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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 절기 중에 일어난 일! (요7:14-36)

본문

초막절을 몇일 간 지낸다고 했습니까 7일간이라고 했죠 예수님은 초막절 초에는 조용히 지내시다가 중간 쯤에 성전에 나타나셔서 말씀을 선포하셨는데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무섭게 비판하셨다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본문 속에는 3부류의 모습들이 있다.
1. 예수를 죽이려는 무리들
2. 구경하는 무리들.
3. 예수를 믿고 따르는 무리들. 오늘날도 이 세상 속에 3부류의 모습을 가진 자들이 살고 있다. 이러한 3부류의 모습은 교회 안에까지도 들어와 있다. 오늘도 우리는 성전에서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나온 자들이다. 왜 우리가 가르침을 받어야 합니까 우리의 성경 지식을 쌓기 위해서 가르침 받습니까 물론 우리가 성경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해박한 성경 지식이 누구를 위함이어야 합니까 나를 위함입니까 나를 위함은 두 번째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함이다. 요한 복음에서 계속해서 우리가 알기 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가 를 우리에게 계속해서 질문하고 있다. (요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성도 여러분 ! 예수가 누구인지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까 예수가 나의 주인 되시고 나의 구주이시고 나의 신랑이시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도 예수님은 성전에서 우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배워 주님의 위해 사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 14-24 =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성전에서 가르치는 예수님을 보고 유대인들은 너무 놀란 것이다 어떤 가르침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구약 성경을 펴놓고 가르쳤을 것이다. 구약 성경은 히브리어로 되었기 때문에 히브리어를 아는 자들은 종교적 지도자들 뿐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저들은 분명히 놀랬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놀랜 것은 무엇을 깨달아서 놀랜 것이 아니라 학교 근처도 안 간 무식한 자가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성전에서 가르치신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관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계신다.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즉 주님이 지적한 잘못된 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5가지로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관을 지적 하셨다
1. 17절 =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아니했다.
2. 18절 = 자기의 영광만 좇는 자들이었다.
3.  = 너희 속에 불의가 있다.
4. 19절 = 율법을 지키지 아니했다.
5. 24절 = 너희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라 이런 잘못된 신앙관이 우리들 신앙에는 없습니까 이런 잘못된 신앙이 우리에게도 있다면 우리 역시 예수를 뿌리치고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은 구약 성경 레위기 23장을 펼치고 초막절에 대해서 가르쳤는지도 모른다. 예수님 가르침에 예수를 믿는 자들도 나타났지만 이 가르침으로 예수의 죽음은 더욱 확실해져 버린 것이다. 자신이 영광을 위해서 받기 위해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가르친 것이 아니었다. 오늘 본문에 "보내신 이" 라는 말씀을 예수님은 두번 하셨는데 진실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분이셨다. 보냄을 받은 사람은 보내신 이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것이 목적이다 하나도 둘도 셋도 오직 보내신 이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그런 삶을 온전히 사신 분이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 가르침에 놀란 것은 무엇을 깨달아서 놀란 것이 아니다 저들은 예수가 어디 출신이고 직업이 무엇이고 누구 아들인 것까지도 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성경을 읽을 수 있느냐 또 어떻게 성경을 우리에게 가르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당시에 유대인들의 고유 언어는 히브리어였지만 바벨론 포로에 잡혀서 70년간 포로생활 하는 가운데 히브리어 고유 언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아람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아람어가 유대인들의 언어와 글이 되어 버렸다. 유대인들은 예수가 누구로부터 보냄을 받았고 누구인지 알았다면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예수가 조금도 이상하지 안했을 것이다. 기이히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신앙관을 냉철하게 판단하셨다.
1.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아니한 신앙을 비판했다.(17절)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있었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깨달을 것이고 그 가르침이 누구의 가르침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사실을 하나님을 믿고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요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 유대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몰랐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안했습니까 그들은 너무나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있었고 어릴 때부터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가르침 받고 살아왔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너무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말씀이 주는 뜻과는 정반대의 신앙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한 자라고 예수님께 책망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유대인들에게 율법이 왜 주어졌습니까 지키라고 주어진 것이다. 율법을 인간이 다 지킬 수 있습니까 지킬 수 없다.
그러므로 율법 앞에 인간은 무엇이라고 고백해야 합니까 "오호라 나는 죄인이로다" 고백이 나와야 하는데 유대인들은 어떡해 했습니까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여겼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우리는 성전에서 기도하던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잘 안다. 바리새인은 모든 율법을 다 지켜서 의인이라고 기도했지만 세리도 가슴을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 애통해 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잘 알았지만 그 말씀이 주는 깊은 의미를 모르고 신앙 생활 한 자들이다 지금도 초막절 절기를 지키라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였지만 그들은 진정한 초막절의 깊은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성도 여러분 ! 이 시대 하나님 말씀이 홍수 시대이다. 너무나 성도들이 말씀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알고 있다는 성도들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는 자들의 모습이다. 말씀을 잘 알고 있다면 그 말씀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안다면 내 뜻대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 뜻을 살아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뜻대로 내 주관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알고 있는 자의 모습도 믿는 자의 모습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성전에서 가르침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 받고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면 이 가르침이 어디서 온 가르침인지 모르는 자들이다.
2. 자기 영광만 좇는 신앙을 비판했다. = 18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좇으며 사는 자들이 아니었다. 종교 지도자들은 더욱 그리했다. 종교 지도자들은 자기들도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면서 백성들을 율법으로 얽매어 백성들 위에서 군림하며 부귀와 영화를 누렸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아니했다. 어떻게 독사의 새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겠는가 마23장에서 예수님은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자들에게 무섭게 저주를 하셨다. (마23: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이러한 일이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주의 일을 힘들게 해놓고 그만 내가 영광을 받고 마는 일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고전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먹는 것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다면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단은 이 영광 돌릴 자리에서 인간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해서 스스로 영광을 차지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 영광의 자리에서 사단에게 넘어가 실족해 버린다 사단은 이 방법을 예수께도 사용하였다. 예수님이 40일 금식이 끝난 후 사단은 예수께 세상의 영광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경배만 해라 그리하면 세상 영광을 다 주겠다고 미혹하였다. 우리가 에수 믿고 세상 속에서 너무 영광을 받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이 어디로부터 온 영광인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나의 영광을 좇기를 원한다면 나의 영은 죽고 말 것이다. 성도도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조심해야 할 자들이 바로 주의 종들이다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자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었다고 했다 (행12:23) 짐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아니하면 우리의 영혼은 헤롯처럼 충이 먹어서 썩어지고 말 것이다.
3.너희 속에 불의가 있다고 비판했다 = 18절 불의는 옳지 않는 짓을 하는 것을 말한다 곧 죄 때문에 불의를 범하게 되고 불의한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는 것입니까 모두가 자기를 위함 때문이다. 딤후3장에 말세에 나타나는 현상 중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모둔 죄악도 사실을 자기를 사랑한 것 때문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너무 사랑할 때 돈을 사랑하게 되고 교만해지고 부모를 거역하게 되고 원망. 불평하게 되고 쾌락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나 자신을 먼저 부인하고 예수를 따르라고 했다. 불의한 재물, 불의한 마음. 모두가 나를 위한 불의한 것에서 시작된다 나를 위한 것이 이토록 무섭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임금 삼으려고 한 것 나라를 위함이었습니까 자기 자신들을 위함이었다. 기적을 보고 예수를 따라 다닌 것 예수를 위함이었습니까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왜 죽이려고 했습니까 자기들의 자리가 위태로웠기 때문에 예수를 죽인 것이다. 불의한 마음은 곧 더러운 마음이다 이런 마음 가지고서는 하나님께 영광 드릴 수 없다 (롬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빌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예수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마음이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온전히 죽지 않는 한 우리는 이 불의한 마음이 자꾸만 살아 일어 날 것이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이 고백이 우리 입에서 떠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4.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비판했다 = 19절. 유대인들은 율법을 가장 소중이 여겼다. 율법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율법 속에서 율법을 먹고 마시며 성장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책망하고 있다. 왜 율법을 지키지 아니한 자 들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까 예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율법은 지키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책망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살인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살인을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서 잡혀서 돌로 죽임을 당할 때 예수를 유대인들에게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라고 정죄한 것은 그들이 율법을 참 의미를 모르고 지키고 있는 것을 책망하신 것이다. 율법은 누구를 정죄하고 비판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율법은 죄를 깨닫고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이용하며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 책망을 받은 것이다 유대인 자기들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남을 비판하고 지금 예수까지 율법을 이용해서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21절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 도다 그 한가지 일은 예수님이 안식일 날 베데스다 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었다. 안식일은 범한 예수를 유대인들은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는 할례의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그렇게 안식일을 범하면서 내가 안식일 날 38년 동안 병자로 있는 불쌍한 사람을 고쳐주었는데 너희가 왜 화를 내느냐 ! " (마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율법은 어떤 것은 지키고 안 지키고 해서는 안된다. 온전히 다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율법은 온전히 지킬 수 없다. 율법 앞에서 인간은 모두가 죄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 율법으로 자기들은 의로운 자들이라고 믿고 있는 어리석은 자들이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마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율법은 우리가 죄를 깨닫고 더욱 가까이 그리스도께로 가까이 가기 위해서 주어진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오히려 율법의 주인이신 예수를 율법으로 죽이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말씀으로인해 더욱 예수께 가까이 나아가고 있습니까 말씀으로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부터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면서 말씀으로 남을 판단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말씀 앞에서 우리는 죄를 깨닫고 "어찌할꼬" 하는 자들이 되어서 더욱 예수를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율법의 완성자로 오신 예수를 높이 찬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로 판단하라고 비판했다 = 24절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마음대로 예수를 판단하고 있었다. 예수님의 외모만 보고 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옳다고 여긴 것이다. 유대인들은 외모를 중요시하는 자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은 "화 있을진저 !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 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 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23:27-28) 예수님의 모습은 흠모할 만한 곳을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가난한 시골에서 30년 동안 목수로 가난한 가정을 꾸려 나온 예수의 모습은 잘 먹어서 개기름이 흐른 유대인의 얼굴하고는 비교가 되지 안했다. 옷도 남루한 옷이었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예수님의 모습을 예언하셨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공의로 판단하라고 책망하셨다. 공의의 판단은 율법의 정신에 입각한 판단을 하라는 것이다. "너희 마음대로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입각하여 판단하라"는 것이다 "너희가 율법을 안다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보라"는 것이다. 이 시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눈에 보이는 걋막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다. 사람들은 마음보다는 외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신경을 쓰고 있다. 방학 때만 되면 성형 외과는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여자들의 화장은 이제 주부들만 하는 시대는 지난 지 이미 오래다. 고등학생들도 화장을 이제 하고 남자들도 화장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옷은 또 어떤 한가 ! 너나 할 것 없이 옷 치장에 열들을 내고 있다.
얼마 전 상류층이 이용하는 패션 업체가 밍크 코트의 뇌물 문제로 시끄러워 진 후에 문을 닫았는데 얼마 전 세일을 실시하자 수많은 여자들이 몰려들어서 100만원 어치를 쉽게 사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고 한다. 아파트도 대형 아파트가 더 팔리는 시대이고 자동차도 외제차 대형차가 더 잘 팔리는 시대이다. 교회도 점점 카톨릭 강단처럼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있고 교회도 거대하게 지워지고 있는 시대이다. 초림에 예수님이 어디로 왔는가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으로 왔는가 외모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자가 된다면 우리들도 유대인들처럼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 이 시대 성도들도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들 있다. 지하 교회. 월세 교회는 다니지 않고 큰 성전만 추구하는 그들의 신앙이 외모만 보고 판단하고 있는 신앙이라면 회개해야 할 것이다. 미국에서 백인들만 모이는 교회에 흑인이 들어가려고 하자 흑인을 교회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흑인은 교회 앞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때 어느 사람이 흑인에게 다가와서 왜 울고 있느냐고 물었다 흑인은 교회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려야 되는데 못 들어가고 있어서 울고 있다고 했다. 그때 그 사람도 나도 오래 전부터 저 교회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못 들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흑인의 영안이 열리며 그 사람이 예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성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너무 부해서 예수가 들어올 자리는 없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유대인들의판단이 얼마나 무서운 짓을 범하고 말았는가 인간은 판단은 무서운 짓을 범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이 인간 스스로 하는 판단이 가장 옳은 것으로 여긴다는 것이 무서운 일이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판단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들의 하는 짓이 얼마나 무서운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마지막 때 우리는 공의로 판단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공의의 판단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침 받아야 할 것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이 말씀을 몰라서 잘못된 게 아니다. 말씀은 잘 알았지만 말씀의 해석을 전혀 다르게 하고 있었다. 그들의 해석은 모든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하나님 말씀은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이다. 그러나 영적 해석은 극히 위험스러운 것이 없지 않아 많이 있다.
그러므로 올바른 복음적인 영적 해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는 기복적인 설교를 벗어나야 할 것이다. 이제 올바른 영적 해석을 성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이다. 이 가르침이 안된다면 성도들은 여전히 세상적으로 타락할 것이고 외모만 보고 쫓는 유대인들과 같은 무리들이 되고 말 것이다 (시119:105) "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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