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생활을 위한 삶의 원칙 (눅12:32)
본문
고층 건물을 지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기 초와 뼈대입니다. 이것을 무시한 채 세워진 건물에 아무리 최신 설비와 화려한 장식을 한다고 해도 그 건물에 사는 사람의 위험과 불안감을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인생의 집도 이와 같습니다. 건물의 기초, 뼈대와 같은 확 고한 삶의 원칙이 없는 사람은 건물의 설비와 장식과 같은 지 위,명예, 권세, 물질을 다 가졌다고 해도 결코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행복한 생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부여하여 주신 복인 것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 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행복한 생활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을 수 있는 삶의 원칙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하나님께 칠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이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출 20:9-10). 칠일 중 하루, 즉 주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 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루 쉬신 것과 같이 우리도 칠일 중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며 쉬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일 동안 세상에서 모든 수고를 합니다. 자기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며 이것이 이 땅에 살면 서 부요한 삶을 누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육일간 세상에 살 면서 나태해진 신앙과 무뎌진 양심, 악한 생각과 행위들을 주님 의 날을 맞아 주의 전을 찾아와서 심령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날이 곧 주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지친 인 생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시며,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영생을 소유하는 길이며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주의 날을 온전히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또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 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즉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여 주일 을 지키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 하고 있던 것처럼 죄악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포로가 되 어 사망의 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마귀를 십자가에서 심판을 하셨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 에 감사하여 일주일 중 하루인 주일을 하나님께 바쳐야합니다. 매 주일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와 교제하는 생활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유익을 주게됩니다. 회개하는 생활을 갖게 합니다.-인간은 시시때때로 죄 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죄에서 벗어나는 성결 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하나님 앞 에 엎드려 회개할 때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자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게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히 4:12).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안에서 지 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습니다.-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림으 로 설교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성경공부를 하고, 다른 신자 의 간증을 들음으로 신앙과 생활에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이러 한 신앙의 가르침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생명의 가르침들입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은 초대교회에서부터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가장 역점을 두셨던 부분인 것입니다. 봉사하게 합니다.-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 며 세상에 대하여는 봉사의 임무를 하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사 회단체들은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서 조직되고 운영되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같 은 교회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가치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친교를 하게 됩니다.-교회의 기능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부분이 바로 친교입니다. 사도신경에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어울려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 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 기 영혼에 대한 주권도 인정치 않고 자기가 사용하는 물질 세 계의 주권도 인정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참다운 행복 이 없습니다. 잠언 3장 9절 말씀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 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 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 경제의 주권을 잡고 있는 것은 오늘날 유대 민족입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지금 축복받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콜 게이트"는 십일조를 드려 복을 받았습니다. 가난을 부여 안고 자라난 콜 게이트는 12살이 되었을 때 자립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12살 나이에 방황을 하다가 한 선장을 만나게 되 었습니다.여기에서 콜 게이트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십일조 의 위대한법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일을 굶주림으로 다니다, 겨우 비누, 양초를 만드는 공장에서 심부름꾼으로 출발한 그는 굶주린 배를 달래면서 하나님께 십일조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온 미국, 전 세계로 그의 상품인 비누, 화장품, 치약같은종류의 물품이 안뻗힌 곳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구약 율법주의 시대에나 행하였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벌써 율법 400년 이 전에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과 그의 군사와 싸워 그들을 격파하여 조카 롯과 롯의 가족, 소 돔과 고모라의 포로를 다시 찾아왔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그를 환영하러 사웨 골짜기까지 왔을 때 아브라함은 그 얻은 것 중에 10분의 1을 드렸습니다(창 14:18-20). 우리가 성경을 보노라면 아브라함이 가정적인 문제를 많이 겪었지만 굶었다는 귀절을 읽 어 볼 수 없습니다. 바로 그의 후손 야곱을 보더라도 율법 이전에 하란에서 돌 베개의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 때 주의 사자의 축복을 받고 야곱 은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 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라고 말했습니다. 일찌기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 앞에서 물질적인 주권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행적엔 물질의 궁 핍함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시련과 고통을 많이 당했지만 물 질적 고통은 언제나 멀리 지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우리 신앙의 행위 고백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심을 믿습니다."라고 입술로 기도해도 십일조로 신앙의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그 기도는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 없이 많 은 성도들이 주를 경외하면서도 여유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실천적인 믿음의 행위 고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영혼 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마련해 주셨으니 우리가 십일조로 신앙고백을 하여 그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도적질 하자 온 나라에 저주 가 오고 기근이 온 사실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말 3:8-12).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되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 집에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 을 주십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백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눅 15:3-7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 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을 찾아 다니는 목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영혼이 주님께 나올 때 이미 구원 얻 은 아흔 아홉의 영혼보다 더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며 또한 한 영혼을 찾는 전도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가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크리스챤보다 불신자가 더 많 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여러분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었고 여러분이 주님께 나아왔을 때 여러분은 다시 찾은 한 마리 양으로써 여러분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하늘에서는 기쁨의 잔치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말씀하셨고,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 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와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전 인류를 향한 복음 전도의 사명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도 이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한 마리의 양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너희 목마른 자 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모든 죄인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불문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난하고 병들어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 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사람이 병이 들어 오 래 누워 있으면 가족들도 짜증을 내며 돌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사업을 하다 망해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은 일가 친 척에게마저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맡기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람들이 귀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어 린이들도 인도해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 고 계시는데 예수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몇몇 부모가 자녀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이 어린 아이를 데 리고 왔다고 부모들을 꾸짖자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 이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누구나 다 인도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 가난 하고, 병들며, 소외된 사람들, 심지어 어린 아이들이라도,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초청을 전하여야겠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 천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 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 니"(시 84:10)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그 네 길이며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선 하고 아름답고 의롭게 사는 하루가 세상에서 악을 행하며 시 기와 질투와 분냄과 불의를 행하며 천 년을 사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의 결말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잘 살기 위해, 썩어질 영화를 위해 천 년을 산들 나에게 무 슨 유익이 있습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모세는 장성하였을 때 애굽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 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습니다. 또 애굽의 모든 보화보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기며살았 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세상의 낙보다 하나님의 법을 지켜 하루를 사는 것이 더 귀중함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뜨거운 불 속에서도 건짐을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의 천 년 영화를 생각지 말고 영 원한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구별되고 성별되게 살아가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칠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이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말씀입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이라"(출 20:9-10). 칠일 중 하루, 즉 주일은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육 일동안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루 쉬신 것과 같이 우리도 칠일 중 하루를 하나님께 드리며 쉬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일 동안 세상에서 모든 수고를 합니다. 자기의 일터에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일이며 이것이 이 땅에 살면 서 부요한 삶을 누리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육일간 세상에 살 면서 나태해진 신앙과 무뎌진 양심, 악한 생각과 행위들을 주님 의 날을 맞아 주의 전을 찾아와서 심령과 마음을 새롭게 하는 날이 곧 주의 날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으로 육신적으로 지친 인 생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시며, 말씀을 통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영생을 소유하는 길이며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주의 날을 온전히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또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 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즉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여 주일 을 지키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인간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살이 하고 있던 것처럼 죄악으로 말미암아 마귀의 포로가 되 어 사망의 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마귀를 십자가에서 심판을 하셨고, 죄와 사망과 사탄의 권세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은혜 에 감사하여 일주일 중 하루인 주일을 하나님께 바쳐야합니다. 매 주일 교회에 나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성도와 교제하는 생활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유익을 주게됩니다. 회개하는 생활을 갖게 합니다.-인간은 시시때때로 죄 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죄에서 벗어나는 성결 한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일매일 하나님 앞 에 엎드려 회개할 때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고 올바른 길로 가고 자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게 합니다.-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입니다(히 4:12).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 안에서 지 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가르침을 받습니다.-주일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림으 로 설교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고, 성경공부를 하고, 다른 신자 의 간증을 들음으로 신앙과 생활에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이러 한 신앙의 가르침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들을 수 없는 생명의 가르침들입니다. 그래서 이 가르침은 초대교회에서부터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가장 역점을 두셨던 부분인 것입니다. 봉사하게 합니다.-교회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리 며 세상에 대하여는 봉사의 임무를 하는 곳입니다. 대부분의 사 회단체들은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서 조직되고 운영되지만 교회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이같 은 교회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가치있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친교를 하게 됩니다.-교회의 기능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부분이 바로 친교입니다. 사도신경에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어울려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 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타락한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자 기 영혼에 대한 주권도 인정치 않고 자기가 사용하는 물질 세 계의 주권도 인정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여기에는 참다운 행복 이 없습니다. 잠언 3장 9절 말씀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 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 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계 경제의 주권을 잡고 있는 것은 오늘날 유대 민족입니다. 그들은 조상 때부터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렸기 때문에 그 후손들이 지금 축복받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콜 게이트"는 십일조를 드려 복을 받았습니다. 가난을 부여 안고 자라난 콜 게이트는 12살이 되었을 때 자립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12살 나이에 방황을 하다가 한 선장을 만나게 되 었습니다.여기에서 콜 게이트는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고 십일조 의 위대한법칙을 알게 되었습니다. 몇일을 굶주림으로 다니다, 겨우 비누, 양초를 만드는 공장에서 심부름꾼으로 출발한 그는 굶주린 배를 달래면서 하나님께 십일조의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온 미국, 전 세계로 그의 상품인 비누, 화장품, 치약같은종류의 물품이 안뻗힌 곳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구약 율법주의 시대에나 행하였던 것이 아니냐고 반문합니다만, 하나님께서는 벌써 율법 400년 이 전에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 과 그의 군사와 싸워 그들을 격파하여 조카 롯과 롯의 가족, 소 돔과 고모라의 포로를 다시 찾아왔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그를 환영하러 사웨 골짜기까지 왔을 때 아브라함은 그 얻은 것 중에 10분의 1을 드렸습니다(창 14:18-20). 우리가 성경을 보노라면 아브라함이 가정적인 문제를 많이 겪었지만 굶었다는 귀절을 읽 어 볼 수 없습니다. 바로 그의 후손 야곱을 보더라도 율법 이전에 하란에서 돌 베개의 처량한 신세가 되었을 때 주의 사자의 축복을 받고 야곱 은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 께 드리겠나이다"(창 28:22)라고 말했습니다. 일찌기 믿음의 조상들은 하나님 앞에서 물질적인 주권을 인정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행적엔 물질의 궁 핍함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시련과 고통을 많이 당했지만 물 질적 고통은 언제나 멀리 지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우리 신앙의 행위 고백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시는 하나님이 심을 믿습니다."라고 입술로 기도해도 십일조로 신앙의 실천을 하지 아니하면 그 기도는 효과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 없이 많 은 성도들이 주를 경외하면서도 여유있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실천적인 믿음의 행위 고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려주심으로 우리의 영혼 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축복을 마련해 주셨으니 우리가 십일조로 신앙고백을 하여 그 축복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여야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도적질 하자 온 나라에 저주 가 오고 기근이 온 사실도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말 3:8-12).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를 드리되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 집에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 을 주십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백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눅 15:3-7에는 잃은 양 한 마리를 찾기 위해 아흔 아홉 마 리의 양을 두고 잃은 양을 찾아 다니는 목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영혼이 주님께 나올 때 이미 구원 얻 은 아흔 아홉의 영혼보다 더 기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것이며 또한 한 영혼을 찾는 전도의 사명이 얼마나 귀중한가 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에는 크리스챤보다 불신자가 더 많 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여러분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었고 여러분이 주님께 나아왔을 때 여러분은 다시 찾은 한 마리 양으로써 여러분 한 사람으로 인하여 하늘에서는 기쁨의 잔치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전도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고 말씀하셨고,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 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대와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 전 인류를 향한 복음 전도의 사명은 예수 믿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도 이 일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한 마리의 양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너희 목마른 자 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고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고 하셨습니다. 먼저, 우리는 모든 죄인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누구를 불문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난하고 병들어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 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인도해야 합니다. 사람이 병이 들어 오 래 누워 있으면 가족들도 짜증을 내며 돌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사업을 하다 망해 어려움 중에 있는 사람은 일가 친 척에게마저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맡기라고 권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사람들이 귀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어 린이들도 인도해야 합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증거하 고 계시는데 예수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몇몇 부모가 자녀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제자들이 어린 아이를 데 리고 왔다고 부모들을 꾸짖자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 이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안수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는 누구나 다 인도해야 합니다. 죄를 짓고, 가난 하고, 병들며, 소외된 사람들, 심지어 어린 아이들이라도, 아직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초청을 전하여야겠습니다.
넷째로, 하나님께 천분의 일을 드려야 합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 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 니"(시 84:10)라고 시편기자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나그 네 길이며 우리의 본향은 천국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선 하고 아름답고 의롭게 사는 하루가 세상에서 악을 행하며 시 기와 질투와 분냄과 불의를 행하며 천 년을 사는 것보다 나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의 결말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남보다 잘 살기 위해, 썩어질 영화를 위해 천 년을 산들 나에게 무 슨 유익이 있습니까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 모세는 장성하였을 때 애굽왕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 함을 거절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습니다. 또 애굽의 모든 보화보 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은 능욕을 더 큰 재물로 여기며살았 습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세상의 낙보다 하나님의 법을 지켜 하루를 사는 것이 더 귀중함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 결과 뜨거운 불 속에서도 건짐을 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한 자의 천 년 영화를 생각지 말고 영 원한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구별되고 성별되게 살아가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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