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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내려온 떡 (요6: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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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수님도 무리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자세히 알려 주었지만 저 무지몽매한 백성들은 깨닫지 못했다. 이러한 무지한 자들에게 예수님은 이제 놀라운 선포를 하게 되는데 자신이 곧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이단의 교주들이 이런 흉내를 내는데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뿐 뿐이시다. (시49:20)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 (잠27:22) "미련한 자를 곡물과 함께 절구에 넣고 공이로 찧을지라도 그의 미련은 벗어지지 아니하느니라 "
그러므로 예수를 아는 것이 얼마나 큰 지혜인지 모른다. (잠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 이니라 " 예수가 그렇게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선포하고 가르쳐 주었지만 저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다. 그러면 저 이스라엘 백성들만 무지하고 미련한 백성들인가 오늘날도 교회마다 전도지에 예수가 누구인가 를 선포하고 또 교회에서 가르쳐 주고 있지만 이스라엘 무리들처럼 예수를 배척하고 예수가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특히 교회를 다니는 성도들 마져도 예수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고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것은 저 이스라엘 백성들과 다를 바 없는 자 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지한 무리들에게 성경은 짐승보다 못하다고 말하고 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셨다. 오늘 본문은 하늘에서 내려온 그 떡이 어떤 떡인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첫 번째:생명의 떡이다 48-50절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무리들은 그 옛날에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먹게 해준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예수를 보고 있었다. 그러한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광야의 만나를 애기하면서 광야의 만나는 먹었어도 사람들이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먹으면 죽지 아니한다고 말씀했다. 그 생명의 떡이 바로 예수 자신이라고 재차 밝히고 있다
생명의 떡 = 영생을 주는 떡이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다. 먹고도 죽지 않는 떡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만나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에서 40년동안 하늘에서 내려준 양식이다. 이 만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만나가 예수는 아니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만나 같은 예수님이 이제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신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이 먹었어도 죽었지만 이 땅에 오신 예수를 믿는 자는 곧 생명의 떡을 먹는 것이다. 이 생명의 떡 되신 예수를 우리를 소유한 자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요6장은 떡에 대한 말씀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 그 떡에 대한 실체를 예수님이 밝히고 계신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무리들은 눈에 보이는 떡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었지 예수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한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밝히셨다.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다 " 교회를 다니고 있는 성도들 속에 예수가 우리의 생명의 떡이라고 믿는 자들은 많지 않다. 진실로 예수가 나의 생명의 떡이라고 믿는 다면 우리의 신앙이 육적인 신앙이 될 수가 없다. 이 시대 믿음 있다는 자들의 신앙상태를 살펴보면 너무나도 육적인 냄새가 너무나도 많이 나고 있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믿는 것은 보이는 세계를 믿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따르고 있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따라 갈려면 우리는 영적 신앙인들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따라 갈 수가 없다. 육적인 자는 절대로 따라갈 수가 없는 세계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의 떡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영적으로 살아가는 자만이 볼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자기 조상들이 먹었던 만나도 육적으로 만이 보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육적으로만 보았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도 육적으로만 보았다. 하늘에서 내린 만나를 보고 저들은 깊은 영적 세계를 깨달았어야만 했다. 이러한 우매한 모습이 오늘날도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늘에서 내려오신 생명의 떡을 육적으로 믿고 따르는 자들이 얼마나 이 시대 많은지 모른다. (롬8: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 왜 신앙 생활이 힘듭니까 생명의 떡 되신 예수를 육적으로 믿고 따르기 때문에 힘드는 것이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생각뿐이 할 수 없다.  영의 일을 생각할 수가 없다. 성도들에게 예수가 우리의 생명의 떡이라고 믿느냐고 물어본다면 거의 90%는 아멘으로 화답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냉정히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명의 떡으로 믿고 있는가 입으로 아멘은 하는데 우리의 행위를 보면 우리가 정말 예수를 생명의 떡으로 믿고 있는 것 같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가 정말 예수를 생명의 떡으로 믿고 있다면 이렇게 우리가 신앙생활 해서는 안된다. 살고 죽는게 예수께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어떻게 이렇게 신앙생활 할 수 있겠는가 생명의 떡이라는 것은 곧 살아있는 떡이다는 것이다. 죽은 떡이 아니다.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는 떡이다. 이 생명의 떡을 우리가 먹었고 믿고 따른다면 우리의 삶은 오직 예수를 위한 삶이 되어야 한다. 내 자신의 육을 위해서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생명이 무엇인가 이 땅에서만 누리고 끝나는 그런 생명이 아니다 영원히 이어지는 영생을 우리는 받은 것이다. 성경 속에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이 생명의 떡되신 예수의 비밀을 깨닫고 그들의 인생을 예수를 위해 살다갔다. 예수가 생명의 떡이라는 비밀을 깨닫는자는 예수를 위해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생명의 떡을 진실로 맛보고 이 생명의 떡과 접속한 자는 예수를 위해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머리로만 믿는 생명의 떡 예수가 되지 말자 . 마음으로 믿고 생명의 떡을 맛 본 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 안에서만이 살아서 역사하는 생명이 있다. 예수 없이 찾아오는 기쁨 그 기쁨은 잠간이다. 예수 없이 살아가는 인생들 그 인생들은 생명이 없는 자들이다. (계3:1)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생명의 떡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를 만난 여러분 참 생명을 전하며 저 잠든 영혼들에게 생명의 예수를 전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내 살이로다 51절 =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
이제 예수님은 생명의 떡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히고 계신다. 생명의 떡은 곧 자신의 살을 뜻한다고 밝히셨다. 이것은 곧 두가지 사실을 의미하는데
1. 생명의 떡이 육체로 오셨다는 것이다.
2. 세상의 생명을 위하여 자신의 육체를 생명으로 주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뜻하는 말씀이다.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 십자가에 죽으심을 뜻한다 내 살이로다 = 떡의 실체를 분명하게 가르쳐주고 있다. 예수님의 육체의 살이 십자가에서 찢기시고 온 몸과 피를 다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인류에게 생명의 떡이 되었고 영생하는 떡이 되신 것이다. 이 살을 먹지 아니하면 생명이 없다고 예수님은 밝히고 있다. (요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십자가에서 예수의 찢긴 살의 아픔과 고통을 모르고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얼마나 예수님이 답답하였으면 이렇게 말씀하였을까요 디베랴 광야에서 보리 떡 두덩이를 떼어 주면서 그들에게 깨달음을 주었지만 무리들은 전혀 깨닫지 못했다. 작은 보리 떡 두덩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리들에게 계속 깨닫도록 예수님은 가르쳐주었지만 저들은 깨닫지 못했다. 떡을 아무리 설명했지만 떡이라는 실체를 알지 못하는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이제 떡의 실체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51절은 떡의 대한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나의 줄 떡은 곧 내 살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는 디베랴 광야에서 먹었던 떡을 달라고 원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줄 떡은 바로 내 살이란다" 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다. 이 떡은 육만 살리는게 아니고 영혼도 살리는 영생의 떡이라는 것이다. 부부지간에 왜 허물이 없고 가깝습니까 살이 접촉하고 상대방의 살을 느끼기 살기 때문이다. 신혼 때는 서로 옷 벗는 것도 창피하다가 아이를 하나 둘 낳으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서로 살을 맞대고 자고 산다. 사람들이 만나면 악수하는 것 서로의 살이 닿으므로 친근해 지는 것이다. 아랍인들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껴안고 얼굴을 서로 대고 이쪽 한번 저쪽 한번 비비잖아요 !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의 살을 뜨겁게 대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예수 앞에 항상 부끄럽고 예수와 친근한 사이가 되지 못한다. "내 살을 먹으라" 고 예수님은 말씀했는데 무엇을 뜻합니까 예수님을 잡아먹으라는 것입니까 그런 뜻이 아니죠 내 살을 먹으라는 것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하나가 되라는 것이다. "나의 줄 떡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 그의 몸을 다 내어 놓으셨다. 십자가에 예수의 살과 피를 대하지 않고 우리 안에 영생이 이루어 질 수 있는가 절대로 영생이 이루어 질 수 없다. 예수의 살은 곧 말씀이기도 하지만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예수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과 직접적으로 만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우리가 신앙이 어느 정도 자라면 말씀으로 예수님을 만나지만 처음 믿을 때는 우리가 십자가 아래에서 먼저 예수님과 만남이 있어야 한다 신앙이 자란 후에도 우리는 이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과 만남이 자주 있어야 한다. 이것은 곧 기도이고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이다. 예수님의 따스한 사랑을 느낄 때 우리에게 있는 마음의 상처와 고통은 치료받을 것이고 . 예수님의 따스한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 주실 때 우리는 위로와 평강을 얻게 될 것이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예수님은 얼마나 유대인 무리들에게 이 따스함을 주실려고 애를 썼는지 모른다.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찾아 가셔서 그들을 만지면서 치료해주시고 귀신들에게 가셔서 귀신을 쫓아내어 주시고 배고픈 자들에게 배를 부르게 하여 주시고 따뜻한 말씀으로 그들에게 소망을 주고 희망을 주었다.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까지 주었지만 저 무리들은 이 주님의 살을 뿌리쳤고 거부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따스함을주시려고 얼마나 애를 쓰시는지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손길보다는 보이는 육적 세계 속에서 안식을 누리고 편안함을 누리려고 하고있다. 마치 저 이스라엘 무리들이 광야에서 배부르게 맛을 보았던 그 떡을 추구하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시대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찢겨진 고통의 살을 대하기 싫어한다 아름다운 예수만 만나기 원하고 있다. 예수의 찢겨진 고통의 살을 만나지 아니하고서는 아름다운 예수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의 살을 만나지 않고서는 예수를 믿을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다. 십자가를 모르고 예수를 알 수 있는가 십자가 없이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가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다. 체험하지 못하고 예수를 믿을 수 없다 십자가를 체험하지 못하고 예수를 알 수 없고 예수의 살을 체험하지 못하고 예수를 느낄 수 없다. < 예 화 > 찰톤 헤스턴은 십계 벤허 등 성경을 배경으로 한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종교적인 심성을 밀도있게 연기한 명 배우다. 그는 십계영화 촬영을 끝낸 후 시사회에서 기자로부터 "모세와같은 위대한 신앙인의 역할을 하면서 배우 자신에게도 영적인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라는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한 후 이렇게 말했다. " 시내산 흙을 밟고 울라갔던 사람이 어떻게 같은 인간으로 내려올 수가 있겠습니까 " 왜 예수를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가 체험의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를 만나는 체험적인 신앙이 없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깊은 체험을 해야 할 것이다.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를 만나야 할 것이고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의 체온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체험이 우리에게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 다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의 살을 찢으셨고 온 몸의 피를 흘리고 죽으신 것이다. 예수의 찢겨진 살의 아픔을 모르고 고통을 모르고 우리가 어찌 예수의 살을 먹은 자라고 하겠는가 예수의 살을 먹지 않은 자가 예수를 위해 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다" 이 원초적인 말씀을 왜 예수님은 하셔야 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아니하고서는 그 어떤 것도 인간은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강하게 나타내신 주님의 말씀이다.
< 결론 > 우리는 우리의 육을 위해서 하루에도 많은 음식과 물을 섭취하고 산다. 먹기 위해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간은 먹는 것에 많은 시간과 투자를 하면서 살고 있다. 이렇게 육을 위해서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면서 왜 중요한 영혼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까 믿는 자들 조차도 영혼보다는 육에 더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시대를 바라보고 우리 주님 뭐라고 하실까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다 ! 내가 너희를 살리기 위해서 내 살을 십자가에서 찢었다" (요14:6) " 내가 곧 길이요 ! 진리요 ! 생명이니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이심을 믿으십니까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 생명의 떡을 우리는 받았고 먹었고 그 생명의 떡이 우리의 영혼에 힘이 되고 살이 되고 있다. 이 생명의 떡이 내 영과 육을 살리게 하셨다. 이제 나를 살리신 이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통해서 생명의 되신 예수가 전해져야 할 것이다. 우리를 살리신 것은 우리를 통해서 땅 끝까지 생명의 되신 예수가 전해지기 위해서 우리를 살리신 것이다. (마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 인류에게 생명의 떡으로 이 땅에 찾아오신 예수를 우리는 아직도 생명의 떡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알려야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다. 생명의 떡 되신 예수를 만난 자는 반드시 이 놀라운 사실을 알리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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