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자를 위한 지침 (눅10:1-11)
본문
1983년 설날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서울 도봉구 수유리 세일 극장 옆 가정집에 불이 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화재로 다섯살짜리 아이가 불타 죽었고, 국민학교 교사인 그 아이의 어머니가 화상을 입었으며 이층이 전소되었습니다. 그날 아침 일곱 시경에 그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는데 “펑”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불길이 솟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두려운 나머지 불이야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자기만 황급히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방 안에서 잠을 자던 교사는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았으나 가정부가 부엌에 있을 것이라 믿고 피곤한 나머지 계속 잠을 잤습니다. 이때 아침 산보를 갔다가 도착한 남편이 집에 불난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급히 뛰어 올라가 이내 아내와 아이를 구해 냈지만, 아이의 생명은 건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부가 자기만 살겠다고 불이야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밖으로 뛰쳐 나온 가정부를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한번만 소리를 질렀던들 그런 불행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도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전도는 가장 기본적인 인륜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지옥 불길에 휩싸이게 되는 것을 경고해 줄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이 부름에 응한 70인을 내어보내시면서 전도 지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공적인 전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지침입니다.
첫째로,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십시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질 때 두 사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결혼 생활에도 공동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도에도 공동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은 연약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의지가 되므로 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처지와 심리를 고려하여 둘 씩 짝을 지어 내보내셨습니다. 전도할 때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의 증거가 더 효과적입니다. 한 사람은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전하고 한 사람은 전도에 방해가 되는 상황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단지 동료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을 대할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 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둘째로, 추수할 영혼들은 많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지 10년 후인 1895년에는 전국의 기독교 신자의 수가 746명이었습니다. 1년 후인 1896년에 8,496명, 1900년에는 18,081명으로 급속도로 증가되었고 현재 한국 교회의 신자수는 약 1000만 명에 달하고 있어 기독교 전래 100여년 동안 무려 10,000배가 훨씬 넘는 세계적인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한국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조짐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이제 믿을 만한 사람은 다 믿어서 전도하기가 힘들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전도하지 못하는 핑계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추수할 것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주장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말씀이 옳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어떤 학생이 집안에서 콘택트 렌즈를 분실했습니다. 그 학생은 동생과 함께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와서 찾아냈습니다. 그 학생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못 찾았는데, 어떻게 찾아 내셨어요” 그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희들 같이 플라스틱이나 유리조각 찾듯이 하지 않고, 수십 만원 짜리 보화를 찾듯이 했기 때문이야.” 한 영혼은 온 천하보다 귀중합니다. 전도할 때 우리가 이 어머니와 같은 태도로 나선다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르익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전도할 때 상처 입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는 이리 같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귀 사단은 불신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신자의 접근을 초동 단계부터 차단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예의 바르게 접근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무례하게 대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리와 같은 사람들도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함을 암시하셨습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경우 신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도 하셨습니다. 상대가 복음을 거부하리라는 것이 예상되더라도 전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 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예수 믿고 천당”으로 일제하 평양 시내의 어디서든 전도하던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 성함은 최 봉석(1869-1944)인데 최 권능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얼마나 전도에 열심이었는지 평양에서 2년 간 전도했는데 3천 명이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기생집에 들어가서도 전도하고, 남의 부엌에 들어가서도 전도하고, 낯 모르는 목사 장로를 붙들고도 전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신자입니다”고 하면, 최 목사님은 곧 “신자이면 왜 내게 전도하지 아니하는가”고 반격했습니다. 한번은 노상에서 너무 “예수 믿고 천당”을 외쳐, 순사가 취체를 했는데, 듣지 않자, 순사는 최 목사님에게 경찰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최목사님은 “내가 오늘이야 일본 경찰서장과 순사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하면서 경찰서로 앞서 향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양에는 남여, 신불신자를 불문하고 최목사님의 전도를 몇 번씩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번은 최 목사님이 평안북도 어느 산골에서 전도하다가 화전민들만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어느 산 여울가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 이 소리를 들은 화전민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금새 50여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된거요”라고 물었더니 최 목사님은 태연하게 “예수 믿으시오. 예수 안 믿으면 사람 다 죽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화가 나서 “뭐가 어째” 하면서 팔을 걷어 붙이고 덤벼들려고 했습니다. 최 목사님은 얼른 도망치면서 품안에서 누런 마패 비슷한 메달을 꺼내 들고 “암행어사 출도야!”라고 외쳤습니다. 그 메달은 남만주 노회에서 전도에 공이 크다고 표창으로 준 메달이었습니다. 그러자 무지한 화전민들은 지금도 암행어사가 있는 줄 알고 땅에 엎디어 “죽을 죄를 지었으니 살려만 주십시오”하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최 목사님은 위엄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죽고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님만 섬기면 우리 죄는 용서되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최 목사님은 “여부가 있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 봉석 목사님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전도에 헌신하여 70여 교회를 설립한 최 목사님의 전도 방법은 이처럼 참으로 특이하여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파했고,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에게도 스스럼없이 전파하였으며, “패역한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넷째로, 평안과 축복의 멧세지로 시작하십시오. 최 권능 목사님과 같은 방법을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들고 호별 방문할 때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닫아 버립니다. 같은 값이면 서두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는 심판과 지옥을 직설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평안과 사랑의 말로 전도의 문을 여는 것이 좋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은 본문에서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접촉할 것과 집안에 병자가 있다면 그를 위하여 기도할 것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이러한 지침들을 상기하며 올 한 해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일군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한 사람들이 방관자들이 아니라 일군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줄 다른 사람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후랭크시 리우바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발표를 했다. 1903년에 4명의 공산주의자가 연구를 시작하더니 1917년에는 40,000명의 공산의자가 생겨 소련을 공산주의 혁명으로 뒤집어 엎었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1987년에는 세게 약 15억의 인구가 공산주의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2.000년 동안 긴 세월에 기독교는 무얼하고 있었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두려운 나머지 불이야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자기만 황급히 도망쳐 나온 것입니다. 방 안에서 잠을 자던 교사는 부엌에서 무슨 소리가 난 것 같았으나 가정부가 부엌에 있을 것이라 믿고 피곤한 나머지 계속 잠을 잤습니다. 이때 아침 산보를 갔다가 도착한 남편이 집에 불난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급히 뛰어 올라가 이내 아내와 아이를 구해 냈지만, 아이의 생명은 건질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부부가 자기만 살겠다고 불이야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밖으로 뛰쳐 나온 가정부를 얼마나 원망했겠습니까 한번만 소리를 질렀던들 그런 불행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전도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전도는 가장 기본적인 인륜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로 말미암아 지옥 불길에 휩싸이게 되는 것을 경고해 줄 사람을 부르고 계십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이 부름에 응한 70인을 내어보내시면서 전도 지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은 성공적인 전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인이 따라야 할 지침입니다.
첫째로, 둘씩 짝을 지어 전도하십시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거운 짐을 질 때 두 사람의 공동 노력이 필요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결혼 생활에도 공동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전도에도 공동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은 연약합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의지가 되므로 강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처지와 심리를 고려하여 둘 씩 짝을 지어 내보내셨습니다. 전도할 때 한 사람보다 두 사람의 증거가 더 효과적입니다. 한 사람은 복음을 전하고 한 사람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은 전하고 한 사람은 전도에 방해가 되는 상황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단지 동료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을 대할 때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 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둘째로, 추수할 영혼들은 많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기독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지 10년 후인 1895년에는 전국의 기독교 신자의 수가 746명이었습니다. 1년 후인 1896년에 8,496명, 1900년에는 18,081명으로 급속도로 증가되었고 현재 한국 교회의 신자수는 약 1000만 명에 달하고 있어 기독교 전래 100여년 동안 무려 10,000배가 훨씬 넘는 세계적인 증가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한국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고 있는 조짐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에서는 이제 믿을 만한 사람은 다 믿어서 전도하기가 힘들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도 이들의 주장에 동조하면서 전도하지 못하는 핑계로 삼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추수할 것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주장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주님의 말씀이 옳겠습니까 주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어떤 학생이 집안에서 콘택트 렌즈를 분실했습니다. 그 학생은 동생과 함께 열심히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 때 어머니가 와서 찾아냈습니다. 그 학생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는 못 찾았는데, 어떻게 찾아 내셨어요” 그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너희들 같이 플라스틱이나 유리조각 찾듯이 하지 않고, 수십 만원 짜리 보화를 찾듯이 했기 때문이야.” 한 영혼은 온 천하보다 귀중합니다. 전도할 때 우리가 이 어머니와 같은 태도로 나선다면 지금까지와는 달리 무르익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셋째로, 전도할 때 상처 입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두십시오.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실 때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상대는 이리 같이 행동할 수 있습니다. 마귀 사단은 불신자의 마음을 움직여서 신자의 접근을 초동 단계부터 차단하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우리가 예의 바르게 접근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무례하게 대할 수 있음을 기억하고 핍박을 각오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리와 같은 사람들도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함을 암시하셨습니다. 또한 동네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아니할 경우 신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도 하셨습니다. 상대가 복음을 거부하리라는 것이 예상되더라도 전도하라는 말씀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 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예수 믿고 천당”으로 일제하 평양 시내의 어디서든 전도하던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 성함은 최 봉석(1869-1944)인데 최 권능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얼마나 전도에 열심이었는지 평양에서 2년 간 전도했는데 3천 명이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기생집에 들어가서도 전도하고, 남의 부엌에 들어가서도 전도하고, 낯 모르는 목사 장로를 붙들고도 전도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신자입니다”고 하면, 최 목사님은 곧 “신자이면 왜 내게 전도하지 아니하는가”고 반격했습니다. 한번은 노상에서 너무 “예수 믿고 천당”을 외쳐, 순사가 취체를 했는데, 듣지 않자, 순사는 최 목사님에게 경찰서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최목사님은 “내가 오늘이야 일본 경찰서장과 순사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 하면서 경찰서로 앞서 향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양에는 남여, 신불신자를 불문하고 최목사님의 전도를 몇 번씩듣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한 번은 최 목사님이 평안북도 어느 산골에서 전도하다가 화전민들만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어느 산 여울가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사람 죽는다! 사람 죽는다!” 이 소리를 들은 화전민들은 무슨 일인가 하여 금새 50여명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된거요”라고 물었더니 최 목사님은 태연하게 “예수 믿으시오. 예수 안 믿으면 사람 다 죽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화가 나서 “뭐가 어째” 하면서 팔을 걷어 붙이고 덤벼들려고 했습니다. 최 목사님은 얼른 도망치면서 품안에서 누런 마패 비슷한 메달을 꺼내 들고 “암행어사 출도야!”라고 외쳤습니다. 그 메달은 남만주 노회에서 전도에 공이 크다고 표창으로 준 메달이었습니다. 그러자 무지한 화전민들은 지금도 암행어사가 있는 줄 알고 땅에 엎디어 “죽을 죄를 지었으니 살려만 주십시오”하고 애원했다고 합니다. 최 목사님은 위엄있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이 보낸 암행어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낸 암행어사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죽고 살아남지 못할 것이오.” 그러자 사람들은 “하나님만 섬기면 우리 죄는 용서되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말에 최 목사님은 “여부가 있겠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최 봉석 목사님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평생을 전도에 헌신하여 70여 교회를 설립한 최 목사님의 전도 방법은 이처럼 참으로 특이하여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러나 무슨 방법으로 하든지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파했고, “뻔뻔하고 마음이 강퍅한 자”에게도 스스럼없이 전파하였으며, “패역한 백성”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넷째로, 평안과 축복의 멧세지로 시작하십시오. 최 권능 목사님과 같은 방법을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들고 호별 방문할 때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라고 말하도록 가르쳤습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갑니다”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은 상대방의 마음을 쉽게 닫아 버립니다. 같은 값이면 서두에 사람들이 거부감을 나타낼 수 있는 심판과 지옥을 직설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평안과 사랑의 말로 전도의 문을 여는 것이 좋습니다. 이 외에도 예수님은 본문에서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접촉할 것과 집안에 병자가 있다면 그를 위하여 기도할 것과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이러한 지침들을 상기하며 올 한 해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일군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한 사람들이 방관자들이 아니라 일군이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해줄 다른 사람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후랭크시 리우바라고 하는 사람이 이런 발표를 했다. 1903년에 4명의 공산주의자가 연구를 시작하더니 1917년에는 40,000명의 공산의자가 생겨 소련을 공산주의 혁명으로 뒤집어 엎었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1987년에는 세게 약 15억의 인구가 공산주의 밑에서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2.000년 동안 긴 세월에 기독교는 무얼하고 있었느냐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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