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5) (요6:10-15)
본문
오늘 성경 본문은 드디어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의 사건이 예수님에 의해서 일어나는 장면이다. 오병이어의 크라이막스 장면이다. 이 장면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마무리 되는지 우리는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들은 잔디에 앉도록 하라고 명령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가지고 축사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떡과 고기를 나누어주라고 명령하셨다. 모든 사람들이 떡과 고기를 원하는 대로 실컷 먹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난 다음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거두니까 열두 바구니에 찼다고 했다. 이 놀라운 표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를 어떻게 보았는가 한낱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로만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예수를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다. 이러한 무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무리를 떠나서 산으로 가셨다. 육을 위해 살아가려는 무리들과는 예수님은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셨지만 무리들은 예수님의 뜻과는 반대로 행동했고 생각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오늘날도 우리가 성경 속에 나타난 기적과 표적을 보면서 우리도 육만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고 알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예수님을 우리 육적 생활에만 연관시키며 살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다. 오늘 본문 내용이 복음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보면서 복음을 위해서 영을 위해서 예수를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 번째:순종하는 자가 되라 ! 10절 =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당시 분위기가 상당히 술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지고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배고픔을 느낀 무리들은 웅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무리들을 예수님은 먼저 모두 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 수효는 5,000 명쯤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친다면 2만 명이 넘은 숫자이다. 2만 명이 안정하지 못하고 웅성거릴 때 그 분위기가 어떠 했겠는가 이러한 무리들에게 제일 먼저 예수님이 해야할 것은 이 무리들은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앉게 하라 = 이것은 말씀에 순종을 의미한다. 어디에 앉았는가 잔디 위에 앉게 했다. 그러므로 이 때는 봄이다. 유월절이 가까운 1월 달이었다 우리나라로는 3월 달이다. 이것은 곧 예수님 초림을 뜻한다고 살펴보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오병이어의 복음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삼상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우리의 신앙에서 맨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순종이다. 믿음도 순종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에 믿음이 생기고 뜨거움이 생긴다. 성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안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이 시대 어찌 된건지 순종보다도 믿음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순종이 밑받침되지 않은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다. 순종이 뒤따르지 않은 믿음은 절대로 참된 믿음이 아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잊지 말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죄를 범한게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함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사단의 유혹에 빠진것이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인류의 최초 살인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방법을 순종하지 않고 나름대로 드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피의 제사였다. 가인은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제사를 드렸다.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을 하나님이 하신 것도 순종하지 않은 백성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신28장에는 순종과 불순종한 자에 대해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신28:15-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 성경은 두 사건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순종한 자와 불순종 한자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광야에 모인 무리들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몰랐다. 앉으라는 명령에 모두 순종했다. 순종했기 때문에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은 끝까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말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잔디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초림을 뜻한다. 즉 은혜시대를 뜻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은혜 시대에 살고 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은혜에만 머물러 있기 원하는 신앙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왜 주셨는지 깨달아야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을 왜 보여주었는지 저 무리들을 깨달아야 되건만 깨닫지 못하고 그 은혜에만 머물기 원했다. 그런 무리들에게서 주님은 더 이상 바라 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떠나 버린 것이다. 은혜만 추구하는 신앙은 어린아이 신앙이다. 은혜가 젖이라면 이제 젖을 어느 정도 먹었으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데 젖만 찾는 어린아이들과 주님은 함께일을 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은혜에만 젖어있는 어린아이 신앙으로는 예수를 위해 살수 없다.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우리의 신앙이 장성한 자가 되기 원하신다. 오병이어의 사건 후에 칠병이어 사건이 나온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초림의 사건을 의미한다면 칠병이어의 사건은 재림을 뜻하고 있다고 살펴보았다. 왜 칠병이어가 재림을 뜻한다고 했는가 칠병이어는 6개월 후 초막절이 가까울 즈음에 일어났다고 살펴보았다 초막절은 7월15일에 지킨다. 우리나라로 보면 10월 달이다. 완전 가을이다 초막절은 추수 절기다. 추수는 재림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병이어는 잔디에 무리를 앉게 했는데 칠병이어는 땅에 앉게 하였다. (마15:3
5. 막8:6) 땅은 원문에 단단한 흙을 의미 한다. 칠병이어 기적 후에 예수님이 무리들을 어떻게 했는가 보자. 오병이어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마15: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 (막8: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 전혀 다른 예수님 모습이죠 오병이어 때는 예수님이 무리들을 떠나셨지만 칠병이어 때는 무리들을 흩어 보내셨다. 이것은 바로 사명을 주어서 보내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오병이오의 무리들은 은혜 속에서만 머물기 원했다.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유대인들에게 보이신 표적이었고 칠병이어의 기적은 이방인 지역에서 보이신 표적이었다. 유대인들은 육적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고 육을 위해 살아가는 민족이었다. 성도 여러분 ! 초림 예수에만 머물러서 있으면 우리는 안된다. 은혜에만 도취되어서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는 우리의 육을 위해서 오신 예수가 아니다. 재림 예수가 가까이 오고 계신다. 진정한 순종은 어린아이 믿음으로는 있을 수 없다. 장성한 신앙만이 주님의 순종에 따르게 된다. 우리 가정에 어린애들 어디 온전한 순종이 있는가 그러나 장성하면 순종한 자들이 된다. 칠병이어 기적을 본 무리들이 순종했다는 것은 단단한 신앙을 가질 때 순종할 수 있고. 재림 신앙을 가질 때 사명 받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게된다. 은혜 시대에 순종한 자들은 이제 마지막 때까지도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두 번째:감사하는 자가 되라 !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 공관복음에서는 이 장면을 예수께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고 떡과 고기를 받은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무리들은 배불리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있는가 떡인가 어린아이인가 제자들인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으로 비롯된 것이다. 그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잘 보자 공관복음에는 모두 이 장면을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 오병이어를 하늘로 쳐들고 축사하셨다. 예수님 모습이 상상이 가십니까
축사 = eujcaristhvsa" (유카리스테오 ) = 감사하다 의미다 보잘것없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렸다. 감사드린 기도 내용은 기록이 안되었지만 주님은 간절히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서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앉은 자들에게 주었다는 것은 순종한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이다. 저희 원대로 주셨다 = 순종만 하면 풍족하게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오병이어가 있었다고 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오병이어가 없었어도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오병이어를 사용해서 기적을 나타내신 것은 떡만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참 떡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그 떡을 위해서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작은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신 모습을 상상이 가십니까 지금 하늘을 향해 쳐든 떡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작은 보리떡을 주심을 감사하고 있다. 유대 땅에 보리떡 되신 예수가 오셨지만 저 유대인들은 감사할 줄 몰랐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에게 감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자이다. 감사가 없을 때 원망과 불평만 있을 뿐이다. 오병이어의 가장 크라이막스는 무리들이 먹을 때가 아니다 예수님이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드릴 때가 크라이막스 였다 분위기는 어떠 했겠는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을 것이다 작은 보리떡과 물고기에 대한 감사기도를 주님은 하신 것이다 보잘것 없는 것을 들고 감사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이러한 모습은 너희가 무엇을 위해서 감사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무엇을 위해 감사해야 합니까 육적인 것에 감사하는 생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하는 것은 예수에 대해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서 한번 생각 해보자. 내가 얼마나 예수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 왔는가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시고 대해서는 우리가 감사를 수 백번도 많이 했지만 예수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했는가 아무리 다른 감사를 잘 한다 할지라도 예수에 대한 감사를 모른다면 그런 감사는 하나님이 감사하게 생각 안 할 것이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다는 것은 육적인 만족함에 입술로만 "감사해요" 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 예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모든 감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을 때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이다. 육적인 것에 만족해서 감사하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라고 볼 수 없다.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를 쳐들고 감사 한 것은 너희가 무엇을 위해 감사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있다. 보리떡이 누구를 의미 한다고 했는가 예수님이라고 했다. 물고기가 누구를 의미 한다고 했는가 성도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 한 분으로 감사할 때 우리의 심령은 너무나도 풍족하고 부한 심령이 될 것이다. 무리들이 배불리 원대로 먹었다는 것은 육적으로 배부름만 의미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순종하고 감사할 때 세상 속에서 풍족함도 누리고 영적으로도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만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도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더 많이 나온다. 감사를 몰라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다 알고는 있다.
그런데 왜 감사가 안 나오는가 우리의 입술과 마음은 그 동안 원망과 불평만 하고 살아 왔기 때문에 감사가 나오지 않고 감사의 삶을 못 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부터 광야에 이르기 까지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는가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삶 속에서 원망과 불평 투성이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을 모르는게 아니었다. 다 알고 있는데도 왜 감사의 삶을 살지 못했는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불평과 원망과 미움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입술에 마음에 몸에 젖어 있었다. 우리들도 그 동안 원망과 불평에 젖어서 살아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의 입술과 마음은 이제 감사의 입술과 마음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진정으로 감사한 자가 될 때 우리의 삶이 윤택하여 질 것이고 보람찬 삶이 될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편안하고 풍족할 때 어느 누구가 감사하지 못하겠는가 오벼이어의 사건도 보면 제자들은 오병이어를 보고 감사하지 못했다. 빌립은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은 떡을 먹인단 말입니까 조금씩 먹여도 엄청난 돈이 들것 입니다 " 안드레도 오병이어를 아이의 손에서 가져 왔지만 "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 안드래도 감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오병이어를 하늘에 쳐들고 감사했다. "아버지여 감사합니다.이 작은 것을 준비하여 주신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작은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듯을 나타내시옵소서" 주님은 아마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 할 수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자. 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일 때 오히려 감사하자. 고난과 역경이 계속 되드래도 감사하는 자가 되자. 감사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성경은 말세에 사람들이 감사치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 (딤후3:2) 날마다 감사로 하늘 문을 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하나님 은혜를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다. 감사로 하늘 문을 여는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남은 조각을 거두라 12절 =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무리들은 먹다 남을 정도로 배가 부르도록 실컷 먹었다. 예수님은 그 남은 것들을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도록 거두라고 하셨다. 남은 것을 거두어 보니 열 두 바구니가 찼었다. 왜 주님은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했을까 단순히 음식이 아까워서 였을까 주위 환경을 더럽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모아서 쓰레기 통에 버리기 위해서 였을까요 아니다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남은 조각 =부스러기를 뜻한다. 그렇다고 먹다 남은 찌꺼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 부스러기를 예수님은 귀하게 여기셨다. 버리지 말라는 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유대인들은 타락하고 말았다. 율법을 받은 유대인은 그 말씀을 받고 타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부스러기 떡을 받은 이방인은 구원을 받았다. 부스러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부스러기의 비밀을 깨달아야 귀한 줄 알게 된다. 오병이어로 무리들을 배부르도록 먹여주신 주님은 무리들의 마음 상태를 알아보고 실망했다. 14절에 무리들의 고백이 나온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무리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보지 아니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생각했다. 즉 한 인간으로만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런 무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나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명령했다. 보리떡은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을 뜻한다. 그 떡을 먹고도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했다. 예수를 만나고도 예수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라고 명령하셨다. 그 부스러기를 거드니까 12 광주리 였다. 12 광주리 남은 게 우연일까 칠병이어 사건 후에도 남은 조각이 7 광주리였는데 이것도 우연일까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들어있다. 천국의 비밀은 밭에 감추인 보화 같다고 했다. 우리도 이 보화를 찾지 못하면 저 유대인들과 같은 자들이 되고 만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유대인들이 예수를 구원자로 보지 못하자 예수님은 유대인 지방을 떠나셨다. 6개월 동안 예수님 행방을 복음서에서 찾을 수 없다.
요7:1-2절에 보면 초막절이 나오는데 . 오병이어의 사건은 유월절이 가까워지는 날에 일어났다. 유월절과 초막절은 6개월 간의 차이가 있다. 이 6개월 간의 주님의 행방이 마15:21에 보면 오병이어 사건 후 예수님이 이방지역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이 최초로 이방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이방지역에 들어가자마자 한 여인은 만나는데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된다. 부스러기의 비밀을 마15장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기는 자를 만난 예수님은 다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이방인 지역에서 일으켰다. 마15:21-28의 내용을 살펴보자. 여기에서 이 말씀을 풀어야 부스러기 비밀이 풀어진다. 예수님이 이방인 지역에 들어서자마자 예수님 앞에 가나안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예수님께 큰소리로 간청을 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 간청한 가나안 여인에게 예수님의 태도를 너무 냉정했다.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 잃어버린 양이 누구입니까 율법 아래 다 죽어버린 유대인들이다. 그래도 가나안 여인은 계속해서 "주여 도와주소서" 애원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 더 냉정하게 거절했다. 오병이어의 떡의 사건이 여기에서도 가나안 여인 사이에 떡의 사건으로 나타난다. 자녀의 떡 ! 유대인이 자녀다 . 떡은 말씀이다. 떡은 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개들은 ! 이방인들이다. 지금도 저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을 개들이라고 한다 .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여자가 가로되 `주여 !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부스러기가 여기서 나온다. 부스러기를 누구가 먹는가 이방 사람들이 먹은다. 자녀들이 먹은 떡 무엇입니까 말씀이다. 부스러기는 무엇입니까 이것도 말씀이다. 두 가지가 다 똑같은 말씀인데 어떻게 다른가 유대인들이 먹은 떡은 율법의 말씀을 의미한다 율법 다음에 오는 말씀이 바로 은혜의 복음이다. 즉 부스러기 복음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도 유대인들은 타락해 버렸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저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고도 타락한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기를 주님을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깨닫지 못하자 주님은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기시고 그 부스러기를 거두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방지역에서 그 부스러기를 비밀을 알고 있는 가나안 여인을 만나고 예수님은 깜짝 놀랜 것이다. 가나안 여인 사건은 한낱 귀신들린 딸의 어미의 간절한 내용이 아니다.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과 대화 내용도 잘 보면 귀신들린 것에 대한 내용이 아닌 것을 알수 있다. 가나안 여인이 나중에 말 할때 보면 귀신들린 딸 얘기를 하지 않고 부스러기 떡 얘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치료하여 주신다. 가나안 여인은 그냥 한 여인이 아니다. 이 이방 여인은 바로 이방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갈4:22절 이하에 보면 사라와 하갈을 교회로 말하고 있다. 이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이 귀신 들렸다고 간청하고 있다. 여기에서 딸이 누구인가 성도이다. 이방인들이 귀신들렸다는 것은 버림받은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말씀을 받고도 버림받은 자들인데 이방인들은 비록 버림받고 살고 있지만 부스러기 같은 말씀만 있으면 살겠다고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개 취급을 당했지만 부스러기 같은 말씀을 개들이 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이방 교회의 말에 예수님은 즉시로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이방 교회가 바로 신약 교회인 것이다. 신약 교회는 이 부스러기 복음으로 살아 난 것이다. 이 이방 교회의 믿음을 보고 예수님은 즉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이방 지역에서 칠병이어로 기적을 일으키셨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오병이어로 예수님 마음이 심히도 안 좋으실턴데 왜 또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까 오병이어의 기적과는 달리 칠병이어의 기적은 주님의 기쁜 가운데 일으킨 기적이었다. 이방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 일으킨 기적이었다.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긴 믿음을 보시고 일으킨 기적이었다 예수님이 왜 이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겼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부스러기 취급을 당하셨다. 주님의 말씀이 부스러기 취급을 당하셨다.
그런데 이방 지역에 들어오니까 그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긴 이방 교회를 보고 예수님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 이 시대 부스러기 모형적인 말씀이 무엇인가 요한 계시록이다. 이 시대 계시록이 얼마나 부스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성경 속에 초림은 356번 재림은 1560번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재림을 얘기하면 이상하게 보고 무슨 재림이냐 ! 무슨 종말이냐 ! 하고 천히 여겨 버린다. 성경에 결론이 요한 계시록이다. 장차 될 일이 숨겨진 책이 요한 계시록이다. 장차 될 일을 모르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수 있겠는가 가나안 여자가 부스러기 말을 해서 딸의 귀신들린 병을 고쳤듯이 마지막 때 교회는 이 부스러기 같은 이 복음의 비밀을 알 때 주님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소리를 들을 것이고 부스러기 복음의 비밀을 알 때 귀신의 세력이 우리들에게 떠나고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이어서 )
첫 번째:순종하는 자가 되라 ! 10절 =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당시 분위기가 상당히 술렁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해는 지고 날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날은 어두워지고 배고픔을 느낀 무리들은 웅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무리들을 예수님은 먼저 모두 자리에 앉도록 했다. 그 수효는 5,000 명쯤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14: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친다면 2만 명이 넘은 숫자이다. 2만 명이 안정하지 못하고 웅성거릴 때 그 분위기가 어떠 했겠는가 이러한 무리들에게 제일 먼저 예수님이 해야할 것은 이 무리들은 안정시키는 것이었다.
앉게 하라 = 이것은 말씀에 순종을 의미한다. 어디에 앉았는가 잔디 위에 앉게 했다. 그러므로 이 때는 봄이다. 유월절이 가까운 1월 달이었다 우리나라로는 3월 달이다. 이것은 곧 예수님 초림을 뜻한다고 살펴보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오병이어의 복음의 비밀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순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삼상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우리의 신앙에서 맨 먼저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 순종이다. 믿음도 순종이 먼저 이루어진 다음에 믿음이 생기고 뜨거움이 생긴다. 성경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종하지 안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았다 이 시대 어찌 된건지 순종보다도 믿음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순종이 밑받침되지 않은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아니다. 순종이 뒤따르지 않은 믿음은 절대로 참된 믿음이 아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잊지 말자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죄를 범한게 아니다 하나님께 대한 순종함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사단의 유혹에 빠진것이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인류의 최초 살인자가 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방법을 순종하지 않고 나름대로 드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피의 제사였다. 가인은 그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고 자신의 방법으로 제사를 드렸다. 노아 시대에 홍수로 세상을 심판을 하나님이 하신 것도 순종하지 않은 백성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신28장에는 순종과 불순종한 자에 대해 정확히 기록하고 있다. (신28:1-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
(신28:15-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우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 성경은 두 사건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순종한 자와 불순종 한자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광야에 모인 무리들은 예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 몰랐다. 앉으라는 명령에 모두 순종했다. 순종했기 때문에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무리들은 끝까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말았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잔디 위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초림을 뜻한다. 즉 은혜시대를 뜻하고 있다. 지금 우리도 은혜 시대에 살고 있다. 주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은혜에만 머물러 있기 원하는 신앙은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왜 주셨는지 깨달아야 한다. 오병이어의 기적의 사건을 왜 보여주었는지 저 무리들을 깨달아야 되건만 깨닫지 못하고 그 은혜에만 머물기 원했다. 그런 무리들에게서 주님은 더 이상 바라 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떠나 버린 것이다. 은혜만 추구하는 신앙은 어린아이 신앙이다. 은혜가 젖이라면 이제 젖을 어느 정도 먹었으면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데 젖만 찾는 어린아이들과 주님은 함께일을 하실 수 없었던 것이다 . 은혜에만 젖어있는 어린아이 신앙으로는 예수를 위해 살수 없다. 은혜를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 은혜를 깨닫고 우리의 신앙이 장성한 자가 되기 원하신다. 오병이어의 사건 후에 칠병이어 사건이 나온다. 오병이어의 사건이 초림의 사건을 의미한다면 칠병이어의 사건은 재림을 뜻하고 있다고 살펴보았다. 왜 칠병이어가 재림을 뜻한다고 했는가 칠병이어는 6개월 후 초막절이 가까울 즈음에 일어났다고 살펴보았다 초막절은 7월15일에 지킨다. 우리나라로 보면 10월 달이다. 완전 가을이다 초막절은 추수 절기다. 추수는 재림을 의미한다. 그리고 오병이어는 잔디에 무리를 앉게 했는데 칠병이어는 땅에 앉게 하였다. (마15:3
5. 막8:6) 땅은 원문에 단단한 흙을 의미 한다. 칠병이어 기적 후에 예수님이 무리들을 어떻게 했는가 보자. 오병이어와 전혀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마15:39) "예수께서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배에 오르사 ." (막8: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저희를 흩어 보내시고 " 전혀 다른 예수님 모습이죠 오병이어 때는 예수님이 무리들을 떠나셨지만 칠병이어 때는 무리들을 흩어 보내셨다. 이것은 바로 사명을 주어서 보내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오병이오의 무리들은 은혜 속에서만 머물기 원했다. 예수를 자신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유대인들에게 보이신 표적이었고 칠병이어의 기적은 이방인 지역에서 보이신 표적이었다. 유대인들은 육적인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고 육을 위해 살아가는 민족이었다. 성도 여러분 ! 초림 예수에만 머물러서 있으면 우리는 안된다. 은혜에만 도취되어서 있어서는 안된다. 예수는 우리의 육을 위해서 오신 예수가 아니다. 재림 예수가 가까이 오고 계신다. 진정한 순종은 어린아이 믿음으로는 있을 수 없다. 장성한 신앙만이 주님의 순종에 따르게 된다. 우리 가정에 어린애들 어디 온전한 순종이 있는가 그러나 장성하면 순종한 자들이 된다. 칠병이어 기적을 본 무리들이 순종했다는 것은 단단한 신앙을 가질 때 순종할 수 있고. 재림 신앙을 가질 때 사명 받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게된다. 은혜 시대에 순종한 자들은 이제 마지막 때까지도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 "성령님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두 번째:감사하는 자가 되라 !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 공관복음에서는 이 장면을 예수께서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었고 떡과 고기를 받은 제자들이 무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무리들은 배불리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어디에 있는가 떡인가 어린아이인가 제자들인가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으로 비롯된 것이다. 그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잘 보자 공관복음에는 모두 이 장면을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 앞에 놓게 하시니 " 오병이어를 하늘로 쳐들고 축사하셨다. 예수님 모습이 상상이 가십니까
축사 = eujcaristhvsa" (유카리스테오 ) = 감사하다 의미다 보잘것없는 오병이어를 가지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렸다. 감사드린 기도 내용은 기록이 안되었지만 주님은 간절히 감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을 통해서 앉은 자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앉은 자들에게 주었다는 것은 순종한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말씀이다. 저희 원대로 주셨다 = 순종만 하면 풍족하게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오병이어가 있었다고 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오병이어가 없었어도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굳이 오병이어를 사용해서 기적을 나타내신 것은 떡만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참 떡이 누구인지를 알려주고 그 떡을 위해서 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작은 오병이어를 들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신 모습을 상상이 가십니까 지금 하늘을 향해 쳐든 떡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예수님 자신이다. 작은 보리떡을 주심을 감사하고 있다. 유대 땅에 보리떡 되신 예수가 오셨지만 저 유대인들은 감사할 줄 몰랐다 우리에게 찾아오신 예수에게 감사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한 자이다. 감사가 없을 때 원망과 불평만 있을 뿐이다. 오병이어의 가장 크라이막스는 무리들이 먹을 때가 아니다 예수님이 하늘을 향해 감사기도를 드릴 때가 크라이막스 였다 분위기는 어떠 했겠는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을 것이다 작은 보리떡과 물고기에 대한 감사기도를 주님은 하신 것이다 보잘것 없는 것을 들고 감사하는 주님의 모습을 보고 비웃는 자도 있었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주님의 이러한 모습은 너희가 무엇을 위해서 감사해야 하는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 우리가 무엇을 위해 감사해야 합니까 육적인 것에 감사하는 생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감사해야 하는 것은 예수에 대해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 시간을 통해서 한번 생각 해보자. 내가 얼마나 예수에 대해서 감사하며 살아 왔는가 무엇을 입고 먹고 마시고 대해서는 우리가 감사를 수 백번도 많이 했지만 예수에 대해서 얼마나 감사했는가 아무리 다른 감사를 잘 한다 할지라도 예수에 대한 감사를 모른다면 그런 감사는 하나님이 감사하게 생각 안 할 것이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다는 것은 육적인 만족함에 입술로만 "감사해요" 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를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린 예배를 하나님은 원하고 계신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모든 감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을 때 진정한 감사가 되는 것이다. 육적인 것에 만족해서 감사하는 감사는 진정한 감사라고 볼 수 없다. 예수님이 보잘 것 없는 오병이어를 쳐들고 감사 한 것은 너희가 무엇을 위해 감사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있다. 보리떡이 누구를 의미 한다고 했는가 예수님이라고 했다. 물고기가 누구를 의미 한다고 했는가 성도라고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한 분으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 한 분으로 감사할 때 우리의 심령은 너무나도 풍족하고 부한 심령이 될 것이다. 무리들이 배불리 원대로 먹었다는 것은 육적으로 배부름만 의미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순종하고 감사할 때 세상 속에서 풍족함도 누리고 영적으로도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만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해도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의 입술을 감사보다는 원망과 불평이 더 많이 나온다. 감사를 몰라서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다 알고는 있다.
그런데 왜 감사가 안 나오는가 우리의 입술과 마음은 그 동안 원망과 불평만 하고 살아 왔기 때문에 감사가 나오지 않고 감사의 삶을 못 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부터 광야에 이르기 까지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았는가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의 삶 속에서 원망과 불평 투성이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을 모르는게 아니었다. 다 알고 있는데도 왜 감사의 삶을 살지 못했는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불평과 원망과 미움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원망과 불평이 입술에 마음에 몸에 젖어 있었다. 우리들도 그 동안 원망과 불평에 젖어서 살아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가 구원받은 자라면 우리의 입술과 마음은 이제 감사의 입술과 마음으로 바꾸어져야 한다. 진정으로 감사한 자가 될 때 우리의 삶이 윤택하여 질 것이고 보람찬 삶이 될 것이다. 진정한 감사는 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편안하고 풍족할 때 어느 누구가 감사하지 못하겠는가 오벼이어의 사건도 보면 제자들은 오병이어를 보고 감사하지 못했다. 빌립은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은 떡을 먹인단 말입니까 조금씩 먹여도 엄청난 돈이 들것 입니다 " 안드레도 오병이어를 아이의 손에서 가져 왔지만 "이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 안드래도 감사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는 오병이어를 하늘에 쳐들고 감사했다. "아버지여 감사합니다.이 작은 것을 준비하여 주신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이제 이 작은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듯을 나타내시옵소서" 주님은 아마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이다. 성도 여러분 ! 할 수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되자. 앞이 캄캄하고 절망적일 때 오히려 감사하자. 고난과 역경이 계속 되드래도 감사하는 자가 되자. 감사할 때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다 성경은 말세에 사람들이 감사치 아니할 것이라고 했다 (딤후3:2) 날마다 감사로 하늘 문을 여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감사는 하나님 은혜를 받은 자만이 할 수 있다. 감사로 하늘 문을 여는 자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세 번째:남은 조각을 거두라 12절 =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 무리들은 먹다 남을 정도로 배가 부르도록 실컷 먹었다. 예수님은 그 남은 것들을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도록 거두라고 하셨다. 남은 것을 거두어 보니 열 두 바구니가 찼었다. 왜 주님은 남은 조각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했을까 단순히 음식이 아까워서 였을까 주위 환경을 더럽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모아서 쓰레기 통에 버리기 위해서 였을까요 아니다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남은 조각 =부스러기를 뜻한다. 그렇다고 먹다 남은 찌꺼기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이 부스러기를 예수님은 귀하게 여기셨다. 버리지 말라는 것은 필요하기 때문에 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유대인들은 타락하고 말았다. 율법을 받은 유대인은 그 말씀을 받고 타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부스러기 떡을 받은 이방인은 구원을 받았다. 부스러기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부스러기의 비밀을 깨달아야 귀한 줄 알게 된다. 오병이어로 무리들을 배부르도록 먹여주신 주님은 무리들의 마음 상태를 알아보고 실망했다. 14절에 무리들의 고백이 나온다. 이 놀라운 기적을 보고도 무리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보지 아니했다.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생각했다. 즉 한 인간으로만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런 무리들을 보고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라고 명령한 것이다. 하나도 버리지 말고 거두라고 명령했다. 보리떡은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을 뜻한다. 그 떡을 먹고도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했다. 예수를 만나고도 예수가 누구인지 깨닫지 못했다. 그러한 모습을 본 예수님은 남은 조각을 거두라고 명령하셨다. 그 부스러기를 거드니까 12 광주리 였다. 12 광주리 남은 게 우연일까 칠병이어 사건 후에도 남은 조각이 7 광주리였는데 이것도 우연일까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들어있다. 천국의 비밀은 밭에 감추인 보화 같다고 했다. 우리도 이 보화를 찾지 못하면 저 유대인들과 같은 자들이 되고 만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유대인들이 예수를 구원자로 보지 못하자 예수님은 유대인 지방을 떠나셨다. 6개월 동안 예수님 행방을 복음서에서 찾을 수 없다.
요7:1-2절에 보면 초막절이 나오는데 . 오병이어의 사건은 유월절이 가까워지는 날에 일어났다. 유월절과 초막절은 6개월 간의 차이가 있다. 이 6개월 간의 주님의 행방이 마15:21에 보면 오병이어 사건 후 예수님이 이방지역으로 들어가셨다. 예수님이 최초로 이방지역으로 들어가신 것이다 이방지역에 들어가자마자 한 여인은 만나는데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된다. 부스러기의 비밀을 마15장에서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기는 자를 만난 예수님은 다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이방인 지역에서 일으켰다. 마15:21-28의 내용을 살펴보자. 여기에서 이 말씀을 풀어야 부스러기 비밀이 풀어진다. 예수님이 이방인 지역에 들어서자마자 예수님 앞에 가나안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예수님께 큰소리로 간청을 했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 간청한 가나안 여인에게 예수님의 태도를 너무 냉정했다. (마15: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 잃어버린 양이 누구입니까 율법 아래 다 죽어버린 유대인들이다. 그래도 가나안 여인은 계속해서 "주여 도와주소서" 애원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 더 냉정하게 거절했다. 오병이어의 떡의 사건이 여기에서도 가나안 여인 사이에 떡의 사건으로 나타난다. 자녀의 떡 ! 유대인이 자녀다 . 떡은 말씀이다. 떡은 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개들은 ! 이방인들이다. 지금도 저 유대인들은 이방 사람들을 개들이라고 한다 . 그러나 가나안 여인은 물러서지 않고 "여자가 가로되 `주여 !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부스러기가 여기서 나온다. 부스러기를 누구가 먹는가 이방 사람들이 먹은다. 자녀들이 먹은 떡 무엇입니까 말씀이다. 부스러기는 무엇입니까 이것도 말씀이다. 두 가지가 다 똑같은 말씀인데 어떻게 다른가 유대인들이 먹은 떡은 율법의 말씀을 의미한다 율법 다음에 오는 말씀이 바로 은혜의 복음이다. 즉 부스러기 복음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도 유대인들은 타락해 버렸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을 통해서 저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고도 타락한 자신들의 모습을 깨닫기를 주님을 바랬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도 깨닫지 못하자 주님은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기시고 그 부스러기를 거두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방지역에서 그 부스러기를 비밀을 알고 있는 가나안 여인을 만나고 예수님은 깜짝 놀랜 것이다. 가나안 여인 사건은 한낱 귀신들린 딸의 어미의 간절한 내용이 아니다.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과 대화 내용도 잘 보면 귀신들린 것에 대한 내용이 아닌 것을 알수 있다. 가나안 여인이 나중에 말 할때 보면 귀신들린 딸 얘기를 하지 않고 부스러기 떡 얘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물론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고치시고 치료하여 주신다. 가나안 여인은 그냥 한 여인이 아니다. 이 이방 여인은 바로 이방 교회를 의미하고 있다. 갈4:22절 이하에 보면 사라와 하갈을 교회로 말하고 있다. 이 가나안 여인이 자기 딸이 귀신 들렸다고 간청하고 있다. 여기에서 딸이 누구인가 성도이다. 이방인들이 귀신들렸다는 것은 버림받은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은 말씀을 받고도 버림받은 자들인데 이방인들은 비록 버림받고 살고 있지만 부스러기 같은 말씀만 있으면 살겠다고 지금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개 취급을 당했지만 부스러기 같은 말씀을 개들이 먹을 수 있지 않느냐는 이방 교회의 말에 예수님은 즉시로 무엇이라고 말씀했습니까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이 이방 교회가 바로 신약 교회인 것이다. 신약 교회는 이 부스러기 복음으로 살아 난 것이다. 이 이방 교회의 믿음을 보고 예수님은 즉시 오병이어와 같은 기적을 이방 지역에서 칠병이어로 기적을 일으키셨다.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오병이어로 예수님 마음이 심히도 안 좋으실턴데 왜 또 칠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까 오병이어의 기적과는 달리 칠병이어의 기적은 주님의 기쁜 가운데 일으킨 기적이었다. 이방 교회의 믿음을 보시고 일으킨 기적이었다.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긴 믿음을 보시고 일으킨 기적이었다 예수님이 왜 이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겼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에게 부스러기 취급을 당하셨다. 주님의 말씀이 부스러기 취급을 당하셨다.
그런데 이방 지역에 들어오니까 그 부스러기를 귀하게 여긴 이방 교회를 보고 예수님의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 이 시대 부스러기 모형적인 말씀이 무엇인가 요한 계시록이다. 이 시대 계시록이 얼마나 부스러기 취급을 당하고 있는지 모른다. 성경 속에 초림은 356번 재림은 1560번 얘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시대 재림을 얘기하면 이상하게 보고 무슨 재림이냐 ! 무슨 종말이냐 ! 하고 천히 여겨 버린다. 성경에 결론이 요한 계시록이다. 장차 될 일이 숨겨진 책이 요한 계시록이다. 장차 될 일을 모르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릴수 있겠는가 가나안 여자가 부스러기 말을 해서 딸의 귀신들린 병을 고쳤듯이 마지막 때 교회는 이 부스러기 같은 이 복음의 비밀을 알 때 주님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소리를 들을 것이고 부스러기 복음의 비밀을 알 때 귀신의 세력이 우리들에게 떠나고 놀라운 주님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계속 이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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