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없고 저것이 있도다 (눅14:1-6)
본문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으로 떡을 잡수시러 들어 가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저녁이면 다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이 예식을 합달라라고 하는데 합달라라는 뜻은 “분리”라는 의미입니다. 이때 떡을 먹으며 향을 맡으며 시 128편을 다같이 암송합니다. “(시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시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시128:3)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시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시128:6) 네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 이 말씀은 바로 이 합달라 예식에서 생긴 사건입니다. 사람들은 지금 예수님의 행동을 가만히 엿보고 있었습니다. 항상 안식일에 율법에 금하고 있는 병자들을 고치시고 계셨기에, 그 증거를 잡으려고 벼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고소할 증거를 눈이 시뻘겋게 찾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마침 두령집에는 고창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고창병이란 팔다리가 부어 오르고 살갗이 물러지는 불치병인데 부도덕한 생활을 할 때 생기는 병이라고 합니다. 고창병 환자가 바리새인의 집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떡을 얻어 먹으려고 왔을지도 모릅니다.
2) 예수님이 계신다니 병고침을 받으려고 결사적으로 왔을지도 모릅니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데려다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에게 당당하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시고 고창병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4: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시니, 주변에 있던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없는 3가지와 예수님 안에 있는 3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안에 없는 3가지
1.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가셨다는 것은 사형수가 사형 집행관 집에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목사가 스님집으로 밥을 얻어 먹으러 간 것 같은 시간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 이야기는 우연은 결코 이 땅에 없음을 잘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탓습니다.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에 틀림없이 죄인이 있다고 제비를 뽑자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도 풍랑에도 뜻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바다로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이것도 우연이 아니라 섭리였습니다. 큰 물고기는 3일동안 요나를 뱃속에 품고 있었으나 소화시키지 못하고 니느웨 성에 토하고 말았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하나님의 계산된 섭리뿐이었습니다. 풍랑이라는 자연현상에도 우연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바리새인 두령집에 들어가셔서 고창 병자를 고치신 것에는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들어 있는 것일까요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고 영혼을 사랑하여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율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려는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우연은 없습니다. 섭리만 있을 뿐입니다.
2. 예수님안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당시 예수님에게는 가장 큰 원수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강력한 집단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행함으로 구원받을 이는 하나도 없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가장 핵심은 요 3:16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예수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같은 바리새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잘못 가르치고 계신 것을 찾아 내어 죽이려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다 사랑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여야 하셨습니다. 예수님안에는 우연이 없고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고 누구든지 구원시키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고창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고침을 받았습니다.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물은 저수지에서 공급을 받고, 전기는 발전소에서 공급 받듯이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무엇이아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원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해결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안에 있는 3가지
1.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습니다. 고창 병자가 예수 안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표적입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어느 의사도 포기한 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성경에서 가장 많은 표적은 병고침의 표적입니다. 고창 병자가 예수님안에서 나은 표적이 주어진 것처럼 우리 교회에도 이런 표적이 나타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습니다.
2.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는 바리새인들에게 두 번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러나 그들은 잠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고치신 후에 또 두 번째 물으셨ㅅ브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이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또 침묵만 지켰습니다. 믿음은 행함이지 말이 아닙니다. 일이란 행동이지 입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는 침묵뿐이지 무어라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침묵속에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의 종말은 웃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입니다. 계획보다 실천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습니다.
3.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창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불치 병자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행동을 하시고, 생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14:5에 “(눅14: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고 하신 것은 우물에 빠져 죽어가는 아들이나 소에게는 어떤 법도 금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무디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5,000만원이 급히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 돈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 구원을 위하여 쓸 돈이니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한 후에 예배시간에 나갔습니다. 어떤 여인이 봉투를 가지고 자꾸 강대상으로 올라 오려고 하는데, 예배 위원들이 자꾸만 막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무디는 이 모습을 보다가 사연이 있는 줄 알고 불렀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봉투를 무디앞에 놓고 제자리로 가서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무디는 상담 내용이거나 편지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배후 뜯어 보았습니다. 5천만원 짜리 수표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2,000만원이라고 썼다가 그 위에 다시 5,000만원이라고 쓴 가계 수표였습니다. 알고 보니 처음에는 웬지 무디 목사님에게 2,000만원을 드릴까 하다가 웬지 마음에 차지 않아 5,000만원으로 고쳐 쓴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고, 침묵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고,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고,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고, 침묵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으니, 우리 안에는 우연과 원수와 문제가 없고, 표적과 침묵과, 생명의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 우리들의 마음이 되시기를 축원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1) 떡을 얻어 먹으려고 왔을지도 모릅니다.
2) 예수님이 계신다니 병고침을 받으려고 결사적으로 왔을지도 모릅니다.
3)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데려다 놓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사와 바리새인들에게 당당하게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어기시고 고창병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4: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시니, 주변에 있던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본문에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 없는 3가지와 예수님 안에 있는 3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안에 없는 3가지
1.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가셨다는 것은 사형수가 사형 집행관 집에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목사가 스님집으로 밥을 얻어 먹으러 간 것 같은 시간속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요나 이야기는 우연은 결코 이 땅에 없음을 잘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회개를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나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탓습니다. 배가 풍랑을 만났습니다. 배에 틀림없이 죄인이 있다고 제비를 뽑자고 하였습니다. 이방인들도 풍랑에도 뜻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제비를 뽑았습니다. 요나가 뽑혔습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바다로 던져지고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이것도 우연이 아니라 섭리였습니다. 큰 물고기는 3일동안 요나를 뱃속에 품고 있었으나 소화시키지 못하고 니느웨 성에 토하고 말았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한 하나님의 계산된 섭리뿐이었습니다. 풍랑이라는 자연현상에도 우연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바리새인 두령집에 들어가셔서 고창 병자를 고치신 것에는 하나님의 어떤 섭리가 들어 있는 것일까요 안식일에 율법을 어기고 영혼을 사랑하여도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려는 섭리가 들어 있습니다. 율법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려는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우연은 없습니다. 섭리만 있을 뿐입니다.
2. 예수님안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당시 예수님에게는 가장 큰 원수는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강력한 집단의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행함으로 구원받을 이는 하나도 없고,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의 가장 핵심은 요 3:16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러므로 바리새인과 예수님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원수같은 바리새인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이 잘못 가르치고 계신 것을 찾아 내어 죽이려는 음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알고도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나 다 사랑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여야 하셨습니다. 예수님안에는 우연이 없고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고 누구든지 구원시키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3.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고창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 고침을 받았습니다. 안식일에는 병을 고치면 안 된다고 주장하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병을 고치시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말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물은 저수지에서 공급을 받고, 전기는 발전소에서 공급 받듯이 지혜의 근본은 하나님이시오, 모든 문제의 해답은 예수님이시기에,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무엇이아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습니다. 원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문제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해결 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안에 있는 3가지
1.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습니다. 고창 병자가 예수 안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은 표적입니다. 누구도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어느 의사도 포기한 병이었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에는 표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막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16: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성경에서 가장 많은 표적은 병고침의 표적입니다. 고창 병자가 예수님안에서 나은 표적이 주어진 것처럼 우리 교회에도 이런 표적이 나타나는 교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습니다.
2.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는 병을 고쳐서는 안 된다는 바리새인들에게 두 번 물으셨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하냐” 그러나 그들은 잠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고치신 후에 또 두 번째 물으셨ㅅ브니다.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랬더니 이들은 대답하지 못하고 또 침묵만 지켰습니다. 믿음은 행함이지 말이 아닙니다. 일이란 행동이지 입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에는 침묵뿐이지 무어라고 말 할 수가 없습니다. 침묵속에 자기 할 일을 꾸준히 해 나가는 사람의 종말은 웃음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습니다. 말보다 행동입니다. 계획보다 실천입니다. 예수님 안에는 침묵이 있습니다.
3. 예수님 안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고창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불치 병자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행동을 하시고, 생명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 14:5에 “(눅14:5)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고 하신 것은 우물에 빠져 죽어가는 아들이나 소에게는 어떤 법도 금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명이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무디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5,000만원이 급히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는 이 돈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 구원을 위하여 쓸 돈이니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간절히 기도한 후에 예배시간에 나갔습니다. 어떤 여인이 봉투를 가지고 자꾸 강대상으로 올라 오려고 하는데, 예배 위원들이 자꾸만 막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무디는 이 모습을 보다가 사연이 있는 줄 알고 불렀습니다. 이 여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봉투를 무디앞에 놓고 제자리로 가서 앉아 예배를 드렸습니다. 무디는 상담 내용이거나 편지일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예배후 뜯어 보았습니다. 5천만원 짜리 수표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2,000만원이라고 썼다가 그 위에 다시 5,000만원이라고 쓴 가계 수표였습니다. 알고 보니 처음에는 웬지 무디 목사님에게 2,000만원을 드릴까 하다가 웬지 마음에 차지 않아 5,000만원으로 고쳐 쓴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고, 침묵이 있고, 생명력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우연이 없고, 예수님 안에는 원수가 없고, 예수님 안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는 표적이 있고, 침묵이 있고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를 통해서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하였으니, 우리 안에는 우연과 원수와 문제가 없고, 표적과 침묵과, 생명의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 우리들의 마음이 되시기를 축원하며 이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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