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 (눅1:26-33)
본문
우리 모두가 이 시간 목사라고 하는 인간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하려다 보니 하나님이 사람을 세워서 말씀을 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음 성을 마음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 이 말씀은 나를 위해서 주 시는 하나님의 음성이구나.' 이렇게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만 그 설교가 우리의 영혼을 소생시키고 그 말씀이 우리의 눈을 밝게 하고 우리의 병든 곳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기 위해서는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와주 셔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면 서 '성령님, 내 영의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 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무척 어려운 때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설교로서 끝나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 주 전에 저는 누가복음 1장을 읽다가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촌에 사는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서 그에게 소식을 전한 내용의 말씀을 보고 새삼스럽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천사가 이 처녀에게 찾아가서 무엇이라 고 했습니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 1:28절). 이 구절을 킹 제임스 버전(KJV)과 같은 영어 성경은 "은혜를 크게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라고 번역하여 은혜를 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 떻게 번역을 했든 간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 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라고 했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이 대단한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크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 너무 광대하셔서 작은 것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올 것 같은 그 하나님이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촌에 살고 있는 평범한 처 녀에게 찾아와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평안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떻 게 보면 하나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위대하시고 크시고 놀라우신 분이면 상대하는 사람도 좀 체면이 서는 사람을 상대해야 할텐데 저 시골구석에 있는 보잘 것 없는 한 처녀에게 찾아와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따라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야, 이거 보통 기사가 아니구 나.' 하고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요즈음이야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온 세계 여성들이 추 앙하는 대단한 인물이 되었지 않습니까 지난 2천년 동안 여성 중에 가장 위대한 명예를 누린 사람을 들라면 누구나 마리아를 꼽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를 따라갈 여성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리아를 너무 추앙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마리아(Maria)로 정해 놓고 자기도 마리아라고 우쭐거리면서 살았을 정도 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라는 이름이 자꾸 사용되다 보니 마리아에서 조금 변형된 비슷한 이름들만도 2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마리아, 마리, 미리암, 이런 것들 이 다 마리아라는 이름에서 변형된 것입니다. 게다가 남자들도 마리아를 너무 좋 아해서, 어떻게 하면 마리아를 남자 이름으로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름을 약간씩 바꾸었습니다. 마리오, 마리온, .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자기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만 보 아도 마리아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언젠가 미국에서 조사를 했더니 마리아 혹은 마리아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미국 여성이 372만 명 이나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 것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사실 마리아라는 이름은 본래 그 의미가 그리 좋지 않은 이름입니다. 비통 혹은 고난, 슬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미만 보면 그렇게 매력을 느낄 만한 이름이 절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라는 이름 이 이토록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된 것은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가 예수님을 낳았 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천사 가브리엘이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유명해진 마리아를 찾아와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면 차라리 수긍이 갈 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 가 브리엘이 처음 나사렛을 찾아와 마리아를 만날 당시 그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까 1장 48절에 보면 마리아는 자기 자신을 일컬어서 "비천한 계집"이라 고 부를 정도로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동네 사람에게조차 그 존재가 미미했던 평 범한 처녀에 지나지 아니했습니다. 더욱이 그가 태어나서 자란 나사렛이라는 동 네는 유대 나라 마을 중에서도 가장 후진 마을 아닙니까 예수님이 나사렛이라고 하는 이름을 달고,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그 딱지 때문에 얼마나 멸시를 당하고 불신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이라고 하는 그리 명 예롭지 못한 동네 출신에다가 그곳에서도 이제 내일 모레면 목수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어떤 총각하고 결혼하게 되어있는 처녀였기에 "비천한 계집"이라는 말 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날마다 대패질이나 해가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 유명할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남자한테 시집가는 여자가 대 단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흔히 말하듯 여자로 태어나서 나이가 차서 어떤 남 자에게 시집가게 되고, 시집가서 살다 보니 자식도 낳게 되고, 자식을 기르다가 그 일생을 마치게 되는 그런 평범한 운명의 여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크고 광대하시고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비천한 한 여자를 눈여겨 보시 고 "마리아야, 너야말로 은혜를 입은 자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고 말씀하 셨다니 이것이 어찌 사소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새삼 스럽게 '야, 이것 참 대단한 일이다.'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은혜의 파격성 여기서 우리는 은혜의 파격성을 다시 한번 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격에 안 맞는 대우를 하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격에 맞아서 하나님이 그렇 게 잘 봐주셨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난 것도 없고, 명성도 없 고,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고, 무슨 공로를 세운 것도 아니 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자격 없는 것을 무시해 버리시고 무조건 사랑해 주셨기에 은혜인 것입니다. 파격 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바로 이런 파격적인 은혜였습니다. 언젠가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스톰스(Storms) 박사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 하지요. "은혜란 당신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당신의 무공로로 잃 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당신의 선함과 자랑할 만한 것을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것이 구원이든 건강이든 장수든 부귀든 그 무엇이든 은 혜일 수가 없습니다. 은혜는 우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파 격적인 은혜를 마리아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해서 낳을 여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와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가만히 읽어보십시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처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벌써 오 래 전부터, 어떻게 생각하면 마리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마리아의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그를 아셨고 사랑하셨고 그와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도 그와 함께 계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것이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기독교만이 이런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만이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언젠가 영국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서 수련회를 한 일이 있 었다고 합니다. 비교종교학이란 기독교, 불교, 회교, 힌두교, 이런 종교들을 다 함께 놓고 비교하며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도 연 구할 수 있는 학문이고, 안 믿는 사람도 연구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이 비교종 교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요란하겠습니까 그 시간 그들의 연 구 과제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독특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분명하 게 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에 대해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모여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교리가 무엇인가를 놓고 열띤 토 론을 벌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의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하는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탄절을 맞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태어나신 그 사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이 되셨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우리는 흔히 이것을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교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비교종교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신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내용이 조금 다를 뿐 다른 종교에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꼭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중심이요,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비교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기독교 외에도 신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런 종교가 있 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활 교리 역시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교리라고 볼 수 없 다는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여러 주제를 놓고 티격태격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C.S. 루이스라고 하는 캠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크리스천 교수가 그들이 토론하는 장소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한참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토론 을 하고 있습니까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독특한 게 무엇인가를 가지고 우리가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건 쉬운 문제인데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 른 것이 있다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은혜가 기독교의 독특한 면입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루이스의 말을 놓고 다시금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들 모두 과연 은혜가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교리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만이 은혜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아무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니 얼마나 굉장한 은혜입니까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오직 믿기만 하면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니 얼마나 대단한 은혜입니까 이것은 오직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은혜입니다. 마리아와 같 은 비천한 여자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시는 그런 은혜는 다른 종교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무조건 자기 자녀로 삼아 주셨다니 이 얼 마나 대단한 은혜입니까 이런 은혜는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소위 피안 에 이르는 8개의 길이라든지, 힌두교의 인과응보 교리라든지, 또 유대교에서 가 르치는 율법이라든지, 회교가 이야기하는 계율이라든지, 이런 것들 안에는 은혜 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고 가르칩니다. 인간에게 스스로 구원을 쟁취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하나님이 손수 구원해주시고 인간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아니하시는 이 런 은혜는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를 받 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라고 말씀하는 이 은혜,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
그런데 이 은혜를 마리아만 받는 것입니까 저는 누가복음 1장을 읽으면서 다 시 한 번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를 보면서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비천하고 하찮은 마리아를 아시는 하나님이었다면 오늘 나를 아시는 것 도 틀림없다! 그렇게 초라한 여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함께 하셨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저는 마리아를 보면서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감격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 지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하시던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성탄의 감격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성탄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Merry Christmas가 왜 merry입니까 왜 성탄이 기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비천한 나를 찾아 오셨기 때문이요, 찾아오신 그분이 나와 함께 하 신다는 임마누엘의 은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탄이 기쁜 것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독일의 유명한 설교자 헬무트 틸릭케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 습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찾 아오신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절망에 다다른 듯이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 의 기회는 정말 시작된다는 데 있다." 좀더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하나님을 찾 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마리아를 찾아오셨던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모두를 찾아오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는 데 성탄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내가 절망에 빠져 고통을 당하며 허덕이고 온 천지가 캄캄해 보여도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고 나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 신다는 진리를 가르쳐주는 데 성탄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 것이 바로 기독교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체험한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리아처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유명한 분들도 가끔 계시긴 합니다만 그 런 분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길에 나가서 반나절을 돌아 다녀도 저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평 범합니다. 그리 부자도 아닙니다.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잘난 것도 별로 없습니다. 한국 사람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미국 사람 옆에 갖다 세워놓으면 잘나지 못했습니다. 우린 다 못난 사람들입니다. 여자고 남자고 간에 하나님이 동양 사람을 만드실 때는 좀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내놓을 것이라곤 하 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찾아오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가 험한 인생고의 파도가 쉴 날이 없이 몰아치는 망망한 대해와 같 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을 끝까지 붙들 고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이미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 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계시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버릴 만큼 절박한 상황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를 가지고 의심하는 판국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다는 말씀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이 험하기 때문에 어 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었는데 오늘은 믿기가 힘들다고 하는 생각 을 가질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선지자들도 이런 시험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 믿음의 선배들 도 이런 시험에 빠진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잘 아는 몇 분도 평안할 때는 그렇 게 주님을 위해 살고 그렇게 주님을 잘 섬기다가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고통 의 수렁에 빠지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부정하더라고요. 우리 모 두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믿음의 혼란을 겪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내가 잘못해서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게을러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젊어서 함부로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내 머리만 믿고 내 젊음만 믿고 건방지게 까불다가 결국에는 화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 통이 내가 잘못해서 당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잘못해 당하는 것은 전체의 20 퍼센트 정도도 안될 것 같습니다. 대개는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 이 잘못해서 내가 뒤집어쓰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너 무 많습니다. 우리 나라가 경제 위기를 당하자 이제 경제위기라고 하는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서 지금 나라를 달달 볶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이 우리 나라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일 때문에 굉장히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경제위기라는 이름을 들어본 일도 별로 없습니다.
경제위기하면 'I am fine'으로 알았지, 언제 우리가 'I am fired'라고 스스로 생각한 일이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I am F학점을 받았다' 거나 '나는 F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요즈음 경제위기라는 말을 가지고 이처럼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돌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경제위기가 우리를 참 힘들게 하는 시어머니임 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은 대부분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뭔가 잘못해서 당한 것입니다. 정부가 잘못해서 당한 것입니다. 기업이 잘못해서 당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모든 관행이 잘못되어 당한 것 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나 없이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분노가 있습니다. 마음에 억울함이 있습니다. '나라를 잘 다스려 달라고 세워 놨더니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게 누구냐, 기업 경영을 잘 할 줄로 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회사를 이 꼴로 만든 사람이 누구냐' 하는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경유착으로 인해서 일어난 일이 든,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 때문에 빚어진 일이든, 검은 돈 거래 때문이든, 부정 직한 수치 때문이든, 아니면 방만한 경영 때문이든, 무책임한 지도자들의 언동 때문이든,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때를 놓친 때문이든, 국제사회의 신용을 잃어 서이든, 무슨 이유를 대든 간에 결국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은 대 개가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당하는 고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당하게된 고통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생각하니 우리 마음에 울분 과 분노가 있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기업들의 대부분은 돈 많은 아버지를 가진 아들이 어설프게 사업한답시고 벌려 놓고 이리 저리 손을 대다가 돈이 부족하고 잘 안되면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돈 달라고 사정해서 돈을 집어넣고, 그러다가 또 돈이 모자라면 또 아버지께 손을 벌리기를 반복하는 아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아버지가 "나, 이제 돈 없어. 내가 이제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이 제 네가 알아서 해야 돼." 라며 도와주기를 거절하니까 아들이 그제야 정신이 나 서 뭘 좀 제대로 해 보려고 하는데 잘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업은 벌렁 나자빠지고, 하는 사업은 사업대로 잘못되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다가 돈 없으면 정부에 손 내밀어서 돈 얻어서 쓰고, 잘 안되면 뇌물 갖다 주고 금융 지원 받는 식으로, 국민의 돈인 세금을 무조건 막 받아다가 맘대 로 집어넣고 방만하게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경영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이제 경제위기 시어머니가 와서 이제는 돈 못 준다고 하니까 정부가 돈을 못 내어 주는 것 이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아우성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로 인해서 당하는 어려움은 전부 사원들에게,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그 사원과 노동자들에게 목매고 사는 식구들에게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아침에 목이 날아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 버렸습니다. 멀 쩡하던 기업이 연쇄 부도가 나는 바람에 함께 넘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위해서 보증을 서 준 것이 화가 되어 집까지 다 날려 버리고 길바닥에 나앉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 잘 하는 사람을 보고 너무 좋아서 돈을 갖다 맡기면서 쓰라고 했는데 그 돈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나라가 잘해 줄 줄로 알고, 안정적일 줄 알고 증권시장에 투자했다가 몇 배의 손해를 보고 거지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이렇게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고통을 당하는 처지가 되자 사람들은 "내핍하자. 아끼자. 절약하자." 하고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어 댑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게를 열어 놓고 그저 매일매일 벌어서 살던 사람들이 손님이 끊어지자 모두 아우성입니다. 이제 해가 바뀌면 물가가 얼마나 뛰어오를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에 백만 원 가지고 살던 사람이, 백만 원을 쥐고도 50만 원을 가지고 사는 꼴이 되 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고통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에 화가 있습니다. 분노가 있습니다. 사업도 잃어버리고, 가 정도 잃어버리고, 가정이 깨어지고, 그 동안 모아놨던 돈도 날리고, 고민 고민 하다가 나중에는 병까지 들어버린 사람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을 안 하겠습니까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면 회개라도 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성실하게 하려고 노력했고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겠다고 애를 쓰면서 사업하고, 애를 쓰면서 장사하고, 애를 쓰면서 직장을 다녔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하나님이 나 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왜 이 어려운 일을 하나님 이 미리 막아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사전에 나에게 경고 라도 해 주셔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잠잠하면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이런 원망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그 런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무슨 유행가도 아니고 벽에 붙여놓은 무슨 경구도 아닙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사실이라 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상황이 모순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아마 이런 시험에 빠져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 함께 한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소위 운명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까지도 통제하시고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만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헤아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떨어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통제하고 계시고 이 만물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까지도 다 간섭하고 계신 다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으라
그렇다면 나에게 일어난 고통을 하나님이 모르고 계셨을까요 절대 그럴 리 없 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이 어려움을 하나님이 모르고 계셨을까 요 천만에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계시고 또 이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 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입에 쓴 것이라도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시면 허락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모든 것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실 때, 이 좁고 험 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선이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 이라고 판단하시면, 그 결말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아무 말도 않으시고 나를 그냥 그 길로 밀어 넣어버리십니다. 밀어 넣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씀도 안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암시도 안 주십니다. 그냥 밀어 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이 되지 않 고, 우리에게 복이 되지 않는 일은 일절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허락과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는 참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미국 미시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유망한 인재로 촉망받고 있 었습니다. 그 아들은 믿음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교통 사고로 죽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아들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 가정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금 방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직접 대놓고 말은 하지 못해도 앞으로 반년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면 저는 이 말을 꼭 할 작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허락하셨 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이 이 가정에, 또 세상을 떠난 그 아들에게 선이 되고 복이 된다고 하나님이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 가정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년 후나 일년 후에 꼭 그 말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신데 잠깐 낮잠 자느라고 모르고 계시는 사이에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상, 그것은 우리에게 선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이 그 어린 나이의 요셉을 질투하고 미워해서 결국 노예 로 팔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임마누엘입니다. 요셉의 기사를 보면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꼭 말씀하시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별 명이 임마누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요셉에게 함께 하셨다면, 형들이 잔인하게 그 동생을 노예로 팔아먹는 그 자리에서 왜 침묵하고만 계셨는가 하나님은 그 때 무엇을 하고 계셨단 말인 가' 형들이 "형이여, 살려다오. 살려다오. 잘못했어. 살려다오." 하며 울부짖으 며 몸부림치는 동생을 굴에서 끌어내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노예로 팔아먹을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셨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하나님의 침묵 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분명히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라." 하나님은 요셉에게 한마디도 안 하셨습니다. 15년 동안 왜 그가 그런 일을 당 해야 했는지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15년 내지 20년이 지나고 나서 드디어 요셉은 스스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아하, 하나님 이 나에게 이 잔인하고 피눈물을 쏟지 아니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바뀌었지 않습니까 창세기 50장 20절을 보 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쉽게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형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고 사실 많은 해를 끼쳤습니다. 그러나 이 제 와서 보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을 선으로 바꾸어서 나도 살고 당신도 살 도록 하기 위해서 작정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한동안은 우리 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헤맬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15년 동안이나 헤 맸습니다. 우리도 왜 부도가 났는지, 왜 이렇게 생활이 갑자기 어려워지는지, 왜 이렇게 직장을 얻지 못해 방황을 해야 하는지 헤맬 수 있습니다. 기도도 잘 안나 옵니다. "하나님!" 하고 울부짖다가도 속에서 화가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런 일을 나에게 허락하신 데는 분명 선한 뜻이 있다는 믿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입니다. 이 고난이 나중에는 축복으 로 바뀐다는 믿음을 꼭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 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밤에는 우리 가정에서 눈물이 떠나지 않지만, 내일 아침 에는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허락된 이 고통도 선한 뜻을 가 지고 허락된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항상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과 다른 차이점입니다. 이번 대선 때 저는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나라가 어려우니만큼 대통령이 잘 세워지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라 고 하는 못된 대통령이 나라를 말아먹었지 않습니까 그걸 보고 싱가폴의 전 수 상이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5년을 다스리게 하면 그 나라는 완전히 부도가 난다. 게다가 한번 더 재선해서 10년을 다스리게 하면 그 나라의 2대, 3대까지 고생을 한다."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니 기도 안 하게 생겼습니까 여러분도 기도하셨을 줄 압니다. 저는 누가 좋은지는 모 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합당한 사람을 세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주신 줄 믿습니다. 저는 그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 가정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그래도 목사니까 영적인 면에서 그 가정을 놓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분이 지난 30, 40년 동안 얼마나 형극의 길을 걸어왔는지는 우리 다 알지 않습 니까 그분은 카톨릭 신자지만 그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창천 감리 교회라고 하는 교회를 50년 동안 섬기고 있는 장로입니다. 감리교회는 여자 장로 가 있지 않습니까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고 밤에도 나와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그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 매달리며 울부짖은 그 가정의 주부를 제 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지금에 와서 보면, 또 나라가 가장 어려운 위기 상황 에서 하나님이 그를 들어 세우신 것을 보면, 무언가 영적으로 분별해야 할 내용 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30, 40년 동안 그 어려운 고통을 수없이 겪을 때 하나님은 왜 그 가정에 대해서 잠잠하셨을까, 왜 이희호 장로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들려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네 남편이 다음에 대통령 된다.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춤을 추면서 살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 께서는 일절 그런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안 하시고 가만히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할 때 그 옆에 계셨고 그 입술의 기도를 다 들으셨던 것입니다. 이제 돌이켜 보면 하나님 이 그 많은 고통을 허락하신 것은 나라가 가장 어려워지는 위기 때 사용하시려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선이 되고 이 나라에 복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려고 지금까지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통해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정당의 사람이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라도냐 경상 도냐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가정에 가서 이런 설교를 할 기회가 없지만, 만약 그 가정에 서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그 부부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까 그 동안의 고통을 다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의 이야기로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고통이 있을지도 모 릅니다. 또 앞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고달픈 삶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 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허락하 셨기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이면 여기 에는 선이 있다. 여기에는 복이 숨어있다.
그러므로 기다리면 하나님이 이 고난 을 통해서 나를 축복하실 것이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이다." 여러분이 이런 고백을 쉼 없이 하시면 하나님이 그 믿음대로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금년 말과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삶을 통해 서 확연하게 드러나서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들으면 서 '성령님, 내 영의 귀를 열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 기 바랍니다. 우리가 지금 무척 어려운 때를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져야 합니다. 오늘 말씀이 설교로서 끝나는 시간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수 주 전에 저는 누가복음 1장을 읽다가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촌에 사는 처녀 마리아를 찾아가서 그에게 소식을 전한 내용의 말씀을 보고 새삼스럽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천사가 이 처녀에게 찾아가서 무엇이라 고 했습니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 1:28절). 이 구절을 킹 제임스 버전(KJV)과 같은 영어 성경은 "은혜를 크게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라고 번역하여 은혜를 보다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 떻게 번역을 했든 간에 천사가 마리아에게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 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라고 했다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이 대단한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크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온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 너무 광대하셔서 작은 것은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올 것 같은 그 하나님이 나사렛이라고 하는 작은 촌에 살고 있는 평범한 처 녀에게 찾아와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평안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어떻 게 보면 하나님답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위대하시고 크시고 놀라우신 분이면 상대하는 사람도 좀 체면이 서는 사람을 상대해야 할텐데 저 시골구석에 있는 보잘 것 없는 한 처녀에게 찾아와서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따라 오늘 본문 말씀을 읽으면서 '야, 이거 보통 기사가 아니구 나.' 하고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요즈음이야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는 그 이유 때문에 온 세계 여성들이 추 앙하는 대단한 인물이 되었지 않습니까 지난 2천년 동안 여성 중에 가장 위대한 명예를 누린 사람을 들라면 누구나 마리아를 꼽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를 따라갈 여성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리아를 너무 추앙하다 보니 많은 사람이 자기 이름을 마리아(Maria)로 정해 놓고 자기도 마리아라고 우쭐거리면서 살았을 정도 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라는 이름이 자꾸 사용되다 보니 마리아에서 조금 변형된 비슷한 이름들만도 20가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마리아, 마리, 미리암, 이런 것들 이 다 마리아라는 이름에서 변형된 것입니다. 게다가 남자들도 마리아를 너무 좋 아해서, 어떻게 하면 마리아를 남자 이름으로 쓸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나중에 결국은 이름을 약간씩 바꾸었습니다. 마리오, 마리온, .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자랑스럽게 자기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만 보 아도 마리아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언젠가 미국에서 조사를 했더니 마리아 혹은 마리아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미국 여성이 372만 명 이나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하는 것을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합니까 사실 마리아라는 이름은 본래 그 의미가 그리 좋지 않은 이름입니다. 비통 혹은 고난, 슬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의미만 보면 그렇게 매력을 느낄 만한 이름이 절대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리아라는 이름 이 이토록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된 것은 마리아라고 하는 처녀가 예수님을 낳았 다는 사실 때문일 것입니다. 만일 천사 가브리엘이 오늘날과 같이 이렇게 유명해진 마리아를 찾아와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말했다면 차라리 수긍이 갈 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 가 브리엘이 처음 나사렛을 찾아와 마리아를 만날 당시 그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였습니까 1장 48절에 보면 마리아는 자기 자신을 일컬어서 "비천한 계집"이라 고 부를 정도로 하찮은 존재였습니다. 동네 사람에게조차 그 존재가 미미했던 평 범한 처녀에 지나지 아니했습니다. 더욱이 그가 태어나서 자란 나사렛이라는 동 네는 유대 나라 마을 중에서도 가장 후진 마을 아닙니까 예수님이 나사렛이라고 하는 이름을 달고, 나사렛 출신 예수라는 그 딱지 때문에 얼마나 멸시를 당하고 불신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나사렛이라고 하는 그리 명 예롭지 못한 동네 출신에다가 그곳에서도 이제 내일 모레면 목수 일을 천직으로 알고 사는 어떤 총각하고 결혼하게 되어있는 처녀였기에 "비천한 계집"이라는 말 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날마다 대패질이나 해가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서 유명할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남자한테 시집가는 여자가 대 단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흔히 말하듯 여자로 태어나서 나이가 차서 어떤 남 자에게 시집가게 되고, 시집가서 살다 보니 자식도 낳게 되고, 자식을 기르다가 그 일생을 마치게 되는 그런 평범한 운명의 여자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크고 광대하시고 거룩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그런 비천한 한 여자를 눈여겨 보시 고 "마리아야, 너야말로 은혜를 입은 자니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고 말씀하 셨다니 이것이 어찌 사소한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새삼 스럽게 '야, 이것 참 대단한 일이다.'하고 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은혜의 파격성 여기서 우리는 은혜의 파격성을 다시 한번 봅니다. 은혜가 무엇입니까 격에 안 맞는 대우를 하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가 격에 맞아서 하나님이 그렇 게 잘 봐주셨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닙니다. 우리가 잘난 것도 없고, 명성도 없 고,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니고, 선한 것도 아니고, 무슨 공로를 세운 것도 아니 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어떤 특별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자격 없는 것을 무시해 버리시고 무조건 사랑해 주셨기에 은혜인 것입니다. 파격 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마리아에게 임한 은혜가 바로 이런 파격적인 은혜였습니다. 언젠가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스톰스(Storms) 박사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 하지요. "은혜란 당신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요, 당신의 무공로로 잃 어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만일 당신의 선함과 자랑할 만한 것을 따라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그것이 구원이든 건강이든 장수든 부귀든 그 무엇이든 은 혜일 수가 없습니다. 은혜는 우리의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 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파 격적인 은혜를 마리아에게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흔히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해서 낳을 여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에게 찾아와서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가만히 읽어보십시오.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을 처녀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벌써 오 래 전부터, 어떻게 생각하면 마리아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부터, 마리아의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그를 아셨고 사랑하셨고 그와 함께 하셨을 뿐 아니라 지금 도 그와 함께 계신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믿습니까 이것이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기독교만이 이런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님만이 이런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주십니다. 언젠가 영국에서 비교종교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모여서 수련회를 한 일이 있 었다고 합니다. 비교종교학이란 기독교, 불교, 회교, 힌두교, 이런 종교들을 다 함께 놓고 비교하며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도 연 구할 수 있는 학문이고, 안 믿는 사람도 연구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이 비교종 교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이 모였으니 얼마나 요란하겠습니까 그 시간 그들의 연 구 과제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독특한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분명하 게 규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종교에 대해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모여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교리가 무엇인가를 놓고 열띤 토 론을 벌였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의미의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하는 교리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까 우리가 성탄절을 맞아 기뻐하고 축하하는 것은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세상에 태어나신 그 사건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이 되셨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우리는 흔히 이것을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교리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비교종교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신이 사람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내용이 조금 다를 뿐 다른 종교에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꼭 기독교만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 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바와 같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중심이요,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그런데 비교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기독교 외에도 신이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런 종교가 있 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부활 교리 역시 기독교만 가지고 있는 교리라고 볼 수 없 다는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여러 주제를 놓고 티격태격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 때
C.S. 루이스라고 하는 캠브리지 대학의 유명한 크리스천 교수가 그들이 토론하는 장소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한참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도대체 여러분은 무엇을 가지고 그렇게 토론 을 하고 있습니까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서 독특한 게 무엇인가를 가지고 우리가 토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건 쉬운 문제인데요.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 른 것이 있다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입니다. 은혜가 기독교의 독특한 면입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루이스의 말을 놓고 다시금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그들 모두 과연 은혜가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교리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만이 은혜를 갖고 있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아무 조건을 요구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찾아오셨다니 얼마나 굉장한 은혜입니까 아무 조건을 달지 않고 오직 믿기만 하면 영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니 얼마나 대단한 은혜입니까 이것은 오직 기독교만이 갖고 있는 은혜입니다. 마리아와 같 은 비천한 여자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하시는 그런 은혜는 다른 종교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은혜입니다. 우리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무조건 자기 자녀로 삼아 주셨다니 이 얼 마나 대단한 은혜입니까 이런 은혜는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소위 피안 에 이르는 8개의 길이라든지, 힌두교의 인과응보 교리라든지, 또 유대교에서 가 르치는 율법이라든지, 회교가 이야기하는 계율이라든지, 이런 것들 안에는 은혜 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구원을 얻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한다 고 가르칩니다. 인간에게 스스로 구원을 쟁취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찾아 오셔서 하나님이 손수 구원해주시고 인간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아니하시는 이 런 은혜는 다른 종교에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리아에게 찾아오셔서 "은혜를 받 은 자여 평안할 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라고 말씀하는 이 은혜, 이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
그런데 이 은혜를 마리아만 받는 것입니까 저는 누가복음 1장을 읽으면서 다 시 한 번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를 보면서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비천하고 하찮은 마리아를 아시는 하나님이었다면 오늘 나를 아시는 것 도 틀림없다! 그렇게 초라한 여자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서 함께 하셨다고 한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저는 마리아를 보면서 이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감격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 지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를 찾아오셔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하시던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성탄의 감격이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성탄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Merry Christmas가 왜 merry입니까 왜 성탄이 기쁘다고 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비천한 나를 찾아 오셨기 때문이요, 찾아오신 그분이 나와 함께 하 신다는 임마누엘의 은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탄이 기쁜 것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독일의 유명한 설교자 헬무트 틸릭케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 습니다. "성탄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찾으러 오신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성탄의 메시지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찾 아오신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절망에 다다른 듯이 보이는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 의 기회는 정말 시작된다는 데 있다." 좀더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하나님을 찾 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신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탄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마리아를 찾아오셨던 하나님,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모두를 찾아오신 하나님, 바로 그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다는 데 성탄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내가 절망에 빠져 고통을 당하며 허덕이고 온 천지가 캄캄해 보여도 그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찾으시고 나를 통해서 놀라운 일을 행하 신다는 진리를 가르쳐주는 데 성탄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옳은 이야기입니다. 이 것이 바로 기독교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리아가 체험한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은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마리아처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이 가운데는 유명한 분들도 가끔 계시긴 합니다만 그 런 분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저 같은 사람도 길에 나가서 반나절을 돌아 다녀도 저를 안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평 범합니다. 그리 부자도 아닙니다. 가문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잘난 것도 별로 없습니다. 한국 사람이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미국 사람 옆에 갖다 세워놓으면 잘나지 못했습니다. 우린 다 못난 사람들입니다. 여자고 남자고 간에 하나님이 동양 사람을 만드실 때는 좀 실수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내놓을 것이라곤 하 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나를 찾아오시고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말씀합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우리가 험한 인생고의 파도가 쉴 날이 없이 몰아치는 망망한 대해와 같 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이 믿음을 끝까지 붙들 고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이미 체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 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흔들리는 것은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뛰어넘기 어려운 장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하나님이 계시면 어디 계시냐,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하나님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버릴 만큼 절박한 상황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냐 안 계시냐를 가지고 의심하는 판국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다는 말씀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이 세상이 험하기 때문에 어 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었는데 오늘은 믿기가 힘들다고 하는 생각 을 가질 때도 있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선지자들도 이런 시험에 빠진 일이 있었습니다. 또 우리 믿음의 선배들 도 이런 시험에 빠진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잘 아는 몇 분도 평안할 때는 그렇 게 주님을 위해 살고 그렇게 주님을 잘 섬기다가도 감당할 수 없는 어려운 고통 의 수렁에 빠지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부정하더라고요. 우리 모 두는 연약한 인간이기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믿음의 혼란을 겪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어떤 때는 내가 잘못해서 화를 자초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가 게을러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하고, 젊어서 함부로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 고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예수 잘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내 머리만 믿고 내 젊음만 믿고 건방지게 까불다가 결국에는 화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 통이 내가 잘못해서 당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잘못해 당하는 것은 전체의 20 퍼센트 정도도 안될 것 같습니다. 대개는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 이 잘못해서 내가 뒤집어쓰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너 무 많습니다. 우리 나라가 경제 위기를 당하자 이제 경제위기라고 하는 이상한 괴물이 나타나서 지금 나라를 달달 볶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이것이 우리 나라를 위해서는 좋은 일이요,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일 때문에 굉장히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예전에 우리는 경제위기라는 이름을 들어본 일도 별로 없습니다.
경제위기하면 'I am fine'으로 알았지, 언제 우리가 'I am fired'라고 스스로 생각한 일이 있습니까 언제 우리가 'I am F학점을 받았다' 거나 '나는 F다' 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요즈음 경제위기라는 말을 가지고 이처럼 별의별 이야기들이 다 돌고 있습니다만 아무튼 경제위기가 우리를 참 힘들게 하는 시어머니임 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어려운 상황은 대부분 내가 잘못해서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지도자가 뭔가 잘못해서 당한 것입니다. 정부가 잘못해서 당한 것입니다. 기업이 잘못해서 당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려온 모든 관행이 잘못되어 당한 것 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나 없이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에 분노가 있습니다. 마음에 억울함이 있습니다. '나라를 잘 다스려 달라고 세워 놨더니 나라를 이 꼴로 만든 게 누구냐, 기업 경영을 잘 할 줄로 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 앞에 앉아서 열심히 일을 했는데 회사를 이 꼴로 만든 사람이 누구냐' 하는 생각을 하면 기가 막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경유착으로 인해서 일어난 일이 든, 정부 주도의 경제정책 때문에 빚어진 일이든, 검은 돈 거래 때문이든, 부정 직한 수치 때문이든, 아니면 방만한 경영 때문이든, 무책임한 지도자들의 언동 때문이든, 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때를 놓친 때문이든, 국제사회의 신용을 잃어 서이든, 무슨 이유를 대든 간에 결국 오늘날 우리가 당하는 여러 가지 고통은 대 개가 다른 사람으로 인해서 당하는 고통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당하게된 고통이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생각하니 우리 마음에 울분 과 분노가 있는 것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기업들의 대부분은 돈 많은 아버지를 가진 아들이 어설프게 사업한답시고 벌려 놓고 이리 저리 손을 대다가 돈이 부족하고 잘 안되면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돈 달라고 사정해서 돈을 집어넣고, 그러다가 또 돈이 모자라면 또 아버지께 손을 벌리기를 반복하는 아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아버지가 "나, 이제 돈 없어. 내가 이제 너를 도와줄 수가 없어. 이 제 네가 알아서 해야 돼." 라며 도와주기를 거절하니까 아들이 그제야 정신이 나 서 뭘 좀 제대로 해 보려고 하는데 잘 될 리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업은 벌렁 나자빠지고, 하는 사업은 사업대로 잘못되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지금까지는 하다가 돈 없으면 정부에 손 내밀어서 돈 얻어서 쓰고, 잘 안되면 뇌물 갖다 주고 금융 지원 받는 식으로, 국민의 돈인 세금을 무조건 막 받아다가 맘대 로 집어넣고 방만하게 문어발 식으로 사업을 경영했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이제 경제위기 시어머니가 와서 이제는 돈 못 준다고 하니까 정부가 돈을 못 내어 주는 것 이 아닙니까 그래서 지금 아우성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로 인해서 당하는 어려움은 전부 사원들에게, 노동자들에게, 그리고 그 사원과 노동자들에게 목매고 사는 식구들에게 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아침에 목이 날아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아침에 부도가 나 버렸습니다. 멀 쩡하던 기업이 연쇄 부도가 나는 바람에 함께 넘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를 위해서 보증을 서 준 것이 화가 되어 집까지 다 날려 버리고 길바닥에 나앉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 잘 하는 사람을 보고 너무 좋아서 돈을 갖다 맡기면서 쓰라고 했는데 그 돈을 다 날려버렸습니다. 나라가 잘해 줄 줄로 알고, 안정적일 줄 알고 증권시장에 투자했다가 몇 배의 손해를 보고 거지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십시오. 이렇게 경제 상황이 어려워지고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하는 고통을 당하는 처지가 되자 사람들은 "내핍하자. 아끼자. 절약하자." 하고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떨어 댑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게를 열어 놓고 그저 매일매일 벌어서 살던 사람들이 손님이 끊어지자 모두 아우성입니다. 이제 해가 바뀌면 물가가 얼마나 뛰어오를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이전에 백만 원 가지고 살던 사람이, 백만 원을 쥐고도 50만 원을 가지고 사는 꼴이 되 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 모든 고통이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 마음에 화가 있습니다. 분노가 있습니다. 사업도 잃어버리고, 가 정도 잃어버리고, 가정이 깨어지고, 그 동안 모아놨던 돈도 날리고, 고민 고민 하다가 나중에는 병까지 들어버린 사람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을 안 하겠습니까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면 회개라도 하겠지만, 내가 그렇게 성실하게 하려고 노력했고 지금까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겠다고 애를 쓰면서 사업하고, 애를 쓰면서 장사하고, 애를 쓰면서 직장을 다녔는데 이게 무슨 꼴인가 하나님이 나 와 함께 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왜 이 어려운 일을 하나님 이 미리 막아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사전에 나에게 경고 라도 해 주셔야 할 것 아닌가
그런데 잠잠하면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니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이런 원망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구나 다 그 런 시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무슨 유행가도 아니고 벽에 붙여놓은 무슨 경구도 아닙니다. 그것은 엄연한 사실인데 사실이라 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상황이 모순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아마 이런 시험에 빠져있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와 함께 한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소위 운명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까지도 통제하시고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만유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헤아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절대로 떨어지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통제하고 계시고 이 만물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까지도 다 간섭하고 계신 다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을 믿으라
그렇다면 나에게 일어난 고통을 하나님이 모르고 계셨을까요 절대 그럴 리 없 습니다. 하루아침에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이 어려움을 하나님이 모르고 계셨을까 요 천만에요.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이 계시고 또 이 모든 일들을 다 알고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 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 입에 쓴 것이라도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시면 허락하십니다. 이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모든 것 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실 때, 이 좁고 험 한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나에게 선이 되고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는 것 이라고 판단하시면, 그 결말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아무 말도 않으시고 나를 그냥 그 길로 밀어 넣어버리십니다. 밀어 넣으면서도 미안하다는 말씀도 안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이 이렇게 될 것이라는 암시도 안 주십니다. 그냥 밀어 넣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이 되지 않 고, 우리에게 복이 되지 않는 일은 일절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왜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허락과 함께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 안에는 참 고통스러운 일을 당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 아들이 미국 미시건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유망한 인재로 촉망받고 있 었습니다. 그 아들은 믿음도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교통 사고로 죽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아들에게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이 가정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금 방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직접 대놓고 말은 하지 못해도 앞으로 반년이 지나고 일년이 지나면 저는 이 말을 꼭 할 작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허락하셨 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이 이 가정에, 또 세상을 떠난 그 아들에게 선이 되고 복이 된다고 하나님이 판단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요 하나님이 그 가정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반년 후나 일년 후에 꼭 그 말을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이신데 잠깐 낮잠 자느라고 모르고 계시는 사이에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상, 그것은 우리에게 선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는 사실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형들이 그 어린 나이의 요셉을 질투하고 미워해서 결국 노예 로 팔아먹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임마누엘입니다. 요셉의 기사를 보면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꼭 말씀하시는 한마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니라"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별 명이 임마누엘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자연 이런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어린 요셉에게 함께 하셨다면, 형들이 잔인하게 그 동생을 노예로 팔아먹는 그 자리에서 왜 침묵하고만 계셨는가 하나님은 그 때 무엇을 하고 계셨단 말인 가' 형들이 "형이여, 살려다오. 살려다오. 잘못했어. 살려다오." 하며 울부짖으 며 몸부림치는 동생을 굴에서 끌어내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노예로 팔아먹을 때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셨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하나님의 침묵 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분명히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니라." 하나님은 요셉에게 한마디도 안 하셨습니다. 15년 동안 왜 그가 그런 일을 당 해야 했는지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15년 내지 20년이 지나고 나서 드디어 요셉은 스스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는 '아하, 하나님 이 나에게 이 잔인하고 피눈물을 쏟지 아니할 수 없는 고통을 허락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구나. 하나님이여,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하나님 고맙습니다.' 하는 사람으로 완전히 바뀌었지 않습니까 창세기 50장 20절을 보 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쉽게 말하면 이런 말입니다. "형들이여,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고 사실 많은 해를 끼쳤습니다. 그러나 이 제 와서 보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을 선으로 바꾸어서 나도 살고 당신도 살 도록 하기 위해서 작정하신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실 줄 믿습니다. 한동안은 우리 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헤맬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15년 동안이나 헤 맸습니다. 우리도 왜 부도가 났는지, 왜 이렇게 생활이 갑자기 어려워지는지, 왜 이렇게 직장을 얻지 못해 방황을 해야 하는지 헤맬 수 있습니다. 기도도 잘 안나 옵니다. "하나님!" 하고 울부짖다가도 속에서 화가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이런 일을 나에게 허락하신 데는 분명 선한 뜻이 있다는 믿음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요, 생명입니다. 이 고난이 나중에는 축복으 로 바뀐다는 믿음을 꼭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 입니다. 할렐루야! 오늘밤에는 우리 가정에서 눈물이 떠나지 않지만, 내일 아침 에는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는 고난의 길을 걸어가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날이 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허락된 이 고통도 선한 뜻을 가 지고 허락된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을 항상 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과 다른 차이점입니다. 이번 대선 때 저는 기도를 참 많이 했습니다. 나라가 어려우니만큼 대통령이 잘 세워지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리핀에서는 마르코스라 고 하는 못된 대통령이 나라를 말아먹었지 않습니까 그걸 보고 싱가폴의 전 수 상이 이런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대통령 하나 잘못 뽑아 5년을 다스리게 하면 그 나라는 완전히 부도가 난다. 게다가 한번 더 재선해서 10년을 다스리게 하면 그 나라의 2대, 3대까지 고생을 한다."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니 기도 안 하게 생겼습니까 여러분도 기도하셨을 줄 압니다. 저는 누가 좋은지는 모 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합당한 사람을 세워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제 김대중씨가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이 주신 줄 믿습니다. 저는 그분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그 가정에 대해서 한 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제가 그래도 목사니까 영적인 면에서 그 가정을 놓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분이 지난 30, 40년 동안 얼마나 형극의 길을 걸어왔는지는 우리 다 알지 않습 니까 그분은 카톨릭 신자지만 그 부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창천 감리 교회라고 하는 교회를 50년 동안 섬기고 있는 장로입니다. 감리교회는 여자 장로 가 있지 않습니까 새벽마다 하나님 앞에 가서 기도하고 밤에도 나와 기도하며 하나님 앞에 그 고난의 길을 걸어오면서 매달리며 울부짖은 그 가정의 주부를 제 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지금에 와서 보면, 또 나라가 가장 어려운 위기 상황 에서 하나님이 그를 들어 세우신 것을 보면, 무언가 영적으로 분별해야 할 내용 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30, 40년 동안 그 어려운 고통을 수없이 겪을 때 하나님은 왜 그 가정에 대해서 잠잠하셨을까, 왜 이희호 장로에게 하나님이 말씀을 들려주시지 않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네 남편이 다음에 대통령 된다. 걱정하지 말아라." 라고 한마디만 했으면 춤을 추면서 살았을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 께서는 일절 그런 말씀을 안 하셨습니다. 안 하시고 가만히 계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할 때 그 옆에 계셨고 그 입술의 기도를 다 들으셨던 것입니다. 이제 돌이켜 보면 하나님 이 그 많은 고통을 허락하신 것은 나라가 가장 어려워지는 위기 때 사용하시려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에게 선이 되고 이 나라에 복이 되게 하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려고 지금까지 그 모든 고난과 역경을 통해 준비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정당의 사람이냐를 두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라도냐 경상 도냐를 놓고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영적으로 분별하는 것입니다. 제가 그 가정에 가서 이런 설교를 할 기회가 없지만, 만약 그 가정에 서 이런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그 부부가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겠습니까 그 동안의 고통을 다 감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남의 이야기로만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상황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여러 가지 어려운 고통이 있을지도 모 릅니다. 또 앞으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고달픈 삶이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절대 의심하 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어려워지면 어려워질수록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그 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허락하 셨기 때문에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통이면 여기 에는 선이 있다. 여기에는 복이 숨어있다.
그러므로 기다리면 하나님이 이 고난 을 통해서 나를 축복하실 것이요,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것이다." 여러분이 이런 고백을 쉼 없이 하시면 하나님이 그 믿음대로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금년 말과 새해에는 우리 모두에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의 삶을 통해 서 확연하게 드러나서 어디를 가든지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간증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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