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 한 알 같으나 (눅13:18-21)
본문
지난주간 도착한 수 십 통의 편지 중 하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부민병원에서 <숲속의 사과나무>라는 책자를 읽게 되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기다리는 시간에 읽은 이 책으로 저는 잔잔한 감동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저는 31살된 주부입니다. 연년생 을 둔 관계로 모든 일이 아이중심이라 신앙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스트 레스가 많습니다. 더구나 아직 어린 3,4살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후-내가 왜 이리 살까하고 고민에 빠지기도 하고 약간의 우울증도 생깁니다. 그렇게 피곤한 일상에 소책자는 단비가 되어 제 정신에 힘을 주고 마음 을 다스릴 수 있는 글이 되기도 합니다. 목사님, 저도 매월 이 책자를 집 에서 받아보고 싶습니다. 책자를 주변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작 지만 향기 나는 책이라 혼자 읽기 너무 아까운 책이더군요. 저희 동네에 교회가 세 군데 있지만 나오는 책자는 없어서 저처럼 아이들에게 매인 주부가 교회 가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책자를 보내주신다면 주변 사람 들과 같이 어울릴 때 같이 나누어 볼 수 있는 서적이 될 것 같습니다. 두 서없는 글을 써보냅니다. 저의 마음에 단비가 되는 책을 기대하면서. 목사님의 건강과 여호와 하나님의 축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산 O규 O정 엄마 박 O O 박 O O씨의 편지를 읽노라면 "이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있 음"(마12:28)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이 아니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고 했습니다. 그 분 안에 이미 믿음(의)이 역사하였고, 마음에 평강이 임하였고, 우울했던 삶에 기쁨(희 락)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발간했다가 재정난으로 지난해 1월에 휴간한 <숲 속의 사과나무>는 겨자씨 한 알같이 작지만 지금도 전국 도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삶에 변화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누룩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 지만 그들의 삶에 단비가 되어 주기도 하고, 정신에 힘을 북돋아 주기도 하고, 마음을 다스려 평안을 찾아 주기고 하여 향기 나는 삶으로 인도하 고 있습니다.
1. 겨자씨는 씨 중에서 아주 작은 씨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되면 거의 4m가까이 되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겨자씨 한 알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겨자씨 한 알은 비록 그것이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이미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있 다는 데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작은 데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천국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또한 누룩은 소량이라도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것처럼 대 단한 영향력,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비유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비록 작고 하찮아 보여도 엄청 난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대단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은 무엇이나 크고 많은 것을 최고 의 가치로 여겨 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더 큰 것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물량이나 크기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물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작은 데서부터 시작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이란 분량이 아 니라 그 질로써 결정된다는 것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 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반드시 천국 에서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42) 믿음으로 베푸는 작은 사랑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 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어령의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마침내 자동차 왕국의 자리를 가로챈 것도 소 형 자동차의 전력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도요다의 크라운이 미국에 상륙 할 때의 슬로우건은 다름아닌 <작은 캐딜락>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제의 폭스바겐은 그냥 작은 차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그것은 대형차를 축소한 차였기 때문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차는 작지만 큰 차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도 시계도 소형휴대 품에서 일본 제품들은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카메라 역시 전자장치를 붙여 몸뚱이는 작아지고 성능은 거꾸로 높아져 가고 있다. 상 품만을 소형으로 축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만드는 회사 그 자체의 경 영방식도 또한 '축소지향적'이다. "나는 우리 회사를 소위 대기업으로 육 성하려고 하지않는다. 회사를 크게 해서 이익될 일은 하나도 없다. 스케 일의 메리트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변화를 센시티브하게 받아들이려 면 그 몸집이 커서는 안된다. 유연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니 의 이브까씨의 말이다.여기서 나온 것이 "소규모, 소인원"주의의 소니 법칙이다. 보통 나라에서는 "힘은 언제나 거대한 것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으나 일본에서는 "힘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나온다."라는 이상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지금 일본에서는 <경제대국>이라는 말 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국(國)자 앞에 대(大)자가 붙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생겼었다. 2차대전 때의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꿈은 거함거포주의였다.
그런데 지금 <재팬 이즈 넘버 원>, <초대국일본>, 또는 <일본의 시대가 온다-경제대국에서 정치대국으로의 길> 등 수상한 제목의 책들이 국내외에서 빈번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일본인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이 못된다. 무엇을 위한 대국이며 무엇을 위한 세계 제일 인가. .일본인은 큰 것을 오니(귀신, 도깨비)라고 생각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는 경제대국, 정치대국,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에 대한 불길한 조 짐을 예견하는 글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환난을 초래케 한 주범 중 하 나를 대기업들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대형교회, 초대형 교회가 되어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 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찾아가는 <작은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가 제 아무리 대형교회가 된다할지라도 주어진 사명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 하 찮은 자들로 여겨지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며, 갇히고 눌린 자들을 찾 아가는 <작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은 유대 고 을 중 가장 작은 베들레헴, 그곳에서도 보잘것없는 말구유였습니다.(마 2:6)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목적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 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로 일컬어지는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자, 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눅4:18-19) 예수께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마25:21) 또한 예수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 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6:10) 그리고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 씨만큼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7:20) 미국의 부흥사요, 노래선교에 이름났던 빌리 썬데이가 소년시절 교회 에 등록했을 때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일 15분씩 말씀을 들으라(성경 읽기), 15분씩 하나님과 얘기하라(기도), 15분씩 하나님께 대하여 얘기하라 (전도), 15분씩 작은 희생적인 사랑의 행동을 보이라(사랑의 실천). 그러면 너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빌리 썬데이는 이 말씀을 평생 지켰다고 합니다.(하루 60분의 헌신) 위 대한 크리스찬이 되는 것은 작은 희생적 사랑을 실천하고 작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겨자씨 한 알, 작은 누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겨자씨 믿음, 겨자씨 사랑이 산을 옮기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예수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매주 행하는 축호전도와 기도회, 그리고 선교회를 통한 작은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은 지금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2. 겨자씨 한 알이 자라 가는 과정과 누룩이 어떻게 부풀어 가는 모습 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땅에 뿌림 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마가복음 4장 26-29절)는 말씀으로 씨가 자라 나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씨가 흙 속에서 싹이 나고 이삭이 오르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지만 모든 과정은 자고 깨는 사이에 조용하고 신 비하게 성장합니다. 겨자씨 비유와 마찬가지로 누룩도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데 거의 보이지 않게 작용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가 천지를 개벽하는 모습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천국, 하나님 나라 가 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차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영광 대 신에 지극히 작고 천한 모습으로, 그리고 오직 12명의 제자만을 두고, 결 국 십자가에 죽어야만 하는 그런 모습으로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당시 로마제국과 악의 세력 을 단칼에 무너뜨리고 단숨에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로마 제국의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역사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경력을 거의 언급치 않았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세계적 관점에서 예수의 인격과 경력 그리고 그의 선교는 얼마든지 무시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한 누룩처 럼 온 세상이 천국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누룩과 같이 적고 하찮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천국을 경멸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갈릴리 목수와 12명의 제자들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겠는 가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때가 이르면 누룩이 가루 서말 전부를 부풀 게 한 것처럼 천국이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좌절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예수의 제자들을 통 해 소리 없이 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이 세계 복음화가 이루 어지고 있으며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누룩과 같습니다. 자기를 선전하고 나팔을 불지 않습니다. 겸손하고 말없이 섬기고 사랑할 때 이웃과 사회는 복음화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들은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조용하게 사랑하 며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어린아이의 초라 한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가 주님을 위하여 조용히 바쳐질 때 5천 명이 먹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요 6:5-13) 누룩의 비유에 서 "여자가 누룩을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었다."는 말씀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누룩은 가루 속에 묻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물과 기름처럼 끼리끼리만 몰려있을 것이 아니라 세상 구석구석에 묻히고 섞여 누룩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1943년 2월 3일 미국 수송선 돌체스터 호가 그린랜드 근해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미군 4백여명이 죽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군목 4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개신교 목사인 폭스와 폴린 유대교 랍비인 구드 그리고 카톨릭 신부 워싱톤입니다. 그들은 모두 구명재킷이 있었는데 남에게 입 혀주고 끝까지 구조작업을 돕다가 배가 침몰할 때 손에 손을 잡고 기도 하는 모습을 몇 명의 생환자가 목격했던 것입니다. 종교를 넘어선 그들의 희생과 기도는 미국의 자유와 정신을 상징하는 예로서 오늘날까지 기념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산하는 것은 크고 많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은밀 하게 짊어졌던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 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하나님이 계산하는 것은 여러분의 피나는 노력으로 쌓아올린 부귀영화 같은 것들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소리 없이, 그리고 남김 없이 희생하며 나누어 준 작은 것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부요함 가운데 너털 거리는 웃음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 없이 흘리는 여러분의 뜨거운 눈물방울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위한 작은 희생은 아무리 작아도 아 름답고 강한 것입니다. 고난받는 이웃을 위해 지극히 작은 희생이라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우울하고 슬프고 외로운 것은 이웃을 위해 지 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희생하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아무리 작은 고통과 고난일지라도 이웃과 함께 할 때 그 순간부터 아픔과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샘솟는 하나님 나라가 체험될 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람은 누구나 좋 아하고 이기적 인간은 외로워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마음을 가 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마음은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질뿐만 아니라 이웃과 국가를 위한 십자가를 걸머질 때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부터 이루어가게 됩니다. 지금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예수 믿으시고 예수의 마음 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 까 예수 믿고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나라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17세기 영국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심각할 정도로 부패했을 때 영국사회를 오늘날의 사회로 변화시킨 것은 옥스퍼드대학의 대학생운 동, 바로 그 유명한 요한 웨슬레의 속회를 통한 복음운동이었습니다. 그 것이 우리 감리교회의 시작이었고 초만원을 이루었던 감옥마다 텅텅 비 우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사회의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게 만드는 겨자씨, 누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기도와 전도는 겨자씨 와 누룩과 같이 역사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 교회와 교회에서 행하는 것들이 작고 하찮아 보여도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겨자씨 한 알 같으나 지역사회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되어 지기를 기원합니다.
1. 겨자씨는 씨 중에서 아주 작은 씨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되면 거의 4m가까이 되는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 겨자씨 한 알로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겨자씨 한 알은 비록 그것이 작고 하찮은 것이지만 이미 마음에 천국을 이루고 있 다는 데서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작은 데서,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음에서부터 천국을 이루지 못하면 불행한 것입니다. 또한 누룩은 소량이라도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 것처럼 대 단한 영향력,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두 비유들을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비록 작고 하찮아 보여도 엄청 난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대단한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은 무엇이나 크고 많은 것을 최고 의 가치로 여겨 할 수 있는 대로 더 많이, 더 큰 것을 차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천국은 물량이나 크기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물량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의 작은 데서부터 시작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마17:2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믿음이란 분량이 아 니라 그 질로써 결정된다는 것을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 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반드시 천국 에서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10:42) 믿음으로 베푸는 작은 사랑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삶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사랑의 실천으로부터 하나님의 나라 가 실현되는 것입니다. 이어령의 책 《축소지향의 일본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마침내 자동차 왕국의 자리를 가로챈 것도 소 형 자동차의 전력으로 나갔기 때문이다. 도요다의 크라운이 미국에 상륙 할 때의 슬로우건은 다름아닌 <작은 캐딜락>이라는 것이었다 독일제의 폭스바겐은 그냥 작은 차에 불과하지만 일본의 그것은 대형차를 축소한 차였기 때문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차는 작지만 큰 차가 가지고 있는 모든 성능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카메라도 시계도 소형휴대 품에서 일본 제품들은 거의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카메라 역시 전자장치를 붙여 몸뚱이는 작아지고 성능은 거꾸로 높아져 가고 있다. 상 품만을 소형으로 축소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만드는 회사 그 자체의 경 영방식도 또한 '축소지향적'이다. "나는 우리 회사를 소위 대기업으로 육 성하려고 하지않는다. 회사를 크게 해서 이익될 일은 하나도 없다. 스케 일의 메리트라는 것이 있다. 예를 들면 변화를 센시티브하게 받아들이려 면 그 몸집이 커서는 안된다. 유연성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소니 의 이브까씨의 말이다.여기서 나온 것이 "소규모, 소인원"주의의 소니 법칙이다. 보통 나라에서는 "힘은 언제나 거대한 것에서 나온다."고 믿고 있었으나 일본에서는 "힘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나온다."라는 이상한 신앙을 갖고 있는 것이다그러나 지금 일본에서는 <경제대국>이라는 말 이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국(國)자 앞에 대(大)자가 붙으면 반드시 좋지 않은 일이 생겼었다. 2차대전 때의 일본군국주의자들의 꿈은 거함거포주의였다.
그런데 지금 <재팬 이즈 넘버 원>, <초대국일본>, 또는 <일본의 시대가 온다-경제대국에서 정치대국으로의 길> 등 수상한 제목의 책들이 국내외에서 빈번히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도 일본인에게는 그리 반가운 일이 못된다. 무엇을 위한 대국이며 무엇을 위한 세계 제일 인가. .일본인은 큰 것을 오니(귀신, 도깨비)라고 생각했던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는 경제대국, 정치대국,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에 대한 불길한 조 짐을 예견하는 글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환난을 초래케 한 주범 중 하 나를 대기업들이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가 지향해야 하는 것은 대형교회, 초대형 교회가 되어 <큰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 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찾아가는 <작은 교회>여야 합니다. 교회가 제 아무리 대형교회가 된다할지라도 주어진 사명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 하 찮은 자들로 여겨지는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며, 갇히고 눌린 자들을 찾 아가는 <작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태어나신 곳은 유대 고 을 중 가장 작은 베들레헴, 그곳에서도 보잘것없는 말구유였습니다.(마 2:6)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목적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 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께 성령님이 임하신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로 일컬어지는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 먼자, 눌린 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눅4:18-19) 예수께는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사람을 칭찬하셨습니다.(마25:21) 또한 예수는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 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16:10) 그리고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 씨만큼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17:20) 미국의 부흥사요, 노래선교에 이름났던 빌리 썬데이가 소년시절 교회 에 등록했을 때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매일 15분씩 말씀을 들으라(성경 읽기), 15분씩 하나님과 얘기하라(기도), 15분씩 하나님께 대하여 얘기하라 (전도), 15분씩 작은 희생적인 사랑의 행동을 보이라(사랑의 실천). 그러면 너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빌리 썬데이는 이 말씀을 평생 지켰다고 합니다.(하루 60분의 헌신) 위 대한 크리스찬이 되는 것은 작은 희생적 사랑을 실천하고 작은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겨자씨 한 알, 작은 누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겨자씨 믿음, 겨자씨 사랑이 산을 옮기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 예수의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매주 행하는 축호전도와 기도회, 그리고 선교회를 통한 작은 사랑으로 섬기는 생활은 지금 곳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2. 겨자씨 한 알이 자라 가는 과정과 누룩이 어떻게 부풀어 가는 모습 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씨를 땅에 뿌림 과 같으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마가복음 4장 26-29절)는 말씀으로 씨가 자라 나는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씨가 흙 속에서 싹이 나고 이삭이 오르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지만 모든 과정은 자고 깨는 사이에 조용하고 신 비하게 성장합니다. 겨자씨 비유와 마찬가지로 누룩도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하는데 거의 보이지 않게 작용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 나라가 천지를 개벽하는 모습으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천국, 하나님 나라 가 임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차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을 뒤흔드는 하나님의 영광 대 신에 지극히 작고 천한 모습으로, 그리고 오직 12명의 제자만을 두고, 결 국 십자가에 죽어야만 하는 그런 모습으로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당시 로마제국과 악의 세력 을 단칼에 무너뜨리고 단숨에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로마 제국의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로마 역사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경력을 거의 언급치 않았다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닙니다. 세계적 관점에서 예수의 인격과 경력 그리고 그의 선교는 얼마든지 무시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한 누룩처 럼 온 세상이 천국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은 누룩과 같이 적고 하찮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천국을 경멸하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갈릴리 목수와 12명의 제자들이 무엇을 성취할 수 있겠는 가 그러나 놀라지 마십시오 때가 이르면 누룩이 가루 서말 전부를 부풀 게 한 것처럼 천국이 온 세상을 충만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결코 좌절될 수 없는 것입니다. 작고 하찮아 보이는 예수의 제자들을 통 해 소리 없이 가루 전체를 부풀게 하는 누룩과 같이 세계 복음화가 이루 어지고 있으며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누룩과 같습니다. 자기를 선전하고 나팔을 불지 않습니다. 겸손하고 말없이 섬기고 사랑할 때 이웃과 사회는 복음화되고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들은 능력이 부족할지라도 조용하게 사랑하 며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어린아이의 초라 한 도시락인 보리떡 다섯 덩이와 생선 두 마리가 주님을 위하여 조용히 바쳐질 때 5천 명이 먹는 기적이 나타났습니다.(요 6:5-13) 누룩의 비유에 서 "여자가 누룩을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었다."는 말씀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누룩은 가루 속에 묻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물과 기름처럼 끼리끼리만 몰려있을 것이 아니라 세상 구석구석에 묻히고 섞여 누룩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1943년 2월 3일 미국 수송선 돌체스터 호가 그린랜드 근해에서 빙산과 충돌하여 미군 4백여명이 죽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 배에는 군목 4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개신교 목사인 폭스와 폴린 유대교 랍비인 구드 그리고 카톨릭 신부 워싱톤입니다. 그들은 모두 구명재킷이 있었는데 남에게 입 혀주고 끝까지 구조작업을 돕다가 배가 침몰할 때 손에 손을 잡고 기도 하는 모습을 몇 명의 생환자가 목격했던 것입니다. 종교를 넘어선 그들의 희생과 기도는 미국의 자유와 정신을 상징하는 예로서 오늘날까지 기념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산하는 것은 크고 많은 것이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은밀 하게 짊어졌던 십자가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그 입 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53:7) 하나님이 계산하는 것은 여러분의 피나는 노력으로 쌓아올린 부귀영화 같은 것들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소리 없이, 그리고 남김 없이 희생하며 나누어 준 작은 것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세상에서 부요함 가운데 너털 거리는 웃음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하찮아 보이는 사람들을 위해 소리 없이 흘리는 여러분의 뜨거운 눈물방울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웃의 아픔과 고통을 위한 작은 희생은 아무리 작아도 아 름답고 강한 것입니다. 고난받는 이웃을 위해 지극히 작은 희생이라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지 못한 불행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람이 우울하고 슬프고 외로운 것은 이웃을 위해 지 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희생하는 경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는 예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아무리 작은 고통과 고난일지라도 이웃과 함께 할 때 그 순간부터 아픔과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샘솟는 하나님 나라가 체험될 것입니다. 희생적인 사람은 누구나 좋 아하고 이기적 인간은 외로워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의 마음을 가 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의 마음은 이웃을 위해 십자가를 지는 생활로 나타납니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질뿐만 아니라 이웃과 국가를 위한 십자가를 걸머질 때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서부터 이루어가게 됩니다. 지금 마음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지금 예수 믿으시고 예수의 마음 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 까 예수 믿고 예수의 마음을 가지고 나라 민족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바랍니다. 17세기 영국이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심각할 정도로 부패했을 때 영국사회를 오늘날의 사회로 변화시킨 것은 옥스퍼드대학의 대학생운 동, 바로 그 유명한 요한 웨슬레의 속회를 통한 복음운동이었습니다. 그 것이 우리 감리교회의 시작이었고 초만원을 이루었던 감옥마다 텅텅 비 우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산업사회의 부강한 나라를 이룩하게 만드는 겨자씨, 누룩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작은 기도와 전도는 겨자씨 와 누룩과 같이 역사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 교회와 교회에서 행하는 것들이 작고 하찮아 보여도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겨자씨 한 알 같으나 지역사회와 세계를 변화시키는 여러분과 우리 교회가 되어 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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