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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을 가리는 사람과 병을 고쳐주는 사람 (요9:1-5)

본문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말씀의 제목은 '잘못을 가리는 사람과 병 을 고쳐주는 사람'입니다.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 9장 1절로 5절 말씀입니다. 찾아서 제가 한절 여러분이 한절 교독(交讀)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나가실 때에, 태어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을 보신지 라. 제자들이 여쭈어 말씀드리되,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자로 태어난 것 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부모이니이까 하니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요, 오직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드러내려 하심이니라.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내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 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다."(요한복음 9:1-5) 이 9장의 말씀을 살펴보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셨는데, 그들이 날 때부터 소경된 어떤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 이 눈먼 자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이 사람이니이까, 부 모이니이까" 큰 사고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다친 사람들이 길 위에 여기 저기에 널려 있게 되면 이 응급상황을 처리하기 위하여 곧 두 종류의 차가 그 자리에 도착합니다. 보통 먼저 도착하는 쪽은 경찰차인데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사고현장 을 원 상태로 잘 보존하고, 사람들이 사고현장으로 몰려들어서 응급처치 요 원들이 활동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구경꾼들을 멀리 밀어내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혹시 사고를 목격한 사람이 있는지 묻고 나서는 그 사람에게 수사관이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한 쪽에 앉아서 좀 기다려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서는 길 위에 난 타이어 자국을 자로 재기도 하고, 사람들과 파편의 위치를 흰 줄로 표시하기도 하며 여러 가지 부산을 떱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누구의 잘못으로 그 사고가 일어났는가를 가려내기 위 해서입니다. 누구의 죄였느냐를 따지는 행위라는 말씀입니다. 조사가 끝나고 나면 경찰관들은 보고서를 작성하고, 범법 사실이 드 러난 경우에는 딱지를 끓기도 합니다. 이 때 이곳에 모인 경찰관들의 유일 한 관심사는 오로지 누구의 잘못으로 이 모든 피해가 발생하였는가를 밝히는 것뿐입니다.
두 번째 도착하는 사람들의 무리는 구급차에 타고 오는 긴급구조대입니다. 이 긴급 구조대원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부상자가 생겼느냐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도착 즉시 길가에 누워 있는 부상자들 에게로 달려갑니다. 그리고는 그 부상당한 사람들의 상처를 붕대로 싸매어 주고, 심하게 다친 사람들은 들것에 실어 큰 병원으로 나르는 등, 고통 속 에 신음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와 위안을 베풀어 줍니다. 누구의 잘 못으로 그 고통이 발생하였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직 어떻게 하면 저 어려움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더 잘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것뿐입니다. 저는 제 개인의 경험을 통해 크리스천들이나 목회자 가운데도 이와같 은 두가지 타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생 이 파괴되어 가고 있거나, 이미 파괴되어 버리고 만 비극의 현장에 도착했 을 때, 어떤 사람들은 먼저 일이 그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누구 탓인지를 밝히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더러는 저 긴급 구조대와 같은 크리스천들 도 있습니다. 그런 크리스천들의 관심사는 어떻게 해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생기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아니요, 누구의 잘못으로 그리되었는가 하는 것 도 아닙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지금 그들의 눈 앞에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과, 어떻게 하면 그들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을까 하는 것뿐입니다. 오늘 본문 속의 이야기 속에도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한 사람이 등장 하고 있는데, 제자들은 바로 그같은 질문을 예수님께 던졌습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누가 죄를 지었기에 이 사람이 눈먼채 태어난 것입니까 자기 자신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입니까" 그 부모들이 무슨 죄를 지어서 하나님 께서 그 부모들을 벌하고 계신 것입니까, 아니면 소경으로 태어난 그 사람 자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부터 그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 까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다인들은 사람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벌써 죄를 지 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옛유언 성경기록에 나오는 이삭의 아내 리브가의 이야기를 볼 것 같으면, 뱃속에 쌍둥이가 하도 싸우는 바람에 리브가가 하나님께 어찌할 바를 기도하여 구했던 기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응답하여 이르기를, '서로 달라 싸움을 벌이고 있는 두 백성이 네 태중에 있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쌍둥이 태아들이 뱃속에서부터 싸 움질을 벌이는 죄를 짓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성경구절 덕분에 유다인 들은 사람들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죄를 짓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묻기를, '주님, 이 사람이 그 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무슨 나쁜 죄를 저질렀던 연유로 소경으로 태어나게 된 것입니 까' 하고 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졌던 이 제자들은 그런 의미에서 저 경찰관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고의 현장에 도착해서는 그 사고가 누구 탓으로 일어났는가만을 따졌던 사람들이었다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선언하시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간단한 대답은 바로 그 사람이 벌을 받아 소경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그렇게 되었던 간에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거나, 살아가 면서 만나게 되는 여러 가지 고통을 겪게 되면, 제일 먼저 하나님을 원망하 며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그 고통스러운 일을 던져놓으신 까닭이 무엇인지 를 하나님께 따지려 듭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내가 뭘 잘못 했길래.' 하고 묻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고통과 고난을 당하는 것 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벌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슨 일인가 를 저질러서 하나님을 노하게 해드렸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마음에 대해 우리 가 가지고 있는 이런 생각은 이 얼마나 큰 오해입니까! 여러분은 간음현장에서 붙들려 바리새인들의 손에 이끌린 채 예수님 앞으로 끌려나왔던 한 여인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 께 말하기를, '우리 율법에 따르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여야만 한다' 고 하였습니다. 율법책을 꺼내들고는 간음한 사람을 돌로 쳐 죽이라는 조항 을 들이대면서 '율법에 이리 되어 있는데 선생은 어떻게 하겠소' 라고 따 졌던 셈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 라' 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쭈그리고 앉아 손가락으로 땅에다가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셨고, 이에 군중들은 나이든 사람부터 시작 하여 하나씩 둘씩 그곳을 떠났다고 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그들의 은밀 한 죄상들을 땅바닥에 써나가셨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사람들이 다 떠나 고, 잡혀온 여자 한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어나셔서 '여 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 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여자가 대답하시를, '주님, 아무도 없나이다' 라 고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일찍이 '율법은 모세에 의해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온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세상에는 모세를 모델로 삼는 목회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모델로 삼는 목회 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비극과 불행을 목격할 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됩니까 사고 현장을 접할 때 여러분은 '경찰관'으로서 그곳에 오십니까 아니면 '긴급 구조대'로서 그곳에 오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요 1 2:47)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정죄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심이라.'(요 3:17)는 말씀입니다. 다른 곳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아들이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9)고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에 관해 알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주님 저희에게 아버 지를 보여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라고 구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14:9) 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에 게 아버지를 보여 주고 계시며,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계시는 것이라면 그 아버지는 참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심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가 아니요, 어떻게 하면 우리 들이 겪는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고 계시는 아버지입니다. 우리들은 옛유언(구약) 말씀에 나오는 욥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욥은 사탄에게 그의 많은 재산과 가족뿐만 아니라 건강마저도 모두 빼 앗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욥을 위로해 주고자 친구들이 찾아왔지만 그들 은 모두 다 저 '경찰관'과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끊임없이 욥의 죄를 캐내려고만 하였습니다. 그런 그들이 던졌던 질문은 대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네가 무슨 끔찍한 죄를 지었느냐 네가 우리들 모르는 가운데 무슨 은밀한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같은 변을 당하게 되었느냐' 같 은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람이 흉악한 죄를 짓지 않고서는 결코 이같은 재난을 당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욥은 계속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들은 막무가내로 욥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선입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욥이 겪는 재난이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판이요, 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욥에게 그의 죄를 고백하라고 하였고, 그것을 고백하기만 하 면, 재난이 끝날 것이라고 부추겼습니다. 그러나 결국 논쟁은 말다툼으로 이어졌고, 욥은 그들을 수다쟁이요 '번뇌케 하는 안위자' 라고 부르는가 하 면 친구들은 욥을 거짓말쟁이라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재난을 그것을 겪는 사람들이 지은 죄에 대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형벌로 보고 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참으로 흥미로 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겠습니다. 물론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 중에는 훗날 반드시 고통과 재난을 초래 할 수밖에 없는 행위도 더러 있기는 합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라는 말이 있듯이, 죄가 원인이 되어 우리 삶에 나쁜 결과가 초래된다는 것은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진리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도 그것을 알고 계시므로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나중에 우리에게 고통이나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 일들을 열거해 주시면서 그것들을 하지 말라고 경고해 주십니다. 여러분들도 만일 여러분의 자녀가 전기 스텐드 근처에서 노는 것을 목격한다면 그 아이에게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소케트에 손가락을 집어넣으 면 감전된다는 주의를 빠뜨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 린 자녀가 손가락을 소케트 안에 집어넣어 혼이 난 다음 여러분을 향해 '아 빠, 왜 나를 감전되게 만드셨어요 아빠는 참 나쁜 사람이야!'라고 소리친 다면, 여러분들은 분명히 '이놈아, 내가 언제 너를 감전되게 하였느냐 내 가 너더러 그 소케트 안에 손을 집어 넣으면 큰일날 것이라 하지 않았더냐 내가 너를 감전되게 하기는커녕 나는 네가 그렇게 될까봐 주의까지 준 사람 이다. 그렇지만 . 아가야, 이리 온! 아빠가 다친데를 호 해줄께!'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로서 자녀들이 스스로 해로운 일을 하지 않도 록 주의를 주었을 것이요, 그 고통을 덜어주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고자 하셨던 아버지의 참 모습이었습니다. 고통을 주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라, 죄가 우리에게 어떤 고통을 가져오리라는 것을 잘 아시고 그 죄의 결과에 대해 주의를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가 말을 안듣고 죄를 지어 고통스러워 할 때에는 우리를 찾아와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가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짓는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이 될 것인가에 대해 아무 말씀도 안하실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알려주시는 경우가 더 많이 있습니다. 가령 아담과 이브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먹지 말라고 하시며,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고 하 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무의 실과를 먹을 경우, 결국은 사람이 죽게 되는 해악에 관하여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해를 가하지 않도록 보호하고자 하셨던 하나님 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율법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 도록 우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주신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그러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고 이 세상 속으로 죄와 고통을 들여오고난 후에는, 그 고통과 고난을 덜어주고자 애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 문 속의 이 사람은 왜 앞 못보는 상태로 태어난 것이라고 합니까 죄에 대 한 벌이 아니었다면, 그 부모나 그 자신이 지은 죄 때문이 아니었다면, 과 연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다고 합니까 예수님의 대답 을 보십시다.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오직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들을 드러내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직도 일을 하고 계 신다는 말씀이요, 그 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고자 이 사람을 소경으로 태어나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크리스천으로서 겪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그 하 나하나마다 목적과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시험과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단련하기 위 한 불같은 시련에 대해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 (벧전 4:12)고 하였습니다. 모두다 하나님께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우리 에게 주시는 일들이란 말씀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가운데서 역사하고 계시는 일들은 모두 영원으로 이어지는 일이므로 때때로 우리는 그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지 거나 고통스럽게 느껴질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현 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 안에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은 또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의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휠 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라' 고 말했 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을 이루어 가고 계시는 것이요, 그로 인해 우리에게 때로는 고통과 고난과 슬픔이 닥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기 이 사람처럼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치유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해서라면 날 때부터 소경으로 태어날수도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사람 의 소경됨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고 예수님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분이심을 나타내는 데 요긴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우리들의 삶 속의 여러 가지 좋지 않은 것 들을 통해서도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일들을 이뤄내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사람의 잘못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를 통해 나타내고자 그리 태어나게 하신 것이라 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 내가 나를 보내신 분의 일들을 하여야 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 소경된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의 앞못보는 눈을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병 을 고치시는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일이요, 죄로 인하여 저 주받은 이 세상에서 이 남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고난을 제거해 주는 일 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해주는 하나님의 모습은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그 것과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 모습입니까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알기를 우리들이 죄짓는 순간을 기다리고 계시다가 그 죄에 걸맞는 벌이나 내려주시는 분쯤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을 바로 이해하거나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바로 전(前) 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 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고 말씀하 셨습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가득찬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오직 율법의 정죄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 마저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에게 유익 함을 주고,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으나 그들은 그것마저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어긴 저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죽이 려고 하였지만, 지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위해 오셨던 예수님께서는 그녀를 용서해 주시고 그녀에게 용서와 위로의 말을 해주셨습니다. 죄가 이 세상에 만연해 있음을 증명이라도 해주듯이, 비참하게 파괴 되어 버린 인생을 사는 사람들을 접할 기회는, 우리들에게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로 인생이 망가지고, 한 때 하나님의 율법에 맞서 반항했던 일들에 대한 열매를 거두느라고 인생의 험한 날들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정말로 많이 있습니다. 주 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접할 때 여러분들은 저 '경찰관'의 역할을 맡고자 하 십니까 그래서 그 사람들의 얼굴에 손가락을 들이대고는 '네가 만일 그때 그일만 저지르지 않았어도 이리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 하면서 그들에게 그들이 어떤 율법을 어겼는가를 적은 딱지를 끊어주겠습니까 아니면 '긴급 구조대'의 역할을 하고자 하십니까 그 사람의 다친 데를 싸매어주고,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며, 고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들을 치료해 주고자 하십니까
여러분들은 모세를 모델로 하는 목회를 하고 계십니까 아니면 예수님을 모델로 하는 목회를 하고 계십니까 요한이 말했듯이 '율법은 모세 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 입니다. 한가지, 제가 이 자리에서 이번 설교에 대해 여러분들 사이에 절대로 오 해가 없도록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저는 결코 경찰관의 직무를 업신여기거나 깔보는 뜻으로 이 설교를 한 것이 아닙니다.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고, 누구의 잘못으로 그 사고가 일어났는가를 밝혀내는 것이야말로 경찰관의 신성한 의무요, 책임이라 하겠습니다. 그러한 직무를 수행하는 경 찰관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치안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만일 경찰관이 없다면 우리는 머지 않아 정글 속에 사는 야만 인과 같은 상태가 되고 말 것입니다. 경찰관은 모든 사회에 있어서 그 사회 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한 존재임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경찰관을 이 사회에 있게 해주신 것을 하나님께 늘 감사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의미로 말할 때, 우리들이 모두 다 '경찰관' 보다는 ' 긴급 구조대'가 되기를 바라고 계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통과 고난 의 이유를 밝혀내는 것은 우리들이 해야할 일이 아니요, 우리들의 책임도 아닙니다. 우리들이 해야할 일은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다만 사람 들이 겪고 있는 저 고통과 고난을 덜어주려고 노력하는 것 한가지 뿐일 것 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란 병을 앓고 있는 이 세상을 낫게 해주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하나님의 빛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기 위 해서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 사랑으로 가 득 찬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하나님은 파괴하고자 하시는 분 이 아니라 고쳐주고자 하시는 분이며, 무너뜨리고자 하시는 분이 아니라 일 으켜주고자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일을 하는 세상의 빛이로라!" 어두움 속에 거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빛을 싫어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그 행위가 드러날까봐 빛이 있는 곳으로 나아오는 것을 꺼리며,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고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이제 세상의 빛이라' 고 하 셨습니다. "나는 이제 아버지께로 가노라!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를 대신하 여 병을 고치고,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는 아버지의 일을 하려고 왔던 것처럼 이제는 너희가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 일을 해야 하리라! 내가 아버지 를 대신하여 이 세상을 고치고,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려고 왔던 것처럼 이제는 너희가 나를 대신하여 그 일들을 해야 하리라! 이 세상에 죄가 들어 옴으로 말미암아 그 죄의 결과로 고통받고 신음하게 된 저 사람들을 이제 너희가 고쳐줘야 하리라!" 예수님께서 바울을 부르셨을 때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 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을 얻게 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이 시간에도 바로 그 일을 하고자 하십니다. 여러분들 가운데는 삶이 어지러운 혼란 속에 빠져 있는 분들이 있을 것 입니다. 고통과 고난 속에서 신음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혹시 지난 날 행했던 하나님께 대한 반항과 그릇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지금 그 열매를 거두느라 삶이 쑥밭으로 변해버린 사람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란 그런 여러분의 면전에 손가락을 들이대면서 여러분들 의 지나간 잘못들을 따지고 그것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요, 깨진 조각들을 한데 모아 짜 맞추고 망가진 삶들을 수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시고자 했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다. 나 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심판 을 받은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을 예수님 대신 세상에 내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참으로 예수님 대신 보 내심을 받은 자라면 나도 예수님처럼 용서해야 할 것이요,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판하시지 않습니다(요 12:47). 만일 예수님께서 심판하셨다면 그 심판은 정확한 것이 되겠지만, 예수님은 스스로 심 판하시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남을 심판하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누구의 잘못인가를 가려내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이 아니요,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이미 생긴 피해를 복구하는 것뿐입니다. 나중에 바리새인들은 눈을 뜨게 된 그 소경을 붙들어 가지고 이것 저것을 물어보다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소경을 눈뜨게 하는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대단히 노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만들고자 하였는데, 이 에 소경이었다가 눈을 뜨게 된 그 사람은 바리새인들에게 추궁을 당한 끝 에 대답하기를 '한 가지 내가 아는 것은 전에는 내가 볼수 없다가 지금은 볼수 있게 된 이것 뿐입니다' 하였습니다. 전에는 사는 것이 사는 것같지 않았는데, 이제야 사는 것이 사는 것 같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전에는 고 통 속에서 신음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프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던 간에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전 에는 죄 속에 빠져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빛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가운데에서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 가운데 이루고자 하시는 저 '일'은 얼마나 영화로운 일 입니까!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넘어뜨리고자 하심도 아니요, 오직 일으 켜 세우시고 치료해 주시고자 하실 뿐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립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다 만드시고 나면, 하나님 을 대신해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해나갑시다! 기도드릴까요 아버지,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 게 보여주신 은혜와 진리를 더욱 감사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아버지를 보여주시기 위해 하셨던 저 일들을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자녀 들을 바라보시며, 아버지에 대한 반역의 결과로 파괴되어 가고 있는 자녀들 의 삶을 바라보시며, 그들을 향한 사랑으로 고동치는 아버지의 가슴을 보 여주셨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세상에 나아갈 때에 이 병든 세상에서 주 님의 참된 증인이 되어 주님의 일을 잘 수행하고 영혼을 구령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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