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을 아는 자 (눅12:41-48)
본문
오늘 본문에 두사람의 청지기가 나옵니다. 한사람은 악한 청지기로 자기 할 일 모르고 실패한 자 그래서 주인에게 엄벌을 받은 자입니다. 또한사람은 선한 청지기로 자기 할 일을 알고 그 일을 성취한 사람 곧 성공자입니다. 우리는 내가 할 일이 무엇이고 또 내가 할 그 일을 어떻게 성취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엔 불행하게도 자기가 할 일, 참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또 자기 할 일을 알면서도 그 일을 어떻게 성취하는지를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또 내가 해야 할 일이니 반드시 그 일을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와 같은 놀라운 진리를 알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반드시 성취하는 성공한 그런 은혜를 누리게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네 가지로 말씀을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내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나의 실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내 자신을 점점 밝히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내 자신을 알게 되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요 , 부족한 자요, 추악 한자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나를 점점 더 세워 주고 강하게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맨 처음 주시는 하나님 은혜는 오히려 나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나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려서 호도 껍질 깨뜨리듯이 깨뜨리십니다. 이것을 고린도후서 10장 4절은 '견고한 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깨진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또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자꾸 깨뜨리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깨져야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단단한 껍질을 깨고 자신의 실상을 들추어내서 자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시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내적 조명이라는 방법입니다. 어둠 속에 빛을 비춰 주시므로 그 어둠 속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심령 깊은 곳에 빛을 비춰 주십니다. 그리하면 내 속 깊은 곳에 들어 있는 참으로 나 스스로도 상상치 못했던 내자신의 추한 모습이 밝히 보여지게 됩니다. 에레미야 17장 9절에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 부패한 이것을 누가 아나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그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내자신의 실상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것 그게 바로 큰 은혜입니다. 그 보여 주시는 것이 곧 내적 조명입니다. 저도 그런 은혜를 받았을 때 참으로 제자신이 그렇게 추한 줄을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어요. 옷을 홀랑 벗겨 놓은 것 같은 기분이 아니 옷을 벗겨 놓은 정도가 아닙니다. 얼마나 처참 한지요. 그때 깨진겁니다. 박살난 거예요. "나"라고 하는 자신 만만하던 그 단단한 모습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아!"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런 존재이구나 ! 고개를 들수 없었어요. 바울도 바로 그런 내적 조명을 받은 겁니다. "죄인의 괴수다" 라고 고백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추악한 모습 앞에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누가복음 5장 8절에 "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창세기 18장 27절에 " 티끌 같은 나 "라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자기 자신이 작게 보이는지, 얼마나 자기 자신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이는지 티끌 같은 자기가 보이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게 굉장히 서글프고 허전하죠 " 나 "라고하는게 무너진다는 것, 자존심이 완전히 뮬밝혀 버린다는 것,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은혜예요.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앞으로 계속 주시는 은혜를 절대로 못 받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2) 파쇄라는 방법입니다. 문자 그대로 깨 버린다. 때로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깹니다. 그래서 손들어요. 어떤 사람은 하던 사업이 완전히 망가지게 만듭니다. 잘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흔들려요. 꼬입니다.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안 무너지려고 우리는 벌벌 떨거든요. 왜 완전히 무너지면 어쩝니까 우선 창피하죠, 부끄럽죠 얼굴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그러닌까 무너지는 것 기울어지는 벽을 기울지 않게 지주를 받치는 것처럼 그저 더 이상 안 무너지게 하려고 별 수단을 다쓰지만 하나님은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게 하는데 견뎌낼 장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쓰시는 방법이 가정입니다. 가정이 부부간에 자주 갈등이 생기게 만듭니다. 참 좋은 사람끼리 만났어요. 참 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여자가 부부가 됐는데 살아가는 도중에 이상하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부부간에 꼬입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별것도 아닌데 저도 살아보는 가운데 그런 일이 가끔 생깁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빌빌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마다 무엇을 봅니까 정말로 형편없는 자구나! " 나" 라고 하는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참 견딜 수 없어요. 그걸 받아 드린 다는 게 참으로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계속 터져나오게 만듭니다. 그렇게해서 "나"라고 하는 실상이 여지없이 드러나도록 하나님이 자꾸 이렇게 만드는 겁니다. 요한복음 3장 20절에 보면 " 사람들은 할 수 만 있으면 이런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빛을 미워하고 빛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요 빛으로 오면 들어나거든요. 빛으로 오면 자기의 악한 행위가 자기의 부끄러운 실상이 들어나닌까! 빛으로 안 오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주시려니 이 자리로 강제로 끌어오십니다. 반드시 이 자리에 세우십니다. 그래서 홀랑 벗겨 놓고 깨뜨려 놓으시고 오! 하나님 정말 저는 형편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얼마나 추해 보이는지 그것을 똑똑하게 보게 만드시는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에 여러분 자신이 참 작아 보일 때입니다. 자신만만 하던 게 다 어디로 가 버렸을 겁니다. 이제자신이 하나도 없어 왜 이렇게 문제가 자꾸 자꾸 엉키고 꼬이는지 바로 그러한 내자신의 초라한 모습, 외소한 모습, 추한 모습이 자꾸 보인다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걸 받아들여야 되고 또 그 자리에 반드시 들어가야 됩니다. 두 번째 단계 은혜는 이렇게 깨어지고 벗겨지고 추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이제는 하나님께서 품어 주시고 세워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닌까 하나님은 먼저 완전히 깨뜨려 놓고 짓이겨 놓은 다음 왜요 내가 죽어야 되닌까요. 완전히 "자아"라는 것이 죽어야 되닌가요. 완전히 밑바닥에 죽음. 무덤의 자리에 내려간 다음에 하나님이 부활의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겁니다. 세워 주십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은혜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이 은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부분, 어디를 치유해 주시는가 하면 이것을 우리가 꼭 알아야 됩니다. 쓴 뿌리입니다. 병든 성품, 끈질기고, 어그러지고, 비틀어지고 더 쉽게 말하면 아주 고약한 성질 이게 치유 받지 못하면 아무리 부유한 자라도 돈이 있고 없고 떠나서 우리 사람들의 많은 문제는 바로 이 쓴 뿌리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내 속의 "마라"같은 쓴 물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일본에서 시험을 했답니다. 개 한 마리를 묶어 놓고 하루종일 굶겨 놓아 개한테 먹을 것을 갖다 줬는데 먹게 한게 아니라 보여만 주고 먹을 순 없게 놔둔 겁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굶은 개가 먹을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입으로는 먹을 수 없고 얼마나 성질이 나겠습니까 아무리 얌전한 개라도 그렇게 성질을 돋구어 놓고는 주인이 또 두들겨 패는거예요. 하루종일 굶겨 놓은 것도 성질 나지, 맛있는 음식 갖다 놓고 주지 않는 것도 성질나지,
그런데다가 두들겨 패니 이거 어떤 성질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래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것입니다. 있는 성질이 다 기어 나온 것입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그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개입의 머금은 거품 액의 침을 채취해서 주사기에다 넣어 가지고 멀쩡한 개한테 주사를 놨습니다. 일곱 마리가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게 개뿐입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복잡합니까 힘들고 괴롭습니까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이 독한 성질, 이 쓴 뿌리. 이것 때문에 우리들의 삶 속에 수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나다나일 호선 이라는 미국의 소설가는 이 쓴 뿌리를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면 사람안에는 실뱀 같은 독사가 있다. 좋은 때는 저 바위틈속 밑에 들어가서 숨어 있다. 거기서 잠을 잔다. 그러다가 이게 슬슬 올라온다. 목구멍까지 여기까지 실뱀 독사 같은 게 올라오면 사람이 독사가 되는 거여요. 사람이 편안할 때는 참 천사 같아도 한번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이게 올라옵니다. 그래서 얼마나 복잡한지 제가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고통을 당했던 게 바로 그 부분입니다. 내 속에 왜 이렇게 쓴 뿌리가 많은 지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게 자꾸 올라옵니다. 내 자신도 그걸 뻔히 봐요.
그런데 참아도 되는 것이 아니고, 덮어 씌워도 되는 것도 아니에요. 이걸 못 참겠어요. 그래 자기 성질에 자기가 죽는다고 하잖아요. 이거 올라오면 정말이지 다 무너지는 겁니다. 주여! 하나님! 이걸 좀 죽여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 하루에도 수백번 수천번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 "여호와 라파"의 은혜가 바로 이럴 때 주시는 겁니다. 또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점점 치유해 주시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내가 부자가 되면 뭐합니까 지식이 많으면 뭐합니까 똑똑하면 뭐 합니까 이거 고치지 못하면 평생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기만 불행합니까 함께 사는 사람을 너무나 괴롭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병든 나를 품에 품으시고 그걸 고쳐 주시니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 한지요. 세 번째 단계의 은혜는 중보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중보의 법칙이라는 게 무엇이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축복을 받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축복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뭡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첫 번째 단계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추악한 자요 어리석은 자요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쓴 뿌리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게 납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의지하는,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나를 통해서 나와 관계된 자들을 축복하시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너와 관계된 자들이 어디까지냐 너의 지경을 정하라 그러십니다.구약은 그걸 '지계석'이라고 해요. 구약에서는 그 지계석을 절대로 옮기지 못하도록 엄하게 명령 내렸습니다. 왜냐면 그게 분명해야 하나님이 축복하시거든요. 자
그런데 이건 간단한데, 문제가 뭐냐면. 이게 자식이라 합시다. 내 자녀들 나와 관계된자 아닙니까 그 자녀들을 내 지경 안에 품는데 이 문제는 어디가 있는고 하니. 이 자녀들이 부모 말을 잘 듣고 착하고 공부 잘하면 두 말할 것 없어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걸 품어 주는데 하나님 내 아들 축복해 주십시오. 내 딸 축복해 주십시오. 하는데 아무 어려움 없어요.
그런데 나와 관계된 자, 끊을 수 없는 자인데 자식들이 부모 속을 자꾸 썩히고 상하게 합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자식 아니라 할 수 없고, 자식이라고 품자니 너무 괴롭고,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떼어 낼 수도 없고. 관계 맺을 수도 없고. 바로 이럴 때가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상담을 합니다. "목사님, 더 이상, 더 이상 같이 못살겠습니다. 관계를 끊어야겠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 어째야 합니까 진리를 말해야 되지요. 그럼 제가 묻습니다. 그 사람 망하기를 원합니까 죽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대게 그래요. 열에 아홉은 그 사람 죽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럼 그 사람 살기 원합니까 잘 되기 원합니까 구원받기 원합니까 예! 원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관계를 끊지 마세요.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사람 반드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게 중보의 법칙 바로 십자가입니다.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의 관계를 끊지 않고 품는다는 것은 너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단 말이 바로 그거 아닙니까 품을 수 없는 것들을 품어 주는 것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겁니다. 그래 너도 십자가 지라고 그러잖아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 뭡니까 십자가는 단지 고통받는 게 아닙니다. 품을 수 없는 나와 관계된 자들 중에 품을 수 없는 , 끊어 버리고 싶지만은 끊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을 품고 살지, 불덩이 연탄불 품고 살지 정말 품기 어려운 사람 품는 다는 것은 힘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 하나님 품게 해 주시옵소서. 끝까지 그렇게 나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시편 126:5-6절 말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꼭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이 십자가 지고 가면 힘들고 괴롭지만은 끝까지 관계를 끊지 않고 내 지경 안에 두면은 저들이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것입니다. 다윗도 이 중보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23절에 보면 사울 왕에게서 쫓겨온 아비아달 제사장이 왔을 때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도 지금 곤고한 가운데 있지만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나와 함께 있으면 산다 얼마나 담대한 사람입니까 사무엘상 22장 2절에 보면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왔는데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다윗에게로 모였고 다윗은 그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 장관이 됐다는 말은 그들을 다 품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으라" 그래서 마침내 고난의 시절이 지난 다음에 저들은 다 다윗과 함께 영광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지경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이 진리에 이 은혜를 꼭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실제로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들, 나도 살고 나와 관계된 자들이 살기 위해서 실제로 구체적으로 해야 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손 목사님은 훌륭하시닌까 그리하시겠지요 아닙니다. 말씀 했잖습니까 인간적인 훌륭함은 첫 번째 은혜 단계에서 완전히 박살 난 것입니다. 그게 박살 나야 됩니다. 그러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하지 못합니다. 참 어리석고 못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됐는가! 왜 됐나! 나는 무능하고 무익하고 어리석은 자인데도 왜 됐나! 그 구체적인 이유 그것을 주님은 일용할 양식이라고 그랬습니다. 나와 또 나와 관계된 자들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일용할 양식들 여기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구하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아마 성도 여러분에게도 똑같을 겁니다. 저는 다섯 가지 일용할 양식을 지금까지 날마다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1). 내 직업입니다. 우리는 직업이 있고 직책이 있고 크고 작은 사업이 있습니다. 이건 삶의 터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어떻게 삽니까 맹물 마시고 삽니까 사람이 직업이라는 것 직책이라는 것 하다못해 구멍가게라도 이 조그마한 사업 이거 반드시 되게 해야 됩니다. 내가 해야 될 이 직책, 직업, 직장 생활, 크고 작은 사업 이거 반드시 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내 힘으로 됩니까 내 지혜로 됩니까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다 무너지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경제위기사태를 맞아서 직장이 어렵고 사업이 어렵다고 합니다. 솔직히 정직하게 물어 봅시다. 경제위기사태가 오기 전에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했습니까 여러분 직장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 안에 사업이 잘되기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 의지했습니까 솔직히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 의지하지 않았잖아요. 내 지식, 내 경험 내가 내가 그러치 않았습니까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위기사태가 아니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무너지게 만듭니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왕들중 어떤 왕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왜 하나님 의지하지 않을 때 다 무너졌습니다. 아사왕이 처음엔 하나님 의지할 때 잘됐습니다. 잘되다 보닌까 교만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 의지하는 마음이 시들어져서 그때 하나님께서 무너지게 만드셨습니다. 역대하 16장 9절이 그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 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해 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고" 그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직장 생활과 여러분이 하는 사업을 위해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꼭 붙잡아 주십니다. 되게 하십니다.
(2). 저는 제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왜요 내 건강이 무너지면 어찌합니까. 건강은 나의 삶의 큰 자산입니다. 건강할 때 내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합니다. 저는 제 건강을 돌아보는데 있어서 항상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잠이에요. 날마다 잠이 부족합니다. 그러닌까 건강에 좀 신경이 쓰입니다. 그런다고 잠을 자고 싶을 만큼 자면서 살수는 없잖아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위해서. 때로는 신경이 예민하닌까 잠을 자야 되는데 잠이 않아요. 부족한 잠이라도 몇 시간은 잠을 자야 되는데 그것조차 잠을 안자면 내가 어떻게 생활을 꾸려 갑니까 어떻게 내 직책을 감당합니까 그러닌까 때로는 오! 하나님 잠을 자게 해주십시오. 침대에 누워서 그런 기도를 수없이 합니다. 참 부족한 기도 갔죠. 그게 부족한 기도같이 들릴 수 있지만 저에게는 절대 절명의 기도입니다. 잠을 잔다는 것, 몇 시간이라도 숙면한다는 것은 내 삶의 큰 자산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3). 사랑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구하는 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나와 관계된 자들을 끊지 아니하고 관계를 유지하는걸 말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 하는 게 뭐가 힘듭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이라는 게 항상 그렇게 좋을 때만은 없거든요. 부부간에, 부모 자식 사이에 그 외 나와 관계된 자들 가운데 품어 주기 어려운 사람 이럴 때가 문제입니다. 힘들어요. 나혼자 힘으로는 솔직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미워요. 싫어요, 아파요, 괴로워요 그때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끊을 수 없잖아요.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있는데 관계를 유지해야 하죠. 오! 하나님 먼저 제 속에 미움을 없애 주십시오. 내속에 섭섭한 마음을 녹여 주시옵소서. 그저 울타리라도 치게 해주시옵소서. 최소한의 사랑을
그런데 이 최소한의 사랑조차 무너져 버리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무너지는 게 아닙니까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4). 지혜를 구합니다. 사랑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보닌까 사랑만 가지고 않되요.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해야 되는지 때로는 품어 주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사랑하닌까 쥐어박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쓰다듬어 주어야 됩니까. 쥐어박아야 됩니까. 모르겠어요. 이거 잘못 하다가는 상처를 주거든요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거 이 말을 해야 합니까. 안해야 됩니까. 정말 모르겠어요.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5). 나와 관계된 자들, 내가 품고 있는 사람들 그 이상은 내가 못합니다. 품는 것도 어렵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서 고민 고민하면서 그저 괴로워하면서 품고 있는데 그 이상 어떻게 합니까 그 이상 못해 . 내가 품고 있는 것 이것만 내가 하고 이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그 이상은 내 가 할 수 없어요. 하나님! 이제 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이 사람들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이 친히 내가 품고 있사오니 이 사람들 아들, 딸, 아무개, 아무개를 하나님 이제는 축복해 주시옵소서. 은혜를 주시옵소서. 구원해 주시옵소서. 치유해 주시옵소서. 들어주십니다. 여러분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 땅엔 불행하게도 자기가 할 일, 참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고 또 자기 할 일을 알면서도 그 일을 어떻게 성취하는지를 자세히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내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또 내가 해야 할 일이니 반드시 그 일을 성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와 같은 놀라운 진리를 알고 내가 해야 할 일을 반드시 성취하는 성공한 그런 은혜를 누리게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네 가지로 말씀을 나누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 번째 단계는 내 자신을 아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냐! 나의 실상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면 내 자신을 점점 밝히 알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내 자신을 알게 되면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요 , 부족한 자요, 추악 한자인가 하는 것을 알게 되는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은 나를 점점 더 세워 주고 강하게하고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맨 처음 주시는 하나님 은혜는 오히려 나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나의 단단한 껍질을 깨뜨려서 호도 껍질 깨뜨리듯이 깨뜨리십니다. 이것을 고린도후서 10장 4절은 '견고한 진'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깨진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고 또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자꾸 깨뜨리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깨져야 실상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단단한 껍질을 깨고 자신의 실상을 들추어내서 자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보게 하시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방법이 두 가지 있습니다.
(1). 내적 조명이라는 방법입니다. 어둠 속에 빛을 비춰 주시므로 그 어둠 속에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수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내 심령 깊은 곳에 빛을 비춰 주십니다. 그리하면 내 속 깊은 곳에 들어 있는 참으로 나 스스로도 상상치 못했던 내자신의 추한 모습이 밝히 보여지게 됩니다. 에레미야 17장 9절에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했다" 부패한 이것을 누가 아나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그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내자신의 실상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시는 것 그게 바로 큰 은혜입니다. 그 보여 주시는 것이 곧 내적 조명입니다. 저도 그런 은혜를 받았을 때 참으로 제자신이 그렇게 추한 줄을 몰랐습니다. 정말 몰랐어요. 옷을 홀랑 벗겨 놓은 것 같은 기분이 아니 옷을 벗겨 놓은 정도가 아닙니다. 얼마나 처참 한지요. 그때 깨진겁니다. 박살난 거예요. "나"라고 하는 자신 만만하던 그 단단한 모습이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아!"나"라고 하는 존재는 이런 존재이구나 ! 고개를 들수 없었어요. 바울도 바로 그런 내적 조명을 받은 겁니다. "죄인의 괴수다" 라고 고백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추악한 모습 앞에 슬피 울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누가복음 5장 8절에 " 주여! 저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무릎을 꿇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창세기 18장 27절에 " 티끌 같은 나 "라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자기 자신이 작게 보이는지, 얼마나 자기 자신이 왜소하고 초라하게 보이는지 티끌 같은 자기가 보이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게 굉장히 서글프고 허전하죠 " 나 "라고하는게 무너진다는 것, 자존심이 완전히 뮬밝혀 버린다는 것, 참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은혜예요. 그 자리에 들어가지 아니하면 앞으로 계속 주시는 은혜를 절대로 못 받습니다. 이것을 분명히 해야 됩니다.
(2) 파쇄라는 방법입니다. 문자 그대로 깨 버린다. 때로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깹니다. 그래서 손들어요. 어떤 사람은 하던 사업이 완전히 망가지게 만듭니다. 잘나가던 사업이 갑자기 흔들려요. 꼬입니다.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안 무너지려고 우리는 벌벌 떨거든요. 왜 완전히 무너지면 어쩝니까 우선 창피하죠, 부끄럽죠 얼굴 들고 다닐 수 없잖아요. 그러닌까 무너지는 것 기울어지는 벽을 기울지 않게 지주를 받치는 것처럼 그저 더 이상 안 무너지게 하려고 별 수단을 다쓰지만 하나님은 여지없이 무너뜨려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게 하는데 견뎌낼 장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또 쓰시는 방법이 가정입니다. 가정이 부부간에 자주 갈등이 생기게 만듭니다. 참 좋은 사람끼리 만났어요. 참 아름다운 남자, 아름다운 여자가 부부가 됐는데 살아가는 도중에 이상하게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부부간에 꼬입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별것도 아닌데 저도 살아보는 가운데 그런 일이 가끔 생깁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빌빌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마다 무엇을 봅니까 정말로 형편없는 자구나! " 나" 라고 하는 인간이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참 견딜 수 없어요. 그걸 받아 드린 다는 게 참으로 힘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계속 터져나오게 만듭니다. 그렇게해서 "나"라고 하는 실상이 여지없이 드러나도록 하나님이 자꾸 이렇게 만드는 겁니다. 요한복음 3장 20절에 보면 " 사람들은 할 수 만 있으면 이런 자리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빛을 미워하고 빛안으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왜요 빛으로 오면 들어나거든요. 빛으로 오면 자기의 악한 행위가 자기의 부끄러운 실상이 들어나닌까! 빛으로 안 오려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주시려니 이 자리로 강제로 끌어오십니다. 반드시 이 자리에 세우십니다. 그래서 홀랑 벗겨 놓고 깨뜨려 놓으시고 오! 하나님 정말 저는 형편없는 존재입니다. 내가 얼마나 작아 보이는지, 얼마나 추해 보이는지 그것을 똑똑하게 보게 만드시는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즘에 여러분 자신이 참 작아 보일 때입니다. 자신만만 하던 게 다 어디로 가 버렸을 겁니다. 이제자신이 하나도 없어 왜 이렇게 문제가 자꾸 자꾸 엉키고 꼬이는지 바로 그러한 내자신의 초라한 모습, 외소한 모습, 추한 모습이 자꾸 보인다는 것이 하나님의 큰 은혜로 아시기 바랍니다. 그걸 받아들여야 되고 또 그 자리에 반드시 들어가야 됩니다. 두 번째 단계 은혜는 이렇게 깨어지고 벗겨지고 추하고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나를 이제는 하나님께서 품어 주시고 세워주시는 은혜입니다.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닌까 하나님은 먼저 완전히 깨뜨려 놓고 짓이겨 놓은 다음 왜요 내가 죽어야 되닌까요. 완전히 "자아"라는 것이 죽어야 되닌가요. 완전히 밑바닥에 죽음. 무덤의 자리에 내려간 다음에 하나님이 부활의 은혜를 부어 주시는 겁니다. 세워 주십니다.
그런데 이 두 번째 은혜 단계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세워 주시고 치유해 주시는 이 은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부분, 어디를 치유해 주시는가 하면 이것을 우리가 꼭 알아야 됩니다. 쓴 뿌리입니다. 병든 성품, 끈질기고, 어그러지고, 비틀어지고 더 쉽게 말하면 아주 고약한 성질 이게 치유 받지 못하면 아무리 부유한 자라도 돈이 있고 없고 떠나서 우리 사람들의 많은 문제는 바로 이 쓴 뿌리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내 속의 "마라"같은 쓴 물입니다. 어느 심리학자가 일본에서 시험을 했답니다. 개 한 마리를 묶어 놓고 하루종일 굶겨 놓아 개한테 먹을 것을 갖다 줬는데 먹게 한게 아니라 보여만 주고 먹을 순 없게 놔둔 겁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굶은 개가 먹을 것이 눈에 보이는데도 입으로는 먹을 수 없고 얼마나 성질이 나겠습니까 아무리 얌전한 개라도 그렇게 성질을 돋구어 놓고는 주인이 또 두들겨 패는거예요. 하루종일 굶겨 놓은 것도 성질 나지, 맛있는 음식 갖다 놓고 주지 않는 것도 성질나지,
그런데다가 두들겨 패니 이거 어떤 성질도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래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것입니다. 있는 성질이 다 기어 나온 것입니다. 입에는 거품을 물고 그때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개입의 머금은 거품 액의 침을 채취해서 주사기에다 넣어 가지고 멀쩡한 개한테 주사를 놨습니다. 일곱 마리가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그게 개뿐입니까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복잡합니까 힘들고 괴롭습니까 먹을 것, 입을 것이 없어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이 독한 성질, 이 쓴 뿌리. 이것 때문에 우리들의 삶 속에 수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나다나일 호선 이라는 미국의 소설가는 이 쓴 뿌리를 어떻게 표현했는가 하면 사람안에는 실뱀 같은 독사가 있다. 좋은 때는 저 바위틈속 밑에 들어가서 숨어 있다. 거기서 잠을 잔다. 그러다가 이게 슬슬 올라온다. 목구멍까지 여기까지 실뱀 독사 같은 게 올라오면 사람이 독사가 되는 거여요. 사람이 편안할 때는 참 천사 같아도 한번 비뚤어지기 시작하면 이게 올라옵니다. 그래서 얼마나 복잡한지 제가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고통을 당했던 게 바로 그 부분입니다. 내 속에 왜 이렇게 쓴 뿌리가 많은 지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이게 자꾸 올라옵니다. 내 자신도 그걸 뻔히 봐요.
그런데 참아도 되는 것이 아니고, 덮어 씌워도 되는 것도 아니에요. 이걸 못 참겠어요. 그래 자기 성질에 자기가 죽는다고 하잖아요. 이거 올라오면 정말이지 다 무너지는 겁니다. 주여! 하나님! 이걸 좀 죽여주십시오. 고쳐 주십시오. 하루에도 수백번 수천번 하나님의 치유의 은혜, "여호와 라파"의 은혜가 바로 이럴 때 주시는 겁니다. 또 이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그래서 점점 치유해 주시는 겁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할렐루야! 내가 부자가 되면 뭐합니까 지식이 많으면 뭐합니까 똑똑하면 뭐 합니까 이거 고치지 못하면 평생 불행한 사람입니다. 자기만 불행합니까 함께 사는 사람을 너무나 괴롭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병든 나를 품에 품으시고 그걸 고쳐 주시니 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 한지요. 세 번째 단계의 은혜는 중보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중보의 법칙이라는 게 무엇이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축복을 받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를 통해서 축복하시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분명히 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뭡니까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만, 첫 번째 단계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내가 추악한 자요 어리석은 자요 아무것도 아닌 자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쓴 뿌리가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 안할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게 납니다. 하나님을 정말로 의지하는,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나를 통해서 나와 관계된 자들을 축복하시는 법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러십니다. 너와 관계된 자들이 어디까지냐 너의 지경을 정하라 그러십니다.구약은 그걸 '지계석'이라고 해요. 구약에서는 그 지계석을 절대로 옮기지 못하도록 엄하게 명령 내렸습니다. 왜냐면 그게 분명해야 하나님이 축복하시거든요. 자
그런데 이건 간단한데, 문제가 뭐냐면. 이게 자식이라 합시다. 내 자녀들 나와 관계된자 아닙니까 그 자녀들을 내 지경 안에 품는데 이 문제는 어디가 있는고 하니. 이 자녀들이 부모 말을 잘 듣고 착하고 공부 잘하면 두 말할 것 없어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걸 품어 주는데 하나님 내 아들 축복해 주십시오. 내 딸 축복해 주십시오. 하는데 아무 어려움 없어요.
그런데 나와 관계된 자, 끊을 수 없는 자인데 자식들이 부모 속을 자꾸 썩히고 상하게 합니다. 이거 어떻게 합니까 자식 아니라 할 수 없고, 자식이라고 품자니 너무 괴롭고, 죽이지도 못하고, 살리지도 못하고, 떼어 낼 수도 없고. 관계 맺을 수도 없고. 바로 이럴 때가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상담을 합니다. "목사님, 더 이상, 더 이상 같이 못살겠습니다. 관계를 끊어야겠습니다." 이럴 때마다 저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래 어째야 합니까 진리를 말해야 되지요. 그럼 제가 묻습니다. 그 사람 망하기를 원합니까 죽기를 원합니까 그러면 대게 그래요. 열에 아홉은 그 사람 죽기는 원치 않습니다. 그럼 그 사람 살기 원합니까 잘 되기 원합니까 구원받기 원합니까 예! 원합니다. 그래요 그러면 관계를 끊지 마세요.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이 당신과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사람 반드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그게 중보의 법칙 바로 십자가입니다. 나를 괴롭히고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의 관계를 끊지 않고 품는다는 것은 너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단 말이 바로 그거 아닙니까 품을 수 없는 것들을 품어 주는 것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은 겁니다. 그래 너도 십자가 지라고 그러잖아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이 뭡니까 십자가는 단지 고통받는 게 아닙니다. 품을 수 없는 나와 관계된 자들 중에 품을 수 없는 , 끊어 버리고 싶지만은 끊어서는 안되는 사람들을 품고 살지, 불덩이 연탄불 품고 살지 정말 품기 어려운 사람 품는 다는 것은 힘든 겁니다.
그런데 그게 십자가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오! 하나님 품게 해 주시옵소서. 끝까지 그렇게 나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시편 126:5-6절 말씀. "눈물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이 언약의 말씀을 꼭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이 십자가 지고 가면 힘들고 괴롭지만은 끝까지 관계를 끊지 않고 내 지경 안에 두면은 저들이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다는것입니다. 다윗도 이 중보의 법칙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23절에 보면 사울 왕에게서 쫓겨온 아비아달 제사장이 왔을 때 다윗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도 지금 곤고한 가운데 있지만 "두려워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보전하리라" 나와 함께 있으면 산다 얼마나 담대한 사람입니까 사무엘상 22장 2절에 보면 사람들이 다윗에게로 왔는데 환난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다윗에게로 모였고 다윗은 그 장관이 되었습니다. 그 장관이 됐다는 말은 그들을 다 품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내 옆에 있으라" 그래서 마침내 고난의 시절이 지난 다음에 저들은 다 다윗과 함께 영광을 누렸습니다. 여러분 지경 안에 있는 사람들이 그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이 진리에 이 은혜를 꼭 붙잡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단계는 실제로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내가 해야 할 일들, 나도 살고 나와 관계된 자들이 살기 위해서 실제로 구체적으로 해야 할 방법이 있습니다. 그건 내가 하는 게 아닙니다. 손 목사님은 훌륭하시닌까 그리하시겠지요 아닙니다. 말씀 했잖습니까 인간적인 훌륭함은 첫 번째 은혜 단계에서 완전히 박살 난 것입니다. 그게 박살 나야 됩니다. 그러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훌륭하지 못합니다. 참 어리석고 못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됐는가! 왜 됐나! 나는 무능하고 무익하고 어리석은 자인데도 왜 됐나! 그 구체적인 이유 그것을 주님은 일용할 양식이라고 그랬습니다. 나와 또 나와 관계된 자들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 일용할 양식들 여기에는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제가 구하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아마 성도 여러분에게도 똑같을 겁니다. 저는 다섯 가지 일용할 양식을 지금까지 날마다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1). 내 직업입니다. 우리는 직업이 있고 직책이 있고 크고 작은 사업이 있습니다. 이건 삶의 터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어떻게 삽니까 맹물 마시고 삽니까 사람이 직업이라는 것 직책이라는 것 하다못해 구멍가게라도 이 조그마한 사업 이거 반드시 되게 해야 됩니다. 내가 해야 될 이 직책, 직업, 직장 생활, 크고 작은 사업 이거 반드시 되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내 힘으로 됩니까 내 지혜로 됩니까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 다 무너지는데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경제위기사태를 맞아서 직장이 어렵고 사업이 어렵다고 합니다. 솔직히 정직하게 물어 봅시다. 경제위기사태가 오기 전에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했습니까 여러분 직장 문제를 가지고 여러분 안에 사업이 잘되기 위해서 얼마나 하나님 의지했습니까 솔직히 대답해 보십시오. 하나님 의지하지 않았잖아요. 내 지식, 내 경험 내가 내가 그러치 않았습니까 당연히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위기사태가 아니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무너지게 만듭니다.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 이스라엘 왕들중 어떤 왕은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왜 하나님 의지하지 않을 때 다 무너졌습니다. 아사왕이 처음엔 하나님 의지할 때 잘됐습니다. 잘되다 보닌까 교만한 마음이 들어서 하나님 의지하는 마음이 시들어져서 그때 하나님께서 무너지게 만드셨습니다. 역대하 16장 9절이 그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 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해 구하는 자에게 능력을 베푸신다고" 그러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라도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직장 생활과 여러분이 하는 사업을 위해서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을 간절히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이 꼭 붙잡아 주십니다. 되게 하십니다.
(2). 저는 제 건강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왜요 내 건강이 무너지면 어찌합니까. 건강은 나의 삶의 큰 자산입니다. 건강할 때 내 건강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합니다. 저는 제 건강을 돌아보는데 있어서 항상 부족하게 느끼는 것이 잠이에요. 날마다 잠이 부족합니다. 그러닌까 건강에 좀 신경이 쓰입니다. 그런다고 잠을 자고 싶을 만큼 자면서 살수는 없잖아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위해서. 때로는 신경이 예민하닌까 잠을 자야 되는데 잠이 않아요. 부족한 잠이라도 몇 시간은 잠을 자야 되는데 그것조차 잠을 안자면 내가 어떻게 생활을 꾸려 갑니까 어떻게 내 직책을 감당합니까 그러닌까 때로는 오! 하나님 잠을 자게 해주십시오. 침대에 누워서 그런 기도를 수없이 합니다. 참 부족한 기도 갔죠. 그게 부족한 기도같이 들릴 수 있지만 저에게는 절대 절명의 기도입니다. 잠을 잔다는 것, 몇 시간이라도 숙면한다는 것은 내 삶의 큰 자산입니다. 긍휼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십니다.
(3). 사랑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을 구하는 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나와 관계된 자들을 끊지 아니하고 관계를 유지하는걸 말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 하는 게 뭐가 힘듭니까
그런데 우리의 삶이라는 게 항상 그렇게 좋을 때만은 없거든요. 부부간에, 부모 자식 사이에 그 외 나와 관계된 자들 가운데 품어 주기 어려운 사람 이럴 때가 문제입니다. 힘들어요. 나혼자 힘으로는 솔직히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미워요. 싫어요, 아파요, 괴로워요 그때 어떻게 합니까 그렇다고 끊을 수 없잖아요.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있는데 관계를 유지해야 하죠. 오! 하나님 먼저 제 속에 미움을 없애 주십시오. 내속에 섭섭한 마음을 녹여 주시옵소서. 그저 울타리라도 치게 해주시옵소서. 최소한의 사랑을
그런데 이 최소한의 사랑조차 무너져 버리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무너지는 게 아닙니까 하나님 도와주시옵소서.
(4). 지혜를 구합니다. 사랑이 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보닌까 사랑만 가지고 않되요. 더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해야 되는지 때로는 품어 주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사랑하닌까 쥐어박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쓰다듬어 주어야 됩니까. 쥐어박아야 됩니까. 모르겠어요. 이거 잘못 하다가는 상처를 주거든요 하나님! 어떻게 해야 됩니까 이거 이 말을 해야 합니까. 안해야 됩니까. 정말 모르겠어요. 하나님 지혜를 주십시오.
(5). 나와 관계된 자들, 내가 품고 있는 사람들 그 이상은 내가 못합니다. 품는 것도 어렵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어려워서 고민 고민하면서 그저 괴로워하면서 품고 있는데 그 이상 어떻게 합니까 그 이상 못해 . 내가 품고 있는 것 이것만 내가 하고 이 울타리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 그 이상은 내 가 할 수 없어요. 하나님! 이제 이 울타리 안에 들어온 이 사람들 하나님이 직접, 하나님이 친히 내가 품고 있사오니 이 사람들 아들, 딸, 아무개, 아무개를 하나님 이제는 축복해 주시옵소서. 은혜를 주시옵소서. 구원해 주시옵소서. 치유해 주시옵소서. 들어주십니다. 여러분 해야 할 일들을 잘 감당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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