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복이 함께한 마리아 (눅1:26-56)
본문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오심에 귀하고 아름답게 쓰여진 한 여인이 있으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인 것입니다. 그 여인자체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하여 아주 특별한 경륜을 입고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사실에 무한한 은혜와 행복이 있었던 여인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최초로 하는 말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였습니다. 30절에도 보니까,'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친족이었던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이 마리아를 보고 성령님이 충만한 가운데 말하기를 42절에 ‘여자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직접 노래하며 말하기를 48절에,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있다 일컬으리로다.'고 했습니다. 과연 은혜가 있고 복이 있었던 여인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마리아라고 하는 여인 자체가 천주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숭배받고 높임을 받아야 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이 세상에 오심에 직접적으로 쓰임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데에 은혜가 있었고 복이 있었던 여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정말 귀하고 가치있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될 때가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특별히 믿음 가진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가장 은혜롭고 복된 것이라는 사실을 받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마리아가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편에서 보면 완전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 보면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은혜와 복이 임할 수 있는 내면의 어떤 무엇인가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을 때 무조건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님이 그를 쓰시고자 했던 내면의 모습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스스로 표현하기를,'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속에 있는 그 충성스러움을 보신 것입니다. 다윗을 선택할 때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죠.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보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내면적인 인간,즉 그 존재자체를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영적이고 근본적인 바탕을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식을 쌓고,지위를 얻었어도 그 사람됨의 본바탕은 잘 변하지를 않습니다. 사람같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끝까지 사람 노릇 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경우가 많고,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겉모양만 종교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갈 뿐 본바탕의 변화없이 아주 추하게 믿음생활하다가 종말을 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는 거기에 필요한 은혜도 권세도 능력도 필요한 건강과 재능도 다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은사전에 인간자신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 그릇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을 쓰임받기에 합당하게 깨끗하게 하는 것은 자신의 책임입니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마리아 처럼 내 생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도록 쓰여지는 그릇이 될 수 있 기를 간구하고 기도하는 순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1.마리아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에 합당한 진정한 겸손의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출산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사의 멧세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 멧세지가 다 끝난 다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다르게 말하면,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님뜻대로 하시옵소서.’ 여기서 계집종이라고 하는 표현은 아주 굉장히 낮은 계급의 여자 하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천사는 ‘네가 온 인류의 메시야인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여 주었는데, 자신은 단지 주의 계집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경에 어느 한 번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거나, 예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 특권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예수의 뒤에서 묵묵히 있으면서 자신의 주님으로서 예수를 섬기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시작도 겸손이고, 중간도 변질이 없고, 끝에 가도 겸손하신 그런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와 복이 있는 겸손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겸손을 말합니다. 사울 왕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아주 겸손하였습니다. 처음에 왕으로 기름부으려고 사무엘이 찾아 갔을 때 부끄러워 행구사이에 숨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갈 수록 그의 겸손을 잊어 버립니다. 삼상15:12에 보면 자신의 기념비를 갈멜에다 스스로 세웠습니다. 꼭 김일성이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또 블레셋 나라와 전쟁을 할 때도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이 늦게 오자 자기가 팔을 걷고제자를 진행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 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착각하여서 제사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겸손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교권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않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비천하나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이 세상에 오시게 하는 역활만을 감당하는 여인이었다고 하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할 뿐 조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겸손함이 끝까지 지속된 귀한 여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신다는 말씀이 정말 맞다고 생각됩니다.
2.마리아에게는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 충만했습니다(31-34) 31-34절까지의 대답이 37절에 나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랬더니,마리아가 대답하기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녀는 메시야가 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메시야가 처녀의 몸으로 오신다는 구약의 말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좇아 자신에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그 사실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엘리사벳이 4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야가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기에 베드로처럼 '그리마옵소서!'하면서 아들 예수를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승천하신 후에도 ‘성령님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마가 다락방에서 120문도 속에 끼어서 겸손하게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성령님충만한 역사를 덧입게 됩니다. 마리아의 생에 깊은 추진력을 준 것이라고 한다면 능력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을 수도 없는 상황에 있을 뿐 아니라, 좀 믿고 살아보려고 해도 믿을 수없게 되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사람이 불행한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면 이것처럼 불행한 사실이 없습니다.
(예) 교회까지 오는데, 신호등을 믿을 수없다면 내 눈을 믿을 수없다면, 다른 운전자들이나 차를 믿을 수없다면, 브레이크 파열로 반대차선으로 뛰어들어온다면 그러나 믿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것을 가지고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다른 것은 못믿고 살아도,말씀은 믿을 수가 있습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할 수없으니까요!'
(예)가정도,부부도, 신앙이 있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속에서 서로를 믿고 가정식구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처리하신다는 것을 믿으니까,그 사람들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시대를 살아가면서,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믿음만은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믿을 수가 있고, 환경을 믿을 수가 있고, 역사를 믿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3.순종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죽음까지라도의 순종의 내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혼한 처녀가 동거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유대의 율법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돌에 맞아 죽는 죽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가운데서도 끊어 버리지 않고 출산을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주어야 하는 것이고 몸을 내어주는 순종과 헌신인 것입니다. 잘 아시는데로 듣고 믿은 말씀은 순종할 때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행복과 은혜를 따먹는 일에는 아주 관심이 많지만 순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사르밧 과부,-그릇을 빌려오라. 기름이 넘쳐났습니다. 가나혼인 잔치-빈통에 물을 채우고 갖다가 연회장에 주라. 문둥병자들-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여라 여리고의 성-성을 일곱바퀴 돌아라 요단강-법궤를 메고 요단에 들어서라
4.기쁨과 감사의 찬양 46절부터 56절의 말씀은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통해서 오실 것을 알고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작은 자신을 통해서 성탄하심에 대해서 알고 마리아가 찬양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감사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감히 나같이 못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게 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그런 은혜를 알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헤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땅한 일입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배은망덕한 자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감사합시다. 앞으로 은혜를 받을 것이니 감사합시다. 그녀는 기뻐했습니다. 마리아는 기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뻐했습니까 그가 잘났기에, 그가 남보다 뛰어 났기에, 그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인가 특별났기에 감사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했다’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은 미천한자를 들어써 주셨기에 감사한 것 이전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구원의 길을 내시는 그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기뻐하는 것입니까 물론 기뻐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 그분 자체로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요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의 모습을 봅시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 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그녀는 영광을 돌렸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크고 위엄에 뛰어나신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영광을 주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만큼 믿고 신뢰할 때 그것만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들이 없을 것입니다.
1.마리아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기에 합당한 진정한 겸손의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출산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사의 멧세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 멧세지가 다 끝난 다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다르게 말하면,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님뜻대로 하시옵소서.’ 여기서 계집종이라고 하는 표현은 아주 굉장히 낮은 계급의 여자 하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천사는 ‘네가 온 인류의 메시야인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여 주었는데, 자신은 단지 주의 계집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경에 어느 한 번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거나, 예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 특권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예수의 뒤에서 묵묵히 있으면서 자신의 주님으로서 예수를 섬기고 있을 따름인 것입니다. 시작도 겸손이고, 중간도 변질이 없고, 끝에 가도 겸손하신 그런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와 복이 있는 겸손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겸손을 말합니다. 사울 왕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는 아주 겸손하였습니다. 처음에 왕으로 기름부으려고 사무엘이 찾아 갔을 때 부끄러워 행구사이에 숨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갈 수록 그의 겸손을 잊어 버립니다. 삼상15:12에 보면 자신의 기념비를 갈멜에다 스스로 세웠습니다. 꼭 김일성이하고 똑같은 행동을 하였습니다. 또 블레셋 나라와 전쟁을 할 때도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이 늦게 오자 자기가 팔을 걷고제자를 진행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 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착각하여서 제사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겸손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교권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않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비천하나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이 세상에 오시게 하는 역활만을 감당하는 여인이었다고 하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할 뿐 조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겸손함이 끝까지 지속된 귀한 여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주신다는 말씀이 정말 맞다고 생각됩니다.
2.마리아에게는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 충만했습니다(31-34) 31-34절까지의 대답이 37절에 나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랬더니,마리아가 대답하기를,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그녀는 메시야가 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메시야가 처녀의 몸으로 오신다는 구약의 말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좇아 자신에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그 사실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엘리사벳이 4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야가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믿었기에 베드로처럼 '그리마옵소서!'하면서 아들 예수를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승천하신 후에도 ‘성령님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마가 다락방에서 120문도 속에 끼어서 겸손하게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성령님충만한 역사를 덧입게 됩니다. 마리아의 생에 깊은 추진력을 준 것이라고 한다면 능력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을 수도 없는 상황에 있을 뿐 아니라, 좀 믿고 살아보려고 해도 믿을 수없게 되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사람이 불행한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서로 믿지 못하게 된다면 이것처럼 불행한 사실이 없습니다.
(예) 교회까지 오는데, 신호등을 믿을 수없다면 내 눈을 믿을 수없다면, 다른 운전자들이나 차를 믿을 수없다면, 브레이크 파열로 반대차선으로 뛰어들어온다면 그러나 믿지 않으면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가장 믿을 만한 것을 가지고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다른 것은 못믿고 살아도,말씀은 믿을 수가 있습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할 수없으니까요!'
(예)가정도,부부도, 신앙이 있는 사람은 사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속에서 서로를 믿고 가정식구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처리하신다는 것을 믿으니까,그 사람들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불신시대를 살아가면서,하나님과 그 말씀을 믿는 믿음만은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래야 사람을 믿을 수가 있고, 환경을 믿을 수가 있고, 역사를 믿을수가 있는 것입니다.
3.순종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죽음까지라도의 순종의 내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혼한 처녀가 동거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유대의 율법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돌에 맞아 죽는 죽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가운데서도 끊어 버리지 않고 출산을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주어야 하는 것이고 몸을 내어주는 순종과 헌신인 것입니다. 잘 아시는데로 듣고 믿은 말씀은 순종할 때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행복과 은혜를 따먹는 일에는 아주 관심이 많지만 순종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사르밧 과부,-그릇을 빌려오라. 기름이 넘쳐났습니다. 가나혼인 잔치-빈통에 물을 채우고 갖다가 연회장에 주라. 문둥병자들-가서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여라 여리고의 성-성을 일곱바퀴 돌아라 요단강-법궤를 메고 요단에 들어서라
4.기쁨과 감사의 찬양 46절부터 56절의 말씀은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통해서 오실 것을 알고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하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작은 자신을 통해서 성탄하심에 대해서 알고 마리아가 찬양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감사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감히 나같이 못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게 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는 그런 은혜를 알았기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은헤에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땅한 일입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은혜를 받고 감사할 줄 모른다면 배은망덕한 자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니 감사합시다. 앞으로 은혜를 받을 것이니 감사합시다. 그녀는 기뻐했습니다. 마리아는 기뻐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기뻐했습니까 그가 잘났기에, 그가 남보다 뛰어 났기에, 그가 다른 사람보다 무엇인가 특별났기에 감사한 것이 아니였습니다. 그녀는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했다’라고 했습니다. 즉 이 말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같은 미천한자를 들어써 주셨기에 감사한 것 이전에 그렇게 하지 않아도 구원의 길을 내시는 그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기뻐합니까 하나님이 주셨으니까 기뻐하는 것입니까 물론 기뻐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지 않더라도 하나님 그분 자체로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요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고백의 모습을 봅시다. (합 3: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합 3: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합 3: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 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그녀는 영광을 돌렸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크고 위엄에 뛰어나신 주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영광을 주께 돌리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찬양과 영광을 받으실 이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을 하나님만큼 믿고 신뢰할 때 그것만큼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들이 없을 것입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