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복이 함께한 마리아 (눅1:26-56)
본문
영국의 역사연구가 아놀드 토인비는 역사의 마지막 지평선에 떠오르는 희망의 구세주는 바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이 세상에 오심에 귀하고 아름답게쓰여진 한 여인이 있으니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마리아인 것입니다. 마리아는 자체가 특별한 사람은 아니지만은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하여 아주 특별한 섭리의 경륜에 의해 쓰여짐의 은혜를 받은 여인 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28절에 보면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최초로 하는 말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였습니다. 30절에도 보니까,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고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친족이었던 엘리사벳이라는 여인이 마리아를 보고성령님이 충만한 가운데 말하기를 42절에 여자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직접 노래하며 말하기를 48절에,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있다 일컬 으리로다.'고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에 쓰임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고 하는데에 은혜가 있었고 복이 있었던 여인 이였습니다. 사람은 정말 귀하고 가치있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될 때가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것이 가장 은혜롭고 복된 것 입니다.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탄생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완전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어느 면에서 보면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쓰임을 받아 은혜와복이 임할 수 있는 내면의 어떤 가치가 있었다고 하는 사실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을 때 무조건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님이 그를 쓰시고자 했던 내면의 모습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스스로 표현하기를,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인간적 내면에 있는 그 충성스러움을 보신 것입니다. 다윗을 선택할 때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셧습니다. 삼상16:7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내면, 즉 그 속 마음을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 됨됨이의 근본적인 바탕을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식을 쌓고, 지위를 얻었어도 그 사람됨의 본 바탕은 잘 변하지를 않습니다. 사람같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끝까지 사람 노릇 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겉모양만 종교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갈 뿐 본바탕의 변화없이 아주 추하게 믿음생활 하다가 종말을 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는 거기에 필요한 은혜도 권세도 능력도 필요한 건강과 재능도 다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은혜 이전에 인간자신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 그릇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을 쓰임 받기에 합당하게 깨끗하게 하는것은 그 사람 자신의 책임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마리아 처럼 내 인생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도록 쓰여지는 그릇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어떤면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을 조건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1. 마리아는 진정한 겸손의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출산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사의 멧세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 멧세지가 다 끝난 다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여기서 계집종이라고 하는 표현은 아주 굉장히 낮은 계급의 여자 하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천사는 네가 온 인류의 메시야인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여 주었는데, 자신은 단지 주의 계집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경에 어느 한 번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거나, 예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 특권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예수님 뒤에서 묵묵히 있으면서 자신의 주님으로서 예수님을 섬기고 있을 따름 이였습니다. 시작도 겸손이고 중간도 변질이 없고, 끝에 가도 겸손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와 복이 있는 겸손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 겸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 왕의 경우를 보면 처음에는 아주 겸손 하였습니다. 처음에 왕으로 기름 부으려고 사무엘이 찾아 갔을 때 부끄러워 행구 사이에 숨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갈 수록 그의 겸손을 잊어 버립니다. 삼상15:12에 보면 자신의 기념비를 갈멜에다 스스로 세웠습니다. 또 블레셋 나라와 전쟁을 할 때도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이 늦게 오자 자기가 팔을 걷고제자를 진행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 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착각하여서 제사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겸손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교권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않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비천하나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이 세상에 오시게 하는 역할만을 감당하는 여인이었다고 하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할 뿐 조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겸손함이 끝까지 지속된 귀한 여인인 것입니다.
2. 마리아는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눅1:31-34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이 일이 있으리이까” 대답이 37절에 나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랬더니, 마리아가 대답하기를,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메시야가 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메시야가 처녀의 몸으로 오신다는 구약의 말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좇아 자신에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그 사실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엘리사벳이 4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야가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알고 믿었기에 베드로처럼 '그리마옵소서!'하면서 아들 예수를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성령님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마가 다락방에서 120문도 속에 끼어서 겸손하게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성령님 충만한 역사를 덧입게 됩니다. 마리아의 생에에 깊은 추진력을 준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래전 테레사 수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인도 캘커타에 큰 고아원을 건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 기자가 “준비된 자금은 얼마나 됩니까” 라고 묻자 테레사는 주머니에서 동전 3닢 ,3실링을 보이며 “이것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회견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농담인줄 알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테레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이 3실링과 테레사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3실링이 함께 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믿고 감사하는 자녀는 결코 잊지 아니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을 수도 없는 상황에 있을 뿐 아니라, 좀 믿고 살아보려고 해도 믿을 수없게 되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사람이 불행한 것입니다. 천당 지옥 가는 법이 무엇이냐고 국민학교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니그야 예수 믿으면 되지요.그러면 지옥은 어떻게 하면 가느냐그야 가만히 있기만 하면 가지요." 가장 믿을 만한 것을 가지고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다른 것은 못믿고 살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가 있습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할 수없으니까요!'3. 순종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죽음 까지라도의 순종의 내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혼한 처녀가 동거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유대의 율법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돌에 맞아 죽는 죽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끊어 버리지 않고 출산을 결심하고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주어야 하는 것이고 몸을 내어주는 순종과 헌신인 것입니다. 말씀은 순종할 때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과 윌리암 화렐 27세 때 저술한 '기독교 강요'로 그 이름이 온 유럽에까지 알려진 존 칼빈이 어느날 이탈리아에 잠깐 들렸던 적이 있습니다. 갔다가 곧 오려는데 전쟁이나서 부득이 지금 스위스지방으로 돌아서 오려고 제네바에 들려 하루를 자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던 윌리암 화렐이 그를 찾아와 함께 도울 것을 요청했습니다. 칼빈은 다른 계획된 일이 있는데도 여기에 있으라고 하니 허락할 리가 없었다. 계속되는 거절에 윌리암 화렐은 "나 보기에는 당신이 여기에 잠깐 들린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장차 이것은 당신이 여기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데 만일 당신이 그냥 간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의 일로 그는 일생동안 제네바에 머물게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뜻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도 공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바울을 하나님이 선택하셨을 때 무조건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뭔가 하나님이 그를 쓰시고자 했던 내면의 모습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울은 스스로 표현하기를,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주셨다'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의 인간적 내면에 있는 그 충성스러움을 보신 것입니다. 다윗을 선택할 때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셧습니다. 삼상16:7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 말은 하나님은 그 사람의 내면, 즉 그 속 마음을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 됨됨이의 근본적인 바탕을 보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식을 쌓고, 지위를 얻었어도 그 사람됨의 본 바탕은 잘 변하지를 않습니다. 사람같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끝까지 사람 노릇 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신앙을 가진 사람이라도 겉모양만 종교적인 모습으로 바뀌어 갈 뿐 본바탕의 변화없이 아주 추하게 믿음생활 하다가 종말을 고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실 때는 거기에 필요한 은혜도 권세도 능력도 필요한 건강과 재능도 다 주십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은혜 이전에 인간자신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릇입니다. 하나님은 이 그릇을 채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릇을 쓰임 받기에 합당하게 깨끗하게 하는것은 그 사람 자신의 책임입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신들을 바라보면서 마리아 처럼 내 인생의 그릇에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받도록 쓰여지는 그릇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하는 순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어떤면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을 조건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1. 마리아는 진정한 겸손의 내면을 가지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출산이 자신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천사의 멧세를 듣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놀라고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그 멧세지가 다 끝난 다음에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38절에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 지이다.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여기서 계집종이라고 하는 표현은 아주 굉장히 낮은 계급의 여자 하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천사는 네가 온 인류의 메시야인 예수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고 말하여 주었는데, 자신은 단지 주의 계집종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하여 나오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성경에 어느 한 번도 자신을 스스로 높이거나, 예수의 모친이라는 사실로 특권을 행사한 적이 없습니다. 항상 예수님 뒤에서 묵묵히 있으면서 자신의 주님으로서 예수님을 섬기고 있을 따름 이였습니다. 시작도 겸손이고 중간도 변질이 없고, 끝에 가도 겸손한 성품의 사람이었습니다. 은혜와 복이 있는 겸손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절대 겸손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 왕의 경우를 보면 처음에는 아주 겸손 하였습니다. 처음에 왕으로 기름 부으려고 사무엘이 찾아 갔을 때 부끄러워 행구 사이에 숨을 정도 였습니다.
그런데 갈 수록 그의 겸손을 잊어 버립니다. 삼상15:12에 보면 자신의 기념비를 갈멜에다 스스로 세웠습니다. 또 블레셋 나라와 전쟁을 할 때도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하여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제사장이 늦게 오자 자기가 팔을 걷고제자를 진행해 버렸습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잃어 버렸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있다보니 착각하여서 제사권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것 같습니다. 겸손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돈이 많다고, 교권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않됩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자신은 비천하나 예수그리스도를 잉태하여 이 세상에 오시게 하는 역할만을 감당하는 여인이었다고 하는 사실에 흔들림이 없습니다. 귀한 일에 쓰임을 받았다고 하는 은혜와 행복에 감사할 뿐 조금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있는 겸손함이 끝까지 지속된 귀한 여인인 것입니다.
2. 마리아는 말씀대로 믿는 믿음이 충만했습니다. 눅1:31-34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은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이 일이 있으리이까” 대답이 37절에 나옵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그랬더니, 마리아가 대답하기를,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마리아는 메시야가 오셔야 한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고, 메시야가 처녀의 몸으로 오신다는 구약의 말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말씀을 좇아 자신에게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그 사실도 믿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에 대하여 엘리사벳이 45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메시야가 죽어야 된다는 사실을알고 믿었기에 베드로처럼 '그리마옵소서!'하면서 아들 예수를 만류하지 않았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후에도 성령님을 주시리라는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마가 다락방에서 120문도 속에 끼어서 겸손하게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성령님 충만한 역사를 덧입게 됩니다. 마리아의 생에에 깊은 추진력을 준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오래전 테레사 수녀는 기자회견을 통해 인도 캘커타에 큰 고아원을 건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한 기자가 “준비된 자금은 얼마나 됩니까” 라고 묻자 테레사는 주머니에서 동전 3닢 ,3실링을 보이며 “이것밖에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회견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농담인줄 알고 웃었습니다. 그러나 테레사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이 3실링과 테레사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3실링이 함께 하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믿고 감사하는 자녀는 결코 잊지 아니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믿을 수도 없는 상황에 있을 뿐 아니라, 좀 믿고 살아보려고 해도 믿을 수없게 되어버린 상태에 떨어진 사람이 불행한 것입니다. 천당 지옥 가는 법이 무엇이냐고 국민학교 학생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천당에 갈 수 있니그야 예수 믿으면 되지요.그러면 지옥은 어떻게 하면 가느냐그야 가만히 있기만 하면 가지요." 가장 믿을 만한 것을 가지고 사는 자가 행복합니다. 다른 것은 못믿고 살아도,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 수가 있습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말씀은 일점 일획도 변할 수없으니까요!'3. 순종과 헌신이 있었습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죽음 까지라도의 순종의 내면을 말하는 것입니다. 정혼한 처녀가 동거하기도 전에 아이를 가진다는 것은 유대의 율법적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돌에 맞아 죽는 죽음을 의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도 끊어 버리지 않고 출산을 결심하고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목숨을 주어야 하는 것이고 몸을 내어주는 순종과 헌신인 것입니다. 말씀은 순종할 때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칼빈과 윌리암 화렐 27세 때 저술한 '기독교 강요'로 그 이름이 온 유럽에까지 알려진 존 칼빈이 어느날 이탈리아에 잠깐 들렸던 적이 있습니다. 갔다가 곧 오려는데 전쟁이나서 부득이 지금 스위스지방으로 돌아서 오려고 제네바에 들려 하루를 자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하던 윌리암 화렐이 그를 찾아와 함께 도울 것을 요청했습니다. 칼빈은 다른 계획된 일이 있는데도 여기에 있으라고 하니 허락할 리가 없었다. 계속되는 거절에 윌리암 화렐은 "나 보기에는 당신이 여기에 잠깐 들린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장차 이것은 당신이 여기서 일하라고 하는 것이 분명한데 만일 당신이 그냥 간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저주할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저녁의 일로 그는 일생동안 제네바에 머물게 되어 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내뜻에 맞지 않는 방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도 공손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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