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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 (요6:26-33)

본문

I.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 계시는 동안,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과 더불어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어려움 가운데 처하여 고생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도우시되, 병든 자를 고쳐 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 예수는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낫게 하시고(요5:1-9), 그 일을 계기로 생명의 말씀을 교훈하신 다음(요5:14-47),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모여들게 되었습니다(요6:1-2). 거기에 모여든 큰 무리를 대한 제자들이 그들의 먹을 것(식사제공)을 걱정하자(요6:7-9), 예수는 한 아이가 가지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베풀어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먹이셨고, 그 나머지로 보리떡 조각 열 두 바구니를 거두 게 되었습니다(요6:9-13). 그러한 기적의 사건이 있은 다음,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를 타고 바다 건너 가버나움으 로 가고 있었는데, 처음에 제자들이 배를 탔을 때 그들과 동행하지 않으셨던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오사 제자들과 합류하여, 결국 함께 가버나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요 6:16-21). 그렇게 되자, 어제 모여들었던 사람들이 이미 사라져 버린 예수와 그 제자들을 찾아 가 버나움까지 이르렀고, 거기에서 예수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요6:22-25). 그들 무리가 예수를 찾아왔던 이유는, 다른 무엇 보다도 육신의 먹을 것 때문이라는 사 실을 예수께서 잘 알고 계셨습니다(요6:26). 그래서 예수는 그들에게,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교훈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요6:27). 이 교훈을 들은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함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예수께 여쭙게 되었고, 예수는 그에 관한 대 답을 확실하게 해주시되, 예수 당신이 곧 '생명의 참 떡'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하 셨습니다(요6:28-33). 본문의 이러한 내용에서 드러나는 중요사항은, 사람의 활동목적과 입장이나 삶의 자세, 그리고 나아가 '하나님의 일'의 의미와 그 일에 참여하는 본질적 개념 등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을 위하여 교회의 교사로 세움을 입은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광의적으로 그리스도인 모두는 복음전파를 위하여 사명을 가진 자들이므로, 본문에서 가르치는 바의 중요내용을 올바로 파악하여 자기의 삶을 은혜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 루기 위한 자기의 의무, 즉 복음적 교사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게 되기 바라면서, 본문 의 중요점을 몇 가지로 나누어 전하고자 합니다.
II. 1) 영생의 양식을 목적한 삶 이천년 전의 예수님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찾고 그 이름을 불러왔는데, 그들이 그렇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마다 처음에 예수를 믿고자 하는 목적과 그 경위가 각기 다르기는 하지만, 공통적 인 분명한 사실은 육신의 삶에 대한 '자기의 필요'에 기인하여 예수를 찾게 된다는 점 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든 육체의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의도에서, 어떤 이는 자기 사업 의 번창을 희망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자, 그리고 젊은 남자는 착하고 예쁜 신부감 을 만나 결혼을 하고 싶다는 뜻에서, 홀로 외롭게 지내는 어떤 노인은 자기의 사후에 목사님이 친히 자기의 장례를 맡아 처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들이 성공하여 잘 살기를 희망하는 부모의 입장에서, 고국을 떠나 외국에서 어렵게 지내는 고충과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서-등등 많은 이유를 들 수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인간의 생활에 요구되는 각자의 필요사항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육신적인 목적 자체를 그릇되다는 뜻에서 들추어 말하는 것은 결 코 아니고, 참 목적의 성취를 위한 초보적 단계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되, 다만 그 참된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 신령적(성령님에 의한, 또는 신앙적인) '의 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를 찾고자 첫 발걸음을 디뎠을 때의 그 목적과 경위 혹은 이유는 어디에 있든지 아 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각기 자기 삶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살아갈 수밖 에 없으므로, 자기의 당면한 문젯점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것을 가지고 나아와 예수를 만 나게 된다면, 예수를 만났다는 그 자체로서 참된 행복의 길을 얻게 된 것이니 만큼, 발걸 음의 첫 동기가 결국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열쇠'의 역할을 한 셈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실패를 통하여 성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원리상 위와 같은 이치입니다(고등학교 시절 에, 수학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학생이 남보다 더 열심히 수학을 공부하다가 그 과목 에 대한 관심을 더 기울이게 되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여 수학의 학문적 매력을 경험하고, 나중에 수학자 또는 수학교사가 되는 경우를 가상적 예로 들 수가 있습니다). 인간(자연인-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태어난, 성경적 의미의 자연인)은 어디까지나 인간(자연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자기의 평범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예수 를 찾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이것은 결코 이상스런 일이 아니고 더군다나 나쁜 일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많은 무리의 입장이 그러하다는 사실을 잘 알 고 계셨으나, 그것에 대하여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육신의 먹을 것만을 추구하는 자 리에서 벗어나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새롭고 더 높은 차원의 교훈을 말씀해 주 셨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처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찾아왔습니까 그 내용에 상관없이, 이제는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우리 주님의 분부를 들어야 합니다. '영생의 양식'(한글개역에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란 뜻은 '변치 않고 언제나 있는 양식'으로서, 영적인 생명의 양식인 그리스도 자신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광과 권위를 위한 데 에 초점을 맞추어 인생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영생의 양식은, 육신의 불완전한 양식과 달리 다시금 배고프지 않고, 또한 그 양식으로 인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는 성질도 가지고 있다. 육신의 양식은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금 배고플 뿐만 아니라, 육신을 살리고 자 먹는 그 양식으로 말미암아 점차 늙어 결국은 육신의 죽음을 맞이하게 합니다. 그에 반하여, 영생의 양식은 완전한 것이기 때문에 인생에게 필요충분한 배부름을 주고, 유한 한 인생으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의 세계에 살도록 하여 줍니다. 영원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신령한 배부름을 경험 하면서 변함없는 생명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영원'으로 번역되는 헬라어는 'aion아이온' 으로서, 근본적으로 '무변의 상태'를 의미함.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므로 예나 지금이나 시간에 구애됨이 없이 변치 않는 본체이심.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완전한-정말로 믿을 만한-구원자가 되심). 예수는 우리에게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하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 명을 '소유하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적하여' 살아가라는 분부의 말씀입니다.
2) 하나님의 일 영생의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는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 분부에 순종하 고자 하는 의도에서, 어떻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인지를 다시금 예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예수께 나아온 사람들은 일단 은혜를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 을 가지게 되고, 그 방법을 몰라 이리저리 생각하며 때로는 성급하게 날뛰다가 실수를 저지르기까지도 합니다. 이는 마치, 어린이가 어떤 새로운 지식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그것을 더 깊이 알고자 하여 애를 쓰고, 얻은 지식을 실험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는 것과도 같은 현상입니다(원리상 비유하여, 자전거를 배우면 자전거를 타고 싶고, 자동차 운전을 배우면 어떻게든 한 번 차를 끌어 보고 싶어하며, 태권도를 배우면 주먹이 나 다리가 근질근질하여 누군가를 슬슬 건드려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은 현상들). 예수에 대한 관심과 맛을 느낀 다음에는 하나님의 일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을 당연히 가지게 되는 것이므로, 예수께 나아와 그의 복음을 이미 들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하여 잘 알도록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더욱 주님의 말씀을 경청해 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그 대답을 올바로 명확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는가고 그 방법을 묻는 사람들에 대하여, 예수는 아주 본질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답변으로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목사님께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여쭌다면, 목사님은 우리 에게 주일학교 교사를 하라든가, 구역심방을 하라든가, 병든 자를 돌보라든가, 가난한 자 에게 구제를 하라든가, 전도활동을 하라든가, 교역자를 보필하며 봉사활동에 치중하라든 가-등등 무언가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도 틀림없이 성도가 실천해야 할 중요한 과제들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과제들을 올바로 실행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말씀처럼,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잘 '믿는 데'에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합니다. 다시 덧붙여 말하자면,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순전하게 믿는 믿음을 가지노라면, 우리 자신을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그릇 으로 사용되게끔 헌신하게 되므로, 자기에게 주어지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일을 잘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거나 그러한 믿음으로 수행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 롭다 인정을 받을 수 있고 겸하여 칭찬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는 일에 치중하기에 '앞서' 소위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급급하다 보면, 진정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지 못한 채 인위적인 경험 만을 쌓게 되어 결국 자만하고 그로써 교회와 남에게 걸림돌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가로막는 경우가 흔히 생겨납니다. 성도 여러분, 특히 교사로서의 직임을 부여받은 여러분은, 교사로서의 인위적인 교육방 법을 생각해 내는 일에 마음을 기울이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코 믿고 그의 사랑하는 제자가 되는 일에 더욱 정력을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을 정말로 잘 하는 방법입니다.
3) 생명의 참 떡 '하나님의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 무리는 그 교훈의 주체자인 예수가 진 정으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이신지를 확인하고자 자기들의 조상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 적에 의하여 만나를 받아 먹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예수의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표 적이 무엇인지를 예수께 다시 여쭈었습니다. 이들의 물음에 대하여 예수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주어진 참 떡을 소개하셨고, 그 떡은 세상에게 생명을 준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가리켜 하늘로부터 온 생명의 떡이라고 직접 소개하셨고, 당신 자신에게 오는 자는결코 주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으리라고 확실히 단언하셨습니다(요6:35). 사람이 유한한 육체를 가지고 있지만 원래 영원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이므로 영원한 생명을 회복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생명의 참 떡을 양식으로 삼아 먹음으로써 인 생의 배고픔을 완전하게 해결하여야 합니다. 인생은 에덴 동산에서 저지른 범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생명의 제한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상에 태어나 한동안 살다가 나중에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을 맞이할 때에도 소멸되지 않는 것이 영혼의 실체이고, 예수의 재림과 더불어 이루어질 이 세상 종말 후에는 인간이 새로운 존재로 부활하게 되는데, 그 부활에는 생명의 부활과 죽음의 부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죽음의 부활체는 고통의 실체 요, 생명의 부활체는 영원한 행복을 맛보며 사는 실체입니다. 이러한 행복의 생명적 실체 가 바로 그리스도인 자신입니다. 생명적 부활의 실체는, 예수라는 근본적인 영생의 참 떡을 먹음으로써 완전한 생명을 이미 얻은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말씀을 먹으면서 언제나 배고프지 않게(풍 성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살아 있는' 삶 자체가, 곧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근원적 바탕입니다. 예수께서 요구하신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일'이란 일의 종류가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일의 방법을 논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간에게 보내신 구주를 '잘 믿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생명의 떡을 먹는 것 자체로서 해결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의 훌륭한 일꾼이 되는 올바른 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는 시작의 본체 이고 또한 결과의 본체로서('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모든 우주와 인간 생명의 주관자(주체)입니다.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며 먹을 것을 찾듯이, 우리는 더욱 의롭고도 아름답고 보람 되며 유익하게 잘 살기 위하여, 생명의 떡(예수 그리스도)을 열심히 먹도록 합시다(그를 확신하여 성령님의 역사 안에 거하며, 그의 말씀을 경청하며 반추하는 가운데 항상 의의 새 힘을 얻도록 합시다).
III. 영생의 양식을 위한 사명 이행 천국시민의 '실행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영생의 양식을 먹은 자(먹고 사는 자)에게 주어진 임무입니다. 자기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궁극적으로 자기의 선택적 분야에 들지 않 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 안에서 우리 각자에게 은사와 재능을 다양하게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 은사 및 재능이 무엇인지를 찾고자 굳이 급급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자 하기보다는 도리어 영생의 양식을 먹는 일에 몰두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서 서히(혹은, 짧은 시간 안에라도) 아주 자연스럽고 분명하게 자기의 은사와 재능이 무엇 인지를 알도록 해 주실 것입니다.(즉,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끔 어떤 상황 과 확신의 단계로 이끌어 주십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는 목자(목사)들은 성경의 말씀을 따라 교회를 다스려 나가므로, 성도(교인) 각자의 은사와 재능이 무엇인지를 잘 파악하고 그에 적합하도록 교인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교육하며 다듬어서, 교회에 적절한 직분을 그리스도의 이름 으로 부여합니다. 그러면 교인은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감사한 자세로써 성실히 봉사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직분에 대해서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것은 옳지 않고 자기의 것에 대하여 불평하 거나 소홀히 해서도 안되며, 오직 신실한 진리에 따라 실천적인 삶으로써 아름다운 모습 을 가꾸어 가기만 해야 합니다. 교사로서 직임을 맡게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럽고도 감사한 일입니다. 세속의 교 사직도 흔히 성직이라 불릴 만큼 존중되는데, 그에 비하면 교회의 교사직이란 더욱 고상한 성직입니다.
그 이유는, 참다운 가치를 지닌 생명의 양식을 자기가 직접 먹으면서, 또한 그것을 다른 이에게 공급하기 위해 가르치는 바, 성도(거룩한 백성)의 직임이기 때 문입니다. 이것은 썩어질 세상의 양식이나 세속의 명예와 대우를 기대하여 하는 일이 아 니라, 성령님에 의하여 자발적으로 행해지는 직임입니다. 교사의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가 직접 보여주신 모습 그대로입니다. 사랑과 희생 그리고 봉사의 실천이, 그리스도의 참다운 교사상입니다. 그는 성령님 자체로 충만되어 있었기에, 어떤 형태로나 사랑과 희생 그리고 봉사를 나타내실 수가 있었습니다. 말씀을 곧 실천으로 증거하신 예수! 그는 만백성으로 하여금 행복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사랑으로 십자가의 희생제물이 되셨으며, 육체로 계시는 동안 만인을 위한 봉 사의 생애를 보내셨고, 또한 우리의 생존세상 끝날까지 우리를 위하여 보혜사(parakletos 권위자, 변호자) 성령님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제자된 백성으로서, 그의 실천적인 삶을 따라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 록 합시다. 우리의 심령에 생명의 떡을 가득히 머금어 그 생명의 떡에서 생겨나는 에너지로 나 자신 의 가슴을 강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넉넉히 공급해 주도록 나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하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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