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 (3) (요6:9)
본문
오늘 본문에는 한 아이와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2 마리가 나온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주님의 일으켰지만 그 표적을 일으키는데는 한 아이와 보리 떡 과 물고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아이가 보리 떡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내놓지 않았다면 주님은 기적을 일으킬 수 없었을까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예수님이시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다. 오병이어가 없이도 주님은 충분히 무리들을 배불리 먹이실수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동안에 하늘에서 떨어진 만나를 먹고 광야 생활을 했다. 그들이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서 하늘에서 만나가 떨어졌는가 아무 것도 하나님께 드리지 안 했지만 하나님은 수백만 명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여주셨다. 믿으십니까 지금 광야에서 주님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한 아이의 손에서 그것을 가져와서 기적을 일으켰을까요 그것도 하찮은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까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의 들어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러 오신 것이다. 그러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한 아이의 손에 있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사용해서 제자들을 가르키고 계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어떤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보리떡과 물고기를 주님께 드린 한 아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준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첫 번째:한 아이 9절 = "`여기 한 아이가 있어 . " 한 아이가 내민 오병이어가 없었었다 할지라도 주님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이 방법을 택하신 것은 주님의 깊은 뜻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이 = (헬) 파이다리온 = 청소년. 젊은이 뜻이다. 즉 장성한 성도를 의미한다. 장성한 성도만이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고 장성한 성도만이 주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14:21 = 여자와 아이 = 여기에서 아이는 (헬) =파이니온. 즉 유아를 뜻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한 아이는 장성한 성도를 의미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일은 신앙이 장성한 자들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이루어져 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 다니는 것 왜 다니는지 알아야 된다. 물론 구원받아서 천국 가기 위해 다닌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신앙은 어린아이 신앙이다.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가
1.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교회를 몇 년 다니고 교회에서 직분 받은 자라면 이제 우리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실 주님은 우리를 그 자리에까지 우리를 가게 할려고 하신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이다. 이 땅에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던 것 주님 나라에서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모두 드리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기독교의 신앙은 드리는 신앙이다. 시간 드리고. 우리 마음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우리 생명까지 드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이것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분문에 이 아이는 바로 장성한자의 성도 모습이다. 어린아이로 말하고 있지만 어린아이가 아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장성한자를 통해서 주님은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다. 엡1:12 성도를 온전케 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간다고 했다. 온존케 한다는 것은 완전하게 성숙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어린아이 믿음 가지고서는 주님의 일을 하시지 않은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사용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 장성한 자의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주님은 왜 날 사용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왜 날 축복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신학생들이 교회개척을 놓고 주님이 왜 날 사용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주님께 축복 받고 싶고 . 주님께 사용 받고 싶으십니까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장성한자가 되기 위해서는 드리는 자가 될 때 비로소 장성한 자가 된다 제가 주의 종 사명을 받고 계속 미루다가 가기로 작정하니까 왜 그렇게 나도 모르는 눈물이 나오는지 . 기도만 하면 눈물부터 흘렀다. 이 몸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기로 작정하니까 내 신앙이 내가 느낄 정도로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을 느꼈다. 드려야 된다. 주님께 시간 드리고. 마음 드리고. 물질 드리고. 내 모든 것을 드릴 때 나를 통해서 우리 가정에 사업장에 우리 주님의 교회에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드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 땅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눅 18:28-30 다같이 보자. 부모와 가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문자적으로 육맥으로 성경을 보지 말자. 기독교는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했다.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장성한 신앙이 되면 이 땅에서 놀라운 축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내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순간 기적이 나타난다
2. 육을 위해 살지 아니해야 한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모세가 애굽의 왕자를 거절하고 나올 때 모세 나이는 40세 였다. 육적으로는 이미 어른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가 장성하여 왕자를 거절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영적으로 장성한 것을 뜻한다. 영적으로 장성한 모세는 육을 위해 살 것을 거부했다. 애굽의 왕자 자리가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 부와 명예와 권세가 있는 자리이다. 아직도 우리가 세상 것에 마음이 끌리고 육적인 것에 매여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어린아이 신앙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얼마나 세상 속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그런 신앙으로는 절대로 장성한 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이 우리의 신앙 키워주실 것으로생각지 말라. 물론 초신자 때는 우리를 이모저모로 돌보아 주시고 키워 주신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해 주시지 않은다. 우리는 이런 말을 종종 들은다. 초신자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뜨겁게 임했고 표적도 보았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게 없다는 말을 듣는다. 기도도 초신자 때는 많이 했는데 요즈음은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초신자 때는 십자가 말도 들어도 은혜가 넘쳤다.
그런데 이제는 강한 설교를 들어도 덤덤하다. 그것은 주님이 초신자 때는 믿음을 키워주고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해서 주님이 강권적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초신자 때 육적인 것을 다 버려서 그런 은혜가 온게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 단계가 지나면 성도는 이제 육을 버려야만 된다. 그래야 장성 한자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단계가 바로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단계이다. 성령님으로 거듭났느냐 안 났느냐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육을 위해 살고 있다면 성령님으로 거듭난 게 아니다. 성령님 세례를 성령님으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방언을 한다고 해서 성령님으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방언은 성령님의 은사 중에 하나다. 은사 =은혜 恩 . 은혜 賜. =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서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타내지 못하면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제대로 사용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언을 하고. 영 분별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 할지라도 예수를 위해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주신 은사를 사용하고 있다 할지라도 영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육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바로 마7장에서 주님이 무섭게 책망한 자들이다. (마7:20-22)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여기에서 불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것이 불법이 아니다. 불법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했기 때문에 불법이다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은 곧 불법이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육을 위해 살지 말고 영을 위해 살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육을 위해 사용하는 자는 모두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불법에 대한 말씀을 하기 전에 주님은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은사주의에 빠지면 안된다. 은사는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와 교회를 나타내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고전 10:8-13 = 다같이 보자. 8절 = 다 폐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이오면 10절 = 온전한 것이 오면 온전한 것이 무엇인가 = 12절이 해답이다. 욥의 고백이 생각나십니까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 " 11절을 다시 보자 = 무슨 말인가 은사주의적 신앙은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오직 예수 한 분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함이다. 즉 영적인 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영적인 자로 장성한 자가 되면 은사에 매여서 살지 않은다. 이제는 예수에 매여서 살게 되는 것이다. 장성한 자는 내게 왜 하나님의 은사가 없을까 고민하지 아니한다. 내가 왜 예수를 위해 살지 못하는가 가슴을 친다. 주님은 왜 내 병을 고쳐주지 않을까 왜 내게 신유 은사를 주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은다. 내가 왜 예수를 살지 못하는가에 더 가슴을 치는 자가 장성한 자의 모습이다. 육을 위해 사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롬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영을 위해 사는 자를 주님은 사용하신다. 영을 위해 사는 자만이 장성한자이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고 (롬8:5) 했다. 장성한 자만이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그러한 장성한 자를 통해서 기적이 나타났다. 장성한 자는 곧 의인을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장성한 자 10명이 없어서 멸망 받았다. 롯은 의인이었다고 (벧후2:7)에 말씀하고 있다. 롯은 장성한 자였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기 힘들다고(눅18:8) 하셨다. 장성한 자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성령님으로 충만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육을 위해 사는 자가 되지 않고 영을 위해 사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는 장성한 자가 되어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3,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한다.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단단한 식물이 무엇인가 세상에서 먹는 식물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영적인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 (마4:4)
그런데 이 말씀이 초보적인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먹는 말씀이 있고 장성한 자가 먹는 말씀이 있다. 단단한 식물은 바로 그 장성한 자들이 먹는 말씀이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아니하면 절대로 장성할 수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우유나 젖을 먹는데 그 아이가 5살 10살 되어도 우유나 젖만 먹고 자란다면 그 아이는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없듯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예수 믿고 이제 3년이 지났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된다. 먹지 아니하면 장성한 자가 될 수 없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도 가르침이 초보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단단 식물을 주의 종들을 의무적으로가르치고 먹어야 한다. 히5:12-14 = 다같이 읽어보자. 하나님 말씀의 초보를 젖을 먹는 어린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히6:1-6 = 읽어보자.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라고 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타락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성도를 장성케 할 수 있는 말씀이 무엇인가 그것은 계시록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즉 다시오 실 재림 예수를 준비하는 게 장성한 자의 모습이다. 마24:45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고 했다. 계시록이 사도 요한의 종말장이라면 마24장은 예수님의 종말장이다. 마24:19 =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젖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초보만 전달 하는게 젖만 먹이는 것이고 초보만 받아먹고 신앙생활 하는게 젖만 먹는 신앙이다. 마25장에 오면 신랑이다 하니까 신랑을 기다리던 10명의 처녀들이 다 깨어났다. 예수가 곧 오신다 할 때 깨어난다. 예수가 곧 오신다 하는데도 안 깨어난다면 그 신앙 별 볼일 없는 것이다. 교회는 지금의 때가 어느 때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때를 따라 성도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충성된 종 지혜로운 종들이 되어야 할것이다. 성도들도 때가 어느 때인지 깊이 깨닫고 이제 얕은 물가에 있지 말고 깊은 생수의 말씀의 강물 속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겔47장 =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발목에. 무릎에. 허리에 나중에는 헤엄쳐야할 정도에서 에스겔이 거했다. 발목. 무릎. 허리에만 머무는 하나님 말씀이 되어서는 안된다. 헤엄칠 정도의말씀 속에 거해야만 장성한자가 될 수 있다. 계시록의 말씀은 바로 우리를 그렇게 단단하게 장성한 자로 성장시키는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오신 예수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오신 예수에 머물러 있는 자는 어린아이 신앙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오 실 재림 예수를 기다리며 신부된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장성한 자의 모습이다. 장성한 자는 마25장에서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의 모습이다. 단단한 말씀을 먹지 아니하고는 준비할 수 없는 것이다. 계시록을 모르고 어찌 다시오 실 주님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장차 될 일이 계시록 속에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이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들에게는 허락이 아니 되었다. (마13:1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 (고전4:1) 그리스도의 일군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셨다. 비밀을 모르고서는 장성한 자가 될 수 없다. 장성한 자는 단단한 말씀을 받아먹고 이제 그 비밀을 알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신앙생활 하지 아니한다. 어려운 일이 와도 쉽게 좌절하고 낙심하지 아니한다. 모든 삶의 초점을 예수께 두고 살아가면서 날마다 더욱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 단단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두 번째:보리떡 다섯 개 = 9절 떡은 말씀을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 보리떡은 무엇을 의미한가 보리떡은 보잘것없는 떡이다. 가난한 자들이 먹는 떡이다. 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떡이다. 이러한 보리떡의 의미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비밀을 알려주기를 원하고 계신다.
보리떡 = 흠모할 만한 곳이 없는 우리 예수님을 뜻한다. 사람들에게 하찮게 보인 복음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저 이방인들에게는 하찮게 보일것을 의미한다. 5개 = 5수는 성령님의 수를 의미한다. 마가 다락방에 내린 오순절을 의미한다. 오순절은 50 이다. 오병이어 = 봄절기 = 초림을 뜻한다. = 유대인에게 보인 표적이다. 때가 유월절 = 1월(우리나라 3월) 마6:39 = 푸른 잔디에서 먹었다고 했다. 칠병이어 =가을절기=재림을 뜻한다.=이방인 지역에서 보인 표적이다 때는 초실절이 가까울 쯤이다. (요7:1) 마15:35 = 무리를 땅에 앉게 하시고 잔디가 아니고 땅이라는 것이 가을을 의미한다. 7 수는 완성 수를 의미하므로 재림의 수를 의미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밀은 서양에서 귀하게 사용하고 쌀을 동양에서 귀하게 여기지만 보리는 서양. 동양에서 천대를 받는다. 우리 주님이 서양 동양에서 모두 천대를 받았다. (사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복음이 들어갈 때마다 천대 받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보리떡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표적이 보리떡으로 기적을 나타내고 계신 것이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보리떡 취급 받았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셨을 때 얼마나 보리 취급 받았는가 우리가 천대하는 보리에 얼마나 영양가가 많은지 모른다. 50년 60년대 살지 않은 사람들을 모를 겁니다. 그때 왠만한 부자 집 아니고서는 모두 보리 밥 먹었다. 그러니까 어디가나 방구 소리가 흔했고 냄새가 많이 났다. 그렇게 천대 받던 보리가 지금은 아주 고급 음식이 되었다. 보리밥만 전문으로 파는 집이 생겼고 일부러 보리 밥만 먹는다. 보리에 영양가가 많다는 것을 이제서야 안 것이다. 당뇨병 걸린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보리밥을 먹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보리처럼 천대를 받았지만 보리 같은 예수 안에서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 보잘것없는 보리떡 5개가 수만 명을 배불리 먹였듯이 이 땅에 오셔서 천대받고 멸시받은 예수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예수 안에서 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사람들 보기에 교회들은 보리떡 같이 보일 것이다. 특히 작은 개척교회들은 더욱 하찮게 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보리떡 같은 교회들을 사용하신다. 사람들을 택하실 때도 보리떡 같이 천대받은 자들을 택하셨다. 다시 말해서 보리떡 같은 예수가 보리떡 같은 자들을 통해서 보리떡 같은 교회를 만드시고 보리떡 같은 복음을 외치게 하신다. 광야에서 보리떡으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배고픈 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 오병이어의 사건은 보리떡 같은 예수가 . 복음이 전 세계를 보리떡 같은 복음으로 구원받을 것을 나타낸 사건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구약에서도 보리떡을 예수 그리스도로 예표 하고있다 (민5:15)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 " 보리떡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쓰여졌다. 삿7장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와 아말렉 세력을 보리떡으로 무너뜨리는 것을 보는데 보리떡이 기드온의 칼날이라고 했다. 기드온을 우리가 강한자로 생각하는데 아주 연약한 자이다. 삿7:13-14 = 다같이 보자. 미디안 아말렉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 사단의 세력이다. 보리떡을 기드온의 칼날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리떡이 칼날이라는 말이 됩니까 칼은 말씀을 의미한다. (히4:12)
그러므로 보리떡이 말씀이라는 것을 여기에서도 증명해주고 있다. 이 말씀이 미디안 군대를 무찔렀다. 기드온이 칼로 미디안 군대를 무너뜨렸습니까 빈 항아리에 횃불을 감추고 나팔을 들고 나가서 미디안 군대를 무너뜨렸다.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자 횃불이 나와자 미디안 끼리 싸우고 도망가 버렸다. 나팔은 복음이다. 즉 말씀. 횃불은 성령님이다. 항아리는 율법이다. 이것이 바로 보리떡이다. 율법의 항아리를 깨뜨리자 성령님의 불이 나오고 복음의 나팔을 부니까 사단의 세력이 놀래서 도망 가버렸다. 초대 교회때 율법을 깨뜨리고 성령님의 불을 받자. 로마의 세력이 무너졌다. 미디안 세력이 보리떡에 무너졌고 로마의 세력이 보리떡에 무너졌다. 지금도 보리떡 같은 복음이 사단의 세력을 무너뜨린다. 보리떡 5개가 초림예수를 예표하고 있고 유대인에게 주신 보리덕 같은 복음이었다면 칠병이어의 보리떡 7개는 재림 예수를 예표하고 있고 이방인들에게 보리떡 같은 복음을 알리고 있다. 7은 완전수라고 했다. 계시록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성도를 완전케 하고 교회를 완전케 하고 세상을 완전케 해서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고 이 땅에서 천년왕국을 이루고 모든 것을 완전케 하시겠다는 말씀이 계시록이다. 보리떡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완전케 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보리떡 같은 계시록 말씀으로 성도들을 온전케 하실 것이다. 계시록이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보리떡 취급을 당하고 천대받고 있다. 천대해서는 안된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 종말에 우리는 보리떡 복음인 계시록을 알아야 한다 보리떡 같은 비밀을 알아야 음녀의 세력을 알 수가 있다. 계시록의 보리떡 같은 복음이 온 세상을 깨우게 될 것이다. 이 보리떡을 받은 자들은 구원받을 것이지만 천대하고 거부한 자들은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주님의 보리떡 같은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보리떡 같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복음을 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보리떡 같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선포되는 귀한 복음을 잘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할 때 보리떡 역사가 우리들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실 때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사용하셨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수단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한 아이의 오병이어가 없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충분히 기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음의 손길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주님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 받는 자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너무나 보잘것없는 가운데서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세상에 지위와 권세가 있는 자들을 사용하면 더 복음이 잘 전해질턴데 그런 자들을 택하지 아니하시고 보리떡 같은 자들을 택하셔서 예수를 알리기를 원하신다.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이렇게 택함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믿음 있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자들을 택하여서 장성한 자리에까지 우리를 기르신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또 다시 보리 떡 같은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러한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질 것이다. 세상은 보리 떡 되신 예수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있다. 그 보리 떡 같은 예수를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알려지기를 지금도 원하고 계신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우리는 보리떡 되신예수가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지 않고 한 아이의 손에서 그것을 가져와서 기적을 일으켰을까요 그것도 하찮은 보리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입니까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의 들어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러 오신 것이다. 그러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들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하시기 위해서 주님은 이 땅에 오셨다. 그러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광야에서 한 아이의 손에 있는 보리떡과 물고기를 사용해서 제자들을 가르키고 계신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여러분은 어떤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보리떡과 물고기를 주님께 드린 한 아이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떡과 물고기를 나누어준 제자들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첫 번째:한 아이 9절 = "`여기 한 아이가 있어 . " 한 아이가 내민 오병이어가 없었었다 할지라도 주님은 놀라운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이 방법을 택하신 것은 주님의 깊은 뜻이 들어있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아이 = (헬) 파이다리온 = 청소년. 젊은이 뜻이다. 즉 장성한 성도를 의미한다. 장성한 성도만이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고 장성한 성도만이 주님께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마14:21 = 여자와 아이 = 여기에서 아이는 (헬) =파이니온. 즉 유아를 뜻한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한 아이는 장성한 성도를 의미하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일은 신앙이 장성한 자들을 통해서 오늘날까지 이루어져 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되어 갈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교회 다니는 것 왜 다니는지 알아야 된다. 물론 구원받아서 천국 가기 위해 다닌다. 그러나 그런 차원의 신앙은 어린아이 신앙이다.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가
1.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가 교회를 몇 년 다니고 교회에서 직분 받은 자라면 이제 우리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드릴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사실 주님은 우리를 그 자리에까지 우리를 가게 할려고 하신다. 그것은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 이다. 이 땅에서 주님을 따르지 못하고 누리지 못했던 것 주님 나라에서 마음껏 누리게 하여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모두 드리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기독교의 신앙은 드리는 신앙이다. 시간 드리고. 우리 마음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우리 생명까지 드리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이것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 분문에 이 아이는 바로 장성한자의 성도 모습이다. 어린아이로 말하고 있지만 어린아이가 아니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장성한자를 통해서 주님은 일을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신 것이다. 엡1:12 성도를 온전케 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간다고 했다. 온존케 한다는 것은 완전하게 성숙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어린아이 믿음 가지고서는 주님의 일을 하시지 않은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사용 받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보다 장성한 자의 믿음이 되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은 주님은 왜 날 사용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왜 날 축복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신학생들이 교회개척을 놓고 주님이 왜 날 사용 안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주님께 축복 받고 싶고 . 주님께 사용 받고 싶으십니까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장성한자가 되기 위해서는 드리는 자가 될 때 비로소 장성한 자가 된다 제가 주의 종 사명을 받고 계속 미루다가 가기로 작정하니까 왜 그렇게 나도 모르는 눈물이 나오는지 . 기도만 하면 눈물부터 흘렀다. 이 몸을 주님을 위해서 드리기로 작정하니까 내 신앙이 내가 느낄 정도로 장성한 자가 되는 것을 느꼈다. 드려야 된다. 주님께 시간 드리고. 마음 드리고. 물질 드리고. 내 모든 것을 드릴 때 나를 통해서 우리 가정에 사업장에 우리 주님의 교회에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드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 땅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눅 18:28-30 다같이 보자. 부모와 가족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문자적으로 육맥으로 성경을 보지 말자. 기독교는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했다. 주님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장성한 신앙이 되면 이 땅에서 놀라운 축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는 말씀이다. 내 것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하는 순간 기적이 나타난다
2. 육을 위해 살지 아니해야 한다. (히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모세가 애굽의 왕자를 거절하고 나올 때 모세 나이는 40세 였다. 육적으로는 이미 어른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가 장성하여 왕자를 거절했다는 것이라고 한다. 영적으로 장성한 것을 뜻한다. 영적으로 장성한 모세는 육을 위해 살 것을 거부했다. 애굽의 왕자 자리가 얼마나 좋은 자리인가 부와 명예와 권세가 있는 자리이다. 아직도 우리가 세상 것에 마음이 끌리고 육적인 것에 매여 있다면 우리는 아직도 어린아이 신앙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얼마나 세상 속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 그런 신앙으로는 절대로 장성한 자가 될 수 없다. 주님이 우리의 신앙 키워주실 것으로생각지 말라. 물론 초신자 때는 우리를 이모저모로 돌보아 주시고 키워 주신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렇게 해 주시지 않은다. 우리는 이런 말을 종종 들은다. 초신자 때는 하나님의 은혜가 뜨겁게 임했고 표적도 보았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게 없다는 말을 듣는다. 기도도 초신자 때는 많이 했는데 요즈음은 왜 안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초신자 때는 십자가 말도 들어도 은혜가 넘쳤다.
그런데 이제는 강한 설교를 들어도 덤덤하다. 그것은 주님이 초신자 때는 믿음을 키워주고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해서 주님이 강권적으로 인도하신 것이다. 초신자 때 육적인 것을 다 버려서 그런 은혜가 온게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이 단계가 지나면 성도는 이제 육을 버려야만 된다. 그래야 장성 한자의 단계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 단계가 바로 성령님으로 거듭나는 단계이다. 성령님으로 거듭났느냐 안 났느냐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내가 육을 위해 살고 있다면 성령님으로 거듭난 게 아니다. 성령님 세례를 성령님으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방언을 한다고 해서 성령님으로 거듭난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방언은 성령님의 은사 중에 하나다. 은사 =은혜 恩 . 은혜 賜. = 하나님의 선물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서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예수를 나타내지 못하면 은사를 받았다 할지라도 제대로 사용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방언을 하고. 영 분별을 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 할지라도 예수를 위해서 살지 못하면 하나님의 주신 은사를 사용하고 있다 할지라도 영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육을 위해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이바로 마7장에서 주님이 무섭게 책망한 자들이다. (마7:20-22)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 여기에서 불법을 행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 것이 불법이 아니다. 불법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않했기 때문에 불법이다는 것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아무리 큰일을 했다 할지라도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은 것은 곧 불법이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입니까 육을 위해 살지 말고 영을 위해 살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육을 위해 사용하는 자는 모두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불법에 대한 말씀을 하기 전에 주님은 (마7:20)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 뜻깊은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 아주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너무 은사주의에 빠지면 안된다. 은사는 나를 나타내기 위해서 준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와 교회를 나타내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고전 10:8-13 = 다같이 보자. 8절 = 다 폐할 것이라고 했다. 무엇이오면 10절 = 온전한 것이 오면 온전한 것이 무엇인가 = 12절이 해답이다. 욥의 고백이 생각나십니까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 " 11절을 다시 보자 = 무슨 말인가 은사주의적 신앙은 어린아이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은사는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목적은 오직 예수 한 분을 위해 살게 하기 위함이다. 즉 영적인 자로 만들기 위함이다. 영적인 자로 장성한 자가 되면 은사에 매여서 살지 않은다. 이제는 예수에 매여서 살게 되는 것이다. 장성한 자는 내게 왜 하나님의 은사가 없을까 고민하지 아니한다. 내가 왜 예수를 위해 살지 못하는가 가슴을 친다. 주님은 왜 내 병을 고쳐주지 않을까 왜 내게 신유 은사를 주지 않을까 고민하지 않은다. 내가 왜 예수를 살지 못하는가에 더 가슴을 치는 자가 장성한 자의 모습이다. 육을 위해 사는 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된 자리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롬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 영을 위해 사는 자를 주님은 사용하신다. 영을 위해 사는 자만이 장성한자이다.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고 (롬8:5) 했다. 장성한 자만이 내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그러한 장성한 자를 통해서 기적이 나타났다. 장성한 자는 곧 의인을 말한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장성한 자 10명이 없어서 멸망 받았다. 롯은 의인이었다고 (벧후2:7)에 말씀하고 있다. 롯은 장성한 자였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기 힘들다고(눅18:8) 하셨다. 장성한 자를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성령님으로 충만한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우리는 육을 위해 사는 자가 되지 않고 영을 위해 사는 자가 될 것이다. 그러할 때 우리는 장성한 자가 되어 주님을 위해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3,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한다. (히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 단단한 식물이 무엇인가 세상에서 먹는 식물을 의미하는게 아니다. 영적인 양식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 (마4:4)
그런데 이 말씀이 초보적인 영적인 어린아이들이 먹는 말씀이 있고 장성한 자가 먹는 말씀이 있다. 단단한 식물은 바로 그 장성한 자들이 먹는 말씀이다. 단단한 식물을 먹지 아니하면 절대로 장성할 수 없다. 아이들이 태어나서 우유나 젖을 먹는데 그 아이가 5살 10살 되어도 우유나 젖만 먹고 자란다면 그 아이는 정상적인 아이로 성장할 수 없듯이 영적인 세계에서도 예수 믿고 이제 3년이 지났다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된다. 먹지 아니하면 장성한 자가 될 수 없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도 가르침이 초보에서만 머물러서는 안된다. 단단 식물을 주의 종들을 의무적으로가르치고 먹어야 한다. 히5:12-14 = 다같이 읽어보자. 하나님 말씀의 초보를 젖을 먹는 어린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히6:1-6 = 읽어보자.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라고 했다. 완전한데로 나아가지 아니하면 타락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면 성도를 장성케 할 수 있는 말씀이 무엇인가 그것은 계시록의 말씀을 먹어야 한다. 즉 다시오 실 재림 예수를 준비하는 게 장성한 자의 모습이다. 마24:45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이라고 했다. 계시록이 사도 요한의 종말장이라면 마24장은 예수님의 종말장이다. 마24:19 =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젖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리스도의 초보만 전달 하는게 젖만 먹이는 것이고 초보만 받아먹고 신앙생활 하는게 젖만 먹는 신앙이다. 마25장에 오면 신랑이다 하니까 신랑을 기다리던 10명의 처녀들이 다 깨어났다. 예수가 곧 오신다 할 때 깨어난다. 예수가 곧 오신다 하는데도 안 깨어난다면 그 신앙 별 볼일 없는 것이다. 교회는 지금의 때가 어느 때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때를 따라 성도들에게 양식을 나누어주는 충성된 종 지혜로운 종들이 되어야 할것이다. 성도들도 때가 어느 때인지 깊이 깨닫고 이제 얕은 물가에 있지 말고 깊은 생수의 말씀의 강물 속으로 들어와야만 한다. 겔47장 =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발목에. 무릎에. 허리에 나중에는 헤엄쳐야할 정도에서 에스겔이 거했다. 발목. 무릎. 허리에만 머무는 하나님 말씀이 되어서는 안된다. 헤엄칠 정도의말씀 속에 거해야만 장성한자가 될 수 있다. 계시록의 말씀은 바로 우리를 그렇게 단단하게 장성한 자로 성장시키는 말씀이다. 이제 우리는 오신 예수에서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된다. 오신 예수에 머물러 있는 자는 어린아이 신앙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오 실 재림 예수를 기다리며 신부된 모습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장성한 자의 모습이다. 장성한 자는 마25장에서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의 모습이다. 단단한 말씀을 먹지 아니하고는 준비할 수 없는 것이다. 계시록을 모르고 어찌 다시오 실 주님을 기다릴 수 있겠는가 장차 될 일이 계시록 속에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이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들에게는 허락이 아니 되었다. (마13:1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 (고전4:1) 그리스도의 일군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라고 하셨다. 비밀을 모르고서는 장성한 자가 될 수 없다. 장성한 자는 단단한 말씀을 받아먹고 이제 그 비밀을 알기 때문에 어린아이처럼 신앙생활 하지 아니한다. 어려운 일이 와도 쉽게 좌절하고 낙심하지 아니한다. 모든 삶의 초점을 예수께 두고 살아가면서 날마다 더욱 장성한 자가 되기 위해서 단단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 두 번째:보리떡 다섯 개 = 9절 떡은 말씀을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 보리떡은 무엇을 의미한가 보리떡은 보잘것없는 떡이다. 가난한 자들이 먹는 떡이다. 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떡이다. 이러한 보리떡의 의미를 통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복음의 비밀을 알려주기를 원하고 계신다.
보리떡 = 흠모할 만한 곳이 없는 우리 예수님을 뜻한다. 사람들에게 하찮게 보인 복음을 의미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저 이방인들에게는 하찮게 보일것을 의미한다. 5개 = 5수는 성령님의 수를 의미한다. 마가 다락방에 내린 오순절을 의미한다. 오순절은 50 이다. 오병이어 = 봄절기 = 초림을 뜻한다. = 유대인에게 보인 표적이다. 때가 유월절 = 1월(우리나라 3월) 마6:39 = 푸른 잔디에서 먹었다고 했다. 칠병이어 =가을절기=재림을 뜻한다.=이방인 지역에서 보인 표적이다 때는 초실절이 가까울 쯤이다. (요7:1) 마15:35 = 무리를 땅에 앉게 하시고 잔디가 아니고 땅이라는 것이 가을을 의미한다. 7 수는 완성 수를 의미하므로 재림의 수를 의미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밀은 서양에서 귀하게 사용하고 쌀을 동양에서 귀하게 여기지만 보리는 서양. 동양에서 천대를 받는다. 우리 주님이 서양 동양에서 모두 천대를 받았다. (사53:2-3)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복음이 들어갈 때마다 천대 받지 않은 곳이 한 곳도 없었다. 보리떡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표적이 보리떡으로 기적을 나타내고 계신 것이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보리떡 취급 받았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셨을 때 얼마나 보리 취급 받았는가 우리가 천대하는 보리에 얼마나 영양가가 많은지 모른다. 50년 60년대 살지 않은 사람들을 모를 겁니다. 그때 왠만한 부자 집 아니고서는 모두 보리 밥 먹었다. 그러니까 어디가나 방구 소리가 흔했고 냄새가 많이 났다. 그렇게 천대 받던 보리가 지금은 아주 고급 음식이 되었다. 보리밥만 전문으로 파는 집이 생겼고 일부러 보리 밥만 먹는다. 보리에 영양가가 많다는 것을 이제서야 안 것이다. 당뇨병 걸린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보리밥을 먹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보리처럼 천대를 받았지만 보리 같은 예수 안에서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 보잘것없는 보리떡 5개가 수만 명을 배불리 먹였듯이 이 땅에 오셔서 천대받고 멸시받은 예수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고 예수 안에서 참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사람들 보기에 교회들은 보리떡 같이 보일 것이다. 특히 작은 개척교회들은 더욱 하찮게 본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보리떡 같은 교회들을 사용하신다. 사람들을 택하실 때도 보리떡 같이 천대받은 자들을 택하셨다. 다시 말해서 보리떡 같은 예수가 보리떡 같은 자들을 통해서 보리떡 같은 교회를 만드시고 보리떡 같은 복음을 외치게 하신다. 광야에서 보리떡으로 기적을 일으키신 것은 배고픈 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이 오병이어의 사건은 보리떡 같은 예수가 . 복음이 전 세계를 보리떡 같은 복음으로 구원받을 것을 나타낸 사건이다. (고전15: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 구약에서도 보리떡을 예수 그리스도로 예표 하고있다 (민5:15)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 에바 십분지 일을 예물로 드리되 . " 보리떡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쓰여졌다. 삿7장에 보면 기드온이 미디안 군대와 아말렉 세력을 보리떡으로 무너뜨리는 것을 보는데 보리떡이 기드온의 칼날이라고 했다. 기드온을 우리가 강한자로 생각하는데 아주 연약한 자이다. 삿7:13-14 = 다같이 보자. 미디안 아말렉은 누구를 의미합니까 = 사단의 세력이다. 보리떡을 기드온의 칼날이라고 했다. 어떻게 보리떡이 칼날이라는 말이 됩니까 칼은 말씀을 의미한다. (히4:12)
그러므로 보리떡이 말씀이라는 것을 여기에서도 증명해주고 있다. 이 말씀이 미디안 군대를 무찔렀다. 기드온이 칼로 미디안 군대를 무너뜨렸습니까 빈 항아리에 횃불을 감추고 나팔을 들고 나가서 미디안 군대를 무너뜨렸다.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리자 횃불이 나와자 미디안 끼리 싸우고 도망가 버렸다. 나팔은 복음이다. 즉 말씀. 횃불은 성령님이다. 항아리는 율법이다. 이것이 바로 보리떡이다. 율법의 항아리를 깨뜨리자 성령님의 불이 나오고 복음의 나팔을 부니까 사단의 세력이 놀래서 도망 가버렸다. 초대 교회때 율법을 깨뜨리고 성령님의 불을 받자. 로마의 세력이 무너졌다. 미디안 세력이 보리떡에 무너졌고 로마의 세력이 보리떡에 무너졌다. 지금도 보리떡 같은 복음이 사단의 세력을 무너뜨린다. 보리떡 5개가 초림예수를 예표하고 있고 유대인에게 주신 보리덕 같은 복음이었다면 칠병이어의 보리떡 7개는 재림 예수를 예표하고 있고 이방인들에게 보리떡 같은 복음을 알리고 있다. 7은 완전수라고 했다. 계시록은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다. 성도를 완전케 하고 교회를 완전케 하고 세상을 완전케 해서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회복하고 이 땅에서 천년왕국을 이루고 모든 것을 완전케 하시겠다는 말씀이 계시록이다. 보리떡 같은 말씀으로 제자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을 완전케 했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보리떡 같은 계시록 말씀으로 성도들을 온전케 하실 것이다. 계시록이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보리떡 취급을 당하고 천대받고 있다. 천대해서는 안된다. 귀하게 여겨야 한다 종말에 우리는 보리떡 복음인 계시록을 알아야 한다 보리떡 같은 비밀을 알아야 음녀의 세력을 알 수가 있다. 계시록의 보리떡 같은 복음이 온 세상을 깨우게 될 것이다. 이 보리떡을 받은 자들은 구원받을 것이지만 천대하고 거부한 자들은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신 주님의 보리떡 같은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깨달아야 할 것이다. 보리떡 같은 교회에서 선포되는 복음을 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보리떡 같은 주의 종들을 통해서 선포되는 귀한 복음을 잘 받아 들여야 한다. 그러할 때 보리떡 역사가 우리들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사용하실 때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사용하셨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지식이나 인간의 수단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믿음으로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사건은 한 아이의 오병이어가 없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충분히 기적을 나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음의 손길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주님의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사용 받는 자들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너무나 보잘것없는 가운데서 그들을 사용하십니다. 세상에 지위와 권세가 있는 자들을 사용하면 더 복음이 잘 전해질턴데 그런 자들을 택하지 아니하시고 보리떡 같은 자들을 택하셔서 예수를 알리기를 원하신다. (고전1:27-28)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이렇게 택함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믿음 있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자들을 택하여서 장성한 자리에까지 우리를 기르신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또 다시 보리 떡 같은 복음이 세상에 전파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주님 오실 때까지 이러한 역사는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 질 것이다. 세상은 보리 떡 되신 예수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고 있다. 그 보리 떡 같은 예수를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알려지기를 지금도 원하고 계신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 우리는 보리떡 되신예수가 우리의 생명이 되시고 우리의 전부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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