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보는 성도의 눈 (요9:1-7)
본문
"우리의 삶에는 어제가 있었고 오늘이 있고 또 내일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중 오늘 특히, 오늘 중에도 내가 당면한 지금의 시간과 사건을 현 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늘 이 현실이라는 장(場)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현실이 우리를 웃기기도 하고 슬프게도 하며 다급하게도 하고 여유 있게 도 하여 우리의 생활을 복잡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숱한 현실들이 모여서 나를 만들어 가며 영생도 영멸도 여기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한 현실도 버릴 수 없는 고귀한 보배임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경이 눈을 떴다는 사실 이외에도 위에 말한 현실이 라는 무대가 어떻게 내 앞에 전개되었으며 우리는 또한 그 현실을 어떻게 대처해야할 지를 잘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현실을 이용하여 지혜로운 사람은 구원을 미련한 사람은 멸망을 마련할 것이므로 오늘 말씀이 우리 모든 성도들의 바른 현실관을 갖게 하는 시금석 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의 대강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걸으시다가 한 소경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소 경은 날 때부터 소경이었고 한번도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을 두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 말하기를,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은 죄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그 죄는 누구의 죄일까 부모 아니면 자기 자신 이렇게 논쟁이 벌어지다가 예수님께 묻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로 인하여 저렇게 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서 여호와 하나님의 하실 일이 있어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 다고 말씀하시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셔서 침으로이긴 진흙을 눈에 발라 주시면서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소경은 실로암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뜨여지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위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한 소경이 있었고
2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 소경을 만나게 되었고
3소경 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 것이며
4예수님의 대답 5예수님의 치유 과정 등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곧 그 소경과 예수님의 현실이었습니다. 이 현실을 대하는 주님의 자세가 곧 오늘 숱한 현실을 대하는 우리 성도들이 갖는 현실관의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현실을 보는 성도의 바른 자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소경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한 정점 에 소경과 예수님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점은 영생과 영멸 의 정점이요 영광과 수치의 갈림길이 되기도 합니다. 이만큼 현실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에는 이 현실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주님은 심 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더욱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현실이 있게 된 경위와 대하는 자의 자세-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위를 두고 우연이나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서 되 어진다고 보는 경우와 순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그 중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후자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나게 된 것이
1하나님이 뜻이 있으셔서 나게 하셨고,
2 그 소경을 예수님 앞에 서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3또한 예수님을 그 자리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4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경이 소경으로 나게 된 것에서부터 오늘 예수님을 만나게 된 모든 사건은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이루 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가르치는 교훈은 이 사건뿐만이 아니라 오늘 성도들에게 닥치는 모든 현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작 품임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해석에 동의 하셔야 하며 나아가서는 그렇다고 확정을 짓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환난이나 핍박이나 많은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좋 은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어려운 일에는 원망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순경뿐만 아니라 역경이 닥친다고 해도 그 속 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 일을 인하여 하나님의 나타내시고자 하 시는 뜻이 있으셔서 나에게 닥치게 하신 '하나님의 선물'과 같은, 또는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풀어라고 내어 주신 '숙제'라고 생각 하고 지혜롭게 잘 풀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나에게는 복이 되는 결과 를 가져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현실을 대하는 바른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모세는 어떤 눈으로 보았습니까-<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현실 앞에 놓아두시고 그 현실을 어떻게 대하는 지 보고 계십니다.> 광야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봅시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 고 나와서 처음으로 인도하신 곳이 홍해였으며, 그것도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오는 진퇴양난의 궁지였습니다. 이때 그들에게는 두 가지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들의 의견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세의 의견입니다. 이때 백성들은 말하기를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이제 우리는 애굽에 투항을 하여 그들의 종이 되겠노라 하였 고,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 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 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는 믿음의 설교를 합니다. 이것이 현실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도 소경을 두고 보는 두 가지 동일한 시각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의견은 그 사람이 소경 된 것은 죄 때문이라 하여 그 사람을 정죄 하고 시험에 들게 하고 낙심케 하여 더욱 힘을 잃게 할 뻔하였는가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으셔서 이 일을 태초부터 예정하신 하나님 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고 가르치십니다. 제가 추천하고자 하는 시각도 물론 모세와 예수님이 보신 시각입니다. 이 시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 무한한 복이 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그야말로 기적같이 홍해를 건 넜고 본문의 소경은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렇게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이런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모세는 매사를 이런 눈으로 보았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물을 내는 사람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양식을 주는 사람으로 건너지 못할 홍해 앞에 서는 길을 열어 주는 사람으로서는 이기지 못할 원수 앞에서도 그 어떤 원수라도 무찌르고 남는 승리를 가져오게 한 것은 바로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본 모세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였습니다. 병자도 귀신 들린 자도 죽은 자도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 현실을 주신 분은 하나님임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 할 때 모든 병 을 고치는 역사가 일어났고 귀신은 도망가게 되었고 죽은 자도 살아나게 되 었던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원망하고 앉았었더라면 홍해의 기적 이나 므리바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 라(막9:23). 라고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믿는 '자에게'란 믿음의 눈으로 보는 자에게 라는 말씀이요,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말은 당한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요 숙제이며, 하나님이 이 현실을 통하여 크신 역사를 이루실 것 을 믿는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때나 일을 하시지 않고 모세가 믿음의 눈으로 본 것처럼,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심정으로 현실을 대하고 현 실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간구 하는 자에게 크신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이일은 순전히 하나님 자신의 일입니다.
-3절에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뒤에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라고 하셨는데 이 속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 그의 보내신 사람을 통하여 하시는데 지금 이 소경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예수님을 보내셔서 대신 하게 하셨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현실의 일도 나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 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전지와 전능으로 말입니다. 모세에게 그러하셨고 예수님께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 백성에게도 그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보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가만히 하나님의 하시는 구원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예수님이 하실 일은-침을 발라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좀 특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방법은 말씀 한 마디로 귀신을 물 리치기도 하셨고 38년된 소경도 고쳐 주셨고 죽은 야이로의 딸도 살리신 일 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그 더러운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면서 그것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을까요 이 속의 비밀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으나 추측해 보건대 침으로 흙을 이겨 진흙을 눈에 발 랐으니 이는 보기에 흉하고 더럽고 또 그렇게 다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소경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부끄러운 것이나 추한 것이나 심판 받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난 후에는 부끄러운 것도 더러운 것도 불 탈 것도 영원히 후회할 것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씻어야겠다는 마음이 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부끄러움도 수치도 마다 않고 실로암에 가서 씻은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서 주님은 이것을 보여 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주님은 이러한 일련의 기적들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일이나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나 원래부터 주님은 불쌍 한 자 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있음도 가르쳐 주시겠지만 이 일을 통하여 장래 에 구원을 이루어 갈 수많은 택자들의 구원성취의 한 과정을 가르쳐 주신다 고 보아도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신 성도들이여 이제는 우리에게 있는 더럽고 추한 것들을 찾아 봅시다. 그리고 실로암에 가서 씻어 깨끗함을 받읍시다. 그것은 곧 자기 힘 으로는 발견할 수도 없앨 수도 없는 죄입니다.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하였습니다. 자기의 죄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씻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 소경이 실로암에 가서 씻기를 거부하고 진흙 발라 준 예수를 욕하고 그 진흙을 떼어버린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는 영원히 소경으로 있어야 합니다. 아 어떤 이는 나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반문 할 것이고 죄사함 받아 천국 가자고 하면 죄 많은 너희 예수쟁이들이나 천국 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 면서 나는 선하게 살았으니 하늘나라는 내 같은 사람이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주님을 만나서 죄를 발견하고 주 의 은혜로 죄를 씻음 받아야만 가능 한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죄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 실로암 된 예수님께 나아와서 씻으 라고 외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소경 앞에 보내 실 때 그 일을 하라고 보내신 것처럼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이 일을 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동일하게 말합시다. 이제 나에게 힘을 주셨고 시간을 주셨을 때 내가 할 일은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하는 말 말입니다. 나를 안 믿는 남편에게 시집 보내신 목적도 이 일임을 잊지 맙시다. 이 일 을 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이란 씻음 받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지옥 갈 것과 빨리 주님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죄를 고하고 씻음 받기를 강권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 화평의 성도는 보내신 이가 있 고 또 보내신 이의 일이 있으니 이 일을 나의 천직으로 삼고 주님 오실 날 까지 열심히 이 일에 매진합시다.
1한 소경이 있었고
2 예수님과 제자들이 그 소경을 만나게 되었고
3소경 을 두고 논쟁이 벌어진 것이며
4예수님의 대답 5예수님의 치유 과정 등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이 곧 그 소경과 예수님의 현실이었습니다. 이 현실을 대하는 주님의 자세가 곧 오늘 숱한 현실을 대하는 우리 성도들이 갖는 현실관의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므로,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는 '현실을 보는 성도의 바른 자세'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소경을 만나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한 정점 에 소경과 예수님이 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정점은 영생과 영멸 의 정점이요 영광과 수치의 갈림길이 되기도 합니다. 이만큼 현실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날에는 이 현실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주님은 심 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더욱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현실이 있게 된 경위와 대하는 자의 자세-어떤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경위를 두고 우연이나 자연적인 법칙에 의해서 되 어진다고 보는 경우와 순전한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경우가 있겠습니다. 그 중 본문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은 후자의 눈으로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나게 된 것이
1하나님이 뜻이 있으셔서 나게 하셨고,
2 그 소경을 예수님 앞에 서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3또한 예수님을 그 자리에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며,
4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경이 소경으로 나게 된 것에서부터 오늘 예수님을 만나게 된 모든 사건은 하나님에 의해서 계획되고 이루 어졌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가르치는 교훈은 이 사건뿐만이 아니라 오늘 성도들에게 닥치는 모든 현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 속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작 품임을 가르치시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이 해석에 동의 하셔야 하며 나아가서는 그렇다고 확정을 짓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환난이나 핍박이나 많은 어려운 일들이 닥칠 때도 있습니다. 좋 은 일은 하나님께 감사하지만 어려운 일에는 원망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순경뿐만 아니라 역경이 닥친다고 해도 그 속 에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그 일을 인하여 하나님의 나타내시고자 하 시는 뜻이 있으셔서 나에게 닥치게 하신 '하나님의 선물'과 같은, 또는 하나님이 그 문제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잘 풀어라고 내어 주신 '숙제'라고 생각 하고 지혜롭게 잘 풀어서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고 나에게는 복이 되는 결과 를 가져오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현실을 대하는 바른 성도의 자세인 것입니다.
-모세는 어떤 눈으로 보았습니까-<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현실 앞에 놓아두시고 그 현실을 어떻게 대하는 지 보고 계십니다.> 광야의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봅시다. 하나님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 고 나와서 처음으로 인도하신 곳이 홍해였으며, 그것도 뒤에는 애굽군대가 추격해 오는 진퇴양난의 궁지였습니다. 이때 그들에게는 두 가지 의견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백성들의 의견과,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모세의 의견입니다. 이때 백성들은 말하기를 애굽에는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이제 우리는 애굽에 투항을 하여 그들의 종이 되겠노라 하였 고, 모세는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 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 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라는 믿음의 설교를 합니다. 이것이 현실을 대하는 두 부류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도 소경을 두고 보는 두 가지 동일한 시각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의견은 그 사람이 소경 된 것은 죄 때문이라 하여 그 사람을 정죄 하고 시험에 들게 하고 낙심케 하여 더욱 힘을 잃게 할 뻔하였는가 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 있으셔서 이 일을 태초부터 예정하신 하나님 의 계획에서 비롯되었다고 가르치십니다. 제가 추천하고자 하는 시각도 물론 모세와 예수님이 보신 시각입니다. 이 시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뿐만 아니라 당사자에게 무한한 복이 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은 그야말로 기적같이 홍해를 건 넜고 본문의 소경은 눈을 뜨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렇게 믿음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이런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모세는 매사를 이런 눈으로 보았습니다. 물이 없는 곳에서는 물을 내는 사람으로 먹을 것이 없을 때는 양식을 주는 사람으로 건너지 못할 홍해 앞에 서는 길을 열어 주는 사람으로서는 이기지 못할 원수 앞에서도 그 어떤 원수라도 무찌르고 남는 승리를 가져오게 한 것은 바로 현실을 믿음의 눈으로 본 모세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였습니다. 병자도 귀신 들린 자도 죽은 자도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 현실을 주신 분은 하나님임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 할 때 모든 병 을 고치는 역사가 일어났고 귀신은 도망가게 되었고 죽은 자도 살아나게 되 었던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백성들과 함께 하나님을 원망하고 앉았었더라면 홍해의 기적 이나 므리바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 라(막9:23). 라고 책망하십니다. 여기서 믿는 '자에게'란 믿음의 눈으로 보는 자에게 라는 말씀이요, 믿음의 눈으로 본다는 말은 당한 현실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요 숙제이며, 하나님이 이 현실을 통하여 크신 역사를 이루실 것 을 믿는믿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때나 일을 하시지 않고 모세가 믿음의 눈으로 본 것처럼, 하나님의 심정과 동일한심정으로 현실을 대하고 현 실을 주신 하나님을 믿고 간구 하는 자에게 크신 역사를 이루시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하여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이일은 순전히 하나님 자신의 일입니다.
-3절에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뒤에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라고 하셨는데 이 속에서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일을 하실 때 그의 보내신 사람을 통하여 하시는데 지금 이 소경에게 하나님이 하실 일을 예수님을 보내셔서 대신 하게 하셨다는 말씀 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현실의 일도 나의 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 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전지와 전능으로 말입니다. 모세에게 그러하셨고 예수님께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기 백성에게도 그리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현실을 보고 두려워하지도 말고 좋아하지도 말고 가만히 하나님의 하시는 구원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예수님이 하실 일은-침을 발라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은 좀 특이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 방법은 말씀 한 마디로 귀신을 물 리치기도 하셨고 38년된 소경도 고쳐 주셨고 죽은 야이로의 딸도 살리신 일 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왜 그 더러운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면서 그것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했을까요 이 속의 비밀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으나 추측해 보건대 침으로 흙을 이겨 진흙을 눈에 발 랐으니 이는 보기에 흉하고 더럽고 또 그렇게 다닌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소경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부끄러운 것이나 추한 것이나 심판 받을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난 후에는 부끄러운 것도 더러운 것도 불 탈 것도 영원히 후회할 것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씻어야겠다는 마음이 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부끄러움도 수치도 마다 않고 실로암에 가서 씻은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서 주님은 이것을 보여 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주님은 이러한 일련의 기적들을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는 일이나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나 원래부터 주님은 불쌍 한 자 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있음도 가르쳐 주시겠지만 이 일을 통하여 장래 에 구원을 이루어 갈 수많은 택자들의 구원성취의 한 과정을 가르쳐 주신다 고 보아도 잘못이 아닐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신 성도들이여 이제는 우리에게 있는 더럽고 추한 것들을 찾아 봅시다. 그리고 실로암에 가서 씻어 깨끗함을 받읍시다. 그것은 곧 자기 힘 으로는 발견할 수도 없앨 수도 없는 죄입니다. 주님을 만난 베드로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기의 죄인 됨을 고백하였습니다. 자기의 죄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씻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 소경이 실로암에 가서 씻기를 거부하고 진흙 발라 준 예수를 욕하고 그 진흙을 떼어버린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그는 영원히 소경으로 있어야 합니다. 아 어떤 이는 나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고 반문 할 것이고 죄사함 받아 천국 가자고 하면 죄 많은 너희 예수쟁이들이나 천국 가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 면서 나는 선하게 살았으니 하늘나라는 내 같은 사람이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는 주님을 만나서 죄를 발견하고 주 의 은혜로 죄를 씻음 받아야만 가능 한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주님이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죄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 실로암 된 예수님께 나아와서 씻으 라고 외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소경 앞에 보내 실 때 그 일을 하라고 보내신 것처럼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것도 이 일을 하라고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하신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동일하게 말합시다. 이제 나에게 힘을 주셨고 시간을 주셨을 때 내가 할 일은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하여야 하리라하는 말 말입니다. 나를 안 믿는 남편에게 시집 보내신 목적도 이 일임을 잊지 맙시다. 이 일 을 한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이란 씻음 받지 않는 사람은 모두가 지옥 갈 것과 빨리 주님 앞에 나아가서 자기의 죄를 고하고 씻음 받기를 강권하는 일입니다. 이제 우리 화평의 성도는 보내신 이가 있 고 또 보내신 이의 일이 있으니 이 일을 나의 천직으로 삼고 주님 오실 날 까지 열심히 이 일에 매진합시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