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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시간에 기대해야 할 것 (눅13:10-17)

본문

유대인의 회당은 예배와 교육과 집회를 위한 장소였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관습을 좇아 안식일에 회당을 찾으셨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사도들도 자연스럽게 그분의 본을 좇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의 회당예배가 자연스럽게 초기 기독교예배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한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신 경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그들도 틀림없이 그 자리에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주님께서 예배를 드리는 자들에게 무엇을 행하시는지 그리고 우리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무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신 회당이 어느 마을에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당만 있지 예배드리려는 사람이 없었다면 그분께서 그 회당에 들어가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8:20).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개인적으로 주님과 교제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영접했을 때 그분은 우리 안에 사시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럼 어떤 의미에서 주님께서 예배 모임에 함께 하시는 것일까요 주님은 항상 신자와 함께 하시지만 우리 각 사람은 주님의 임재하심을 강하게 체험하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신자가 모인 곳에서는 주님의 임재하심을 더 쉽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배드리러 나올 때 주님을 만날 것을 기대하십시오.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하고 나오십시오. 그리고 예배시간에 주님께서 눈에 보이시지는 않지만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십시오. 진지하십시오. 우리는 그분 앞에 있는 것입니다. 예배 중 옆 사람과 불필요한 이야기를 하고 몸을 가누지 못하여 조는 것은 불경스런 행동입니다. 예배시간에 아이들이 떠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놔두는 것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예배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도 하십니다. 우리는 목사님의 설교에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를 목사 개인의 말로 받지 말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나오는 로마 백부장 고넬료가 일가친척과 친구들을 모아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자 할 때 한 말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10:33)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도 바울 사도의 설교를 들을 때 같은 태도를 취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옳다고 말했습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둘째로, 예수님은 매임 중에 있는 사람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회당예배에 참석한 사람 가운데 귀신들려 앓으며 허리(또는 다리)가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자발적으로 회당예배에 참석한 것인지 아니면 주위 사람들의 인도를 받아 나온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또한 그 여인이 그 전부터 꾸준히 참석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번 한번만 참석한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녀가 회당예배에 참석한 목적이 병 고침을 받기 위한 것이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본문은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흔히 그런 경우에는 언급하는 것이 사복음서의 통례임을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런 목적을 가지고 나온 것은 아닌 듯합니다. 어쨋든 그 여인은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 여인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배드리는 자리에 있는 그 여인을 보시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네 병에서 놓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병 나음을 말씀하셨고 잠시 후에 그분께서 여인에게 안수하자 여인이 허리를 폈다는 것입니다. 이 두 사이에 시간적 격차는 미미하지만 시간적 선후(先後)를 분명히 가릴 수 있습니다. 그녀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하시는 설교말씀을 듣고 그분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 병에서 놓였다”고 하신 말씀에 대해서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믿는 여인의 속에서 역사했습니다. 그녀는 마귀의 매임에서 놓이게 되었고 병에서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러 나올 때 기적을 기대하십시오. 질병에서 벗어나게 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삶을 얽어매는 매임에서 풀리게 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모든 고통스런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마귀 사단에게 매인 자가 해방되기를 기대하십시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대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예배시 하나님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럴 때 주님의 역사가 임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책망하셨습니다. 회당장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을 보고 격분했습니다. 그는 안식일에는 어떠한 일도 해서는 안된다고 철두철미 믿었던 사람입니다. 병 고치는 것이 그에게는 안식일에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차마 예수님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못하고 무리를 향해서 외쳤습니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회당 안에는 회당장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회당장의 말은 이들의 생각을 대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사람들이 이 회당장처럼 남의 처지를 이해하려고 하기는 커녕 비판하는 데 앞장 서고 있습니다. 그것도 다른 곳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른 시간에가 아니라 예배시간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안식일에도 소나 나귀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서 마구간에서 풀어내는 것을 예로 드시면서 짐승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마귀 사단의 매임에서 풀어내는 것이 당연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을 지적하시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켜져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의 법도를 폐해도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법이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고 따라서 사랑으로 적용되어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재려 하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주님은 예배시간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해서 책망하십니다. 우리의 잘못된 생각이나 행동, 우선순위를 지적하십니다. 이것을 분개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가 변화되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예배 드러러 모일 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합당치 못한 생각이나 행동을 바로잡으려는 기대감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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