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날 (눅10:8-16)
본문
기독교의 가르침은 흔히 사랑의 멧세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성화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한결 같이 한 없이 자비롭고 평온한,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표정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묘사된 예수 그리스도는 차갑고 냉정하게 혹독하게 재앙을 선포하시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화 있을진저 가버나움아” 오죽했으면 그분께서 이런 재앙을 선포하셨겠습니까! 그분께서는 심판 때가 있을 것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두로와 시돈에 대한 심판을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끈질깁니다. 철저합니다. 지속적입니다. 박 한상 군이 한약상 아버지를 살해했을 때 우리 모두 치를 떨었습니다. 한 교수가 재단 이사장 되는 아버지를 살해했을 때 받은 충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식이 돈에 눈이 어두워서 부모도 몰라본다면 얼마나 살벌한 세상이 되겠습니까 집안에서조차 늘 두려움 가운데 지내야 할 것입니다. 또 지존파가 비밀 아지트에서 납치한 사람들을 철장으로 막은 지하실 방에 가두어두고 한 사람씩 살해하여 불태웠다는 보도에 접했을 때 그보다 더 끔찍한 죄악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고 답답했습니다. 아프리카가 아니라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는 나라에서 심지어 인육까지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군인들이 대검으로 여인들을 찔러죽인 것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첫째로, 심판받았던 성읍들
둘째, 심판받게 될 동네들-최후 심판, 대법원의 판결이 최종적이다. 기존의 판결을 뒤엎을 수도 있다.
셋째, 심판에서 벗어날 사람들-회개하고 영접한 자 소돔과 두로와 시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예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소돔은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의인이 열 사람도 못되는 것을 보시고 하늘로서 유황불을 내리셔서 그 도시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사해 밑바닥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또 다른 도시는 두로입니다. 두로는 그 당시 해상 무역을 주도하고 있던 페니키아인들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매우 튼튼하고 부요했습니다. 그 도시의 일부는 바닷가에 있었지만 바닷가에서 1km나 떨어져 있는 섬이 더 많은 영역을 차지했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화려한 물감과 아름다운 유리 제품을 잘 만들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사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전 586년 경에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두로에 관해 자기에게 해 주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두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로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군대의 침략을 받을 것이며, 나중에는 또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고 나무와 바위로 된 건물들은 다 부서져서 바다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다시 건설되지 못할 것이며 그 곳은 어부들이 그물을 말리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겔26:1-21). 작년 8월에 한 여성 역술가가 “신이 선택한 여자”라는 제목의 예언 서적을 출판했는데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약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예언한 것이 신통하게 잘 들어맞았다고 하여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어떤 회사원이 지난 9월에 연락했더니 워낙 사람이 많이 밀려 있어 내년 10월로 예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십중팔구 이 여인이 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음력 10월 대형 육상사고를 예언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이 때문에 가뜩이나 대형 참사를 여러 번 겪은 건설교통부가 비상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특별히 큰 사고 없이 지나가자 공무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언이 불발로 끝나자 그 점장이가 무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기도를 하여 액운을 돌려놓았다는 겁니다. 그 점장이가 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예측입니다. 누구라도 지난 날 우리 사회의 부실 실태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 예언을 한 지 몇 년 후에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은 그 도시의 바닷가에 있는 주요 부분을 포위하여 침략해 들어갔습니다. 그 전쟁은 1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바벨론 사람들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두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섬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그 도시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에스겔의 예언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250년 후에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군대가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 강력한 페르시아 해군의 힘을 꺽으려고 지중해 동쪽 해안의 모든 항구를 봉쇄했습니다. 그 도시들은 속속 항복했습니다. 마침내 알렉산더는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육지에서 1km 떨어진 두로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군대가 바닷가에서 1km나 떨어져 있는 그 섬까지 어떻게 해서 쳐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누군가가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파괴된 도시에 남아 있는 것들을 가져다가 바다 속에 집어넣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 옛날 도시에 있던 건물에서 나무와 바위와 흙을 파내서 섬까지 가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 일은 생각한 대로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로는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3만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노예로 팔렸고 지도자 2천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나중에 두로라는 다른 도시가 근처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옛날과 똑같은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0년 동안 어부들은 옛날 두로가 있던 곳을 그물 말리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모든 일이 에스겔서 26:1-14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과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250년 후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대답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에스겔이 말한 대로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겔26:1). 두로가 멸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기뻐했기 때문입니다(겔16:2). 성경은 예언의 책입니다. 많은 예언들이 적혀 있습니다. 부처와공자, 노자의글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언이라고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코란경에는 구체적인 예언이 하나 있다. 마호멧 자신이 메카에 돌아오겠다는 자기 성취의 예언이다. 무덤에서다시 일어나겠다던 예수님의 예언과 얼마나 다른가. 전자는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언들은 역술가들과 달리 단지 멋진 추측이 아니다. 성경의 예언은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돈 역시 두로와 쌍벽을 이루는 도시였습니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지배하던 가장 중요한 4개 항구 중 하나였다. 이 성읍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기 독자적인 정부 단위로서 각개의 영토가 곧 하나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따금 이웃 나라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한번도 연맹체에 가맹하거나 한 국가로 통합된 적은 없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시돈에 대해서 그 주민의 상당수가 죽겠지만 그 도시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겔28:21-23). 시돈은 공격을 받았고 그 도시의 왕이 배반하여 주민 4만 명이 살해되었지만 그 도시는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둘째로, 가장 나쁜 죄질은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죄를 똑같이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법부에서도 죄질이 나쁜 경우에는 더 많은 형량을 구형하기도 하고 선고하기도 합니다. 죄악이 아무리 중하다 하더라도 복음을 듣고 거부하는 죄보다 더 중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죄는 가장 큰 죄입니다. 한 번 듣고 거부한다고 해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죄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로, 전도자의 말을 듣는 것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전도자를 저버리는 것은 주님을 저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나의 분신이다” 그의 말을 잘 듣고 따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동성애,우상숭배,패륜이 아무리 중한 죄일지라도 복음을 거부하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은 아니다. 다윗이 인접 암몬 자손의 왕이 죽었을 때 조문 사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새 왕은 그 사신들을 잡아 수염을 절반이나 깎고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 보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스라엘과 암몬이 전쟁을 벌여서 암몬 족속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삼하10:1-6). 소돔이 멸망한 것은 동성애라는 변태적인 성범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첫째로, 심판받았던 성읍들
둘째, 심판받게 될 동네들-최후 심판, 대법원의 판결이 최종적이다. 기존의 판결을 뒤엎을 수도 있다.
셋째, 심판에서 벗어날 사람들-회개하고 영접한 자 소돔과 두로와 시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예언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습니다) 소돔은 인류 역사상 가장 사악한 도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의인이 열 사람도 못되는 것을 보시고 하늘로서 유황불을 내리셔서 그 도시를 멸망시키셨습니다. 지금은 이스라엘의 사해 밑바닥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언급하신 또 다른 도시는 두로입니다. 두로는 그 당시 해상 무역을 주도하고 있던 페니키아인들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매우 튼튼하고 부요했습니다. 그 도시의 일부는 바닷가에 있었지만 바닷가에서 1km나 떨어져 있는 섬이 더 많은 영역을 차지했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화려한 물감과 아름다운 유리 제품을 잘 만들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사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주전 586년 경에 에스겔이라는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두로에 관해 자기에게 해 주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 두로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로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군대의 침략을 받을 것이며, 나중에는 또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고 나무와 바위로 된 건물들은 다 부서져서 바다 속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는 다시 건설되지 못할 것이며 그 곳은 어부들이 그물을 말리는 곳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겔26:1-21). 작년 8월에 한 여성 역술가가 “신이 선택한 여자”라는 제목의 예언 서적을 출판했는데 이것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약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예언한 것이 신통하게 잘 들어맞았다고 하여 만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는데 어떤 회사원이 지난 9월에 연락했더니 워낙 사람이 많이 밀려 있어 내년 10월로 예약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십중팔구 이 여인이 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음력 10월 대형 육상사고를 예언했습니다. 기가 막힌 것은 이 때문에 가뜩이나 대형 참사를 여러 번 겪은 건설교통부가 비상이 걸렸다는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특별히 큰 사고 없이 지나가자 공무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언이 불발로 끝나자 그 점장이가 무어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자기가 기도를 하여 액운을 돌려놓았다는 겁니다. 그 점장이가 한 것은 예언이 아니라 예측입니다. 누구라도 지난 날 우리 사회의 부실 실태를 알고 있다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내용입니다. 이 예언을 한 지 몇 년 후에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은 그 도시의 바닷가에 있는 주요 부분을 포위하여 침략해 들어갔습니다. 그 전쟁은 13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결국 바벨론 사람들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그 도시를 파괴했습니다. 그러나 많은 두로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섬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은 그 도시를 점령하기는 했지만, 에스겔의 예언을 완전히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250년 후에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군대가 페르시아와의 전쟁 중 강력한 페르시아 해군의 힘을 꺽으려고 지중해 동쪽 해안의 모든 항구를 봉쇄했습니다. 그 도시들은 속속 항복했습니다. 마침내 알렉산더는 난공불락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육지에서 1km 떨어진 두로를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군대가 바닷가에서 1km나 떨어져 있는 그 섬까지 어떻게 해서 쳐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누군가가 한 가지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파괴된 도시에 남아 있는 것들을 가져다가 바다 속에 집어넣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섬까지 걸어서 갈 수 있는 길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은 그 옛날 도시에 있던 건물에서 나무와 바위와 흙을 파내서 섬까지 가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그 일은 생각한 대로 잘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로는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군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3만 명이나 되는 주민들이 노예로 팔렸고 지도자 2천 명이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나중에 두로라는 다른 도시가 근처에 건설되었습니다. 그러나 옛날과 똑같은 그 자리에 세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0년 동안 어부들은 옛날 두로가 있던 곳을 그물 말리는 장소로 사용했습니다. 모든 일이 에스겔서 26:1-14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과 똑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250년 후의 미래에 일어날 일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대답은 딱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에스겔이 말한 대로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겔26:1). 두로가 멸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성의 멸망을 기뻐했기 때문입니다(겔16:2). 성경은 예언의 책입니다. 많은 예언들이 적혀 있습니다. 부처와공자, 노자의글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예언이라고는 하나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코란경에는 구체적인 예언이 하나 있다. 마호멧 자신이 메카에 돌아오겠다는 자기 성취의 예언이다. 무덤에서다시 일어나겠다던 예수님의 예언과 얼마나 다른가. 전자는 쉽게 성취할 수 있는 것이지만 후자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예언들은 역술가들과 달리 단지 멋진 추측이 아니다. 성경의 예언은 도무지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시돈 역시 두로와 쌍벽을 이루는 도시였습니다. 페니키아 사람들이 지배하던 가장 중요한 4개 항구 중 하나였다. 이 성읍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각기 독자적인 정부 단위로서 각개의 영토가 곧 하나의 왕국을 이루고 있었다. 이따금 이웃 나라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한번도 연맹체에 가맹하거나 한 국가로 통합된 적은 없었다. 에스겔 선지자는 시돈에 대해서 그 주민의 상당수가 죽겠지만 그 도시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겔28:21-23). 시돈은 공격을 받았고 그 도시의 왕이 배반하여 주민 4만 명이 살해되었지만 그 도시는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이 역사적 사실입니다.
둘째로, 가장 나쁜 죄질은 복음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모든 죄를 똑같이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법부에서도 죄질이 나쁜 경우에는 더 많은 형량을 구형하기도 하고 선고하기도 합니다. 죄악이 아무리 중하다 하더라도 복음을 듣고 거부하는 죄보다 더 중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죄는 가장 큰 죄입니다. 한 번 듣고 거부한다고 해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죄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셋째로, 전도자의 말을 듣는 것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전도자를 저버리는 것은 주님을 저버리는 것이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는 나의 분신이다” 그의 말을 잘 듣고 따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8) 동성애,우상숭배,패륜이 아무리 중한 죄일지라도 복음을 거부하는 것보다 더 중한 것은 아니다. 다윗이 인접 암몬 자손의 왕이 죽었을 때 조문 사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 새 왕은 그 사신들을 잡아 수염을 절반이나 깎고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 보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스라엘과 암몬이 전쟁을 벌여서 암몬 족속이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삼하10:1-6). 소돔이 멸망한 것은 동성애라는 변태적인 성범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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