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역사 (요17:1)
본문
그리스도인들이 행하는 모든 역사가 신의 역사 가 되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서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 가 세상을 이기었노라."라고 말씀하신 후 곧바로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아들의 자격으로 오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에게 아버지 이름을 알리 심과 동시에 우리로 하여금 아버지의 것이 되어 아버지의 일을 하게 하시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의 위치로 오신 이유는 우리를 아버지의 것으로 만들어서 아버지의 일을 하게 하시 기 위함에서였다.'' 잠시 신의 역사 에 대해서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신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시편 82:6, 요한복음10:34) 모세가 바로에게 신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였기 때문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 나이니라.(요한복음 10장 30절)"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이스 라엘 백성들이 참람하다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치려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은 신이라 하였거늘 하물며 아버지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는 참으로 귀한 비밀이 담겨져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 들이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모두가 다 신의 역사이지 인간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능력이 나타나게끔 일을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 자신의 일의 성취를 위해서 스스로의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우리의 믿음과 행함도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나게끔 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믿음과 행함 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든 원리가 여기(신의 역사)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중요한 사실은 지금 우리의 존재 이유가 아버지를 나타내고 아버지의 것이 되기 위함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담기 위한 질그릇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형태는 하나님의 일인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담는 그릇의 형태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 듯 모든 것을 행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국 이 모든 것 이 다 신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 구나 다 믿음의 일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하나님이 하 셨어.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위대해."라고 말합니다. 신의 역사라는 것이 바로 이 말 그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하셨어. 하나님의 역사야."라는 이 말은 결국 인간이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해 놓고는 인간을 나타내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이다. 내가 했다."라고 말 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것이 다 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신의 역사 라는 것이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인으로서 생활할 때는 이런 말들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하셨어. 하나님의 역사는 위대해."라는 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와 사랑을 이루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이 루게끔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차원보다 도 더 위함에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에는 우리 인 생의 존재 목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문은 성경의 어떤 말씀보다도 더 중요한 내용 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인류 역사의 본질과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자체가 담겨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이 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아들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성취하신 후 하나님 앞에 "이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 하시던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기도문의 내용을 바로 깨닫는다면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이 무엇이며, 하시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서 잘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로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 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다 아버지의 것이로 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비는 기도의 목적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즉 이 세상의 구원적인 측면이 아니고 내게 주신 자들 을 위함이라고 밝히시면서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한복음 17:10)"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에는 우리를 "내게 주신 자들"이라는 말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을 주시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우리를 속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 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이름인 것입니다. "내게 주신 자들"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10절에 기록된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 이다."라는 이 말씀을 쉽게 풀어드리자면 "아버지의 것이 되어서 아 버지의 것으로써 아버지의 영광이 되었다."라는 뜻이 됩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 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 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요한 복음 17장 11절의 이 말씀 또한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이름이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형상화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릇에 담긴 것입니다. 즉,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어떠한 역사를 성취하리라."라고 말씀하 시면서 그 역사를 이루실 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타나게 되 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형상화되어서 나타난 이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간의 부 자지간의 관계처럼 말씀하셨는데, 실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뜻과 섭리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이름입니다. 단,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의 위치(자리)로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시기 위해서, 또 그릇의 위치에 맞게 내려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서 이루는 역사를 이루 기 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담는 그릇이지만 실제적으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다 성부 하나님의 것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는 아들의 위치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위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곧 우리의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를 넘겨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심으로써 아들의 위치 에서 아버지의 것을 받아서 그대로 불의가 없는 순수 100%의 상태를 그대로 전달하는, 하나님의 역사의 장이 탄생되는 그 공간을 우리 안에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 들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 말씀을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부자 간의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아들의 위치로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아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아들의 위치로 오신 것일 뿐, 하나님이 낳으신 아들이라는 그런 개념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즉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내가 하나님의 것을 그대로 받아서 하나님의 것을 이룬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이름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을 그리스도인들이 잘 이해 하실 수 있어야 됩니다. 피로 말미암은 동질성의 역사 요한복음 17장 11절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 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 또한 참으로 귀중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각각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며, 성령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성령님이십니다. 이렇 듯 삼 위가 일체이신데, 역사 성격의 형태가 셋으로 나누어졌을 뿐 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실 때의 그 예수님은 하나님이심 을 우리가 알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아들처럼 역사를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로서 된 순수 아들의 위 치에서 그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았고, 그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피로써 하나님과 우리와의 동질성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즉, 우리를 완전히 거룩하게 구별시켜 놓음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차원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에 기록된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 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 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라는 이 말씀이 바로 그 증거가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세상 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 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별된 자로서 아버지의 선상에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동질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긍휼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를 구별시키기 위해서, 드려지는 위치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긍휼이 없이는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가치가 내 안에 보존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육을 가진 우리에게는 반드시 긍휼 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혼과 육을 없애시고 영을 구 별시켰다면 긍휼은 한 번의 가치로서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영원의 선상에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혼과 육이 있어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보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예수라는 틀 안에 담겼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의 틀의 가치는 인류를 향한 뜻이 담긴 가치이다.'' 그런데 사랑과, 긍휼과, 사명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틀의 가치가 인간이라는 틀 안에 담겼습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틀에 담기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룬 가치가 인간이란 틀에 담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틀은 피가 없이는 도저히 인간에게 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피로써 동질성을 만드시고, 그 피 의 증거로써 성령님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치화된 하나님의 섭리(물)가 임할 수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있는 자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넘겨 주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우리에게 오셨다가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의 가치를 생성시킨 후에 다시 가셔서 그 이름의 가치를 성령님에 담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신의 역사로 마감되는 인류 역사 요한복음 17장 11절을 보면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 서."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틀에 불 과했기 때문에 자신을 존재화시키지 않음으로써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나는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만 말한다."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만을 존재화시키신 분이시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 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불의가 없느니라."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 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결국 똑같은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위치)가 우리에게 내려온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틀이라는 그 위치가 우리 안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와 하나되었다는 이 개념은 축소시킬래야 축소시킬 수 없는 개념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이 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인간이 하는 것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마감되기 위한 역사인 것이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불가능할 것 같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7장 11절에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동질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또한 그 안에서 가치를 느끼며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것도, 모든 것의 공감 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 피의 동질성을 가졌기 때문에 가 능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아버지의 영광이 되었다는 것은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 고, 우리 또한 아버지의 것만을 100%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또한 우리 속에 불의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와 하나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와 하나되었다는 이 개념은 축소시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된 것 같이 우리도 하나되게 하겠음을, 우리가 아버지의 영광이 됨을 밝히셨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것이 된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을 보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 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라는 말씀 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실 때부터 자 신을 사랑함으로써 보게 하신 그 영광을 우리에게 보게 하기를 원한 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하나되게 함과 동시에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과 성취를 공유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창세 전부터 자신을 사랑하시므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였을 때부터 자신을 사랑하 신 그 영광을 우리에게 보게 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성취와 영광을 이루시는 선상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하나되어서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같이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단순한 역사가 아닙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17장 19절을 보면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 스로를 거룩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께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성화되시겠다는 말씀 이 아니라 진리로 거룩하여진 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로 거룩함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진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형상화되어 나타난 분이신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 자 리 안에 존재하고 계십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 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요한일서 5:6) 요한일서 5장 8절에는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님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여기서 물은 거룩하게 본래부터 구별된 성결 그 자체, 즉 하나님의 것을 의미하며, 피는 드려지는 거룩한 가치, 즉 거룩한 제물을 의미 합니다. 이 물과 피를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말과 연결시키면 "원래부터 구별된 아버지의 것이 거룩하 게 드려진다."라는 말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위치인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것을 의미하며, 거룩함은 피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본래부터 흠없는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이 피로 거룩하여진 우리 의 자리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 게 만드시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즉, 우리가 아버지의 것으로 드려지 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한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지는 위치를 뜻합니다. 요한복음 17 장 19절에 기록된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이 말씀은 결 국 예수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것이 거룩한 자리로 왔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것은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함이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거룩함이라는 말을 필요로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진리를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의 이름 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기 위해서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을 모시 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모실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죽어져야만 됩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 한 분만을 모실 수 있는 자 리를 마련케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요한복음 17장의 이 기도문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과 그분이 우리에게 주고 가 신 것,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원하신 것들이 잘 나 타나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를 위 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라는 이 15절의 말씀 한 구절만 봐도 예수님의 사역, 그리고 우리에 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단숨에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구원코자 하심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한 목적 그보 다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한 사역의 성격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가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구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고, 결국에 가서는 사단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은 세상에서 우리를 탈출시키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기를 위함이니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고린도 후서 5장 4절의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과 또한 베드로 전서 3장 21절의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7장 15절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가치를 보전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긴 말씀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단순간에 변화되어 성령님나(성령님과 하나된 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이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 좇아가는 것, 내 안 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즉, 압도적인 역사로 이 기게 하는 역사, 그 흔적을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8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저희 를 세상에 보내었고"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보내셨다는 말은 "낳았다."라는 말과 같은 개념인데, 이 낳았다는 것은 여자가 잉태 하여 해산하는 것 같은 그런 개념이 아닌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개념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과 같이 나도 저희를 보내었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내가 저희를 새 로 낳았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으로 새로 태어났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의 피로써 새로이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써 우리가 아버지와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내가 저희를 낳았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가 없으셨던 것같이, 아버지의 것만 으로 행하셨던 것같이,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하셨던 것같이, 아버지 와 하나된 것같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게 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과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냈다."라는 이 말씀은 "내가 피로써 낳은 이들을 성령님으로써 가치를 보전시켜 나와 똑같은 일을 하게 하겠다."라는 말씀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 지하는 순간 그 증거로서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님 은 내 안에 임한 아버지의 것을 나로 하여금 이루게끔 하는 역사를 하십니다. 아버지와 나와 하나되어서 아들되게 하는 것은 피의 역사 이고, 그 피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아버지의 것을 나타내고 증거하도록 하게끔 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귀속의 역사 인류 전체의 역사가 요한복음 17장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 안에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는 지, 결국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 이 다 나와 있습니다. 이슬이 땅에 내려서 만물을 적셨다가 다시 하 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는 원리처럼 우리의 역사 또한 그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것을 취하게 하신 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 다음 성령님나로서 우리를 거두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로 귀속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버지께로 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우리가 요한복음 17장의 말씀 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을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건져 내어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 그 하나만으로 축소시키려고 할 때가 많 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님은 이룸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참람하다고 하며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율법에 기록 한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신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아버지 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말씀은 "나는 아무것도 아닌 틀로서 존재하고 오직 아버지의 것만을 받아서 전하는 형체가 없는 나인데, 나는 나의 존재를 주장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아버지만을 전하는 틀로서 아버지 것만을 전 했는데 어찌 너희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나를 참 람하다 하느냐"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의 아들들이고, 아버지의 신의 역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역사 가 신의 역사 라는 말씀에서 "부족한 인간인 나에게, 맹점도 많고 더럽고 추한 나에게 어찌 '신'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요한복음 17장의 말씀과 같 이 부르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우리가 헛된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된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나타나게끔 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믿음과 행함 인 것이다.'' 결국 이러한 모든 원리가 여기(신의 역사)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될 중요한 사실은 지금 우리의 존재 이유가 아버지를 나타내고 아버지의 것이 되기 위함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담기 위한 질그릇밖에 되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형태는 하나님의 일인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담는 그릇의 형태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 듯 모든 것을 행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결국 이 모든 것 이 다 신의 역사,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 구나 다 믿음의 일을 행하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며 "하나님이 하 셨어.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위대해."라고 말합니다. 신의 역사라는 것이 바로 이 말 그 자체인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하셨어. 하나님의 역사야."라는 이 말은 결국 인간이 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일을 해 놓고는 인간을 나타내기 위해서 "인간의 역사이다. 내가 했다."라고 말 하는 사람은 아마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것이 다 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신의 역사 라는 것이 어려운 개념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인으로서 생활할 때는 이런 말들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하셨어. 하나님의 역사는 위대해."라는 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것으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와 사랑을 이루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일을 이 루게끔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차원보다 도 더 위함에서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에는 우리 인 생의 존재 목적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문은 성경의 어떤 말씀보다도 더 중요한 내용 이 들어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는 인류 역사의 본질과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목적 자체가 담겨져 있습니다. 요한복음 17장의 이 기도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아들의 위치에서 모든 것을 성취하신 후 하나님 앞에 "이제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 하시던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하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 기도문의 내용을 바로 깨닫는다면 원래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것이 무엇이며, 하시고자 하셨던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서 잘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로 10절에는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 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다 아버지의 것이로 소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빌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이 비는 기도의 목적이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고, 즉 이 세상의 구원적인 측면이 아니고 내게 주신 자들 을 위함이라고 밝히시면서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요한복음 17:10)"라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장 9절에는 우리를 "내게 주신 자들"이라는 말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의 이름을 주시면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우리를 속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 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이름인 것입니다. "내게 주신 자들"이란 말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7장 10절에 기록된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 이다."라는 이 말씀을 쉽게 풀어드리자면 "아버지의 것이 되어서 아 버지의 것으로써 아버지의 영광이 되었다."라는 뜻이 됩니다.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 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 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요한 복음 17장 11절의 이 말씀 또한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 이름이 다름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형상화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그릇에 담긴 것입니다. 즉,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어떠한 역사를 성취하리라."라고 말씀하 시면서 그 역사를 이루실 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나타나게 되 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형상화되어서 나타난 이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마치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간의 부 자지간의 관계처럼 말씀하셨는데, 실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아버지의 뜻과 섭리가 형상화되어 나타난 이름입니다. 단,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들의 위치(자리)로 오신 이유는 우리에게 초점을 맞추시기 위해서, 또 그릇의 위치에 맞게 내려오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아버지의 뜻을 받아서 이루는 역사를 이루 기 원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담는 그릇이지만 실제적으로 그 안에 담겨져 있는 것은 다 성부 하나님의 것인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지금 우리는 아들의 위치에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들의 위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곧 우리의 위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를 넘겨 받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 주심으로써 아들의 위치 에서 아버지의 것을 받아서 그대로 불의가 없는 순수 100%의 상태를 그대로 전달하는, 하나님의 역사의 장이 탄생되는 그 공간을 우리 안에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 들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그 말씀을 인간 세상에서 말하는 부자 간의 개념으로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아들의 위치로 오신 목적은 우리에게 아들의 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 아들의 위치로 오신 것일 뿐, 하나님이 낳으신 아들이라는 그런 개념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즉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형상화되어 나타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내가 하나님의 것을 그대로 받아서 하나님의 것을 이룬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이름이다. 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뜻을 그리스도인들이 잘 이해 하실 수 있어야 됩니다. 피로 말미암은 동질성의 역사 요한복음 17장 11절에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 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서"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 또한 참으로 귀중한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은 각각 다른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예수님이시며, 성령님이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성령님이십니다. 이렇 듯 삼 위가 일체이신데, 역사 성격의 형태가 셋으로 나누어졌을 뿐 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님은 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실 때의 그 예수님은 하나님이심 을 우리가 알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떤 부분을 보면 하나님이신데도 불구하고 아들처럼 역사를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아들로서 된 순수 아들의 위 치에서 그 자신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존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구와 같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았고, 그분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피로써 하나님과 우리와의 동질성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즉, 우리를 완전히 거룩하게 구별시켜 놓음으로써 우리를 하나님의 차원에 설 수 있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4절에 기록된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 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 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라는 이 말씀이 바로 그 증거가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세상 에 속하지 아니하였다는 것은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들 어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구별된 자로서 아버지의 선상에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동질성을 증명하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긍휼을 허락하신 이유는 우리를 구별시키기 위해서, 드려지는 위치로 만드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긍휼이 없이는 이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가치가 내 안에 보존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육을 가진 우리에게는 반드시 긍휼 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혼과 육을 없애시고 영을 구 별시켰다면 긍휼은 한 번의 가치로서 끝나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영원의 선상에 두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금 혼과 육이 있어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보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예수라는 틀 안에 담겼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 의 틀의 가치는 인류를 향한 뜻이 담긴 가치이다.'' 그런데 사랑과, 긍휼과, 사명을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틀의 가치가 인간이라는 틀 안에 담겼습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틀에 담기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룬 가치가 인간이란 틀에 담겼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틀은 피가 없이는 도저히 인간에게 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피로써 동질성을 만드시고, 그 피 의 증거로써 성령님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치화된 하나님의 섭리(물)가 임할 수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 주셨다함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있는 자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넘겨 주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실체로서 우리에게 오셨다가 예수 그리스도란 이름의 가치를 생성시킨 후에 다시 가셔서 그 이름의 가치를 성령님에 담아 우리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신의 역사로 마감되는 인류 역사 요한복음 17장 11절을 보면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되게 하옵소 서."라는 말씀이 나오는데, 여기서 말하는 우리는 성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틀에 불 과했기 때문에 자신을 존재화시키지 않음으로써 "나는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노라.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셨다.나는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만 말한다."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만을 존재화시키신 분이시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 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불의가 없느니라."라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 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결국 똑같은 개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위치)가 우리에게 내려온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틀이라는 그 위치가 우리 안에 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 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와 하나되었다는 이 개념은 축소시킬래야 축소시킬 수 없는 개념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것이 신의 역사인 것입니다. 인류 역사는 인간이 하는 것도,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류 역사는 오직 하나님의 신의 역사로 마감되기 위한 역사인 것이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불가능할 것 같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7장 11절에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하나님과의 동질성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또한 그 안에서 가치를 느끼며 믿음으로 행할 수 있는 것도, 모든 것의 공감 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 피의 동질성을 가졌기 때문에 가 능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아버지의 영광이 되었다는 것은 아들이 되었다는 것이 고, 우리 또한 아버지의 것만을 100%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또한 우리 속에 불의가 없다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버지 와 하나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되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와 하나되었다는 이 개념은 축소시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우리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된 것 같이 우리도 하나되게 하겠음을, 우리가 아버지의 영광이 됨을 밝히셨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것이 된 것만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을 보면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 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라는 말씀 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이실 때부터 자 신을 사랑함으로써 보게 하신 그 영광을 우리에게 보게 하기를 원한 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하나되게 함과 동시에 우리와 같이 하나님의 영광과 성취를 공유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단순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창세 전부터 자신을 사랑하시므로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본체와 하나였을 때부터 자신을 사랑하 신 그 영광을 우리에게 보게 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참으로 위대한 말씀인 것입니다. 성취와 영광을 이루시는 선상에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하나되어서 그 영광을 우리에게 주시겠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와 같이 할 수 있는 것, 이것은 단순한 역사가 아닙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어야 한다. 요한복음 17장 19절을 보면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스 스로를 거룩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께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시겠다는 이 말씀은 성화되시겠다는 말씀 이 아니라 진리로 거룩하여진 자리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로 거룩함을 입으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진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형상화되어 나타난 분이신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 자 리 안에 존재하고 계십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 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요한일서 5:6) 요한일서 5장 8절에는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님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물과 피를 다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여기서 물은 거룩하게 본래부터 구별된 성결 그 자체, 즉 하나님의 것을 의미하며, 피는 드려지는 거룩한 가치, 즉 거룩한 제물을 의미 합니다. 이 물과 피를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말과 연결시키면 "원래부터 구별된 아버지의 것이 거룩하 게 드려진다."라는 말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위치인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것을 의미하며, 거룩함은 피의 역사를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 안에 있는 것은 본래부터 흠없는 하나님의 의, 즉 하나님의 섭리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이 피로 거룩하여진 우리 의 자리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라는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신 이유는 우리를 진리로 거룩하 게 만드시기 위함에서였습니다. 즉, 우리가 아버지의 것으로 드려지 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한다."는 이 말씀은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지는 위치를 뜻합니다. 요한복음 17 장 19절에 기록된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라는 이 말씀은 결 국 예수라는 이름을 우리에게 주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것이 거룩한 자리로 왔다는 것입니다. 원래 하나님의 것은 구별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함이라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왜 거룩함이라는 말을 필요로 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진리를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의 이름 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기 위해서 진리로 거룩함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 즉 하나님을 모시 기 위한 거룩한 자리가 되어야 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모실 수 있는 거룩한 자리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이 죽어져야만 됩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 한 분만을 모실 수 있는 자 리를 마련케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요한복음 17장의 이 기도문은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과 그분이 우리에게 주고 가 신 것,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통해서 하시고자 원하신 것들이 잘 나 타나 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기를 위 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라는 이 15절의 말씀 한 구절만 봐도 예수님의 사역, 그리고 우리에 게 주어진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단숨에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구원코자 하심만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를 데려가시기 위한 목적 그보 다도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한 사역의 성격이 더 크다는 것을 우리가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의 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는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어 구원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었다.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고, 결국에 가서는 사단을 멸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은 세상에서 우리를 탈출시키기 위한 목적만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기를 위함이니이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고린도 후서 5장 4절의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과 또한 베드로 전서 3장 21절의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 합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7장 15절의 이 말씀은 하나님의 가치를 보전시킴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담긴 말씀이 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단순간에 변화되어 성령님나(성령님과 하나된 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한 양심이 아버지 하나님을 향해서 좇아가는 것, 내 안 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즉, 압도적인 역사로 이 기게 하는 역사, 그 흔적을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8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저희 를 세상에 보내었고"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이십니다. 여기서 보내셨다는 말은 "낳았다."라는 말과 같은 개념인데, 이 낳았다는 것은 여자가 잉태 하여 해산하는 것 같은 그런 개념이 아닌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개념의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과 같이 나도 저희를 보내었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내가 저희를 새 로 낳았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무엇으로 새로 태어났겠습니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의 피로써 새로이 태어난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로써 우리가 아버지와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아버지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내가 저희를 낳았다."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의가 없으셨던 것같이, 아버지의 것만 으로 행하셨던 것같이, 아버지의 영광만을 구하셨던 것같이, 아버지 와 하나된 것같이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게 하시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심과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냈다."라는 이 말씀은 "내가 피로써 낳은 이들을 성령님으로써 가치를 보전시켜 나와 똑같은 일을 하게 하겠다."라는 말씀인 것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를 의지하여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 지하는 순간 그 증거로서 우리 안에는 성령님이 임하게 됩니다. 성령님 은 내 안에 임한 아버지의 것을 나로 하여금 이루게끔 하는 역사를 하십니다. 아버지와 나와 하나되어서 아들되게 하는 것은 피의 역사 이고, 그 피의 역사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아버지의 것을 나타내고 증거하도록 하게끔 하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의 말씀이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귀속의 역사 인류 전체의 역사가 요한복음 17장에 다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말씀 안에는 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셨는 지, 결국 우리를 통해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 이 다 나와 있습니다. 이슬이 땅에 내려서 만물을 적셨다가 다시 하 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는 원리처럼 우리의 역사 또한 그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것을 취하게 하신 후 그것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신 다음 성령님나로서 우리를 거두어가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께로 귀속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아버지께로 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리를 우리가 요한복음 17장의 말씀 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을 단순히 우리를 죄에서 건져 내어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 그 하나만으로 축소시키려고 할 때가 많 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승천하신 후 우리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님은 이룸의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이 참람하다고 하며 예수님을 돌로 치려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 율법에 기록 한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은 신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아버지 께서 거룩하게 하사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너희가 어찌 참람하다 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 말씀은 "나는 아무것도 아닌 틀로서 존재하고 오직 아버지의 것만을 받아서 전하는 형체가 없는 나인데, 나는 나의 존재를 주장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아버지만을 전하는 틀로서 아버지 것만을 전 했는데 어찌 너희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으로 나를 참 람하다 하느냐" 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아버지의 아들들이고, 아버지의 신의 역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역사 가 신의 역사 라는 말씀에서 "부족한 인간인 나에게, 맹점도 많고 더럽고 추한 나에게 어찌 '신'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요한복음 17장의 말씀과 같 이 부르셨기 때문에 이 사실을 우리가 헛된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