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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의미 (요9:1-7)

본문

바로앞의 야곱뿐만 아니라 이 자리의 모든 사람의 과거 세월을 돌이켜 보면 야곱과 같이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라고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는 역경의 세월들을 다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돌아보면 웃으며 살던 날보다 눈물을 흘리며 살던 날이 더 많았을 것이며, 평안한 날보다 고통의 날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사업도 그랬고 건강도 그랬고 가정도 그랬을 것입니다. 왜 인간의 삶이 이래야만 할까요 새는 오늘도 노래하고 꽃도 저렇게 아름답게 향기를 내뿜는데 인간에게만 왜 이러한 괴로움이 올까요 누가 비극을 원해서 가졌겠습니까 누가 불행을 자초해서 와졌겠습니까 원치 않았건만 우리에게 비극이 있고 바라지 않았건만 불행이 있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역경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1. 왜 우리에게 이러한 역경이 있습니까 (이유) 조용히 눈을 감고 과거를 생각해 보면 가지가지 마음을 괴롭게 만든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왜 인생들에게 이러한 어려움이 올까요
첫째, 내가 지난날 무엇인가 잘못한 결과로 지금 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 어려운 상태에서 돌이켜 보면 “맞아, 5년전 혹은 10년전 내가 그 때 그러지만 않았어도 지금쯤 내가 이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왜 그랬던고!” 지난날의 나의 잘못으로 지금 자업자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탕자가 돼지 우리 옆에 누워 누더기를 몸에 걸치고 돼지 여물을 질근질근 씹고 있는 비참한 신세,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아버지입니까 친구 입니까 아닙니다. 그의 고통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한 자업자득일 뿐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노예신세가된 이스라엘 백성들, 누구의 잘못입니까 이것이 바로 자업자득 아닙니까 이러한 경우가 우리 삶속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부모님의 잘못으로 인해 자식이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 가정의 부모가 자식을 낳아 양육을 한다면 마땅히 그 책임을 다해야 하는데 그 부모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 애궂은 자식이 괴로움과 외로움과 설움을 당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모가 낳아서 버린 아이들이 외국에 입양수출되어 인종차이때문에 오는 고통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혹은 이 고아원 저 고아원, 이 공장 저 공장 전전하며 설움당하고 구박당하는 불쌍한 자녀들,또한 부모의 이혼으로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 그 인격이 삐뚤어져 결국은 인생의 파행을 맞은 자녀들, 어떤 부모는 무절제한 생활로 몸에 더러운 병을 얻어 자손들에게 유전되어 나면서 부터 애매한 병신으로 태어나는 경우, 이러한 경우들은 분명히 부모들의 잘못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 어떤 부모님은 자식의 잘못으로 역경을 겪는 부모님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먹을 것 먹지 않고 입을것 입지 않고 자수성가하여 집 마련하고 전답 마련하고 예금통장 마련하여 부모와 같이 고생하지 말고 착실하게 살라고 자식들에게 물려 주었건만 불로소득이라, 재물귀한 줄 모르고 함부로 휘둘다가 통장 날리고 전답 날리고 집날려 말년에 이집 저집 셋방살이하다 자식들 집에 가면 구박이나 받는 구차한 인생이 되어버린 이유, 누구의 잘못입니까 이처럼 자식잘못 만나 말년에 한숨쉬고 마지못해 사는 부모 또한 이땅에 많이 있습니다.
넷째, 지도자를 잘못만나 역경을 겪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직장의 고용주를 잘못 만나 착취당하는 직공들도 있습니다. 물질에 눈에 어두워진 교수를 잘못만나 인격을 배우기 보다 오히려 인격이 잘못된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나라의 지도자를 잘못만나 애궂은 국민이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예도 멀리 남미 혹은 아프리카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저 10여년전 광주에서도 있었습니다. 소위 정치 지도자들이란 분들이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는 동안 백성들은 강도, 도둑, 깡패들로 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애써 뽑아달라고 빌기에 뽑아 줬더니 서민들은 안중에 없고 자기 주머니 채우기만 급급하여 뇌물이나 받고 협박이나 하고 이권개입이나 하고 심지어 자기를 뽑아준 시민들을 강간까지 하니 이 어찌 지도자들을 잘 만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정치, 경제, 혹은 교육 지도자들을 잘못만나 애매히 고난당하는 국민은 우리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부지기수 많이 있습니다. 다섯째, 어떤 누구의 책임도 아닌 비극이 있습니다. 바로 본문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본문의 소경, 나이는 모르겠지만 성경은 증언하기를 나면서 부터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게다가 집까지 가난해 구차한 생명을 이어가려고 구걸행각까지 합니다. 보기딱한 제자들이 이것이 누구의 죄때문인가를 넌지시 묻습니다. 예수님의 대담은 누구의 죄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말씀만 하십니다. 그가 장님으로 태어나서 이제껏 살아 온것이 누구의 죄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명하기 위해서 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는 누구의 책임도 아닌 뜻밖의 고난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잘합니다. 매일매일 기쁘게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려움이 불현듯 찾아올때가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어려움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어려움을 당하는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읽어서 알 수 있고 설교는 들어서 알 수 있지만 우리가 당하는 환란의 의미는 지나간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0년 혹은 20년 후에, 혹은 말년에 “아하, 그 때 그일은 바로 이렇게 되게하시려고그리하셨구나!”라고 무릎을 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혹은 이땅에서 깨닫지 못했더라도 하늘나라에 가서 “아하, 그 때 땅위에서 이렇게 답답한 일이 바로 이것을 이루시려고 그리하셨구나” 라고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본문의 소경은 몇살인지는 모르지만 장성했다는 것을 보니 30살 안팍은 됬을것 갔습니다. 그는 소경으로 나서 소경으로 30여년을 살았습니다. 그것도 거지로 말입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암담과 포기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나만 왜 이럴까” “왜 나만 불행할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이 눈을 덜컥 띄워주셨을 때, “아하, 바로 이 일을 위해서 나를 30여년동안 소경으로 두셨구나” 하며 무릎을 탁치며 깨달았을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들에게는 어쨋든 어려움이 있습니다. 만일 그 어려움이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이해 할 수 없는 고난이거든 그 역경의 의미를 발견하십시오. 만일 그 의미를 발견한다면 그때에야 비로서 그 역경의 가치를 알게 될것입니다.
2. 그럼 이런 역경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대로 우연은 없고 목적없는 것은 결코 없습니다. 만사 만물이 다 직.간접적으로 하나님으로 부터 시작되었고 그 시작은 분명히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주 창조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역사 섭리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 한마리조차, 들에 핀 백합화 한송이 조차 목적을 이루지 않고는 떨어지거나 시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만사에 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가 당하는 고통에 목적이 없겠습니까 그 목적은 두가지 입니다.
첫째로, 역경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말씀과 환경입니다. 환경도 좋은 환경(순경)과 어려운 환경(역경)이 있습니다. 물은 자연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이 물이 잘 흘러가면 문제가 안되는데 잘못흘러가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또한 돌짝밭에 흘러가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삽으로 물줄기를 인도합니다. 꽃밭으로 인도하니 꽃밭에 꽃이 만발합니다. 채소밭으로 인도하니 채소밭에 채소가 무성합니다. 논으로 끌어들이니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환경은 마치 농부의 삽과 같습니다. 인간의 이성은 올바른 판단을 할 수도 있고 잘못된 판단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경이라는 삽을 통해서 가야 할데만 가게 하십니다. 때로는 순경이라는 삽으로, 때로는 역경이라는 삽으로 우리를 가야할데로 인도하십니다.
둘째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뜻한 봄날 초목이 생각하기를 “1년 365일 내내 이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봄비가 보슬보슬 내릴 때 초목이 생각하기를 “1년 12달 내내 이랬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 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무들이 원하건 원치않건 강풍을 불어 일으키십니다. 때로는 폭양도 내리 쬐시고 때로는 폭우도 퍼부십니다. 나무는 그 의미를 모를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강풍을 통해 뿌리를 깊게 만드십니다. 줄기를 튼튼하게 만드십니다. 폭양을 통해서 열매를 알차게 만드십니다. 폭우를 통해서 잎사귀의 먼지나 벌레들을 쓸어내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항상 편안함만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원하든 원치않든 때로는 실패도 주시고 좌절도 맛보게 하시고 고난과 어려움과 역경을 주시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과정이 있어야 합하여 선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순경의 날줄과 역경의 씨줄을 엮어서 한폭의 훌륭한 인생의 옷감을 짜시는 분이 바로 우리에게 순경과 역경을 적당히 섞어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이제는 역경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예방주사와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 내가 탄탄 대로를 달리고 있고 순탄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 교만하여 넘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때 넘어짐을 막기 위해서 미리 예방주사를 놓으시는데 그것이 바로 역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역경을 통하여 나를 겸손하게 만드십니다. 나를 진실하게 만드십니다. 그래서 내일의 범죄를 미리 예방하십니다. 바울은 3층천까지 다녀오는 놀라운 체험을 했기에 그 누구보다도 교만해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질병의 가시를 주셨고 그 가시가 족한 은혜라고 하셨습니다. 이 질병을 통해 미리 예방주사를 놓으신 것입니다.
둘째, 회개를 재촉하시는 의미에서 역경을 주시기도 하십니다. 탕자의 비참한 신세는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받는 어려움은, 그냥 두었다가는 죄문제를 가지고 영원을 그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땅에서는 비록 외로울지라도, 고통스러울지라도,가난할지라도 영원한 낭패를 면케하시기 위해서 역경을 주시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과 더욱 가깝게 하시기 위해서 역경을 주시기도 합니다. 순경의 환경이 게속되다보니 배부르고 등따스합니다. 그러다 보니 한주일 두주일 빼먹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예배 참석하는 시간이 점점 늦어 집니다. 성경 덮어놓고 잡지만 뒤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 놈,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그래서 역경을 주시고 그 역경을 통해서 “하나님, 안그럴께요.” 하며 하나님 가슴속으로 기어들게 하시려고 역경을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을 괴롭게 만들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을 답답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생활을 암담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고민이 무엇입니까 바로 이런것들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가슴으로 인도하시는 섭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네째, 죄악을 뽑아내고 거룩한 성화를 이루게 하시려고 역경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늘나라는 죄악이 존재하지 않는 곳입니다. 그곳은 거룩함만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그곳에서 살기 위해서는 죄악이 뽑히고 거룩함을 입어야만 합니다. 그럼 죄악이 어떻게 뽑혀 집니까 그 방법중 하나가 역경을 통해서 뽑아내는 것입니다. 구정물은 흔들기 전에는 아무도 더러운 물인줄 모릅니다. 그러나 뒤 흔들어 놓으면 그 속의 모든 찌꺼기가 들고 일어나 더러움을 알게 되듯이 우리마음은 구정물통 같아서 그대로 두었을 때는 더러운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난 역경을 통해서 뒤 흔들릴때 그때야 비로서 내안에 더러운 죄악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자신의 두 아들이 공산당의 손에 죽었을 때 비로소 자신안에 미움이 들어 있는 줄 알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움을 뽑아냈을 때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을 입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가난의 괴로음이 있습니까 가난으로 거룩해 지길 바랍니다. 질병의 괴로움이 있습니까 질병으로 거룩함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모략중상으로 고통이 있습니까 그 속에서 거룩해 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본문은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당하는 역경은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가 될 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기도로 그 앞에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그 기도가 응답되어 역경의 문제가 해결될 때 주위의 안믿던 사람들이 “야, 정말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구나” 라고 외치게 되고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역경중에 서있습니까 그 역경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기회로 삼기 바랍니다.
4. 마지막으로 역경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첫째, 역경속에서 겸손해 지기를 바랍니다. 왜 내게 이러한 역경이 있는가 곰곰히 반성하여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의 눈의 눈믈을 보기를 원하며 가슴의 고통을 보기를 원하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눈의 눈물을 보기를 원치 아니하십니다. 오늘 우리눈에 눈물이 있다면 그것은 내일 더 큰 기쁨을 주시기 위함일 뿐입니다.
셋째, 묵묵히 참고 인내하기 바랍니다. 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24시간 내내 밤일 수는 없습니다. 겨울이 아무리 혹독해도 1년 12달 모두가 겨울일 수는 없습니다. 밤이 깊으면 깊을 수록 새벽이 가까왔다는 증거요 겨울의 눈보라가 혹독하면 혹독할 수록 봄이 가까왔다는 증거입니다. 반드시 믿으시기 바랍니다. 밤과 같은 역경이 쉬 끝나고 아침같은 기쁨이 올것입니다. 겨울과 같은 역경이 쉬 끝나고 봄날같은 축복이 올것입니다. 욥과 같이 참으시기 바랍니다. 요셉과 같이 결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역경의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시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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