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라 (눅12:13-21)
본문
1. 구약성서에 재산분배법에 대한 이런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 받는 자와 미움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그 미움 받는 자가 먼저 아들을 낳아 그녀의 소생이 장자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재산을 그 아들들에게 상속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사랑 받는 자의 아들인 차남을 장자 삼아서 안되고 반드시 그 미움 받는 자의 아들을 참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주 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면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며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기 때문입니다."(신명기 21장 15절-17절)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 유산 상속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한 사람은 바로 이 구약 율법에 기록된 재산 분배법에 불만을 가졌던 것입니다. 다 시 말해 미움받는 자가 낳은 아들이 형이어서 그가 두 몫을 차지하고 자 기는 아버지의 사랑받는 자가 낳은 아들이지만 차남이어서 한 몫밖에 받 지 못한 것이 못내 불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로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 사람에게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보실 때, 그 사람이 마음 에 탐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결국 파멸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이며 우상숭 배하는 사람이나 탐색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골 3:5, 고전 6:9,10) 죄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는데 용서받지 못하고 죽을 죄는 다음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호색 등입니다.(초오서의 '켄 터베리 이야기'에서) 여기서 보면 탐심은 기본적으로 용서받기 어려운 죽을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언에도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 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언 1:19)고 말하고 있습니다. 탐심의 결과 파멸에 이른 경우를 우리 주변에 실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문학을 통해 그 단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드라이저,Theodone Dreiser) 의 주인공은 가난한 여전도사의 아들 클라이드 그리피스(Clyde Griffths) 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가난한 가정의 종교적인 환경에 반발을 느꼈 고,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더 욕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약방 의 점원 생활로부터 출발해서 호텔의 보이로 전환됨에 따라 그의 순진했 던 마음은 점차 사라지고 온전히 세속적 욕망 속에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22세의 나이로 시카고에 진출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셔츠회사를 경영하는 숙부의 인정을 받아 얼마 뒤에는 과장으로 승진합니다.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직공 로베르타 (Roberta)와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이 무렵부터 클라이드는 이 지역의 상류사회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서 갑부의 딸 손드라(Sondra)와 새로운 교제를 하게 됩니다. 한편 로베르타는 클라이드의 자식을 임신하 여 정식결혼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세와 성공의 꿈에 눈이 먼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나 자식 또는 도덕성 따위가 문제되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베르타는 그의 입신출세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요 그의 진 로의 무거운 짐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베르타를 죽여 없애기로 결 심하고 산 속의 호수로 그녀를 유인하여 뱃놀이를 하다가 사고를 가장 보트를 뒤엎어 그녀를 물 속에 빠뜨립니다. 구해달라고 애걸하는 그녀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못들은 척 호숫가로 헤엄쳐 나오고 맙니다. 그것 으로 모든 것이 깨끗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곧 경찰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전기의자에서 22년의 짧은 생을 끝맺고 맙니다. 전통적 종교와 사회에 반항한 한 젊은이가 성공의 꿈이라는 욕망 때문에 비극적 인 자멸을 초래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믿음이나 도덕의 힘을 인정하지 않았던 주인공 클라이드는 성공 또는 출세만 할 수 있다 면 어떤 희생을 딴 사람에게 주더라도 그것은 전혀 문제되질 않았던 것 입니다. 갑부의 딸 손드라와 알게 되면서 입신출세의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다음과 같은 자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 미모! 그녀가 살고 있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그 세계!나와 같은 가난한 청년이 그러한 지체높은 자와 접촉하는 것이 악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출세의 꿈과 성공의 야망 앞에 사랑과 도덕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지만 결국은 그로 인해 살인과 자멸을 초래한 것입니다. 이런 비극적 현상은 19세기 이후 아메리카의 청 년들 사회에서 수없이 일어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풍조와 구조로 틀이 잡혀가고 있는 사회도 문제지만, 정신적 도덕적 목적과 창조적 명성을 내동댕이치고 물 질적 욕구와 쾌락과 출세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우리 개체들도 문제입니다.
이런 욕심은 희생과 파멸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 유의 넉넉한 데 있는 줄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람의 생사회복은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은 그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 소유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존재 가치가 평 가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타 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심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구하며 자기 중심, 자기 사랑에 치우쳐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맙니다.
2. 이어서 예수께서는 사람의 행복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음을 깨 우치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어느 부자가 곡간에 쌓아둘 곳 이 없을 만큼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큰 곡간을 짓고 쌓아 두어 평생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 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경고하셨습니다. 비유 끝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욕심(탐욕)은 자기만을 이롭게 하고자 힘쓰는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그 욕심(탐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탐욕은 삶의 방향이 자신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썩어질 것으 로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삶의 방향이 자신 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의 삶은 빛 가운데 밝아지며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아픔과 고통,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 자신의 불행한 처지만을 생각한다면 그는 어두움과 낙망, 우울증에 빠진 삶을 살 수 밖 에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되면 이기적이 되며 몸과 마음, 영혼 마저 병든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자신을 생각지 않고 시야를 넓혀 하늘을 바라보며 이웃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자신의 무겁고 어려운 짐보다 인류의 무거운 짐을 대신 걸머지신 예수님과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에 그 무거운 짐을 긴 막대 한쪽 끝에 매달고 그리고 막대기 다른 쪽 끝에는 그 짐과 비슷한 무게의 돌을 매달아 어깨에 매어 운반한다고 합니다. 양 쪽 끝에 비슷한 무게의 짐이 있으면 한쪽에만 무거운 짐이 있을 때보다는 균형이 잘 잡혀 덜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 의 무겁고 힘든 짐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이 가볍고 쉽게, 그리고 평안하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이웃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생활 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이 한층 기쁘고 소망이 넘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 믿게 될 때에 그의 삶은 위로 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늘 나라를 바라보 며 살게 됩니다. 그는 모든 일을 영원의 시각에서 봅니다. 즉 그는 사물 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봅니다. 예수 믿게 되면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어려운 일들이 쉬워지고 무거운 일들이 가볍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이렇게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삶의 방향이 변화되었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은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삶의 방향을 낮 은 곳에 처해 있는 이웃에게 바꿔 하늘 나라에 부요한 사람을 하나 소개 합니다.
(경향신문 2월 0일자) 100억 원대의 부동산 갑부의 막내아들로 곱게 자라 명문대를 졸업한 20대 젊은이, 김영진씨는 그의 장래가 보장된 사람으로 얼마든지 인생을 평안히 즐기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장된 미래 를 포기 하고 낮은 곳 으로 향했습니다. 지난해 8월 고려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 가 부랑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며 가출해서 무작정 충북 음성 꽃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마흔이 넘 어서 본 늦둥이 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무나 귀한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69)는차라리 꽃동네에 돈을 기부하고 남들처럼 살 라며그 일을 하면 다신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하 지만 꿈을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고통받는 이웃'들의 곁에서 평생을 살겠습니다. 나의 길을 가렵니다."며 올 3월 개교예정인 충북 음 성 꽃동네 현도 사회복지대 (총장 오웅진 신부)에 입학했으며 학교는 아 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꽃동네 인곡 자애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신부전증으로 시력을 잃은 채 버려진 50대 아 주머니, 폐결핵을 앓는 40대 아저씨, 중풍으로 말조차 못하는 할머니. 하루 10시간씩 환자들의 대소변 받아내기, 식사 수발, 목욕시키기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마음만은 더없이 가벼웠습니다. 김씨는 대학 입학 직후 인 91년 우연히 가입한 자원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소외된 이웃 에 눈을 뜨게 됐다며 이렇게 말합니다.알코을 중독자인 아버지와 집나 간 어머니 때문에 중2때부터 고학을 시작한 대학 친구, 자취할 돈조차 없 어 친구 집을 전전하는 같은 과 동기, 고아원에 버려져 엄마 만찾는 네 살배기를 보며 갈 길이 어렴풋이 보이더군요. 사실 그 전에는 봉사가 뭔 지도 몰랐습니다그의 손길이 닿고 그와 눈을 맞추던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며 보여준 편안하고 따뜻한 미소는 갈수록 그의 갈 길을 뚜렷하게 비춰주었습니다. 김씨는 그들에 대해내 삶의 스승이라고 말하며,인 생의 의미를 깨닫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그들이 그저 고마울 뿐 입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가난한 자는 본문 성경의 부자처럼 삶의 목표와 방향 이 오직 자신에게 집중되어 탐욕에 빠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 대하여 부요하다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으로 가난한 이웃 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에서 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찮게 보이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일지라도 그가 목 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그가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영접하고, 그가 헐벗었을 때에 좋은 옷을 입혀 주고, 그가 병들었을 때와 갇혔을 때 평안 하고 친절하게 돌보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행한 것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의 삶의 모습이며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주 일성수생활, 십일조 생활, 절기 준수 등을 철저히 잘 지키는 사람을 두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이라고 하지 않고 그 마음과 생활이 낮은 곳 으로 향하여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 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스페인 격언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래 전에 우리 나라 장례식 풍습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체에 수의를 입히고 그 수의에 주머니 하나를 달아 주고서 그 주머니 속에는 시체의 손발톱을 깎아 담고 저승 가는 노자 돈으로 쓰라고 십 원 짜리 몇 개를 담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저 승 가는데 노자 돈이 필요하십니까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땅 한 평, 기도원 하나, 은행통장 하나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땀방울 하나, 피 한 방울 남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인류를 위해 희생하셨 습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눅 12:34)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하찮아 보이는 작은 자 하나를 가장 큰 보물로 삼으시 고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이 그 낮은 곳으로 향하므로 장차 하늘 나라에 부요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 마디로 그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 사람에게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예수께서는 그 사람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바로 지적하신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셔서 세상에 오신 예수께서 보실 때, 그 사람이 마음 에 탐심을 버리지 아니하면 결국 파멸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이며 우상숭 배하는 사람이나 탐색하는 자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없습니다.(골 3:5, 고전 6:9,10) 죄에는 용서받을 수 있는 죄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는데 용서받지 못하고 죽을 죄는 다음 일곱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즉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호색 등입니다.(초오서의 '켄 터베리 이야기'에서) 여기서 보면 탐심은 기본적으로 용서받기 어려운 죽을 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잠언에도 "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 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잠언 1:19)고 말하고 있습니다. 탐심의 결과 파멸에 이른 경우를 우리 주변에 실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문학을 통해 그 단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메리카의 비극,An American Tragedy'(드라이저,Theodone Dreiser) 의 주인공은 가난한 여전도사의 아들 클라이드 그리피스(Clyde Griffths) 입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가난한 가정의 종교적인 환경에 반발을 느꼈 고, 정신적인 것보다는 물질적인 것에 더 욕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약방 의 점원 생활로부터 출발해서 호텔의 보이로 전환됨에 따라 그의 순진했 던 마음은 점차 사라지고 온전히 세속적 욕망 속에서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22세의 나이로 시카고에 진출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셔츠회사를 경영하는 숙부의 인정을 받아 얼마 뒤에는 과장으로 승진합니다.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그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여직공 로베르타 (Roberta)와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이 무렵부터 클라이드는 이 지역의 상류사회에 출입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서 갑부의 딸 손드라(Sondra)와 새로운 교제를 하게 됩니다. 한편 로베르타는 클라이드의 자식을 임신하 여 정식결혼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세와 성공의 꿈에 눈이 먼 그에게 있어서 사랑이나 자식 또는 도덕성 따위가 문제되질 않았습니다. 오히려 로베르타는 그의 입신출세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요 그의 진 로의 무거운 짐이 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베르타를 죽여 없애기로 결 심하고 산 속의 호수로 그녀를 유인하여 뱃놀이를 하다가 사고를 가장 보트를 뒤엎어 그녀를 물 속에 빠뜨립니다. 구해달라고 애걸하는 그녀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못들은 척 호숫가로 헤엄쳐 나오고 맙니다. 그것 으로 모든 것이 깨끗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곧 경찰에 붙잡혀 사형선고를 받고 전기의자에서 22년의 짧은 생을 끝맺고 맙니다. 전통적 종교와 사회에 반항한 한 젊은이가 성공의 꿈이라는 욕망 때문에 비극적 인 자멸을 초래하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믿음이나 도덕의 힘을 인정하지 않았던 주인공 클라이드는 성공 또는 출세만 할 수 있다 면 어떤 희생을 딴 사람에게 주더라도 그것은 전혀 문제되질 않았던 것 입니다. 갑부의 딸 손드라와 알게 되면서 입신출세의 기회가 주어지자 그는 다음과 같은 자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그 미모! 그녀가 살고 있는 부와 사회적 지위의 그 세계!나와 같은 가난한 청년이 그러한 지체높은 자와 접촉하는 것이 악한 것이 될 수 있을까" 출세의 꿈과 성공의 야망 앞에 사랑과 도덕은 여지없이 짓밟히고 말지만 결국은 그로 인해 살인과 자멸을 초래한 것입니다. 이런 비극적 현상은 19세기 이후 아메리카의 청 년들 사회에서 수없이 일어났고, 그것은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풍조와 구조로 틀이 잡혀가고 있는 사회도 문제지만, 정신적 도덕적 목적과 창조적 명성을 내동댕이치고 물 질적 욕구와 쾌락과 출세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우리 개체들도 문제입니다.
이런 욕심은 희생과 파멸만을 초래할 뿐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 유의 넉넉한 데 있는 줄 생각하지만 사실은 사람의 생사회복은 하나님의 장중(掌中)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사람은 그 존재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대상이지 소유의 대상이 아닙니다. 인간은 그 소유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존재 가치가 평 가받는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타 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심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을 구하며 자기 중심, 자기 사랑에 치우쳐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맙니다.
2. 이어서 예수께서는 사람의 행복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음을 깨 우치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어느 부자가 곡간에 쌓아둘 곳 이 없을 만큼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큰 곡간을 짓고 쌓아 두어 평생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인생을 즐기리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 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경고하셨습니다. 비유 끝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재물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산다면 그 사람의 미래는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욕심(탐욕)은 자기만을 이롭게 하고자 힘쓰는 마음을 말하는 것으로, 그 욕심(탐욕)을 억제하지 못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탐욕은 삶의 방향이 자신에게 집중되기 때문에 결국에는 썩어질 것으 로 끝장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삶의 방향이 자신 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면 그의 삶은 빛 가운데 밝아지며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자신의 아픔과 고통, 자신의 괴로움과 슬픔, 자신의 불행한 처지만을 생각한다면 그는 어두움과 낙망, 우울증에 빠진 삶을 살 수 밖 에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삶의 방향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되면 이기적이 되며 몸과 마음, 영혼 마저 병든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자신을 생각지 않고 시야를 넓혀 하늘을 바라보며 이웃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자신의 무겁고 어려운 짐보다 인류의 무거운 짐을 대신 걸머지신 예수님과 다른 사람의 무거운 짐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아프리카에서는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에 그 무거운 짐을 긴 막대 한쪽 끝에 매달고 그리고 막대기 다른 쪽 끝에는 그 짐과 비슷한 무게의 돌을 매달아 어깨에 매어 운반한다고 합니다. 양 쪽 끝에 비슷한 무게의 짐이 있으면 한쪽에만 무거운 짐이 있을 때보다는 균형이 잘 잡혀 덜 무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여러분,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여러분 의 무겁고 힘든 짐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인생들이 가볍고 쉽게, 그리고 평안하게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무거운 짐들을 모두 주님께 맡기고 이웃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는 생활 입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이 한층 기쁘고 소망이 넘칠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부요한 자의 삶을 살게 됩니다.
사람이 예수 믿게 될 때에 그의 삶은 위로 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다시 말해 하늘 나라를 바라보 며 살게 됩니다. 그는 모든 일을 영원의 시각에서 봅니다. 즉 그는 사물 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봅니다. 예수 믿게 되면 항상 모든 일에 있어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어려운 일들이 쉬워지고 무거운 일들이 가볍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 믿게 되면 이렇게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삶의 방향이 변화되었지만 오히려 자기 자신은 생명력이 넘치는 삶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삶의 방향을 낮 은 곳에 처해 있는 이웃에게 바꿔 하늘 나라에 부요한 사람을 하나 소개 합니다.
(경향신문 2월 0일자) 100억 원대의 부동산 갑부의 막내아들로 곱게 자라 명문대를 졸업한 20대 젊은이, 김영진씨는 그의 장래가 보장된 사람으로 얼마든지 인생을 평안히 즐기면서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장된 미래 를 포기 하고 낮은 곳 으로 향했습니다. 지난해 8월 고려대 불문과를 졸업한 그 가 부랑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사회복지사가 되겠다며 가출해서 무작정 충북 음성 꽃동네에 들어갔습니다. 집안은 발칵 뒤집혔습니다. 마흔이 넘 어서 본 늦둥이 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너무나 귀한 자식이었던 것입니다. 아버지(69)는차라리 꽃동네에 돈을 기부하고 남들처럼 살 라며그 일을 하면 다신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기까지 했습니다. 하 지만 꿈을 접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고통받는 이웃'들의 곁에서 평생을 살겠습니다. 나의 길을 가렵니다."며 올 3월 개교예정인 충북 음 성 꽃동네 현도 사회복지대 (총장 오웅진 신부)에 입학했으며 학교는 아 직 문을 열지 않았지만 이미 지난해 11월부터 꽃동네 인곡 자애병원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신부전증으로 시력을 잃은 채 버려진 50대 아 주머니, 폐결핵을 앓는 40대 아저씨, 중풍으로 말조차 못하는 할머니. 하루 10시간씩 환자들의 대소변 받아내기, 식사 수발, 목욕시키기 몸은 파김치가 됐지만 마음만은 더없이 가벼웠습니다. 김씨는 대학 입학 직후 인 91년 우연히 가입한 자원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소외된 이웃 에 눈을 뜨게 됐다며 이렇게 말합니다.알코을 중독자인 아버지와 집나 간 어머니 때문에 중2때부터 고학을 시작한 대학 친구, 자취할 돈조차 없 어 친구 집을 전전하는 같은 과 동기, 고아원에 버려져 엄마 만찾는 네 살배기를 보며 갈 길이 어렴풋이 보이더군요. 사실 그 전에는 봉사가 뭔 지도 몰랐습니다그의 손길이 닿고 그와 눈을 맞추던 환자들이 세상을 떠나며 보여준 편안하고 따뜻한 미소는 갈수록 그의 갈 길을 뚜렷하게 비춰주었습니다. 김씨는 그들에 대해내 삶의 스승이라고 말하며,인 생의 의미를 깨닫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준 그들이 그저 고마울 뿐 입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가난한 자는 본문 성경의 부자처럼 삶의 목표와 방향 이 오직 자신에게 집중되어 탐욕에 빠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께 대하여 부요하다는 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으로 가난한 이웃 을 돕는 것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25장 31절-46절에서 이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하찮게 보이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일지라도 그가 목 마를 때에 마시게 하고, 그가 나그네 되었을 때 따뜻하게 영접하고, 그가 헐벗었을 때에 좋은 옷을 입혀 주고, 그가 병들었을 때와 갇혔을 때 평안 하고 친절하게 돌보아 주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행한 것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의 삶의 모습이며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것입니다. 주 일성수생활, 십일조 생활, 절기 준수 등을 철저히 잘 지키는 사람을 두고 영생에 들어갈 수 있는 의인이라고 하지 않고 그 마음과 생활이 낮은 곳 으로 향하여 사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며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 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스페인 격언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래 전에 우리 나라 장례식 풍습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시체에 수의를 입히고 그 수의에 주머니 하나를 달아 주고서 그 주머니 속에는 시체의 손발톱을 깎아 담고 저승 가는 노자 돈으로 쓰라고 십 원 짜리 몇 개를 담아주는 것이었습니다. 저 승 가는데 노자 돈이 필요하십니까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땅 한 평, 기도원 하나, 은행통장 하나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땀방울 하나, 피 한 방울 남기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인류를 위해 희생하셨 습니다. "네 보물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느니라"(눅 12:34)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지극히 하찮아 보이는 작은 자 하나를 가장 큰 보물로 삼으시 고 여러분의 마음과 생활이 그 낮은 곳으로 향하므로 장차 하늘 나라에 부요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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