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문으로 들어가는자 (눅13:22-30)
본문
오늘 아침도 우리 하나님께서 놀라우신 은혜로 함께 하셔서 오늘 말씀이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에게 큰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어떤사람이 예수님께 나아가서 23절에 "구원얻는자가 적으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도대체 구원얻는 사람이 어느정도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3가지 내용으로 대답을 해주십니다.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의미가 심오하고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대답은 구원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대해서 예상밖의 결과가 나올수 있다.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일종의 경고입니다. "나는 구원받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또 "저 사람도 틀림없이 구원받았겠다." 그렇게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심판의 시간이 됐을 때 뚜껑을 열어보니까 전혀 틀렸다는 그런 내용의 말씀을 25절에 하고 계십니다. "문을 닫았다"는 말은 심판을 말하는데, 문을 닫았을 때에 문안에 들어온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문밖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되는데, 문이 닫히고 보니까 내가 어디에 있느냐 문안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문이 닫힌 다음에 내가 서있는 자리를 본즉 문안이 아니고 문밖이었다 하는 놀라운 너무도 충격적인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문안에 구원받을 줄 알았는데, 문밖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고 이유를 제기한다는 것이 바로 26절입니다. 그때 문밖에 떨어진 사람들이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당연히 저는 구원받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고 말을 한 것입니다. 주와 더불어 먹고 마셨다 또 주님께서 가르치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보든지 신자요, 구원받은 사람같이 됐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무서운 사실은 심판의 날에 마태복음 7장 21에서 23절을 보면 여기 말씀과 병행한는 말씀인데,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21절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구원을 얻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가운데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 중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21절, 23절을 보면 더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와서 주여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나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는 말은 저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붸아냈다 하니까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대해서 "불법을 행한자들아! 나는 너를 도저히 알지못한다 나를 떠나라"고 할 자가 많이 있을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땅에 저같은 목사들, 주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 또 꽤 이름이 나있는 사람들 중에서 문밖으로 떨어질 사람이 많이 있을것이라고 주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느냐 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느냐하는 주님의 대답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죽어서 천국가는 구원뿐만 아니고, 이 문제많은 세상 이 환란과 고통이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안에 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오늘 바로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구원을 누가 받느냐 하는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또 명백하게 대답을 하십니다. 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러면 구원을 얻는다 생명을 얻는다 요즘에 얼마나 취직하기가 어려운지 하늘에 별따기 같이 참 좁은 문입니다. 신문을 보니까 7급공무원 시험을 보는데 수배대 일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7급검찰직에 지원한 사람이 뭐 칠백 몇대 일이다. 정말 좁은 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을 얻기 원하고 구원받기 원하거든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좁은문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좁은문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를들면 "백대 일이다"라는 말은 뭡니까 아흔아홉을 밀쳐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흔 아홉명이 탈락을 해야, 밀쳐내야 그래야 내가 들어가는, 아흔아홉명은 죽어야, 그래야 나는 사는 이게 세상에서 말하는 좁은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좁은문은 누구를 밀쳐내고 누구를 떨어뜨리고 그리고 내가 들어가는 그런 문이 아닙니다. 좁은 문은 좁은 문이로되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이 좁은 문은 누구든지 원한는 자는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문입니다. 그게 좁은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그러니까 좁은 문이되 또한 아주 넓은 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참 기쁜 소식입니다. 이 괴로움많은 세상에 그 많은 사람이 꺼꾸러져 죽어가는 세상에서 사는 길이 있다. 나와 내 가정이 사는 길이있다. 죽었던 자가 다시 사는 구원의 길이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항상듣는 말씀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지만 정말로 사는길이 있다 할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 쓰러진 사람 무너진 사람 파산된 사람이 다시 사는길이 있다 한다면 그 길을 안가겠습니까 벌떼같이 모여들거 아닙니까 뭐 7급공무원하기 위해서 칠백 몇대일 정도가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 길이 구원의 길이고, 사는 길이라면 그 길로 그 문으로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크고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으니라." 하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고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분명히 생명의 문이 있는데 그 생명의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기 원해요. 다 살기를 원합니다. 다 구원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다만 그 문은 좁아요 들어가기가 좀 힘듭니다. 길이 좁고 협착해요. 자 그래서 생명을 얻기 원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면서도 길이 좁으니까 협착하니까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 두가지 모순 상반된 사실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생명을 얻기원한는 사람은 많으나 그러나 그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적다." 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살기를 원하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좁은문으로 들어와야 만이 된다."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어제 어느 형제하고 갑자기 만나게 됐습니다. 그 형제는 완전히 모든 삶이 무너진 분입니다. 그분에게 제가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사는 길이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제가 그래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데 예수님을 믿을 때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독하게 아주 강하게 마음을 먹지 아니하면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나하고 약속합시다." 하니까 그 분도 저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두고 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다 "나는 죽게 됐다 소망이 없다." 자포자기 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구원의 문, 생명의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런 문은 좁은문입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우리 모두다 그 문으로 들어가서 구원과 생명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문이 뭐냐 그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그 문이라는게 어디있느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도대체 생명의 문, 좁은문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10장 8절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곧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이르는 길이고 진리이고 문이라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3장 8절에 "내가 네 앞에 열린문을 열어두었다." 열린 문, 생명의 문, 형통의 문을 네 앞에 열어두었다. 고린도전서 16장 9절에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을 내가 열어둔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좁은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자, 예수님을 붙잡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안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이 좁은문입니다. 그 예수님안에서 사는 사람이 반드시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식하시고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은 좁은문, 생명의 문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이 세 번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게 생명의 문이니라" 그러시면서 예수님 마음에 슬픔이 있습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고 말씀한 그 말씀속에는 굉장한 예수님의 슬픔이 안타까움이 들어있습니다. 무슨뜻인가 하면 좁은 문으로 생명의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 까지는 참 잘했습니다. 그러나 좁은문 생명의 문으로 들어왔으나 그 문턱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모습 그 문턱에서 앉은뱅이처럼 거기 주저 앉아서 그렇게 보내는 세월이 몇해나 됐느냐 이겁니다. 생명의 문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찌해서 그 생명의 문안으로 깊이깊이 들어오질 못하고 생명의 문턱을 넘어선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도 초보운전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초보운전하고 슬슬 차 몰고 다니니까 어떤 집사님이 저를 보고 뭐 욕을 할라고 했다내요 "어떤사람이 저렇게 차를 느릿느릿 몰고 가는고 바빠죽겠는데… 그래서 옆으로 와서 누가 저렇게 운전하는고 한마디 해줄려고 하니까 제가 앉아 있어서 그냥 도망가버렸다 그럽디다." 사실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운전을 하다 보면 초보운전이 천천히 가면 그러잖아요. 외국에서는 웃어준다고 그럽디다. 초보운전이 가면 웃어주고 손짓해주고 그러는데 좌우간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지금은 붙이게 돼있는데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조심조심 운전하는 그 초보운전을 언제쯤이야 딱지를 떼야하는 것입니까 빨리 떼야지요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생명의 문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언제까지 문턱에서만이 머뭇거리고 앉아있어야 하느냐는겁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에 "때가 오래이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어찌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초보딱지도 못떼고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자니 언제까지 초보로 언제까지 갓난아이로 머물러 있을것이냐!" 하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마땅히 학교에 들어갔으면 때가되면 1학년이 2학년이 되고 2학년이 3학년이 되야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 무한한 은혜와 사랑과 진리의 세계속에 들어왔는데 계속 가장자리에만 앉아있는것인가! 참 이상하다 왜 더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이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좁은 문만 들어서는것만이 아니고 그 원어의 뜻은 그렇습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라." 안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라 그리고 힘쓰라고 탖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전력투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에 박세리라고 하는 젊은 딸이 미국에서 골프 챔피언이 됐는데 기적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딸이 그런 챔피언을 따기까지 어떻게 했다고 그럽니까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고 그러잖아요. 여기서 힘쓴다는 말은 힘만 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골프체를 어떻게 스윙하느냐, 공을 어떻게 놓느냐, 몸을 어떤 각도로 트느냐, 힘의 강약을 어떻게 하느냐, 뭐 별별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이모저모로 해 보는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쓴다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힘쓰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되 힘써서 믿으라는것입니다. 생명의 문으로 들어왔는데 언제까지 문턱에서만 머뭇거리고 있겠느냐! 그러지 말라. 안으로 깊이 힘써서 열심히 들어와라. 저 무한한 생명과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들어왔는데 왜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힘쓸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좋아서 그럽니다. 나는 예수님을 왜 열심히 믿는고 하니 좋아서 그렇습니다. 내게 유익이라 내가 사는 길이고 내 가정이 사는길입니다. 누가 날 살려줍니까 가만히 있는데 내 가정을 살려줍니까 세상은 그렇게 어리숙한 세상이 아닙니다. 나 살고 싶어요 그리고 내 가정 살고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느냐 사는길이 뭡니까 이제 그 길을 찾았습니다. 하니님이 나와 내 가정을 살려주십니다. 지켜주시고 복되게 해 주시는데 왜 즐겁지 않겠습니까! 좋아서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힘써서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섬기면서 살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말대로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좋아서 그러는것입니다.
(2). 장애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는길! 이 섬김의 길을 가지 못하게 주저앉게 만드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장애물들이 있는것입니다. 쉬운게 아닙니다. 이건 현실입니다. 모든게 그렇잖아요. 좀 좋은일을 해볼려고 하십시오.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저 앉아야 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장애물이 있어요. 있으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깨버리는 것입니다. 극복하고 이기고 나가는 것이지 왜 주저앉아요. 그래서 힘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애물은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속에 있습니다. 사람이라는거 항상 게으르고 안이하게 적당하게 땀을 안 흘리고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나를 주저앉게 만들고 무너지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내 속에서 자꾸자꾸 게으르고 적당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쳐 부셔야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면 이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힘쓰고 힘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땀흘리고 되지 않는게 어디있습니까 예수믿고 사는 것이 쉬운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애물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좀 잘 믿고 좀 진리 안에서 살려고 하면은 수 많은 장애물들이 밖에서 옵니다. 시험이 옵니다. 유혹이 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갈등이 생깁니다. 부딪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포기해요. 적당히 살아버려요. 그러면 안되지요. 그럴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장애물은 교회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나로 하여금 실족하게 만들고 상처받게 만들고 또 주저앉게 만드는 것이 교회안에도 있는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 못믿겠다 누구 때문에 나 그만두겠다! 그럴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힘쓰고 힘쓰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그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 장애물을 반드시 넘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저도 한때는 예수님을 몰랐을 때에는 예수님을 우습게 알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멸시했고, 예수님의 이름에 침을 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압니다.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이라는걸. 이 세상에 사는날 동안에 내 연장자에게 나는 고개를 숙입니다. 어떤 자리에 가서 나보다 더 상급자가 있다면 그분 앞에 고개 숙입니다. 이게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죄에서 구속하신 나의 구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내가 인간적인 도리로 나보다 연장자 선배 상급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경의를 표하고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내가 어찌 나의 하나님 나의 주 예수님을 최선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경배하고 섬기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습니다. 영화롭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모든 마음 성품 내 지성과 의지와 감정과 모든 시간 모든 삶속에서 나는 나의 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경배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이것이 곧 생명의 길입니다. 승리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말씀이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마음이 안타까운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좁은문으로 들어와 힘써 들어와 열심히 들어와라 더 이상 이제 문턱에 주저앉아 있지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시간 이 말씀이 여러분 영혼속에 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극이 되시고 도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문제가 뭐냐 아 그렇구나! 내가 좁은문 생명의 문으로 들어온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오셨잖아요! 넓은 문 다 마다하시고 제쳐놓으시고 이 좁은문으로 오셨잖아요. 이 길이 생명의 길인지 아시기 때문에 오신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뭡니까 아! 문턱에 머물러 있었구나!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어리석게 살아야 돼나 허락하신 저 생명의 세계로 은혜의 세계로 저 깊은 진리의 세계속에 왜 바라만 보고 나는 여기 앉아 있는가!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나보다 늦게 이 좁은문에 들어온 사람이 나를 추월하네요. 나보다도 훨씬 앞서가 버립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있지! 좁은문으로 안 들어왔다면 몰라도 들어왔는데도 왜 이러나! 참 이상하다 그거야 말로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래도 주저앉아 있을것이냐 이제 일어설 때가 되지 않았느냐 시간이 많지 않아. 인생이라는 것은 시행착오가 없는거야 모든 일은 다시 반복할 수 있지만 인생은 한번 흘러가 버리면 세월은 다시 찾을 수 없는거야 지금까지 흘러가버린 세월도 너무도 억울하고 안타까운데 앞으로 남은 세월 만큼은 주저앉지 마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목에 힘을 얻어서 오늘부터 깨어 일어나 저 은혜의 생명의 깊은 세계로 달려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에게 큰 위로와 소망과 용기를 북돋아주시는 축복의 말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 어떤사람이 예수님께 나아가서 23절에 "구원얻는자가 적으니이까" 라고 묻습니다. 도대체 구원얻는 사람이 어느정도 될 것인가 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3가지 내용으로 대답을 해주십니다. 질문은 간단한데 대답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의미가 심오하고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대답은 구원받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에 대해서 예상밖의 결과가 나올수 있다.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일종의 경고입니다. "나는 구원받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또 "저 사람도 틀림없이 구원받았겠다." 그렇게 예상을 하고 있었는데 막상 심판의 시간이 됐을 때 뚜껑을 열어보니까 전혀 틀렸다는 그런 내용의 말씀을 25절에 하고 계십니다. "문을 닫았다"는 말은 심판을 말하는데, 문을 닫았을 때에 문안에 들어온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이고, 문밖에 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되는데, 문이 닫히고 보니까 내가 어디에 있느냐 문안에 당연히 있을 줄 알았는데 문이 닫힌 다음에 내가 서있는 자리를 본즉 문안이 아니고 문밖이었다 하는 놀라운 너무도 충격적인 결과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문안에 구원받을 줄 알았는데, 문밖에 서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왜 이렇게 됐습니까" 하고 이유를 제기한다는 것이 바로 26절입니다. 그때 문밖에 떨어진 사람들이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당연히 저는 구원받는 사람이 아닙니까" 하고 말을 한 것입니다. 주와 더불어 먹고 마셨다 또 주님께서 가르치는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보든지 신자요, 구원받은 사람같이 됐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무서운 사실은 심판의 날에 마태복음 7장 21에서 23절을 보면 여기 말씀과 병행한는 말씀인데, 두 종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21절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라고 주님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보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다 구원을 얻는게 아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가운데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 중에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있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21절, 23절을 보면 더 무서운 말씀이 나옵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와서 주여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했나이다." 이런 사람들이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는 말은 저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능력을 행하고 귀신을 붸아냈다 하니까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사람들에게 대해서 "불법을 행한자들아! 나는 너를 도저히 알지못한다 나를 떠나라"고 할 자가 많이 있을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이 땅에 저같은 목사들, 주의 종이라고 하는 사람들, 또 꽤 이름이 나있는 사람들 중에서 문밖으로 떨어질 사람이 많이 있을것이라고 주님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느냐 어떤 사람이 구원을 얻느냐하는 주님의 대답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죽어서 천국가는 구원뿐만 아니고, 이 문제많은 세상 이 환란과 고통이 많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안에 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세상을 이기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구원은 오늘 바로 받아야 됩니다.
그런데 이런 구원을 누가 받느냐 하는것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또 명백하게 대답을 하십니다. 2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러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러면 구원을 얻는다 생명을 얻는다 요즘에 얼마나 취직하기가 어려운지 하늘에 별따기 같이 참 좁은 문입니다. 신문을 보니까 7급공무원 시험을 보는데 수배대 일이라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7급검찰직에 지원한 사람이 뭐 칠백 몇대 일이다. 정말 좁은 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을 얻기 원하고 구원받기 원하거든 좁은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셨는데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좁은문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좁은문하고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를들면 "백대 일이다"라는 말은 뭡니까 아흔아홉을 밀쳐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흔 아홉명이 탈락을 해야, 밀쳐내야 그래야 내가 들어가는, 아흔아홉명은 죽어야, 그래야 나는 사는 이게 세상에서 말하는 좁은문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좁은문은 누구를 밀쳐내고 누구를 떨어뜨리고 그리고 내가 들어가는 그런 문이 아닙니다. 좁은 문은 좁은 문이로되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며 이 좁은 문은 누구든지 원한는 자는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문입니다. 그게 좁은문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그러니까 좁은 문이되 또한 아주 넓은 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참 기쁜 소식입니다. 이 괴로움많은 세상에 그 많은 사람이 꺼꾸러져 죽어가는 세상에서 사는 길이 있다. 나와 내 가정이 사는 길이있다. 죽었던 자가 다시 사는 구원의 길이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여러분 우리가 항상듣는 말씀이라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가지만 정말로 사는길이 있다 할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다 쓰러진 사람 무너진 사람 파산된 사람이 다시 사는길이 있다 한다면 그 길을 안가겠습니까 벌떼같이 모여들거 아닙니까 뭐 7급공무원하기 위해서 칠백 몇대일 정도가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 길이 구원의 길이고, 사는 길이라면 그 길로 그 문으로 구름같이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마태복음 7장 13절 14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은 크고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이가 적으니라." 하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이고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분명히 생명의 문이 있는데 그 생명의 문으로 사람들이 들어가기 원해요. 다 살기를 원합니다. 다 구원받기 원합니다.
그런데 다만 그 문은 좁아요 들어가기가 좀 힘듭니다. 길이 좁고 협착해요. 자 그래서 생명을 얻기 원하고 구원받기를 원하면서도 길이 좁으니까 협착하니까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 두가지 모순 상반된 사실앞에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 "생명을 얻기원한는 사람은 많으나 그러나 그 좁은문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적다." 했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살기를 원하고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좁은문으로 들어와야 만이 된다."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어제 어느 형제하고 갑자기 만나게 됐습니다. 그 형제는 완전히 모든 삶이 무너진 분입니다. 그분에게 제가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제가 그랬습니다." 사는 길이 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제가 그래습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되는데 예수님을 믿을 때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합니다. 독하게 아주 강하게 마음을 먹지 아니하면 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나하고 약속합시다." 하니까 그 분도 저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두고 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다 "나는 죽게 됐다 소망이 없다." 자포자기 하지 마십시오. 분명히 구원의 문, 생명의 문이 열려있습니다. 그런 문은 좁은문입니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는 문입니다. 우리 모두다 그 문으로 들어가서 구원과 생명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 문이 뭐냐 그문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그 문이라는게 어디있느냐 동쪽이냐 서쪽이냐 남쪽이냐 북쪽이냐 도대체 생명의 문, 좁은문이 무엇인가 요한복음 10장 8절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 곧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이르는 길이고 진리이고 문이라 말씀하십니다. 계시록 3장 8절에 "내가 네 앞에 열린문을 열어두었다." 열린 문, 생명의 문, 형통의 문을 네 앞에 열어두었다. 고린도전서 16장 9절에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을 내가 열어둔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까 좁은문으로 들어간다는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자, 예수님을 붙잡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안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경배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곧 예수님이 좁은문입니다. 그 예수님안에서 사는 사람이 반드시 구원을 받고 생명을 얻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그런데 예수님께서 탄식하시고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는 것은 좁은문, 생명의 문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이 이 세 번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그게 생명의 문이니라" 그러시면서 예수님 마음에 슬픔이 있습니다.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하고 말씀한 그 말씀속에는 굉장한 예수님의 슬픔이 안타까움이 들어있습니다. 무슨뜻인가 하면 좁은 문으로 생명의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 까지는 참 잘했습니다. 그러나 좁은문 생명의 문으로 들어왔으나 그 문턱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하고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모습 그 문턱에서 앉은뱅이처럼 거기 주저 앉아서 그렇게 보내는 세월이 몇해나 됐느냐 이겁니다. 생명의 문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어찌해서 그 생명의 문안으로 깊이깊이 들어오질 못하고 생명의 문턱을 넘어선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저도 초보운전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초보운전하고 슬슬 차 몰고 다니니까 어떤 집사님이 저를 보고 뭐 욕을 할라고 했다내요 "어떤사람이 저렇게 차를 느릿느릿 몰고 가는고 바빠죽겠는데… 그래서 옆으로 와서 누가 저렇게 운전하는고 한마디 해줄려고 하니까 제가 앉아 있어서 그냥 도망가버렸다 그럽디다." 사실 그런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운전을 하다 보면 초보운전이 천천히 가면 그러잖아요. 외국에서는 웃어준다고 그럽디다. 초보운전이 가면 웃어주고 손짓해주고 그러는데 좌우간 초보운전이라는 딱지를 지금은 붙이게 돼있는데 초보운전 딱지를 붙이고 조심조심 운전하는 그 초보운전을 언제쯤이야 딱지를 떼야하는 것입니까 빨리 떼야지요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생명의 문 안으로 들어오기는 했는데 언제까지 문턱에서만이 머뭇거리고 앉아있어야 하느냐는겁니다. 히브리서 5장 12절에 "때가 오래이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어찌하여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초보딱지도 못떼고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는자니 언제까지 초보로 언제까지 갓난아이로 머물러 있을것이냐!" 하고 하나님께서 슬퍼하십니다. 마땅히 학교에 들어갔으면 때가되면 1학년이 2학년이 되고 2학년이 3학년이 되야하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 무한한 은혜와 사랑과 진리의 세계속에 들어왔는데 계속 가장자리에만 앉아있는것인가! 참 이상하다 왜 더 깊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가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이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은 좁은 문만 들어서는것만이 아니고 그 원어의 뜻은 그렇습니다. "안으로 깊이 들어가라." 안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라 그리고 힘쓰라고 탖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전력투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번에 박세리라고 하는 젊은 딸이 미국에서 골프 챔피언이 됐는데 기적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딸이 그런 챔피언을 따기까지 어떻게 했다고 그럽니까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고 그러잖아요. 여기서 힘쓴다는 말은 힘만 쓰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골프체를 어떻게 스윙하느냐, 공을 어떻게 놓느냐, 몸을 어떤 각도로 트느냐, 힘의 강약을 어떻게 하느냐, 뭐 별별 머리를 쓰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이모저모로 해 보는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힘쓴다는 것이 무엇인가하면 열심히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못해 억지로 힘쓰는 것은 효과가 없습니다.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되 힘써서 믿으라는것입니다. 생명의 문으로 들어왔는데 언제까지 문턱에서만 머뭇거리고 있겠느냐! 그러지 말라. 안으로 깊이 힘써서 열심히 들어와라. 저 무한한 생명과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들어왔는데 왜 문턱에서 머뭇거리고 있느냐 다 안으로 안으로 들어와라!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힘쓸 세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좋아서 그럽니다. 나는 예수님을 왜 열심히 믿는고 하니 좋아서 그렇습니다. 내게 유익이라 내가 사는 길이고 내 가정이 사는길입니다. 누가 날 살려줍니까 가만히 있는데 내 가정을 살려줍니까 세상은 그렇게 어리숙한 세상이 아닙니다. 나 살고 싶어요 그리고 내 가정 살고싶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느냐 사는길이 뭡니까 이제 그 길을 찾았습니다. 하니님이 나와 내 가정을 살려주십니다. 지켜주시고 복되게 해 주시는데 왜 즐겁지 않겠습니까! 좋아서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힘써서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을 의지하고 그분을 붙잡고 그분을 섬기면서 살것입니다. 여호수아의 말대로 "나와 내 집은 오직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좋아서 그러는것입니다.
(2). 장애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는길! 이 섬김의 길을 가지 못하게 주저앉게 만드는 원수들이 있습니다. 장애물들이 있는것입니다. 쉬운게 아닙니다. 이건 현실입니다. 모든게 그렇잖아요. 좀 좋은일을 해볼려고 하십시오. 반드시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저 앉아야 됩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장애물이 있어요. 있으면 넘어가는 것입니다. 깨버리는 것입니다. 극복하고 이기고 나가는 것이지 왜 주저앉아요. 그래서 힘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애물은 두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속에 있습니다. 사람이라는거 항상 게으르고 안이하게 적당하게 땀을 안 흘리고 살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것이 바로 나를 주저앉게 만들고 무너지게 만드는 원수입니다. 내 속에서 자꾸자꾸 게으르고 적당하게 살려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을 쳐 부셔야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 몸을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면 이 길을 갈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새롭게 힘쓰고 힘쓰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땀흘리고 되지 않는게 어디있습니까 예수믿고 사는 것이 쉬운줄 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장애물은 밖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좀 잘 믿고 좀 진리 안에서 살려고 하면은 수 많은 장애물들이 밖에서 옵니다. 시험이 옵니다. 유혹이 옵니다. 핍박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갈등이 생깁니다. 부딪칩니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포기해요. 적당히 살아버려요. 그러면 안되지요. 그럴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장애물은 교회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나로 하여금 실족하게 만들고 상처받게 만들고 또 주저앉게 만드는 것이 교회안에도 있는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예수 못믿겠다 누구 때문에 나 그만두겠다! 그럴수 없습니다. 그런 것을 넘어가야 됩니다. 그래서 힘쓰고 힘쓰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그 어떤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 장애물을 반드시 넘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게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저도 한때는 예수님을 몰랐을 때에는 예수님을 우습게 알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멸시했고, 예수님의 이름에 침을 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나는 압니다. 예수님이 어떠하신 분이라는걸. 이 세상에 사는날 동안에 내 연장자에게 나는 고개를 숙입니다. 어떤 자리에 가서 나보다 더 상급자가 있다면 그분 앞에 고개 숙입니다. 이게 인간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죄에서 구속하신 나의 구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만왕의 왕이십니다. 내가 인간적인 도리로 나보다 연장자 선배 상급자에게 고개를 숙이고 경의를 표하고 복종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내가 어찌 나의 하나님 나의 주 예수님을 최선을 다하고, 온 마음을 다해서 예수님을 경배하고 섬기고 그 분을 영화롭게 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한 것입니다. 저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을 잘 섬기고 싶습니다. 영화롭게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서 모든 마음 성품 내 지성과 의지와 감정과 모든 시간 모든 삶속에서 나는 나의 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경배해드리고 싶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이것이 곧 생명의 길입니다. 승리하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오늘 말씀이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께서 참으로 마음이 안타까운 사실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좁은문으로 들어와 힘써 들어와 열심히 들어와라 더 이상 이제 문턱에 주저앉아 있지말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시간 이 말씀이 여러분 영혼속에 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극이 되시고 도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내 문제가 뭐냐 아 그렇구나! 내가 좁은문 생명의 문으로 들어온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 오셨잖아요! 넓은 문 다 마다하시고 제쳐놓으시고 이 좁은문으로 오셨잖아요. 이 길이 생명의 길인지 아시기 때문에 오신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제 문제가 뭡니까 아! 문턱에 머물러 있었구나!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어리석게 살아야 돼나 허락하신 저 생명의 세계로 은혜의 세계로 저 깊은 진리의 세계속에 왜 바라만 보고 나는 여기 앉아 있는가!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잖아요 .나보다 늦게 이 좁은문에 들어온 사람이 나를 추월하네요. 나보다도 훨씬 앞서가 버립니다. 나는 왜 이렇게 있지! 좁은문으로 안 들어왔다면 몰라도 들어왔는데도 왜 이러나! 참 이상하다 그거야 말로 정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래도 주저앉아 있을것이냐 이제 일어설 때가 되지 않았느냐 시간이 많지 않아. 인생이라는 것은 시행착오가 없는거야 모든 일은 다시 반복할 수 있지만 인생은 한번 흘러가 버리면 세월은 다시 찾을 수 없는거야 지금까지 흘러가버린 세월도 너무도 억울하고 안타까운데 앞으로 남은 세월 만큼은 주저앉지 마시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목에 힘을 얻어서 오늘부터 깨어 일어나 저 은혜의 생명의 깊은 세계로 달려가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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