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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워두지 맙시다 (눅11: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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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미국 교회 성도들의 영적인 상태를 진단하는 어느 보고서 에서 '미국 교회 교인들의 95퍼센트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교인이고, 단지 5퍼센트의 그리스도인만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미국만이 아니라 오늘 한국 교회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95퍼센트의 교인, 소위 명목상의 교인들은 의식적으로는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합니다. 주일이 되면 습관적으로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참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이상으로 신앙이그들의 삶 속에 던져줄 수 있는 영향력을 거부하거나 외면합니다. 우리 동양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그와 같은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 의 모습을 정당화할 수 있는 철학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그것이 소위 중용지도입니다. 지나치게 열중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냉담 할 것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는 생활 자세입니다. 이런 의식, 이런 생활 자세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이 되어야 할 신앙 생을 방해하는 중대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에는 중럽이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처럼 차던지 덥던지 해야 합니다.
성경적인 신앙은 양자택일입니다. 둘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라. 왜냐하면 성경적인 신앙은 철저한 헌신을 통해서만 그 및을 발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2S절을 보세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 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그러면서 주님과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관계를 맺기를 거절하는 자는 그 영흔의 상태가 말하자면 빈 집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에 게서 더러운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그 귀신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다가 쉴만한 곳을 찾지 못해서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이 깨끗하게 청소되고 수리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더러운 귀신은 자기의 친구들까지 집에 데려와서 거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더러운 귀신은 자기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 고 와서 이 집을 점령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나중 상태가 처 음 상태보다 더 악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말씀의 내용입니다. 마땅히 내 영흔의 집에 있어야 할 것으로 채우지 못하고 있는 빈 집. 이 집을 아무리 깨끗하게 청소했다고 해도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빈 집은 빈 집 그대로 유지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빈 집은 머지않아 거미가 줄을 치고 쥐들이 날뛰게 될 것입니다. 우리 영흔의 집에 예수 그리스도가 왕 노릇하지 못하고,우리 마음 과 삶을 다스리지 못하고,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 하게 되면, 우리의 영흔이 말하자면 황폐한 집처럼 되어버리고 말 것 입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빈 집의 비유에서는 우리에게 무 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1. 회개는 하려 하면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마음은 빈 집과 갈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언제나 회개와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성경에서 참 된 진앙의 길로 우리를 초대할 때 사용되는 메시지는 '회개하고 복음 을 믿으라' 하는 것입니다. 회개가 우리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죄로부터 돌이키게 만드는 사건이라면, 믿음은 죄에서 돌아선 다음에 내가 새롭게 믿어야 할 내 모든 것을 온전히 맡기고 신뢰할 수 있는 분을 발견하고 그 분과 더불 어 맺는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추구되어야 할 새로운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믿음의 대상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를 말합니다. 예수님보다 앞서 온 세례 요한은 회개의 메시지를 팔레스틴의 민중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의 말씀을 듣고 있던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는 죄에서 떠나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중에 어떤 사람은 주일 아침이면 교회에 나와서 정중히 예배를 드럽니다. 그 날따 라 설교자의 메시지가 그 분의 마음에 특별히 와닿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집니다. 과거의 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그런 죄를 범한 사람이 구나.' 하는 깨달음과 뉘우침을 가지게 됩니다. '내가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 해. 이제는 그런 죄에서 꼭 떠나야지.' 합니다. 이처럼 성령님의 감동이 내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할 때 우리는 지난 날에 범한 죄에 대해서 아픔을 느끼면서 회개하기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슴 아프게 생각되어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삶 을 계속 살 수도 없고, 살아서는 안되고, 새로워져야 한다고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런 결심이 거기서 끝나기가 쉽습니다. 눈 물을 흘렸습니다.
가슴 아파 했습니다. 뼈저리게 뉘우쳤습니다. 이렇 게 살지 말아야지 하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끝납니다. 예 배가 끝났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만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잘못을 깨닫고 아파하고 뉘우친 그 뉘우침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과의 관계를 통해서 그 분을 따라 사는 삶과 연결되지 못하는 것을 우리 삶의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그리스도를 모셔야 하는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한 걸음 한 걸음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 다음 발 걸음이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는 사흘이 못되어서 다시 무력한 옛 날의 생활 상태로 돌아가고 맙니다. 이것은 사도 베드로가 말한 대로 개가 토했던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고 나서 더러운 구덩이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같은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런 상태를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단순 한 깨달음, 단순한 뉘우침, 단순한 죄에 대한 아픈 마음은 있지만 인격 적으로 확실히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는 것은 올바른 회개가 아닙니다. 계속되는 말씀 29절을 보세요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사실 요나의 표적을 통해서 더 놀라우신 표적이신 주님 자신을 가리키고 계십니다. 사홀만에 죽음에서 부하셔서 인류의 구 세주가 되실 예수님의 위대한 기적을 이 말씀을 통해서 선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위대하신 예수님이 오셨지만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 나의 왕으로 모시고 예수님과 더불어 사는 새로운 삶으로 들어가 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의 상태가 예수님 보실 때 빈 집처럼 보였 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안식처를 얻지 못해서 다시 돌아왔을 때 청소된 자기 집을 바라보면서 뭐랬는지 아세요 24절 말 을 보세 요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 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 라' 했습니다. 이 귀신은 아직도 이 집을 자기 집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마음 속에서 왕노릇하고 삶을 다스리지 못할 때 악령들은 우리를 바라보 면서 아직도 자기 집이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집주인이 바뀌어야 마귀가 자기 집이라고 주장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에 주님이 주인이 되지 않으시고 적극적인 신앙의 이 없는 상태에서는 마귀가 우리 마음의 집을 바라보면서 '저 사람 이 교회에는 다니지만 저건 내 집이야.'라고 말합니다.마귀는 깨끗하 게 청소해 놓은 접에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정말 어려운 형편에 있던 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 남으로 완전히 새롭게 변모된 모습을 봅니다. 그 여인이 막달라 마리 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마음과 삶에 왕으로 모시지 못하면 마귀의 집 노릇밖에는 하지 못하는 비극을 예수님의 교훈을 통 해서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들으세_R, 우리 마음을 주님이 주장하지 못하면 하는 수 없이 마귀가 주장할 수밖에 없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이 집을 자기들의 집이라고 말은 하면서도 예수님을 모시지 못하고 있는 사실 앞에서 인간 영혼의 위기를 직면할 수가 있습니다.
2. 주님과의 관계는 맺었지만 모시지 못하는 마음은 빈 접 과 같습니다. 주인은 있어도 주인이 주인 노룻하지 못하게 되면 이 집은 빈 집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계시기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나 의 구주이기는 하지만, 주님이 내 안에서 주인 노릇을 못하는 심령, 다시 말하면 주님으로 충만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그래서 성경은 우리더러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 습니다. 이 집은 비워 놓을 수 없습니다.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으로 충만함 을 받지 못하면 세상의 것으로 가득 차게 된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영흔의 상태는 어떤 자리에 있습니까 오늘 주신 말씀 21절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 다'고 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내 안에 계신 주님께서 정말 강력하게 왕노릇하십니까 나는 그 분 앞에 온전히 순종합니까 주님의 거룩한 영이 내 마음 과 의식과 삶을 지배하고 있어서 감히 마귀가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강 력하게 무장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아서 주님이 우리 안에서 행사하지 못하시는 그런 심령의 상태는 아떱니 까 여러분,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그 순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이 무엇인지 아십니 까 성령님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자신의 영입니다. 주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 안에서 하니떱의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걸어가며 성령님의 깊은 강에서 헤엄치 며 그 성령님 안에서 주님을 의지하고 이 악한 세상을 믿음으로 승리하 기를 주님이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심령이 성령님을 충만히 받기 위해서 목마르게 사모해야 합니다. 오순절의 놀라운 부흥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합니다. 놀라운 메시지였습니다.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님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하니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 서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가장 놀라운 선물은 바로 주님 자신의 성령님 입니다. 이 예수님의 거룩한 영을 우리들의 마음 속에 충만하게 부어 주심으로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살기를 주님께서는 기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능력 있는 생활을 하시고 귀한 말씀으로 교훈하시게 된 근거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사도행전 1o장 S8절을 읽어보면 그 비결 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니이 나사셋 예수에게 성령님과 능력을 기름 붓 하셨으매 저 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 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님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사람을 고치시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 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에게도 성령님의 부르심이 필요하셨다면 오늘 우리에 게는 얼마나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 성령님의 거룩한 부으심을 통해서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을가지고 능히 이 악한 세대를 이겨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이 성령님의 층만함을 얼마만큼 사모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까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이 성령님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믿게 되고 거듭나게 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성령님으로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거룩한 약속을 믿고 구할 때주님께서 성령님의 층만을 부어 주신다는 위대한 약속을 성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층만할 때 우리는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충만해야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충만할 때 우리는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게 됩니다. 성령님이 충만할 때 우리 마음 속에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체험하게됩니다. 성령님이 층만할 때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한 마음의 평화를 누릴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층만할 때 능력을 얻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담 대하게 나아가서 이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먼저 성령님을 층만히 받아 능력있는 생활을 해야 만 이 악한 세대를 이겨나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거룩한 능 력의 부음이 없을 때 우리의 심령은 빈 집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기 제 손에 든 컵은 빈 컵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기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이 컵 안에 있는 공기를 우리가 어떻게 없앨 수가 있 습니까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이 컵 안에 물을 채우면 됩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충만히 임재하게 되면 주님이 원치 아니하시는 것,주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것들이 내 속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한번 진단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주님의 다스림을 받는가 나는 성령님의 지배를 받는가 만일에 여기에 대답하지 못하면 아직도 내 마음은 빈 집의 상태입니다. 마귀 가 점령하려 하고 있습니다.
3. 죄를 범치 아니하여도 선을 행하려 하지 았는 마음은 빈 접과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고 악을 행치 않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그래야만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 하시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 사람들은 바로 이런 소극적인 종교 생활 로 만족하려 했습니다. 여기 바리새인 서기관의 기도를 들어보셨습니 까 '우리는 저 세리처럼 간음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저 죄인들처 럼 살인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도 살인한 일 없고 간음한 일 없고 나쁜 일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것으로 만족합니까 내게 부족한 것이 없습니까 나쁜 일을 안하려고만 하지 말고 좋은 일을 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언젠가는 히니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터인데 그때 주님 께 뭐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주님, 저는 도둑질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사람을 죽인 일도 없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을 사기친 일도 없습니다.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님, 저는 교회가 하는 일에 반대하거나 전도 사 업을 비난한 적도 없습니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습니까' 그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실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래, 그러면 너는 무엇을 했느냐' ". . 부모가 자녀를 교육시키는 일에 있어서도 어떤 부모님은 이 소극적 인 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얘, 너는 그것 하면 안돼. 그것 하지마, 이것 하지마.' 애들이 부모에게 뭐라고 묻는지 아십니까 '그러면 나더러 무엇 하 란 말이에요' 그들에게 이것을 하지 말고 무엇을 하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이것저것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을 가르치는 금지의 책이 아닙니다. 물론 성경은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 대해서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또습은 어떻습니까 에베소서 4장 25절 이하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도덕적인 경건 생활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짓을 버리라'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참된 것을 말하라' 했습니다. 언제 거짓말쟁이가 안됩니까 거짓말을 안하고 있는 때가 거짓말쟁 이가 아닌 것이 아닙니다. 그가 잠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 순 간은 일시적인 중단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곧 다시 거짓말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쟁이를 면하는 것은 그가 참말을 하기 시작할 때 비로소 거짓말쟁이가 아닙니다. 바울이 계속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세요 '도적질하는 자는 도적질하지 말고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 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보세요 도적질하는 사람에게 도적질을 하지 말라고만 성경이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구제하라고 말합니다. 도적질을 증단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자기가 번 것 가지고 남에게 베푸는 구제의 삶으로 변해야 합니다. 변화가 없이 우리의 삶의 변화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주님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꼭 하 셔야 할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어떤 여인이 그 진리에 동의했습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어쩌면 구구절절 주님의 말씀은 그렇 게 진리입니까!' 이 여인은 감격해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 마음의 집을 그냥 빈 집으로 놓아 두시겠습니까 아니면 회개하고 주님께 나아와 주님의 영으로 채움을 받고, 주님에게 복종하고, 그 분이 나를 지배하게 하고, 주님이 기뻐하 시는 일을 위해서 모든 것 다 바쳐 헌신하시겠습니까 오늘 내 마음의 상태는 어떻습니까 비워두면 안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히 채우시고 주님 위해 전적인 헌신을 다짐하고 시작하는 생의 뜻깊은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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