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향하여 (눅11:33-36)
본문
예수님께서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빛이 있으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지만 없으면 상당히 불편하게 지내게 되리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빛과 관련된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진리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빛을 필요로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생존하는 데 빛을 필요로 합니다. 빛이 없다면 한시라도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을 제일 먼저 만드셨던 이유입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인 생존 문제를 접어둔다 할지라도 빛이 없다면 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어두움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데 불편을 가져다 줍니다. 손으로 주위를 더듬어야 하고 발을 한 걸음 옮기는 데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어두움은 또한 죄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죄들이 어두움을 틈타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두움은 자연히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우리들은 주위가 어두울 때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여 바짝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걸려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빛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반딧불은 자체적으로 희미하나마 빛을 발산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와 같은 빛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반드시 빛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을 얻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빛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물질 세계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빛이 있습니다. 인류는 중천에 떠 있는 태양빛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나무를 서로 비벼서였건 돌을 서로 부딪쳐서였건 불씨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불을 지펴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두운 주위를 비출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이룩한 큰 업적이었습니다. 그것을 진전시켜서 등불을 만들었고 전등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노력들이 오늘날과 같은 인류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지식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빛입니다. 지적인 무지도 어두움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를 까막눈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렵고 또 불편합니까 공부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입니다. 따라서 기회가 얻어 열심히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영적인 어두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영혼에 관해 무지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조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죄에 빠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5절의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는 말씀에서 언급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 가장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서 오는 가시적인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답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표적, 요나의 이야기에 예표된 표적이 모호하거나 은밀한 것이라고 한 순간도 생각지 말라. 어떤 사람도 등불을 켜서 숨기지 않는다. 그처럼 내가 너희에게 주려는 표적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표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표적이 명백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 눈이 어두우면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들의 영적인 눈이 어둡다면 어떠한 하늘 표적도 분별치 못할 것이다. 이 영적 어두움은 빛으로만 몰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시27:1)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22:5)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1:9-10)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5)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6:23)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추구하십시오. 당신은 참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가운데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영적으로 어두움에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아무리 밝더라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얻은 빛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며 등불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키는 이유는 집안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누구도 등불을 켜서 숨겨놓지 않습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빛이 되게 하신 이유도 주위의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 아래 둔 등불과 같습니까 옛날 팔레스틴의 집들은 지름이 50cm도 안되는 작은 창문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대단히 어두웠습니다. 당시는 등잔불을 켜는 성냥이 없을 때였으므로 한 번 불이 꺼지면 다시 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평시에는 등잔을 대위에 올려 놓았다가 외출할 때는 대 위에서 내려 흙으로 만든 말 위에 두어 외출했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등잔불의 본래적 사명은 보여지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란 사람에게 보여지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숨은 제자란 있을 수 없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면 제자의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므로 제자이면 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다만 교회안에서만 보여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 밖의 사회생활에서 더 많이 보여져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4:1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9)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또한 우리 속에 있는 빛이 가려지지 않게 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우리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복음의 빛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춰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태양빛을 바라볼 때에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태양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사람은 어두운 그림자를 볼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어두움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을 등지고 사는 자는 언제나 어두움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마귀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얼마나 멉니까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며 또 우리에게서 떠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그 질문을 받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깜깜한 방에서 불을 켜 보십시오 순식간에 방안이 밝아집니다. 그렇다고 어둠이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다시 불을 끄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빛과 어둠 간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오는 시간은 순식간입니다. 마귀는 결코 구만리 장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이 있으면 마귀는 그 즉시 사라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빛이 없으면 마귀는 순식간에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첫째로, 우리는 빛을 필요로 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생존하는 데 빛을 필요로 합니다. 빛이 없다면 한시라도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을 제일 먼저 만드셨던 이유입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가장 근본적인 생존 문제를 접어둔다 할지라도 빛이 없다면 생활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게 됩니다. 어두움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데 불편을 가져다 줍니다. 손으로 주위를 더듬어야 하고 발을 한 걸음 옮기는 데도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어두움은 또한 죄를 부추기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죄들이 어두움을 틈타서 행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두움은 자연히 두려움을 일으킵니다. 우리들은 주위가 어두울 때 무언가 나쁜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닌가 하여 바짝 신경을 곤두세웁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이로제에 걸려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빛이 필요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빛을 얻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반딧불은 자체적으로 희미하나마 빛을 발산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와 같은 빛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람은 반드시 빛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을 얻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빛은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빛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물질 세계의 어두움을 밝혀주는 빛이 있습니다. 인류는 중천에 떠 있는 태양빛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궁리 저 궁리 하다가 나무를 서로 비벼서였건 돌을 서로 부딪쳐서였건 불씨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불을 지펴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음식을 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어두운 주위를 비출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류가 이룩한 큰 업적이었습니다. 그것을 진전시켜서 등불을 만들었고 전등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발명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노력들이 오늘날과 같은 인류의 문명을 이룩하는 데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지식도 우리가 필요로 하는 빛입니다. 지적인 무지도 어두움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문맹자를 까막눈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세상살이가 얼마나 어렵고 또 불편합니까 공부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어두움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입니다. 따라서 기회가 얻어 열심히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영적인 어두움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자기 영혼에 관해 무지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조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죄에 빠져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35절의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는 말씀에서 언급되어 있으며 예수님께서 가장 관심을 가지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늘로서 오는 가시적인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답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하는 표적, 요나의 이야기에 예표된 표적이 모호하거나 은밀한 것이라고 한 순간도 생각지 말라. 어떤 사람도 등불을 켜서 숨기지 않는다. 그처럼 내가 너희에게 주려는 표적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표적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 표적이 명백하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다. 눈이 어두우면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들의 영적인 눈이 어둡다면 어떠한 하늘 표적도 분별치 못할 것이다. 이 영적 어두움은 빛으로만 몰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시27:1)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1: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계22:5)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십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요1:9-10)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5)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빛입니다. “주의 말씀은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잠6:23)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그분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을 추구하십시오. 당신은 참 빛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가운데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영적으로 어두움에 있기 때문입니다. 태양이 아무리 밝더라도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
셋째로, 우리는 얻은 빛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참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며 등불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키는 이유는 집안의 어둠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어느 누구도 등불을 켜서 숨겨놓지 않습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셔서 빛이 되게 하신 이유도 주위의 어두움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과연 우리는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 아래 둔 등불과 같습니까 옛날 팔레스틴의 집들은 지름이 50cm도 안되는 작은 창문 하나 밖에 없었으므로 대단히 어두웠습니다. 당시는 등잔불을 켜는 성냥이 없을 때였으므로 한 번 불이 꺼지면 다시 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평시에는 등잔을 대위에 올려 놓았다가 외출할 때는 대 위에서 내려 흙으로 만든 말 위에 두어 외출했다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안전하게 보관하였다고 합니다. 등잔불의 본래적 사명은 보여지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란 사람에게 보여지는 데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한 것처럼 숨은 제자란 있을 수 없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아니하면 제자의 자격을 잃어버리는 것이므로 제자이면 숨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다만 교회안에서만 보여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회 밖의 사회생활에서 더 많이 보여져야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4:1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5:9)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또한 우리 속에 있는 빛이 가려지지 않게 되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4:6) 우리 속에 있는 빛이 어두우면, 복음의 빛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이 비춰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태양빛을 바라볼 때에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것 같이 하나님은 어두움이 조금도 없습니다. 태양을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사람은 어두운 그림자를 볼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어두움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러나 태양을 등지고 사는 자는 언제나 어두움 가운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해바라기 인생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마귀와 예수님과의 거리는 얼마나 멉니까 마귀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시간은 얼마나 걸리며 또 우리에게서 떠나는 시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그 질문을 받고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깜깜한 방에서 불을 켜 보십시오 순식간에 방안이 밝아집니다. 그렇다고 어둠이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요, 다시 불을 끄면 순식간에 어두워집니다. 빛과 어둠 간에는 거리가 없습니다. 마귀가 우리에게 오는 시간은 순식간입니다. 마귀는 결코 구만리 장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이 있으면 마귀는 그 즉시 사라지고 맙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빛이 없으면 마귀는 순식간에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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