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부류의 종 (눅12:35-48)
본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천국에 대해 말할 때 책임의 문제 와 관련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천국은 책임을 묻는 세계라 고 할 수 있다. 주인은 자기 소유를 맡기고 종은 그 맡은 것 을 가지고 활용하다가 주인에게 반납하는 관계로 나타난다. 다 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은 사람은 각기 주인에 게 계산할 책임을 지는 것이다. 많은 달란트를 가진 자들은 주 인과의 계산에 있어 착하고 충성되다는 칭찬을 들었지만, 한 달 란트를 가진 사람은 주인의 분노를 산다. 또 천국은 열 처녀의 비유에서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준 비있는 사람에게만 기회를 준다. 이 준비라는 개념 역시 책임 의 개념과 서로 통한다. 신랑을 맞이할 열 처녀들은 등불을 켜 서 신랑이 오기를 기다릴 책임이 있는 것이다. 천국은 보상의 질서가 확립된 세계이다. 계산에 성공한 두 사람은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서 보다 많은 것으로 보상을 받았다. 그러나 계산에 실패한 한 사람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서 가진 것까지 빼앗기고 추방되었다. 등에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는 기쁨 에 참여했지만, 나머지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연고 로 신랑을 맞지 못하고 슬피 울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천국에서는 맡은 일을 증진시키고 확장하는 사람 은 더 큰 축복에 참여하나, 맡은 일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향상 시키지도 못하고 그대로 보존하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으로 탄핵 받고 저주받을 것이다.
1.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종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하는 종들은 대부 분 교회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문제는 "마음에 생각하 기를 주인이 더디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는"(45절)데만 열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태 도는 불순종에서 나오기 보다는 의심에서 비롯된다. 성경에 말하기를 "주의 강림 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 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 할때와 같이 그 냥 있다"(벧후 3:4)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말 을 하는 사람은 기롱하는 자로서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며 기 롱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밝혀 주고 있다. 오늘도 그렇다. 만일 주님이 이제 곧 다시 오신다면 당황할 사람들이 많 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롱하는 자들이기 때 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 시대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 했다. 기롱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그들은 정욕을 쫓아 행한다 고.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웃는다 고 하였다. 그래서 현대교회의 특징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서는 별로 강조하지 아니고 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여러 가지 가 있다. 가령, 새로 나는데 대하여 신약에서는 아홉번 말했다. 세례에 대해서는 20번, 회개에 대해서는 70번, 그리고 주님 이 다시 오심에 대해서는 신약에만 380번을 말했다. 즉 이 사실 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분명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모 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입을 모아 주님의 다시오심을 말하 고 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 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 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내가 너희를 고아 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내가 갔다 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 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마 14:3, 18, 28). 이 말씀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 게 친히 들려주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그 자신 의 재림을 약속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감람산에서 그리스도 의 승천 광경에 넋을 잃고 쳐다보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 시리라"(행 1:11)고 선언했다. 바울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게 보낸 편지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 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라고 그리스도 의 재림에 대해 예고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이 확실하 고 또 분명한 이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의 그리스도를 맞 을 준비를 해야 한다. 신랑을 맞기 위해 똑같이 기다리던 열 처녀의 비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열 처녀 중에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는데 성 공하지만 다섯 처녀는 실패하였다. 오늘의 비유에서는 주인 을 기다리는 종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경우에서든지 승패 의 비결은 바로 등불을 밝히는데 있다. 등불을 밝히려면 먼저 등과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를 갖 춘 후 깨어서 기다려야 한다. 이 경우에 깨어 있지 못하고 잠 이 든다면 준비했던 등의 기름은 마르고 불은 꺼지게 되 어 그 등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 를 하지 못하면 주님과 함께 영광의 나라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무서운 경고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 순 간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입장에서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의 등불이 꺼 져 있지는 않은가
2. 알지 못하여 행치 아니한 종 "모르고 저지른 일인데 무슨 죄가 되겠느냐"라고 혹 생각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 한 종도 적게 맞으리라"고 경고하신다. 알지 못했다고 해서 면 책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과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지 못하는 자 들은 이 사실을 이제라도 알고 기억하라! 주님이 오실 때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 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 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이다. 두 사람이 공장에서 일하다 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이다. 두사람이 사 무를 보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이다. 두 사람이 잠을 자다가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하나를 남겨 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사람에게 분명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 데, "사람이 한번 죽는 것과,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다. 성경에 보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는 두책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책들"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 날때 부터 이름이 적혀지고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일일히 그 책 에 적힌다. 우리가 범죄한 죄, 우리의 생각한 것까지 그 책 에 적힌다. 숨길 수 없다.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 나는 그런일 행한적이 없 습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고 말하면 주님은 "그 책을 펴라" 고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 책에는 우리의 행한 일이 다 그대 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까지 다 기록되어 있다. 그때 우리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밖 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무릎이 그앞에 무릎을 꿇고 모 든 혀가 고백하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때이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고 해도 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책"이 있다. 그 이름은 "생명책"이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이름이 그 책에 기록 된다. 과거에 지은 죄가 다 지워지고 만다. 다 말살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혹시 기억할 수 있으 나 하나님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 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나의 모든 죄 의 값을 치루셨다. 우리 대신 그가 심판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도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용서 할 수 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옮겨지는 순간 우리의 죄는 말갛게 씻어진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알고 행한 종 이들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 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준다. 깨어 기다리다가 주 인이 문을 두드렸을 때 즉시 주인을 영접하는 종들이다. 많 이 받은 자는 많이 바치고 적게 받은 자도 최선의 것을 바치는 그러한 종들이다. 충성에는 언제나 희생의 정신이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 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 라."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은 십자가를 요청한다. 십자가의 희 생 없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를 희생 함이 없이 일의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다. 기독교는 희생의 종교이다. 나는 죽어야겠고 너는 살아야 겠다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많은 희생자를 내던 시대의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였고, 많은 재물을 바치고 헌납하는 교회 가 부흥하는 교회였다. 순교자의 피는 하늘에 호소하였고 우리가 드린 제물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는 것이다. 참으 로 참되고 충실한 종은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희생적인 봉사가 요셉으로 하여금 노예의 신분에서 총리 의 신분으로 향상시켰던 것이다. 충성이란 마음을 속임이 없이 정직하게 맡은 일을 수행하 되 보다 큰 발전과 전진과 성장이 있어야 한다.
충성하는 자, 책임을 완수하는 자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어야 한다.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종과 같아야 한다. 언제라도 주인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 어야 한다. 어디서라도 주인의 계산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순간도 해이한 정신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언제라도 예비하 고 있어야 한다. 인자가 언제 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긴장상태에 있지 않다. 어제도 그 만 오늘도 그만, 도무지 경각성이 희박하다. 맥이 풀리고 있다. 교회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예배시간에 늦어도 그 만 안늦어도 그만이다. 매사에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고 해이 한 정신상태의 소유자로 전락하고 있다. 실로 한심스러운 현상 이다. 이런 교회는 신랑의 도래에 놀라서 등불을 켜려하나 기 름 준비가 안되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슬피우는 신부와 같 이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교회는 주인이 돌아올 때 땅 에 파묻던 그대로 가지고 가서 계산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의 저 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맡은 일에 충성하고 자기에 게 맡겨진 일을 책임지고 수행하며 언제나 계획성 있고 준비 성 있게 일하여야 한다. 그러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 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나의 즐거움에 참예 할찌어다 내가 많 은 것으로 너에게 맡기리라"는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이다.
1. 알고도 행치 아니하는 종 주인의 뜻을 알고도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하는 종들은 대부 분 교회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문제는 "마음에 생각하 기를 주인이 더디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는"(45절)데만 열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이러한 태 도는 불순종에서 나오기 보다는 의심에서 비롯된다. 성경에 말하기를 "주의 강림 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있느 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 할때와 같이 그 냥 있다"(벧후 3:4)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말 을 하는 사람은 기롱하는 자로서 자기의 정욕을 쫓아 행하며 기 롱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밝혀 주고 있다. 오늘도 그렇다. 만일 주님이 이제 곧 다시 오신다면 당황할 사람들이 많 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사람들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롱하는 자들이기 때 문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 시대의 마지막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 했다. 기롱하는 사람들이 온다고. 그들은 정욕을 쫓아 행한다 고. 그리고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사람들을 향해 웃는다 고 하였다. 그래서 현대교회의 특징은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서는 별로 강조하지 아니고 있다. 신구약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여러 가지 가 있다. 가령, 새로 나는데 대하여 신약에서는 아홉번 말했다. 세례에 대해서는 20번, 회개에 대해서는 70번, 그리고 주님 이 다시 오심에 대해서는 신약에만 380번을 말했다. 즉 이 사실 이 얼마나 중요하고 얼마나 분명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모 든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입을 모아 주님의 다시오심을 말하 고 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 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 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내가 너희를 고아 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내가 갔다 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 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마 14:3, 18, 28). 이 말씀들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에 게 친히 들려주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이 그 자신 의 재림을 약속해 주셨다. 뿐만 아니라 감람산에서 그리스도 의 승천 광경에 넋을 잃고 쳐다보는 제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서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 시리라"(행 1:11)고 선언했다. 바울 또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게 보낸 편지에서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 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살전 4:16)라고 그리스도 의 재림에 대해 예고한 것을 볼 수 있다. 이 사실이 확실하 고 또 분명한 이상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재림의 그리스도를 맞 을 준비를 해야 한다. 신랑을 맞기 위해 똑같이 기다리던 열 처녀의 비유를 우리는 알고 있다. 열 처녀 중에서 다섯 처녀는 신랑을 맞는데 성 공하지만 다섯 처녀는 실패하였다. 오늘의 비유에서는 주인 을 기다리는 종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경우에서든지 승패 의 비결은 바로 등불을 밝히는데 있다. 등불을 밝히려면 먼저 등과 기름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를 갖 춘 후 깨어서 기다려야 한다. 이 경우에 깨어 있지 못하고 잠 이 든다면 준비했던 등의 기름은 마르고 불은 꺼지게 되 어 그 등은 아무 쓸모가 없게 된다. 곧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 를 하지 못하면 주님과 함께 영광의 나라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무서운 경고를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 순 간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입장에서 우리 자신들의 신앙생활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혹시라도 우리의 등불이 꺼 져 있지는 않은가
2. 알지 못하여 행치 아니한 종 "모르고 저지른 일인데 무슨 죄가 되겠느냐"라고 혹 생각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 한 종도 적게 맞으리라"고 경고하신다. 알지 못했다고 해서 면 책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뜻과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알지 못하는 자 들은 이 사실을 이제라도 알고 기억하라! 주님이 오실 때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 이라고 했다. 두 사람이 차를 타고 가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 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이다. 두 사람이 공장에서 일하다 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이다. 두사람이 사 무를 보다가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남겨둘 것이다. 두 사람이 잠을 자다가도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하나를 남겨 둘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도 사람에게 분명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 데, "사람이 한번 죽는 것과,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다. 성경에 보면 주님의 심판대 앞에는 두책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책들"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우리가 이 세상에 날때 부터 이름이 적혀지고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이 일일히 그 책 에 적힌다. 우리가 범죄한 죄, 우리의 생각한 것까지 그 책 에 적힌다. 숨길 수 없다. 우리가 심판대 앞에 서서 "주님 나는 그런일 행한적이 없 습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고 말하면 주님은 "그 책을 펴라" 고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 책에는 우리의 행한 일이 다 그대 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까지 다 기록되어 있다. 그때 우리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밖 에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무릎이 그앞에 무릎을 꿇고 모 든 혀가 고백하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늦은 때이다. 후회해도 소용없다. 이렇게 될줄은 몰랐다고 해도 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책"이 있다. 그 이름은 "생명책"이다.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의 이름이 그 책에 기록 된다. 과거에 지은 죄가 다 지워지고 만다. 다 말살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는 혹시 기억할 수 있으 나 하나님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 까닭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 어 버리셨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나의 모든 죄 의 값을 치루셨다. 우리 대신 그가 심판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에도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용서 할 수 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옮겨지는 순간 우리의 죄는 말갛게 씻어진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3. 알고 행한 종 이들은 지혜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 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준다. 깨어 기다리다가 주 인이 문을 두드렸을 때 즉시 주인을 영접하는 종들이다. 많 이 받은 자는 많이 바치고 적게 받은 자도 최선의 것을 바치는 그러한 종들이다. 충성에는 언제나 희생의 정신이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 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 라."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은 십자가를 요청한다. 십자가의 희 생 없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를 희생 함이 없이 일의 성공을 기대한다는 것은 심히 어리석은 일이다. 기독교는 희생의 종교이다. 나는 죽어야겠고 너는 살아야 겠다는 것이 기독교의 복음이다. 많은 희생자를 내던 시대의 교회가 부흥하는 교회였고, 많은 재물을 바치고 헌납하는 교회 가 부흥하는 교회였다. 순교자의 피는 하늘에 호소하였고 우리가 드린 제물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는 것이다. 참으 로 참되고 충실한 종은 자기를 희생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희생적인 봉사가 요셉으로 하여금 노예의 신분에서 총리 의 신분으로 향상시켰던 것이다. 충성이란 마음을 속임이 없이 정직하게 맡은 일을 수행하 되 보다 큰 발전과 전진과 성장이 있어야 한다.
충성하는 자, 책임을 완수하는 자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있어야 한다.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종과 같아야 한다. 언제라도 주인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 어야 한다. 어디서라도 주인의 계산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한 순간도 해이한 정신으로 살아서는 안된다. 언제라도 예비하 고 있어야 한다. 인자가 언제 올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의 교회는 긴장상태에 있지 않다. 어제도 그 만 오늘도 그만, 도무지 경각성이 희박하다. 맥이 풀리고 있다. 교회에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다. 예배시간에 늦어도 그 만 안늦어도 그만이다. 매사에 불성실하고 무책임하고 해이 한 정신상태의 소유자로 전락하고 있다. 실로 한심스러운 현상 이다. 이런 교회는 신랑의 도래에 놀라서 등불을 켜려하나 기 름 준비가 안되어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슬피우는 신부와 같 이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교회는 주인이 돌아올 때 땅 에 파묻던 그대로 가지고 가서 계산하는 악하고 게으른 종의 저 주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의 맡은 일에 충성하고 자기에 게 맡겨진 일을 책임지고 수행하며 언제나 계획성 있고 준비 성 있게 일하여야 한다. 그러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 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나의 즐거움에 참예 할찌어다 내가 많 은 것으로 너에게 맡기리라"는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이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