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생명의 떡입니다 (요6:35)
본문
당신은 예수를 먹어야 삽니다. 병든 사회를 고칩시다. 지난 7일 마산시 합포구 교방동 209-4번지에서 교방초등학교 3학년 강정우군의 손가락을 자른 분은 바로 그 아버지 강종렬씨 였습니다. 경찰의 이같은 보도가 나오자 모든 시민들은 흥분하여 “이럴 수가 있는가”하고 일제히 분노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고 보니 “가난이 원수다”라고 하면서 동정을 보내기도 합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그의 최종 학력이며, 아내와 이혼한 후 폐결핵과 편두통 증세로 몸까지 허약해 역술촌에 들어가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역술을 배우게 된 것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를 정죄하거나 동정하기 이전에 오늘의 삶의 현실을 냉정하게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1 그와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사는데 실패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가난한 자와 나누는 삶에 인색했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와 더불어 사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혼하게 되었고,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깊은 산속 맑은 연못에 두 마리의 붕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연못을 독차지할려고 싸우다가 그만 친구를 물어 죽였습니다. 이젠 연못의 모든 먹이는 나의 것이구나 했는데 몇일을 지나니 죽은 붕어가 썩기 시작하자 결국 그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2 그와 우리 사회가 황금만능에 병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치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까지도 파괴해 버립니다. 이전에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던 자가 정우군을 돕기 위하여 성금이 모금되니 모성애를 버린 그 어미도 찾아오고, 노모인 할머니도 나서며, 그 고모도 양육자로 나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이전에 그들에게 조그마한 온정만 베풀어서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3 그와 우리 사회가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어려우니 우리의 주변에 역술과 무속행위를 하는 집단들이 이후죽순 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불안심리를 역이용하는 사회악입니다. 그는 삶의 수단으로 역술촌으로 들어간 것이 잘못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사회를 향해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예수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던 팔레스틴의 당시 삶의 정황은 요즈음 우리 사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대입니다. 무리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빵을 구했던 것입니다(요한복음 6:26). 주님은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했는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한복음 6:27)고 하시면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한복음 6:35)라고 했습니다. 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2)고 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예수를 모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첫째/ 탄생:주님은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읽을말씀 “맡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7) 왜 예수님이 구유에 누우셨는가
1 사관에 누울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관은 당시 돈 많은 자들이 다 차지했을 것입니다. 아마 요셉과 마리아의 수종에 숙소 하나 빌릴만한 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구유에 누우심은 가난 그 자체였습니다.
2 목수의 가문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권력도 빽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마 정치적 비중 있는 집안의 인물이라면 수중에 돈이 없어도 자신의 안방이라도 내어 주는 배려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수의 집안에서 자란 요셉에게 그러한 호의를 베풀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구간으로 갔던 것입니다.
3 생명의 떡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구유에 누우신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짐승이 구유에서 먹이를 먹고 힘을 얻는 것처럼 인생은 예수를 먹어야 생명력을 얻습니다. 짐승처럼 천한 자도 예수를 먹을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나라, 가장 작은 동네, 가장 천한 가문, 가장 낮은 자리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청와대와 같은 권력자 앞으로 나아갈 때는 두렵고 떨리지만 천한 농부의 마구간으로 나아가면서 주눅이 들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만인을 부르신 것입니다(마태복음 11:28). 영적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가
1 규칙적인 식사입니다. 자녀들이 군대에 갔다오면 건강해 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한 시간에 정한 양을 먹고 교육과 훈련을 받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양식도 규칙적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생활의 리듬을 깨트려서는 안됩니다. 동방의 의인 욥도 규칙적인 경건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기 22:1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주일성수는 영적 건강을 위하여 얼마나 유익한 삶인지 모릅니다.
2 적절한 영양공급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편식을 하거나 과다 섭취하게 되면 몸의 균형을 잃게 됩니다. 구유에는 항상 한끼의 분량만 둡니다. 솥이나 곡간과 같이 쌓아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만나를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3 알맞은 운동입니다. 먹고 운동하지 않으면 비만에 걸립니다. 성인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비만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먹고 믿음이 자라면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세상에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비만에 걸리지 않습니다. 교회안에 성인병이 무엇인가 중직자들이 봉사생활을 게을리 하고, 전도하지 않을 때 영적인 병이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로마서 12:11)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육체는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라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6:19).
둘째/ 공생애:생명의 떡으로 주린 자를 먹였습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8:35)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리고 배고픈 자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그는 친히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해 보았습니다.
첫째 아담은 에덴동산의 풍성한 가운데서도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실패했지만
둘째 아담으로 오신 주님은 빈들인 광야에서 주리고 배고픈 가운데서 먹고 싶은 욕망을 참고 승리했습니다. 주님은 사단이 미혹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박한 위기에 이러한 유혹이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빵을 선택하기보다는 영적 생명을 살리는 말씀편에 서야합니다. 예수는 생명의 떡입니다. 주님이 오셨던 팔레스틴은 당시 주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배불리 먹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가리켜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마태복음 11:19)고 했습니다. 주님은 영적 생명의 말씀을 먹이신 후에 주린 배를 채우는 빵도 주신 것입니다(마태복음 15:32).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과 차이가 무엇인가 건강한 사람은 음식을 좋아하나 병든 사람은 약을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양식으로 먹지 않고 약으로 먹으려는 사람은 영혼이 병든 사람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요 양식입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요한복음 6:27, 35)고 했습니다. 생명의 양식은 매일 규칙적으로 적당하게 먹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셋째/ 최후:만찬을 베풀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읽을말씀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26) 이것은 내 몸이니라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린도전서 11:26)고 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유월절에 만찬을 베푸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하여 대속물로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출애굽 12:7-8)고 했습니다. 그 피로 애굽의 재앙을 피했습니다. 그 힘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늘 양식 만나를 먹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출애굽기 16:4). 당신이 세속의 사단권세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은 예수의 피 권세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든든히 붙듭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고 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린도전서 15:55-57)고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214장 4절에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사망권세를 깨트리는 영적인 미사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국에 한 불행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심한 폐결핵을 알았습니다. 가정은 마치 병원의 중한자실 같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소년은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행 선박을 탔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 몰래 탄 배입니다. 나중에 발각이 되어 선장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애원하기를 “나를 미국으로 데려다 주시요 훗일에 세계적인 거부가 되어 반드시 조국에 보답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선장은 너무도 총명하고 꿈이 귀하여 그를 후사로 두기 위하여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는 선장이 죽자 그 배를 팔아서 치약회사를 차렸습니다. 후에 그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그가 얼마만큼 철저했는가 그는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넣고,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넣었습니다. 후일에 그의 십일조만 관리해 주는 분만도 3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주님은 선한목자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고 했습니다.
1 그와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사는데 실패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가난한 자와 나누는 삶에 인색했습니다. 그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아내와 더불어 사는 일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이혼하게 되었고,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깊은 산속 맑은 연못에 두 마리의 붕어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서로 연못을 독차지할려고 싸우다가 그만 친구를 물어 죽였습니다. 이젠 연못의 모든 먹이는 나의 것이구나 했는데 몇일을 지나니 죽은 붕어가 썩기 시작하자 결국 그도 죽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불어 사는 것이 행복입니다.
2 그와 우리 사회가 황금만능에 병들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치부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까지도 파괴해 버립니다. 이전에는 그들을 돌아보지 않던 자가 정우군을 돕기 위하여 성금이 모금되니 모성애를 버린 그 어미도 찾아오고, 노모인 할머니도 나서며, 그 고모도 양육자로 나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이전에 그들에게 조그마한 온정만 베풀어서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3 그와 우리 사회가 가치관을 정립하는데 실패했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어려우니 우리의 주변에 역술과 무속행위를 하는 집단들이 이후죽순 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은 사회적인 병리현상으로 나타나는 인간의 불안심리를 역이용하는 사회악입니다. 그는 삶의 수단으로 역술촌으로 들어간 것이 잘못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 사회를 향해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예수생명을 전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셨던 팔레스틴의 당시 삶의 정황은 요즈음 우리 사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대입니다. 무리들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빵을 구했던 것입니다(요한복음 6:26). 주님은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했는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한복음 6:27)고 하시면서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요한복음 6:35)라고 했습니다. 빵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올바른 가치관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2)고 했습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예수를 모시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첫째/ 탄생:주님은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읽을말씀 “맡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7) 왜 예수님이 구유에 누우셨는가
1 사관에 누울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관은 당시 돈 많은 자들이 다 차지했을 것입니다. 아마 요셉과 마리아의 수종에 숙소 하나 빌릴만한 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구유에 누우심은 가난 그 자체였습니다.
2 목수의 가문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권력도 빽도 없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마 정치적 비중 있는 집안의 인물이라면 수중에 돈이 없어도 자신의 안방이라도 내어 주는 배려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수의 집안에서 자란 요셉에게 그러한 호의를 베풀 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구간으로 갔던 것입니다.
3 생명의 떡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구유에 누우신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떡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짐승이 구유에서 먹이를 먹고 힘을 얻는 것처럼 인생은 예수를 먹어야 생명력을 얻습니다. 짐승처럼 천한 자도 예수를 먹을 수 있습니다. 가장 작은 나라, 가장 작은 동네, 가장 천한 가문, 가장 낮은 자리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 앞에 나올 수 있습니다. 청와대와 같은 권력자 앞으로 나아갈 때는 두렵고 떨리지만 천한 농부의 마구간으로 나아가면서 주눅이 들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만인을 부르신 것입니다(마태복음 11:28). 영적 건강의 비결이 무엇인가
1 규칙적인 식사입니다. 자녀들이 군대에 갔다오면 건강해 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한 시간에 정한 양을 먹고 교육과 훈련을 받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양식도 규칙적으로 공급해야 합니다. 생활의 리듬을 깨트려서는 안됩니다. 동방의 의인 욥도 규칙적인 경건생활을 했습니다.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욥기 22:12)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온전한 주일성수는 영적 건강을 위하여 얼마나 유익한 삶인지 모릅니다.
2 적절한 영양공급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편식을 하거나 과다 섭취하게 되면 몸의 균형을 잃게 됩니다. 구유에는 항상 한끼의 분량만 둡니다. 솥이나 곡간과 같이 쌓아 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일 만나를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
3 알맞은 운동입니다. 먹고 운동하지 않으면 비만에 걸립니다. 성인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비만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먹고 믿음이 자라면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세상에 나가서 전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 비만에 걸리지 않습니다. 교회안에 성인병이 무엇인가 중직자들이 봉사생활을 게을리 하고, 전도하지 않을 때 영적인 병이 걸리게 됩니다. 그래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로마서 12:11)고 했습니다. 바울은 우리의 육체는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라고 했습니다(고린도전서 6:19).
둘째/ 공생애:생명의 떡으로 주린 자를 먹였습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8:35)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주리고 배고픈 자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그는 친히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해 보았습니다.
첫째 아담은 에덴동산의 풍성한 가운데서도 식욕을 절제하지 못하여 실패했지만
둘째 아담으로 오신 주님은 빈들인 광야에서 주리고 배고픈 가운데서 먹고 싶은 욕망을 참고 승리했습니다. 주님은 사단이 미혹할 때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박한 위기에 이러한 유혹이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빵을 선택하기보다는 영적 생명을 살리는 말씀편에 서야합니다. 예수는 생명의 떡입니다. 주님이 오셨던 팔레스틴은 당시 주리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배불리 먹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가리켜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마태복음 11:19)고 했습니다. 주님은 영적 생명의 말씀을 먹이신 후에 주린 배를 채우는 빵도 주신 것입니다(마태복음 15:32). 병든 사람과 건강한 사람과 차이가 무엇인가 건강한 사람은 음식을 좋아하나 병든 사람은 약을 먹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를 양식으로 먹지 않고 약으로 먹으려는 사람은 영혼이 병든 사람입니다. 주님은 생명의 떡이요 양식입니다.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요한복음 6:27, 35)고 했습니다. 생명의 양식은 매일 규칙적으로 적당하게 먹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참된 생명이 있습니다.
셋째/ 최후:만찬을 베풀고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읽을말씀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6:26) 이것은 내 몸이니라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린도전서 11:26)고 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유월절에 만찬을 베푸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우리를 위하여 대속물로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애굽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출애굽 12:7-8)고 했습니다. 그 피로 애굽의 재앙을 피했습니다. 그 힘으로 홍해를 건넜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하늘 양식 만나를 먹고 가나안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출애굽기 16:4). 당신이 세속의 사단권세에서 자유함을 얻는 길은 예수의 피 권세밖에 없습니다. 십자가를 든든히 붙듭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고 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린도전서 15:55-57)고 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 53:5)고 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214장 4절에 “십자가 든든히 붙잡고 날마다 이기며 나가세.”라고 했습니다. 십자가는 사망권세를 깨트리는 영적인 미사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국에 한 불행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중풍으로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심한 폐결핵을 알았습니다. 가정은 마치 병원의 중한자실 같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소년은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미국행 선박을 탔습니다. 물론 돈이 없어서 몰래 탄 배입니다. 나중에 발각이 되어 선장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는 애원하기를 “나를 미국으로 데려다 주시요 훗일에 세계적인 거부가 되어 반드시 조국에 보답하겠습니다”고 했습니다. 선장은 너무도 총명하고 꿈이 귀하여 그를 후사로 두기 위하여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는 선장이 죽자 그 배를 팔아서 치약회사를 차렸습니다. 후에 그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경영철학은 “철저한 십일조 생활”입니다. 그가 얼마만큼 철저했는가 그는 오른쪽 주머니에는 십일조를 넣고, 왼쪽 주머니에는 이익금을 넣었습니다. 후일에 그의 십일조만 관리해 주는 분만도 3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주님은 선한목자입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한복음 10:10)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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