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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부인 (눅12:8-12)

본문

시인하거나 부인하는 일은 섣불리 해서는 안됩니다. 법정에서는 그로 인해서 유죄와 무죄가 판가름납니다. 대인관계에서는 그로 인해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극단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고려말의 충신 정몽주는 이성계를 시인하지 않다가 선죽교에서 붉은 피를 흘렸습니다. 조선조의 사육신은 단종만을 합법적인 임금으로 받들고 세조를 부인하다 세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을 시인하거나 부인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경우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영생을 좌우합니다. 마지막 심판 날에 주님께서 부인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당하게 됩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그런 심판을 받게 될지 8-9절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10:32) 예수님이 부인하게 될 사람들은 그분을 구주와 주님으로 시인하지 않고 끝까지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반면에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시인하고 믿는 사람들은 구원받습니다. 믿고 시인하는 것과 시인하고 믿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 일치될 때에 비로소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고 할 수 있고 그 시인이 참된 시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인 의미에서 시인은 믿음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대신할 수 있는 단어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일4:15) 이상에서 보듯이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한 사람의 영원을 좌우하는 문제입니다. 지금까지 불신자들과 관련해서 언급했지만 원래 이 말씀은 믿는 제자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12장 1절의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와 4절의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기를 기뻐하셨습니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4-15) 이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주님께서 이 말씀을 굳이 제자들에게 하신 것이 그들 중 일부가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가 아니라 자신을 부인하는 불신자들에 대한 주님의 태도가 얼마나 엄한지를 보이시며 그들의 변치 않는 믿음을 촉구하신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배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10:28-29)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없나니”(롬8: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주님께서 핍박 가운데도 주님을 시인한 사람들을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겠다는 것은 결국 그들을 충성된 자들로 시인하시며 칭찬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핍박에 굴복하여 주님을 부인한 자들은 칭찬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단순히 인정하는 것 이상을 의 미합니다. 귀신들도 하나님은 한 분이심을 믿고 떨고 있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또한 예수님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습니다(눅4:41; 8:28). 그렇다고 해서 귀신들이 구원받았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마귀 사단과 함께 장차 지옥 불못에 던지우게 됩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여기서 “시인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호몰로게오”인데, 원래 “동일한 것을 말하다,” “동의하다”를 뜻합니다. 이 의미가 발전되어 “공개적으로 시인하다,” “터놓고 진술하다,” “맹세하다,” “약속하다,” “찬양하다,” “칭찬하다”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이 모든 뜻을 다 함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하다-homologeo(homos + lego, logos) 동일한 것을 말하다. 진술에 동의하다.
1.약속, 맹세(마14:7; 눅22:6)-행7:17도 같은 의미
2.찬양(히13:15)-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권면
3.가장 빈번하게,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터놓고 진술하다
첫째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그분의 하시는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며 그분의 말씀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세상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신다는 그분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고 그것을 거짓말이라고 말하기에 분주합니다.
둘째로, 은밀히 시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그리스도가 나의 구주요 나의 주님이라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그분은 나의 주님이시요 나는 그의 종임을 시인할 뿐만 아니라 종으로서 그분께 끝까지 순종하겠다고 맹세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분의 행하신 모든 일로 인하여 그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과연 예수님을 시인하고 있습니까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딛1:16)
셋째로,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뒷받침 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점증되는 핍박 속에 처하게 될 제자들을 격려하시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몸을 죽일 수는 있지만 그 이상은 어쩌지 못하는 세상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이미 말씀하셨습니다(4절). 그리고 제자들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마땅히 할 말을 가르치실 것이므로 권세자들 앞에 끌려가게 되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불신자가 예수님을 시인할 수 있게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환난 중에도 주님을 시인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12:3) 하나님은 우리가 농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건성으로 말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대로 받아들이실 것입니다. 사람들이야 편의를 따라 법도 제 멋대로 해석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주님을 시인하든 부인하든 그 결과를 알고 진지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톰은 4세기의 교부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크리소스틈은 로마의 시이저가 주가 아니라, 예수께서 주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다가 체포되어 로마의 아르카디우스 황제 앞에서 처형당했다. 아르카디우스는 크리소스톰에게 내릴 형벌을 신중히 고려하면서 맨 먼저 그를 추방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폐하, 폐하께서 저를 저의 집에서 추방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가 제 아버지의 집이기 때문입니다"라고 크리소스톰은 대답했다. 그 다음으로 아르카디우스는 크리소스톰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저의 보화는 하늘에 있습니다. 아무도 그 곳을 뚫고 도적질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황제는 "나는 너를 감옥에 집어넣어 너의 친구들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접촉을 일체 금지 시키겠다"라고 말했다. 크리소스톰은 "저에게는 결코 저를 떠나시지 않고 버리시지도 않겠다고 약속하신 친구가 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격노한 아르카디우스는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저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저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져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크리소스톰 그 자신은 그의 환경, 즉 속박과 투옥 그리고 죽음의 공포에 상관 없이 정말로 자유로웠다. 초대교회 순교자 이야기.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려야 했던 이 순교자는 최후에 종교를 버린다면 목숨을 살려주겠다는 회유를 받았다.집행관은 이 신앙인에게 생각해 보시오.인생은 즐겁고 죽음은 너무 고통스럽지 않소라고 말하며 신앙을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그러나 순교자는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그렇습니다.하지만 앞으로 올 죽음은 더욱 쓰라리고,앞으로 올 삶은 더욱 즐겁습니다.
현재의 고통을 장차 나타날 영광과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인도인들은 지금도 셰익스피어 열 사람을 주어도 간디와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간디에겐 간디 못잖은 조상이 있었다.카디아와드라는 나라의 재상을 지낸 그의 할아버지는 정치적 모함에 빠져 이웃나라로 망명했다.그는 왕에게 항상 왼손으로 경례를 올리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왕실 의전관들이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오른손은 이미 전왕에게 충성 선서를 한 불구의 손이다.이 치욕의 손을 어찌 왕 앞에 내놓을 수 있겠는가 미국 독립 전쟁 때, 워싱톤 장군의 진영에 해엘이라는 앳된 청년이 독립군에 넣어달라고 자원하여 왔다. "너는 아직 어려서 전투에 참가하지 못 하겠다.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꼭 각하 밑에서 일하게 해 주십시요그럼 적진이라도 들어가서 정탐이라도 하겠느냐 아주 위험한 일인데.네, 무엇이라도 하겠습니다. 저희 어머님은 저더러 늘 말씀하시기를 '네 목숨은 꼭 쓸 데가 있으니 소중히 하였다가 바칠 데가 되면 아낌없이 바쳐라' 하셨습니다. 이제 나라를 찾는 이때에 제 목숨을 아낌없이 바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워싱톤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적진의 사정을 알아야만 작전을 세울 수가 있었으므로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에 들어가야 할 지원병이 필요하였습니다. 헤앨 소년은 정탐이 되어 빵장수로 차리고 영국 진영에 들어갔으나 불행히도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하였으나 끝까지 비밀을 지키고 사형장으로 끌려 갔습니다. 막 총을 쏘려는 찰나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 원통하다 내가 나라에 바칠 목숨이 하나뿐이란 말인가 !탕" 소리와 함께 그는 쓰러졌습니다. 그의 모교인 하버드 대학 교정에는 지금도 그의 동상이 서 있고 그 아래엔 이런 글이 씌어져 있다고 합니다. " 아 원통하다! 내가 나라에 바칠 목숨이 단 하나뿐이란 말인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여나 사람으로 마땅히 해야할 의가 있습니다. 나라의 신민(臣民)이 되어서는 충절(忠節)의 의가 있고, 여자가 되어서는 정절의 의가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갈공명은 무너져 가는 한나라를 붙잡고 오장원에서 쓰러질 때까지 마음과 몸이 부서질 때까지 애썼습니다. 더구나 우리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그 교회와 그 의를 붙잡고 마음과 몸이 부서질 때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백이(伯夷), 숙제(叔齊) 두 형제는 은나라의 신민으로서 주나라에 살 수가 없어서 수양산에 숨어, 서산의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죽었으니, 백세청풍(百世淸風, 영속되는 맑은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정몽주는 망하는 고려나라를 위해 선죽교에 피를 뿌리니 대(竹)야 났으랴마는 그 절개는 대보다 청청 창창 시퍼렇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다시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건 없건 임 향한 일편단심 변할 줄이 있으랴 이것은 우리 선인들이 나라를 사랑하는 충의대절(忠義大節)의 글입니다. 사람이 나라에 대한 의가 이러하거늘 하물며 그리스도인 되어 주님 향한 일편단심 변할 수 있으랴! 재회 헤어진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는 것이 직업인 나는 지금까지 별의별 사람들을 다 보아왔다. 그 가운데 존 스콰이어즈씨의 경우에서처럼 내가 충격을 받은 일도 없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서 온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우리 부부는 1959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는 나와의 그 결혼이 재혼이었습니다. 아내의 전 남편은 한국동란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고 합니다. 나와 결혼하기 4년 전쯤 아내는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보살필 수가 없어서 고아원에 맡겼답니다. 그 아이의 이름은 클로디어, 당시 여덟 살이었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 고아원에 딸을 맡길 때 입양동의서에 서명을 했다고 하는데, 그 뒤로는 그 외동딸을 떠나 보낸 것을 줄곧 후회해 오고 있습니다. 근래
2,3년 아내를 도와 나도 그 애를 찾고 있으나 전혀 소식을 알 길이 없습니다' 스콰이어즈씨의 편지에 의하며, 클로디어는 금발머리에 눈이 파랗고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가졌다고 했다.
고아원에서는 정기적으로 그 생모에서 아이의 성장에 대한 보고를 해왔다고 하는데, 그 보고서에 따르면 클로디어가 재능을 인정받아 성악 레슨을 받게 되었노라고 씌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아원에 들어간 지 1년쯤 지난 뒤 클로디어는 어느 집의 양녀로 입양돼 갔으므로 따라서 고아원의 보고도 끊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2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정당한 수속을 밟아 입양된 아이를 찾는다는 거은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일단 일을 착수했다. 우선 클로디어가 있었던 그 고아원으로 가 보았지만 물론 아무런 단서도 얻어낼 수 없었다. 그러나 전혀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고아원측 사람이 무심결에 내뱉은 한 마디, 클로디어가 지그믄 자기 일을 갖고 있으며 호강하고 있다는 한 마디 말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일”이란 혹시 그 아이가 프로 가수가 됐다는 뜻은 아닐까, 나는 추리를 해보았다. 그리고 음악가, 가수 명단을 모조리 뒤지기 시작했다. 금발, 파란 눈의 21세 안팎인 가수 중에 클로디어라는 이름의 인물이 세 명 있었는데 직감으로 나는 그 중 하나를 짚었다. 클로디어 불레어,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나이트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소개기사에 씌어 있었다. 나는 먼저 그녀에게 편지를 내고 곧장 그곳으로 달려갔다. 쇼우라 끝나기를 기다려 나는 무대 뒤로 그녀를 찾아갔다. 금발머리의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그녀는 다소곳이 앉아 뜨개질에 열중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게 주신 편지는 잘 받아 보었습니다. 매니저가 읽어 주었지요. 전 장님이거든요.” 그녀의 첫 마디에 깜짝 놀란 나는 당황한 김에 겨우 “.저, 대단히 미안하게 됐습니다. 전 그걸 미처 몰랐습니다”하고 떠듬거렸다.
얼마 후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서 내가 그녀를 찾게 된 자초지종을 차근차근 얘기했다.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링에 그녀의 표정이 눈에 보이게 차갑고 사나와져 가고 있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나에요! 내가 바로 여덟 살 때 어머니한테서 버림을 받은 바로 그 아이에요. 어머니는 내가 장님이 되어 간다고 버렸던 거예요.” 클로디어는 격렬하게 어머니를 원망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는 것조차 모르며 또 알고 싶지도 않다고 내뱉었다. 그러나 반면 향부모에 대해선 끔찍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생모를 만나 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나의 마지막 청을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냥 그곳을 물러나왔다. 나는 존 스콰이어즈씨에게 클로디어의 근황을 알려주었다. 클로디어는 장님이며 가수로서 그런대로 잘 살고 있으나 생모를 원망하고 있다는 것도 물론 덧붙여 말해 주었다. 한 동안 잠잠하게 앉아 있던 스콰이어즈씨는 “정말 섭섭하군요. 그러나 이왕 시작한 일이니 그 애의 마음을 좀더 돌려봐 주십시오”하고 부탁했다. “따님의 마음은 아마 변하지 않을걸요. 클로디어의 말에 의하면 자기를 고아원에 넣을 때 부인께서는 그 애의 눈이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던데, 사실입니까” 나의 물음에 스콰이어즈씨는 잠시 주저했다. “그건 아마 사실일 겁니다. 그렇지만 여러가지 말 못할 사정이 있었다더군요. 아뭏든 단념 마시고 좀더 힘써 봐 주십시오.” 다음으로 나는 클로디어의 양부모를 만나기로 했다. 양부모인 블레어 부부 역시 클로디어의 생모에 대해서 상당히 험악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한 시간 이상이나 설득한 끝에 겨우 클로디어를 한 번 타일러 보겠다는 정도의 승낙을 얻을 수 있었다. 클로디어가 마음 속에 품은 한이 그 인생에 불치의 암이 될지도 모른다는 나의 말이 주효한 모양이었다.
다음 날 그 가부를 묻는 아의 전화를 받은 클로디어는 처음부터 노발대발 악을 썼다. “아시겠어요 난 버림을 받은 거란 말이에요!” 그녀는 격렬하게 흐느껴 울었다. “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할 때 엄마는 날 버렸던 거에요. 장님 딸이 거추장스러웠던 거죠.
그런데 이제 와서 날더러 엄마를 용서해 주라구요” “그렇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사정이 있었을 테고 또 할 말도 있다니까 한번쯤 만나 그것을 들어 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깡요” 전화기 저쪽에서는 흐느낌 소리만 간간이 들리는 긴 침묵이 계속되었다. “알았어요. 지금의 양친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만나 보겠어요. 그러나 딱 한번뿐이에요. 거듭 말하지만 내 맘은 절대로 변치 않아요. 절대로!” 나는 스콰이어즈씨에게 곧 전화를 걸었다. 스콰이어즈씨는 그날 밤 당장 부인과 함께 로스엔젤레스로 오겠다면서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아내 혼자 만났으면 좋겠군요. 나란히 붙은 방으로 두 개만 예약해 주십시오. 내일 아침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약속은 이행되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클로디어를 스콰이어즈 부인의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 걸음걸이라든자 굳은 몸가짐으로 보아 클로디어로서는 그것이 조금도 마음내켜 하는 일이 아님이 분명했다. 클로디어는 혼자서는 결코 어머니 방에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고집했다. 방안에는 커다란 소파에 파란 눈의 여인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머리에 흰 머리칼이 다소 섞여 있었지만 클로디어의 언니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을 만큼 젊었다. 클로디어가 먼저 떨리는 목소리로 “안녕하세요”하고 들릴 듯 말듯 말했다. 그러자 스콰이어즈 부인이 떠듬거리며 “몇 년만이지 널 만나면 여러 가지 할 얘기가 많은 것 같았는데 어찌 된 셈인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구나. 네 목소리는 옛날하고 조금도 다르지 않구나”하고 말했다. “그만 둬요!” 클로디어가 소리쳤다. “이리 가까이 온. 널 찬찬히 좀 보고 싶구나.” 나는 클로디어의 손을 이끌어 그 어머니 곁으로 데려갔다. 어머니가 소파에서 일어나 두 팔을 벌렸다. 딸을 끌어앉으려는 동작인 줄 알고 나는 좀 뒤로 물러섰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클로디어의 어깨에 손을 얹더니 그 손이 딸의 얼굴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재빨리 얼굴을 더듬고 나서는 다정하게 말했다. “어쩜, 아주 컸구나. 케다가 아주 예뻐지고” 클로디어가 머뭇머뭇 제 얼굴을 더음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만지며 “어머니도.어머니도.눈이”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안 보인단다. 그렇지만 너라면 어디서 만나더라도 꼭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클로디어가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아, 엄마가 앞을 못 보는 줄 진작 알았더라면날 데리러 오지 않은 것도 무리가 아니었군요. 날 버린 것도그렇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걸 가르쳐주지 않았단 말이에요.” 스콰이어즈씨는 부인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다.
어째서 “아내는 당신이 딸애한테 혹시 그 말을 할까봐 겁을 먹었던 에요. 딸애가 동정심 때문에 만나 주는 것은 어머니의 입장에서 참을 수 없다는 거였어요.” 장님에다 미망인인 몸으로 더 이상 시력을 잃어가는 딸의 보호자가 되기를 고집한다는 것은 현명치 못한 일이라고 스스로 판단한 어머니의 깊은 마음을 클로디어는 비록 원망 가운데 12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뒤이긴 하지만 그날에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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