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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요9:1-12)

본문

I.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기적의 현장을 창조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가르치시다가 유 대인의 분노를 샀습니다. 유대인들은 신성을 모독하는 예수에게 돌 을 들어 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숨어서 성전을 빠져 나와 성전 마당 앞길을 걸어가고 계셨습니다(요 8:59-9:1). 예수께서는 그 길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 습니다. 아마 그 소경은 성전 마당 앞길에 앉아 성전에 예배하러 가는 자들에게 구걸하며 살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요 9:1, 행 3:2, 마 6:2). 이를 보았던 예수의 제자들이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 이 뉘 죄로 인함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의 죄입니 까"라고 질문하게 되었습니다(요 9:2). 당시 유대인들은, 인생이 불행을 만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천벌의 결과라고 생각하 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의 대답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 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고 하였습니다(요 9:3). 예수의 이 말은 인간의 무죄나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부 정함이 아니고, 한걸음 더 나아가 죄 때문에 만난 인간의 불행을 통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과 목적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곧 인간을 그 죄와 죄의 불행에서 구원코자 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예수 자신께서 죄로 인하여 영육의 밤을 만난 그에게 빛을 주러 왔다는 사실을 알려준 대답이었습니다(요 8:12, 9:4). 그리고 이르시기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고 말씀하였습니다(요 9:5). 이 대답을 끝내신 주님은 즉시 땅에 침을 뱉었습니다. 그리고 진 흙을 이겨 그 소경의 눈에 바르심으로 그의 감각을 자극했습니다 (요 9:6). 그리고 이르시기를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요 9:7). 그 시간 그 소경에게는 즉각적인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그 시간 실로암 못으로 쫓아갔고, 그 분의 말씀대로 실로 암 못의 물을 떠서 자신의 눈에 발린 진흙을 씻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그는 밝은 눈으로 빛을 보는 엄청난 새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요 9:7). 큰 기적이었습니다. 큰 표적이었습니다. 그는 온갖 어 두움의 불행에서 순간적으로 빛을 보는 자유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 자신이 기적의 실존이십니다. 예수 자신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기적(이적)과 표적이 나타남으로 불행한 인생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바로 그것이 요한복음에 나타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이적이었습니다(요 2:11). 죽어가던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쳐주신 이적이었습니다(요 4:46-5
4). 38년 된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를 걷 게 한 일입니다(요 5:2-9).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 명을 먹이신 일입니다(요 6:4-13). 물위로 걸으신 이적이었습니다(요 6:16-21). 그리고 본문에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에게 빛을 주 신 일이었습니다(요 9:1-7). 또한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 버린 나사 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살리신 일입니다(요 1:1-44). 예수라고 하는 그 사람에게는 이런 표적과 기사 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거였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능력의 주이신 증거였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에는 언제나 기적과 표적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예수 역사의 현장이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그 사람이 가시는 곳, 그가 임재하시는 곳, 그가 말씀하시는 곳에는 언제나 초자연적 기 적의 현장이 창조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2,000년 기독교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뚜렷한 표징입니다.
Ⅱ.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나를 보게 했다고 증거하였 습니다(요 9:11). 이제 우리는 눈뜬 자, 빛을 본 자의 증거를 보기 원합니다. 그가 증거하는 증거의 주제는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었습니다.
1. 먼저 그의 이웃 사람에게 나타낸 증거였습니다.
(1) 그는 먼저 자신의 실존을 자인하였습니다. 이 기막힌 현실을 목도한 그 이웃들이 놀랬습니다. 이 사람이 전 에 소경이고,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그러하다, 아니다, 비슷하다 고들 하였습니다. 그때 눈뜬 사람은 내가 그로라 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과거가 소경으로 불행했던 사람이라고 자증해 주 었습니다.
(2) 그리고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내 눈에 진흙을 바르고, 실로 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확증 해 주었습니다(요 9:11).
(3) 그러면서 그는 현재 예수의 행방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요 9:12). 그는 눈을 감고 있는 상태에서 예수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귀로 예수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들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에도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주님께서 그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2. 바리새인들에게 나타낸 증거입니다. 이웃의 군중들은 참으로 무정하고 메마른 자들이었습니다. 저들 은 저들의 형제가 눈이 열려 본다는 이 엄청난 사실 앞에 감사한다 거나 축하한다는 정서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그를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저들이 그렇게 한 것은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요 9:13, 14). 저들 은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안식일에 눈을 떴으니,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나 또 눈이 떠진 당사자도 모두 안식일을 범했다 고 하는, 그야말로 낡은 유대적 종교관념 때문이었습니다. 군중들 이 그를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간 것은 저들이 당대에 권위 있는 이른바 종교지도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 앞에 서게 된 눈뜬 자의 증거는 이러하였습니다.
(1) 먼저 예수를 선지자라고 하였습니다(요 9:17). 그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그가 경험한 대로 사실을 증거하였습니다(요 9:15). 그 소리를 들은 바리새인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이 사람의 눈을 뜨게 해준 사람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가 하면 또 다른 바리새인들은 그가 하나님께로 온 자가 아니면 죄인으로서 어찌 이런 표적을 행할 수 있겠느냐고 하였습니다(요 9:16). 서로 분쟁하던 저들은 눈뜬 당사자에게 "너의 눈을 뜨게 한 그 사람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는 자기 눈을 뜨게 한 사람을 가리켜서 선지자 라고 대답 하였습니다(요 9:17). 그는 자기의 눈을 뜨게 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증거한 것입니다. 이때 그를 바리새인 앞으로 끌고 온 군중 가운데는 그가 소경으 로 있다가 눈뜬 것을 믿지 않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부모 에게 이 사실을 확인해 보자고 하였습니다(요 9:18). 현장에 도착 한 그 부모들은 그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요 9:20). 그때 무리들은 그러면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 부모는 이 사람이 내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사실이 지만, 또한 지금 보고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지만 저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 을 자기가 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부모가 그렇게 미온적이 고 소극적으로 대답한 이유는, 당시 유대인들은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를 출교하기로 결의한 사실을 잘 알고 있었 기 때문입니다(요 9:20-23). 당시 유대교에서의 출교는 생존권이 박탈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2) 눈이 열려 보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증거하였습니다(요 9:25). 답답했던 바리새인들은 두 번째로 눈뜬 사람을 불러 심문했습니다.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고 하였습니다(요 9:24). 이때 그는 대답하기를 그가 죄 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요 9:25)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그의 마음에는 아무 것도 자리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소경이었던 그가 그 절망적인 어두움 속에서 지금 빛을 받았고, 빛 속에 머물고, 밝은 세상을 보고 있다는 사실로 가득했습니다. 본다는 그 사실만으로 그 가슴은 황홀과 감격과 감사로 가득 차 있다는 증거입니다. 참으로 대조적인 장면입니다. 암흑과 광명의 세계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소경'이 빛을 보았다는 사실 앞에 사람들은 감격할 줄 모 르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책잡아 예수에게 도전하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3)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라고 증거하였습니다(요 9:33). 저들의 질문 공세는 계속이 되었습니다(요 9:26). 눈뜬 자의 확 신에 찬 대답도 계속이 되었습니다. 눈뜬 자는 오히려 저들의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느꼈습니다(요 9:27).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요 9:30)라고 하였 습니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다 (요 9:32)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요 9:33)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 앞에서 눈뜬 자가 나타 낸 고백적 증거였습니다.
3. 그는 마침내 박해 중에 증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 그는 욕을 먹었습니다. 요한복음 9장 28절에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증거하는 자들에게 오는 첫 번째 순서입니다.
(2) 모욕을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 34절 가운데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 를 가르치느냐 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뽐내 면서(요 9:28) 그를 멸시하였습니다.
(3) 마침내 출교까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 34절 중에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고 하였습니다. 여기 '쫓아냄은 회당에서의 추방을 가리킵니다(요 9:22, 12:42, 16:2). 당시에 유대교에서는 세 가지 종류의 형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견책입니다. 이것은 7일에서 30일간 계속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10 인회에서 선고받고 최소한 40일간 공중과 교제가 금지되고, 그 동 안 저주를 받고 그후 다시 30일간의 훈계시기를 지나서 복구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출교인데 이것은 완전히 그 사회에서 제거되는 형벌입니다. 공중회석에 못 나갈 뿐 아니라 사람들은 그의 곁에 4규빗(6척) 이내로 접근을 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와 더불어 물건 을 사고 팔지 못합니다. 그가 죽으면 그 시체에 돌질을 하고 그를 위하여 우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형벌입니다. 이것은 인권과 양심의 탄압일 뿐 아 니라, 살았으나 죽은 자와 방불케 되는 형벌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생존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삶이 되어 버립니다. 초기 로마제국의 황제들이 기독교인을 그렇게 박해했습니다. 그 박해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예수에 대한 변절 증명서 에 사인(sign)하는 것이었습니다. 눈뜬 은총을 입은 자는 이런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때부터 예수 때문에 욕을 먹고, 핍박을 받고, 모든 악한 말을 들었습니다. 아니 마침내 출교까지 당하여 생존권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마 5:11-12). 그가 이렇게 예수를 증거하다가 출교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예수께서는 다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네가 인자를 믿느 냐 고 질문하셨습니다(요 9:35). 그때 그는 주여 그가 누구시오 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요 9:36)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 니라 (요 9:37)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 9:38). 그는 처음에 예수를 그 사람 (요 9:11)으로 알고 증 거하였습니다. 다음에는 선지자 (요 9:17)라고 증거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 (요 9:33)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이제 거기에서 더 나아가 주 로 고백하고 절하는(예배) 자 리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 명부에서 출교(제명) 당하고, 하 늘나라 생명책에 새롭게 입적이 된 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나를 보게 하였습니다." 이 말은 날 때 부터 소경 되었던 자가 나타낸 전도의 주제였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나는 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 때문에 나는 잃어 버린 인생을 도로 찾았습니다.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나의 나된 인생을 새롭게 창조하고 출발시켰습니다."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그의 이러한 증거는
1 체험적인 증거였습니다.
2 확신 속에서의 증거였습니다.
3 죽음도 불사하는 박해를 감수하는 증거 였습니다. 1998년도에 우리 교회에서 사실상 전도의 왕이 된 박노경 집사는 작년 한해 동안에 어린이 132명, 장년 70명이라고 하는 전도의 열 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1년이 52주인데, 한 주일에 한 명 씩 등록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주님께 기도하며 전도했습니다. 그의 전도 전략은
1 가정의 우상인 어린이를 공략하자.
2 이웃 과 화목하자. 내가 먼저 인사하고 좋은 것을 나누자.
3 물건값을 깍지 말고 작은 것이라도 베풀자.
4 이웃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손수 도와주자.
5 그에게 글쓰기를 배우는 아이들에게 교육비를 싸게 해 주자.
6 끝까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대를 가지고 같이 울고 같이 웃자.
7 주일이 오면 등록시키자는 것이었 습니다. 그 결과는 그의 기도보다 더 많은 생명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분명히 그와 함께 하 신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자가 아닙니 까 그가 이렇게 전도할 수 있었던 것은 목적으로서의 하나님, 수단 으로서의 선교적 삶이라고 하는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바로 정립하 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주일학교 교사로서, 구역장으로서 그리고 새소식반 리더로서 정말 멋있는 별들의 전쟁을 하고 있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그 가족과 그 자녀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라고 하는 그 사람이 나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발라 주었습니다. 예수라고 하는 그 사람이 나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내 가 가서 씻었더니 그 시간에 밝은 눈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나는 예수라고 하는 그 사람을 선지자로 믿습니다. 나는 예수라 고 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라고 믿습니다. 나는 예수 라고 하는 그 사람을 구주로 믿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믿으세요. 이것이 빛의 은총을 입은 자의 고백이요 증거였습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 취리라(단 12:3)! 그는 분명히 빛나는 별들의 전쟁에 가담한 빛의 전사(戰士)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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