사마 리아와 땅끝, 곧 '이방의 전지역'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1:8).
그렇다면 가리지 않는 전도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전도입니다. 어디에 살고 있는 사람이든지, 그곳에도 왕의 초청장은 전달되어야 합니다.
3. 또한 사람을 가리지 않는 초청(전도)입니다. 제1차 초청의 대상자들은 이른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일컫는 유대인들 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4장 17절에 나오는 그 청하였던 자들 입니다. 예약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선적으로 초청의 대상이 된 자들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들은 다 일치하게 왕의 잔치의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큰 잔치, 왕자(王者)를 위한 잔치를 거절함에 동맹을 하였습니다. 거절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여 '세속주의'였습니다. 한 종류는 '밭'을 샀기 때문에 밭을 보러 간다는 이유로 거절하였습니다 (눅 14:18). 부동산 관리가 이유입니다. 또한 류는 소 다섯 겨리(10마리) 를 사서 시험하러 가야 한다고 거절하였습니다(눅 14:19). 농사일입니다. 동산 관리가 이유입니다. 세 번째 류는 장가들었기 때문에 거절한다고 하 였습니다(눅 14:20). 육체적 쾌락이 거절하는 이유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이들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이 다 잘 되어가고 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논밭을 팔고, 소를 팔고, 부부가 사별하는 이유 때문에 거절한 것이 아닙니다. 세속주의적 행복추구가 복음을 거절하는 이 유라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야 합니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세속주의, 곧 육체적 쾌락추구가 '왕의 잔치', '큰 잔치', '복음 의 잔치', '구원의 잔치', '영생의 잔치' 아니 하늘나라 '천국잔치'를 거 절하는 이유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바로 여기에 현대인의 비극이 있습니다. 바로 구라파 기독교 쇠퇴가 그러했고, 저 미국 교회의 쇠퇴가 그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도 정말 깜짝 놀랄 정도로 복음을 거절하거나 방관하는 무리들의 수가 많아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해야 합니다. 먼저 초청받은 자들 중에서 그 우선적 축복을 거절하는 사태 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주인(임금)은 그의 종들에게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다시 사람을 찾아가도록 명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왕의 잔치에 초청하라고 하였습니다(눅 14:21). 말하자면 유대인들에게 멸시받고 천대받는 창기와 세리들 같은 소외된 인생들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문둥이와 소경된 자들과 각색병으로 앓는 자 들과 온갖 류의 난치병에서 고생하고 있는 자들에게 복음의 초청장이 전달 된 것입니다. 저들은 모두 이 세상 나라에서 제외된 자들이었습니다. 소망 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예수 구원의 참된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들은 모두가 육체적으로 가난했습니다. 심령까지 가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나타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마 11:25). 소위 지혜롭고 슬기 있다는 이 세상의 군자들이 아닌 어린아이와 같은 무지하고 가난한 인생 곧 죄인들에 게 천국 잔치의 소식이 전달됨을 감사하였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 고 하였습니다(마 11:26). 다시 주인(임금)의 간절한 마음은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잔칫집을 채우라고 하였습니다(눅 14:23). 이는 틀림없이 사마리아와 땅끝에까지 가는 왕의 잔치의 초청자를 가리 킵니다. 강권적인 초청을 명했습니다. 주저함이나 망설임이 없는 뜨겁고 간절한 설득력을 발휘하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강권하는 전도를 하라고 하 였습니다. 이렇게 왕의 잔치, 복음의 잔치, 구원의 잔치에 사람을 초청(전도)하는 일에는 시간도, 장소(공간)도, 사람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 큰 이유는 인류의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래 유구한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 류는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그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남 자도 여자도 아이도 어른도 유대인도 헬라인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잔치, 곧 구원의 복음은 시간도 장소도 사람도 가리지 않고 전 파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가리지 않는 전도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 게 살고 있는 사람에게든지 전도해야 된다는 사실입니다.
Ⅲ. 가리지 않는 전도의 열심은 그 잔칫집 주인(임금)의 본심이었습니다. 때(시간)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는 전도는 종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같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성경을 똑똑히 보십시오. 주인이 그 청하였 던 자들에게 종을 보냈다고 하였습니다(눅 14:17). 두 번째도 주인이 노하 기까지 하면서 그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라고 하였습니다(눅 14:21). 세 번째도 주인이 종에게 길과 산울 가로 가라고 명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에게 명할 때 '강권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강권' 은 폭력이나 강제가 아닌 뜨겁고 집요한 권면을 가리킵니다. 이런 성경의 기록을 볼 때 죄인을 구원하는 전도는 하나님 자신의 열심 입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입니다. 하나님 자신의 본심이었습니다. 사람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 처럼 사랑하신 결과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 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 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저 유명한 잃은 양 찾는 비유, 잃어버린 드라크 마를 찾는 비유는 죄인구원을 향한 하나님의 애타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진리입니다.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않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모으고 기쁨에 넘치는 잔치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탕자 문명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돌아온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뜨거운 용서를 보십시오. 상거가 먼데 아버지 편에서 먼저 아들을 알아보았습니다. 아버지 편에서 먼저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편에서 아들에 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발에 신을 신겨 주었습니다. 손에 가 락지를 끼워 주었습니다. 바로 죄인 구원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살진 송아지를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 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잃었다가 다시 얻은 아들이다."라고 그 아버지는 소리, 소리를 지르고 있지 않는가! 예수님은 이러한 아버지(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왔다고 하였습니다. 내 게 주신 아버지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 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라고 하였습니다(요 6:39). 바로 여기에서 기독교가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 종교임이 확실하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께서 시간과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복음 전도 를 하고 싶어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리지 않는 전도! 이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 은 이 가리지 않는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하였습니다(딛 1:3). 이 전도는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21). 이 위대하신 하나님의 영을 받은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 권하시는도다 라고 하였습니다(고후 5:14). 그래서 그는 말씀에 붙잡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자기 삶을 관제처럼 쏟아 놓았습니다. 그런 바울이 세상 사람 보기에는 마치 미친 사람 같았습니다(행 26:24). 예수 부활을 전도하던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새술에 취한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행 2:13). 화니 크로스비(Fany Crosby)는 어려서 소경이 되는 불행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만난 후 은혜를 입고 수많은 찬송가를 작사한 사람이 었습니다. 그는 항상 생각하기를 이 세상에서 자기처럼 행복한 사람은 다 시 없을 것이라고 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기쁨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무디(D. L. Moody)는 어릴 때 남의 양화점에서 일하는 구두수선공이 었고, 또 종이로 구두를 싸서 파는 노동자였습니다. 그는 그 일에서 점점 성공의 기반을 잡게 되던 23세 때, 중대한 선언을 남기고 그 자리를 떴습니다. "나는 이제부터 나의 생애 전부를 하나님을 위하여바치기로 결심하 였습니다." 바로 이 선언이 그가 세상과 이별하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예수 구원을 전했습니다. 그와 정비례하여 또 수많은 사람들에게 핍박과 조소를 받았습니다. 어느 날 그의 전도를 받던 어떤 사람이 "이 사람 꽤나 할 일이 없는가 봐! 가서 자네 일이나 힘써 하게."라고 하며 비꼬았습니다. 그때 무디는 그 사람을 붙잡고 소리치기를 "선생님, 바로 이 일이 내 직업입니다. 지금 선 생님께서 내 일을 힘써 하라고 했죠 그렇습니다. 나는 지금 선생님께 내 일을 힘써 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그 시간에 그 사람은 예수를 영접하고 말았습니다. 저 아프리카의 영혼을 위하여 45년 평생을 전도로 바친 두갈드 캄벨 (Dugald Campbell)은 낙타 등에 몸을 싣고 사하라 사막에서 전도하며 주 렸고, 목말랐고, 때로는 강도떼의 위협을 받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시간도, 장소도, 사람도 가리지 않고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 던 그가 임종을 맞는 그 순간에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내가 만일 40년만 더 산다면 내 정든 이 사하라 사막에 복음의 씨를 더 뿌릴 수 있을 텐 데…" 하고 숨졌다고 합니다. 어두운 밤하늘의 저 수많은 별들은 시간도, 장소도, 사람도 가리지 않고 오직 반짝거릴 뿐입니다. 오직 빛을 뿌릴 따름입니다. 바로 고요한 별들은 별들의 전쟁령(戰爭令)을 받은 우리에게 가리지 않는 전도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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