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로 인한 기쁨 (눅10:17-24)
본문
전도는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라 일석삼조(一石三鳥)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전도를 통해서 내가 기쁘고 전도받은 사람에게 기쁨을 주고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전도자의 기쁨(17절) 전도하러 나갔던 70인의 제자들은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도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즐거움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들도 전도하다 이리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고 문전박대를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전도하는 일을 계속했을 때 기쁜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당장은 어렵고 낙담되는 일이 있지만 나중에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전도는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과 같습니다. 쟁기질을 하며 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는 것은 고달픈 일입니다. 당장 수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추수 때는 열매를 거두는 때입니다. 큰 기쁨이 있습니다. 창고가 가득차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전도는 또한 인명 구조활동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작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참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헌신했습니다. 그 중에는 직업상 의무적으로 투입되었던 공공 구조대원들도 있었지만 자원봉사자로 나선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추가 붕괴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구조활동에 나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인체 내에서 암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석면 가루로 오염된 공기에도 개의치 않고 현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자원봉사자들이 할 일 없는 실업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참사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자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존자가 있음을 발견하고 환호하던 그들의 모습, 구조하며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뻐했습니다! 이들이 누린 기쁨은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받는 기쁨이 아니라 주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쉬는 기쁨이 아니라 일하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자신의 일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로 인한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쾌락으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생명을 건지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돈벌이의 기쁨이 아니라 자기 희생의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고 인정이 있어지며 살기 좋은 사회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차원 높은 기쁨을 추구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며 그러한 기쁨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전도자는 그와 같은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지옥 불못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불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이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기쁨은 점점점점 지옥 불못을 향해서 달려가는 영혼을 전도로 구원해 내게 된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기쁨만 얻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이름을 외칠 때 귀신들이 굴복하는 체험도 하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2.결신자의 기쁨 대상자가 분명히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았다면 그는 자신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음을 알고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감격과 환희입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을 기억하십니까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9) 넘치는 기쁨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70인의 제자들이 귀신들이 항복한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20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가장 기뻐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 고침을 받은 것을 인해서 크게 기뻐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 일이 있음으로 인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인해서 크게 기뻐합니다. 할렐루야. 또 어떤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잘 했더니 장사가 잘 된다고 기뻐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며 크게 기뻐합니다.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얼마나 기뻐하고 있습니까 영혼의 구원은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더 크게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이 구원받은 때 얼마간을 제외하고는 기뻐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구원받을 때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기뻐하십시오. 주님은 그것을 가장 크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번 받은 구원은 결코 취소되거나 잃어지거나 하는 것이 아님을 기뻐하십시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복음이 단순하여 어린이라도 쉽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만일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는 것이라 한다면 특별히 지적 능력이 뛰어난 소수 이외에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이 값 없이 주어지는 것임을 감사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돈 많은 부자들을 제외하고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감사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천성적으로 선하고 의지가 굳은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3.예수님의 기쁨(21절) 그리스도인이 전도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전도의 결과로 죄인 한 명이 회개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선한 목자로서 잃은 양 한 마리를 되찾는 것 같은 기쁨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죄를 지신 어린양으로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시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미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구원을 이루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죄인이 전도받아 구원받지 않으면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지은 명작 중에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동화의 제목이 행복한 왕자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왕자에 대한 이야기인 듯 싶으나 왕자보다는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마리의 제비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동화 속의 왕자는 실상인즉 어느 마을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왕자의 동상이다. 그 동상의 두 눈동자는 녹보석으로 되어있고, 왕자의 칼 자루에는 홍보석이 박혀 있다. 그리고 그 왕자의 동상은 항상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왕자의 동상이 행복한 것처럼 보여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으나, 왕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 세상에 너무 가난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착한 마음은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길 잃은 제비 한마리가 우연히 왕자의 동상 옆으로 날아왔다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제비는 가던 길을 멈추고 왕자의 청을 들어 왕자의 두 눈에서 녹보석을 뽑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 또한 칼자루에 박힌 홍보석을 뽑아서 어느 불쌍한 아가씨에게 갖다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왕자의 동상과 갈 길을 놓친 제비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제비는 겨울 아침 싸늘하게 얼어죽은 시체가 되어 동상 발 아래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본 왕자의 심장도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왕자와 제비의 진실한 행복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누가 이 제비와 같이 평화의 왕이신 그분의 뜻을 받들겠습니까 전도하는 사람은 전도하는 일로 인해 기쁨을 얻게 되며 전도 대상자에게 기쁨을 주며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1.전도자의 기쁨(17절) 전도하러 나갔던 70인의 제자들은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처럼 전도하는 사람에게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것은 전도에 아무런 장애가 없고 즐거움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들도 전도하다 이리와 같은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을 것이고 문전박대를 받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전도하는 일을 계속했을 때 기쁜 일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당장은 어렵고 낙담되는 일이 있지만 나중에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전도는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일과 같습니다. 쟁기질을 하며 땅을 갈아엎고 씨를 뿌리는 것은 고달픈 일입니다. 당장 수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추수 때는 열매를 거두는 때입니다. 큰 기쁨이 있습니다. 창고가 가득차는 뿌듯함이 있습니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126:6) 전도는 또한 인명 구조활동과 같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작년에 있었던 삼풍백화점 참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무너진 건물 잔해에 깔려 있는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헌신했습니다. 그 중에는 직업상 의무적으로 투입되었던 공공 구조대원들도 있었지만 자원봉사자로 나선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추가 붕괴의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구조활동에 나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인체 내에서 암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석면 가루로 오염된 공기에도 개의치 않고 현장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자원봉사자들이 할 일 없는 실업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직업을 가지고 있었지만 참사를 당한 사람들의 고통을 생각하며 자그마한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뛰어든 것입니다. 한 사람의 생존자가 있음을 발견하고 환호하던 그들의 모습, 구조하며 기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기뻐했습니다! 이들이 누린 기쁨은 보통 사람들이 누리는 기쁨과 차원이 다른 것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받는 기쁨이 아니라 주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쉬는 기쁨이 아니라 일하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자신의 일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로 인한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쾌락으로 인한 기쁨이 아니라 생명을 건지는 기쁨이었습니다. 이들의 기쁨은 돈벌이의 기쁨이 아니라 자기 희생의 기쁨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건강해지고 인정이 있어지며 살기 좋은 사회가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차원 높은 기쁨을 추구할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며 그러한 기쁨을 추구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전도자는 그와 같은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지옥 불못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불신자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이 얼마나 황홀하겠습니까 이와 같은 기쁨은 점점점점 지옥 불못을 향해서 달려가는 영혼을 전도로 구원해 내게 된 사람만이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자는 이러한 기쁨만 얻는 것이 아니라 전도를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기쁨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이름을 외칠 때 귀신들이 굴복하는 체험도 하며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2.결신자의 기쁨 대상자가 분명히 복음을 깨닫고 구원받았다면 그는 자신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음을 알고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특징이 감격과 환희입니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사마리아 여인을 기억하십니까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9) 넘치는 기쁨을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인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습니까 70인의 제자들이 귀신들이 항복한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20절)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가장 기뻐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가장 큰 기쁨인지를 가르쳐줍니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병 고침을 받은 것을 인해서 크게 기뻐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그런 일이 있음으로 인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낸 것을 인해서 크게 기뻐합니다. 할렐루야. 또 어떤 사람들은 신앙 생활을 잘 했더니 장사가 잘 된다고 기뻐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며 크게 기뻐합니다.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얼마나 기뻐하고 있습니까 영혼의 구원은 이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에 더 크게 기뻐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타까운 것은 우리들이 구원받은 때 얼마간을 제외하고는 기뻐할 줄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점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구원받을 때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었음을 기뻐하십시오. 주님은 그것을 가장 크게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한번 받은 구원은 결코 취소되거나 잃어지거나 하는 것이 아님을 기뻐하십시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복음이 단순하여 어린이라도 쉽게 이해하고 믿을 수 있음을 감사하십시오. 만일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는 것이라 한다면 특별히 지적 능력이 뛰어난 소수 이외에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구원이 값 없이 주어지는 것임을 감사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돈 많은 부자들을 제외하고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선행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님을 감사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천성적으로 선하고 의지가 굳은 일부 사람들을 제외하고 누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3.예수님의 기쁨(21절) 그리스도인이 전도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전도의 결과로 죄인 한 명이 회개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선한 목자로서 잃은 양 한 마리를 되찾는 것 같은 기쁨을 느끼시는 것입니다. 또한 세상 죄를 지신 어린양으로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시기 때문에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이미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고 구원을 이루신 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지만 죄인이 전도받아 구원받지 않으면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가 지은 명작 중에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가 있습니다. 동화의 제목이 행복한 왕자라고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왕자에 대한 이야기인 듯 싶으나 왕자보다는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 마리의 제비가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동화 속의 왕자는 실상인즉 어느 마을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왕자의 동상이다. 그 동상의 두 눈동자는 녹보석으로 되어있고, 왕자의 칼 자루에는 홍보석이 박혀 있다. 그리고 그 왕자의 동상은 항상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 왕자의 동상이 행복한 것처럼 보여 행복한 왕자라고 불렀으나, 왕자는 결코 행복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이 세상에 너무 가난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들을 바라보는 착한 마음은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길 잃은 제비 한마리가 우연히 왕자의 동상 옆으로 날아왔다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제비는 가던 길을 멈추고 왕자의 청을 들어 왕자의 두 눈에서 녹보석을 뽑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다. 또한 칼자루에 박힌 홍보석을 뽑아서 어느 불쌍한 아가씨에게 갖다 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왕자의 동상과 갈 길을 놓친 제비는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제비는 겨울 아침 싸늘하게 얼어죽은 시체가 되어 동상 발 아래 떨어졌다. 그리고 그것을 본 왕자의 심장도 산산이 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 왕자와 제비의 진실한 행복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누가 이 제비와 같이 평화의 왕이신 그분의 뜻을 받들겠습니까 전도하는 사람은 전도하는 일로 인해 기쁨을 얻게 되며 전도 대상자에게 기쁨을 주며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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