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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중간지대는 없다 (눅11:14-28)

본문

예수님께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23절). 주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하는 사람과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으로 세상 사람들을 나누신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의 편입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반대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니라고 생각합니까 과거 냉전시대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고 그 사이에 중립을 표방한 중립국가도 있었고 비동맹 국가들도 있었습니다. 이데올로기 문제에 있어서 중립이라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 열풍에 휩싸여 있습니다. 정당 지지에 있어서 개인에 따라 여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고 야당을 지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여당도 싫고 야당도 싫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정치에도 중립을 표방하는 것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힘을 쓰는 데 있어서는 적당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최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힘을 지나치게 쓰면 폭력이 되고 힘을 너무 안 쓰면 타인의 공격 대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따라서 힘을 적당히 발휘하는 것이 좋습니다. 돈을 버는 문제도 지나치게 벌려고 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려거도 하지 말고 적당히 버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이처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에서 적당하게 행하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 좋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적인 면에서도 이런 태도를 답습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면에서라면 몰라도 신앙적인 면에서 중립이란 있을 수 없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과연 누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겠습니까
첫째로, 편견 때문에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주님은 단번에 그 사람의 상태가 귀신에 의한 것임을 아시고 그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귀신이 쫓겨나자 당연히 그 사람은 온전하여졌습니다. 거기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고 놀라며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야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마12:23) 그러나 그 중에 있던 일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마귀 사단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이런 식으로 대응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주된 이유는 예수는 메시야가 될 수 없다는 그들의 편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아들들 중에도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 있음을 언급하심으로 그들이 편견을 지적하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그 경우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도 이 바리새인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귀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독교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옛날 사람들은 지구는 평평하고 끝이 있어서 가고 또 가노라면 막바지엔 절벽에 이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구는 달걀처럼 둥글다고 증명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중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지요.
풀톤이 처음으로 증기선을 만들겠다고 나섰을 때에 대중들은 조소하며 비웃었습니다. 어떤 어리석은 일들을 보면 대중들은 "아, 그런 행위는 마치 풀톤의 어리석음과 같구나"라고 속담을 만들어 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증기선들은 마치 조그마한 도시를 이루어 온 바다를 항해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대중은 또한번 완전히 잘못된 것이지요. 큐리 부인은 많은 물질과 정력을 바쳐서 라듐을 발견해 내겠다고 비장한 각오로 연구에 돌입했습니다. 그때 주위에 있던 대중들은 "흥, 라듐이 다 무엇이라"하면서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라듐은 질병 퇴치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고 보면 조롱하던 대중들은 고스란히 잘못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대중의 생각과 판단이라고 해서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흔히 대중이 틀릴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도 대중 속에 속한 한 사람의 개인입니다. 여러분은 잘못되어 있지 않습니까 대중을 반드시 따라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속담에 "남이 장에 가니 거름 지고 장 보러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대중에 섞여 그대로 떠밀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나아가고 있습니다. 닥한 일입니다. 큰 문과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세상 모든 대중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영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든지 그런 것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반대한다고 여러분 각자도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잠14:12) 혹시 나는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고 그분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된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 계십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나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그 빈 마음에 예수님을 모셔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도 멀리 하고 귀신도 멀리 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더 많은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 들어가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게 되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마음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당신이 알든지 모르든지, 결국 당신의 마음은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 자신과 함께 하지 아니하거나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사람이 자신을 반대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잃은 양을 찾아 우리에 모으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제거하도록 선동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 진리를 말했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 그 해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요11:49-52) 국가보안법에 불고지죄(不告知罪)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첩인 것을 알고도 관계 당국에 알리지 않고 방관만 할 때 해당되는 죄입니다.
자신이 직접 간첩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가에 해를 끼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알고도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죄를 조장하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대열에 끼일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전도하며 모으는 일에 소홀히 함으로써 본의 아니게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것은 결국 마귀 사단을 돕는 것입니다. 마귀 사단이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마귀 사단은 이스라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로 하여금 사도들을 감금하기도 하며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행4:18) “너는 믿어도 좋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코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행4:19-20). 그들은 주님과 함께 모으는 자이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으로만 만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을 것입니다(고전3:15). 가까스로 얻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넉넉히 얻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1:11) “가까스로”란 말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外誌에 난 '트럭과 다리와 참새' 이야기. 어느 냇가에 다리가 놓여 있었다. 다리 앞에는 '이 다리는 1백Kg이상의 짐은 견딜 수 없습니다'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어느날 큰 짐을 실은 트럭이 이 다리를 지나게 되었다. 트럭의 짐이 1백Kg이었을 때 운전기사는 콧노래를 부르며 직진 했다. 트럭이 다리 한 가운데 이르렀을 때 참새 한 마리가 트럭 위에 앉았고 그 순간 다리는 무너지고 말았다. 한계점에 이르렀 을 때 사소한 부주의나 충격이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와 유사한 사고가 우리나라에서도 실제로 발생했습니다. 94년 11월 20일 서울에서 육교 밑을 지나가던 트레일러가 육교 상판과 충돌하여 상판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 사고로 반대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버스와 개인택시 등 차량 4대가 상판에 깔리면서 2명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트레일러의 높이가 4.49m였고 통과제한 높이는 4.4m였습니다. 제한 높이에 닿을락 말락 짐을 적대하는 것이 얼마나 아슬아슬합니까! 적대적인 쌍방이 대치하고 있는 경계선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합니까! 신앙에는 회색지대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서, 하나님과 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지 마십시오. 악마와 그의 막료들이 신도들의 신앙 생활 방해 공작을 위한 전략회의를 열었다. 젊은 엘리트 출신의 마귀가 크리스찬을 죽이자고 했다. 늙은 마귀가 순교는 교회의 씨가 된다고 경고했다. 누군가가 매를 때리자고 했다. 매 한대에 예수에 대한 열심이 더 생긴다고 했다. 가두자는 제안도 있었다. 가두면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님의 역사를 크게 일으키므로 손해라고 했다. 죄를 범하게 하자고 했다. 그것이 가장 성공적인 방법이긴 하나 그보다 더 획기적이고 좋은 전략을 모색하자고 했다. 가장 나이 많은 마귀가 지혜를 짜냈다. 열심히 전도도 하고 기도도 하고 사랑도 하자. 그러나 내일부터 하자고 속이는 전략이었다. 이 전략은 마귀의 최대의 성공 전략이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지키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편에 선다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아보고 성모 마리아를 복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15:7-9)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겨울이 되면 겨울잠을 자고 있는 개구리를 찾아다닙니다. 겨울잠을 자고 있는 개구리가 몸에 좋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개구리는 살아 있는 것을 통째로 넣고 삶아 먹을 때 몸에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살아 있는 개구리를 삶을 수 있을까요 미국 코넬 대학교의 실험실에서 있었던 예화를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큰 비이커에 넣었습니다. 비이커 밑에는 분젠등을 놓고 1초에 화씨 0.017도씩 데워지도록 불꽃을 아주 작게 놓았습니다. 온도가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에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비이커에서 뛰어올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태평스럽게 앉아 있었습니다. 온도는 0.017.도씩 올라 가는데 개구리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반쯤 지난 뒤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푹 삶아져서 죽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죽은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삶아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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