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1) (요6:1-4)
본문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수많은 표적 중에서 7가지 만을 요한 복음에서 기록했다.
1.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표적.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
3.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
4. 5000명을 먹이신 표적.
5. 물위를 걸으신 표적.
6.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오늘 본문에서는 4번째인 표적인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는데 주님의 표적은 점점 그 강도가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듭 거듭 애기하지만 표적을 보여 주신 것은 표적만 추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요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여주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더 확실히 믿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를 믿지 아니했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저들은 믿지 아니했다. 참으로 우매한 저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모든 표적이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었듯이 오병이어의 사건도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었다. 오병이어의 말씀 속에는 복음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성경은 모두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성경은 이 비밀을 푸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밀은 교회를 통해서 풀도록 하여 주신다. (엡3:9-10)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교회는 이 비밀을 성도들에게 풀어주어야 한다. 성도는 교회를 통하여 이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비밀을 모르면 예수를 죽이고 더 이상 믿음이 자라지 않은다. 초림 때에도 이 복음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를 죽였다. (고전2:7-8)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 하였으리라 " 초림 때에도 비밀을 몰라서 예수를 죽였듯이 마지막 때에도 우리는 복음의 비밀을 알아야만 한다. 적당히 예수 믿어 가지고서는 안된다 성도는 이 복음의 비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 (마13:1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 계시록에도 4가지 비밀이 나온다 계1:20 = 일곱 촛대의 비밀.일곱 별의 비밀 계17:5 = 큰 바벨론 비밀. 17:7=짐승의 비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들은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오병이어의 사건도 단순한 표적의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이 배고픈 자들이 불쌍해서 단순히 배를 채워주신 윤리적인 도덕적인 그런 말씀이 아니다.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들어있다.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주님의 행하신 일들을 기사와 이적이라 하지 않고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표적은 어떤 한 곳을 목적으로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모든 사건을 표적이라고 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오병이어의 표적도 오직 예수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오병이어 표적을 살펴보면서 더욱 오직 예수 신앙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병이어 표적은 첫 번째:어디에서 일어났는가 (1-3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이곳이 마14:13 = 빈들이라고 기록되었다. 막6:35 = 빈들이라고 했다. 눅9:10 = 벳새다라고 했다. 요6:3 = 산에 오르사 벳새다는 갈리리 호수를 가운데 놓아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빈들이었다. 곧 광야를 뜻한다. 수많은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서 빈들까지 쫓아왔다. 왜 큰 무리가 따랐는가 병자들을 고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따랐다.
그러므로 모인 무리들은 대부분 병자였을 것이다. 눅9:11 =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셨다고 했다. 마14:14 = 병자들을 고치셨다고 했다. 육신의 병을 치료하여 주신 주님은 그들에게 오병이어의 놀라운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예수 자신이 누구이고 이제 너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가르쳐 알려주었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빈 들 = 광야 광야 = (에레모스) 황폐함. 고독한. 버려진, 황량한. 한적한 곳 벳새다 =고기잡이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기도 하다. 디베랴 에서 바다를 건너 벳새다에 이르기까지는 사흘이나 걸려야 하며 빈들이나 광야를 지나야만 갈 수 있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광야에서 일어났다. 오병이어 =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이다. 배고픈 자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여주신 사건이 아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표적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그런데 왜 광야 빈들에서 하셨을까 여기에 숨은 비밀이 있다.
예루살렘 화려한 성전에서 오병이어를 표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로 가셔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오병이어는 광야의 복음이다. 교회 역사를 보더래도 복음은 광야 같은 빈들에 있을 때 전해졌고 광야에 있는 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졌다. 화려한 곳에는 복음이 들어갈 수 없다. 광야의 7가지 특징이 있다.
1. 렘2:6 = 사람이 다니지 아니한 외로운 곳이다.
2. 출17:6 =물이 없는 목마른 곳이다.
3. 사43:19 =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다.
4. 신32:10 = 짐승이 부르짖는 곳이다
5. 민20:5 = 경작이 안되는 곳이다. 6. 신8:15 = 뱀이 있는 곳이다. 7. 렘2:6 = 죽음이 있는 곳이다. 12사도들이 광야 같은 삶 속에서 복음을 전했다. 로마에 복음이 전해질 때 사도 바울이 광야 같은 삶을 살았다. 세상을 사랑하는 바울의 제자 데마 같은 자에게는 복음이 들어가지 못했다. 구라파에 복음이 전해질 때 초대교인 들이 광야 같은 삶을 살았다. 미국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영국 청교도들의 광야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광야 같은 속에서 살 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복음을 받는 사람도 영적으로 광야 같은 속에 있을 때 받을 수 있다. 호의호식하고 세상을 좇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져도 받을 수 없다. 모세에게 말씀이 주어질 때 애굽의 왕자였을 때 주어지지 안했다. 호렙산에서 40일 금식 기도 끝에 주어졌다. 광야 같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다. 예수님도 평생을 광야 같은 삶을 살으셨다. 짐승도 새들도 머리 둘 곳이 있었지만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 세례요한도 제사장 외아들이었지만 명예 권세 다 버리고 광야에서 지낼 때 하나님 말씀이 임했다. (눅3:2)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 성경 다음으로 유명한 책인 천로역정은 죤 번연 이 지었는데 죤 번연은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한 자이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11년 옥살이 하면서 광야같은 삶 속에서 위대한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나는 약간 배운 것은 다 잊었지만 주님의 가르침만은 남아있다" 실락원을 쓴 영국 시인 밀톤도 눈물과 고통 속에서 글을 썼다. 17세에 이혼하고 1649년 눈이 실명 위기에 있었지만 밀톤은 실락원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썼다. 1652년 밀톤은 장님이 되어 버렸다. 밀톤은 비록 장님이 되었지만 주님이 함께 하는 영광을 누렸다.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계시록이 기록되었다.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짐승도 살기 힘들다는 밧모섬 광야 같은 곳에서 세상의 마지막 될 일을 기록한 것이다. 왜 오병이어의 표적이 광야에서 일어났는가 성도 여러분 ! 복음은 광야에서 반드시 시작된다. 화려한 곳에서. 호텔에서. 양탄자 깔린 거실에서 나오지 않은다 복음을 전하는 자도 광야 같은 심령으로 전해야 하고 복음을 받은 자도 광야 같은 심령으로 받아야만 된다.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영적으로 광야 같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광야 같은 자들이 되지 아니하면 복음을 받아먹을지라도 결국은 다 떠나 버린다. 유대인들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았지만 떡만 배불리 먹고 모두 다 예수를 떠나 버렸다. 떠나는 그들을 보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영생이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기오리까" 오병이어의 표적은 빈들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광야 같은 빈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살아야 만이 우리에게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오병이어의 역사가 무엇인가 모인 무리들의 배고픔을 기적적으로 혜결시켜 주는 그런 역사인가 그런 뜻으로만 보면 교훈적인 설교는 될 수 있을지라도 성경의 비밀은 알지 못할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배고픔을 혜결 해주는 그런 육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었다. 예수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요6: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영적으로 우리도 광야의 심령이 되지 아니하면 저 유대인들처럼 육적의 배부름을 위해서 예수를 따르게 될 것이다. 육적으로 계속 만족을 채워주지 못할 때는 서슴없이 예수를 떠나 버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요6:26-2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영적으로 광야 같은 심령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의 떡이신 것을 믿지 못한다. 광야 같은 심령은 외롭고 가난한 심령이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외치신 첫 말씀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다. 예수가 바로 천국이다. 그 천국을 이 땅에서 소유하며 살 수 있는 자는 바로 가난한 심령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광야 같은 심령이다. 부족함이 없는 부한 상태로는 예수의 복음인 광야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물질로. 명예로. 쾌락으로 .이기주의로. 가득찬 마음에는 광야의 복음이 메아리만 칠 뿐이다. 성도 여러분 !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광야의 빈들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빈들에서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병이어의 표적은 두 번째:어느 때 일어 났는가 (4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오병이어의 표적의 일어난 날이 언제인지 밝히고 있다. 유월절을 가까이 앞두고 일어났다. 유월절을 가까이 앞둔 어느 날 빈들에서 해가 질 무렵에 일어난 사건이다. 눅9:12. 막6:35 마14:15 = 해가 저물고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 이 때는 너무 중요하다. 하나님은 반드시 때가 이루셔야만 일을 행하신다.
유월절 =페스오버 (passoyer) =넘어갔다. 유월했다. 뜻이다 (히) 펫사 (pesach) 라고 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던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이 날을 가장 성대하고 지낸다. 이 유월절이 복음적으로.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가 죄에서 구원받을 것을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유월절은 1월14일 지켰다 (레23: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 이스라엘의 1월 달은 우리나라 3월 달과 똑같다.
그러므로 시기적으로 봄이었고 시간적으로는 해가 저물 때 일어났으므로 아마 6시-7시 사이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유월절을 3번 보내셨는데 첫번째 유월절은 예루살렘에서 보내셨다. 그때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요2:13 이후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유대인들을 향해 화를 내시면서 모든 장사꾼들을 다 내쫓으시고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화를 내시면서 타락한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 오늘날 교회들이 선교다 구제다 하는 목적으로 장사를 하는데 절대 옳지 않은 짓들이다. 아무리 목적이 선해도 하는 방법이 성경적이지 못하면 우리는 하지 말아야 것이다. 예수님은 두 번째 유월절부터는 성전에 가시지 아니했다. 두 번째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주님은 광야의 빈들로 가신 것이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나타내신 것이다. 세 번째 유월절은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셨다.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모두 떡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떡을 향해서 주님은 내 몸이라고 하셨다. 지금 광야에서도 이 떡을 향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왜 하필 유월절이 가까워질 때 빈들로 나가셔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셨을까 그냥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유월절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은 곧 주님의 죽으심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번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주님의 마음이 되어 보자. 5절에 보면 예수님은 큰 무리가 예수께 몰려오는 것을 보고 계셨다고 했다. 그 무리들이 왜 모여들었다고 했는가 (요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지금 엄청난 무리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눅12:1= 큰 무리를 서로 밟힐 만큼 수 많은 무리라고 했다.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그 큰 무리가 병든 몸을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 주님은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예수를 믿고자 나오는 마음이 아니라 병만 고쳐 보려는 마음으로 나오는 그들을 보시고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치료해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무엇을 가르치셨겠는가 우리는 5장에서 예수를 증거 하는 4중적인 증거를 살펴보았다. 그 모든 증거를 다시 가르치셨을 것이다. 그래도 잘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시청각 교육을 시키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육을 위해 따르지 말고 영을 위해 따르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은 그들에게 아주 알기 쉽게 가르치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유월절은 봄 절기이다. (막6:39)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 봄은 천국을 예표 한다. 지금 유대인들은 빈들 광야에서 주님을 받아들이고 천국을 소유했어야 했다. 오병이어로 주님이 몸이 곧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믿고 예수를 따랐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병만 치료받고 육적으로 배만 채워 버리자 모두 다 예수를 떠나 버렸다. 떠난 자들 중에는 12제자들 말고 다른 제자들도 많이 떠났다고 했다.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 오죽하면 주님께서 12제자에게도 "너희도 가려느냐" 했겠는가 우리가 복음 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주님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주님은 6개월 동안 행방이 나타나지 않은다. 육신만 위해서 자신을 쫓는 무리들을 보고 주님은 이후로 복음의 방향을 이방인으로 돌려버린다. 그래서 나온게 바로 칠병이어 표적이다. 오병이어 표적이 유대인을 구원을 위한 표적이었다면 칠병이어의 표적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표적이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표적은 초림을 예표하는 표적이고 칠병이어의 표적은 재림을 예표하는 표적이다. 오병이어의 일어난 시기가 유월절 곧 봄 절기다. 오병이어는 푸른 잔디에서 이루어 졌는데 칠병이어는 땅에서 이루어 졌다. 이 땅은 헬라어 원문에는 딱딱한 흙을 말한다. 땅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은 봄이 아닌 가을을 말한다. 우리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요한 복음 6장 이후에 예수님의 행적이 6개월간 어디에 가셨는지 알 수 없다. 요7:1-2 = 이후에 하고 초막절에 주님이 갈릴리에 나타나셨다. 초막절은 7월15일 부터 7일 동안 지킨다. 우리나라로는 9월 달이다. 이 6개월 동안의 일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기록하고 있다. 칠병이어의 표적은 이 6개월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럼 주님이 6개월 동안 어디로 가셨는가 유대인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주님은 이방인 지역으로 들어 가셨다. (마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 (막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
그러므로 칠병이어 표적은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다. 유대인이 표적만 구하고 예수를 믿지 아니하자 예수님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바클레이는 "예수님이 최초로 이방인 지역에 발길을 ケ 것이다" 했다. (롬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 마15:21-28을 보자. 가나안 여인이 나오죠 예수님께 소리치죠 "주 다윗의 자손이여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 여인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태도는 너무 차갑죠. (마15:24)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 그리고 더 심한 말을 하죠 (마15:26)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 여기서 떡이 무엇입니까 = 말씀이다. 이제 성경에서 떡을 볼 때 찹살 떡으로 보면 안된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는 생명의 떡이다. 개는 이방인이다. 복음을 이방인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가나안 여인의 대답을 보자. (마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가나인 여인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악한 죄인이고 추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죄인인줄 알았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자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시로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 있던 귀신이 나갔다.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이 귀신을 내 쫓아주는 걸로만 알면 안된다. 그렇게 해석만 해도 안된다. 귀신을 내쫓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껍질만 보면 안된다. 속을 보아야 한다. 떡과 물고기를 살펴볼 때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가 이방인들로써 귀신에 잡혀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져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가나안 여인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고 칠병이어의 표적을 이방인들에게 나타내었다. 생명의 떡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여인은 이방 여인이 아니라 이방 교회의 모습이다. 성경에 여자는 교회로 풀어야 비밀이 풀린다. 갈6장에서 여자를 교회로 풀었다. 가나안 여인의 이방 교회의 모습을 7가지로 보자.
1. 딸을 사랑했다. = 교회는 성도를 사랑해야 한다.
2. 예수를 보고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 한 남자를 보자마자 다윗의 자손이여 외쳤다. 보통 신앙이 아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신앙을 가져야 한다.
3. 예수께 절했다 = 오직 예수 신앙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4. 소리를 질렀다 = 예수께 기도해야만 한다.
5. 개들이라고 해도 끝까지 매달렸다 =인내의 신앙을 가졌다.
6.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 믿음있는 교회 였다
7. 주님이 오실 때를 알았다 = 교회는 때를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 인지 알아야 한다. 밤인지.아침인지.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한다. '결론' 저 유대인들은 유월절은 잘 지켰지만 무엇을 의미한지는 몰랐다. 유월절이 가까웠다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리는 때이다. 초림 예수를 거부한 유대인들은 재림 예수의 때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이방 교회는 초림 예수를 알았기 때문에 재림 예수의 때를 알고 재림 예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유월절을 모르고 무교절이 있을 수 없고 무교절을 모르고 초실절이 올 수 없다. 초실절을 모르고 칠칠절이 있을수 없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도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모르고 그 어떤 것도 이루어 질 수 없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유대인의 왕으로 삼을려고 했다. 육적인 세상 왕을 예수님이 거부하자 유대인들은 다 예수를 떠나버렸다. 더 이상 예수를 따라 다녀보았자 육적인 만족이 없을 것을 안 유대인들은 모두 다 예수를 떠나 버렸다. 성도 여러분 ! 저 유대인들은 광야까지 예수를 따라와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았지만 예수를 끝까지 따르지 못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육적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끝까지 예수를 따르지 못한 것이다 . 왜 오병이어 표적이 광야에서 일어났는가 영적으로 광야 신앙이 안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광야의 빈들에서 이 표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우리도 영적으로 광야 같은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육적으로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 육적 만족이 없어질 때 반드시 예수를 떠나게 되어있다 성도 여러분 광야의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광야까지 따라가서 예수님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한 저 유대인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유월절 어린양 예수가 가신 십자가의 길까지 우리 모두 가기를 축원합니다.
오 직 예수
1.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하신 표적.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표적.
3.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표적.
4. 5000명을 먹이신 표적.
5. 물위를 걸으신 표적.
6.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시는 표적.
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
오늘 본문에서는 4번째인 표적인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는데 주님의 표적은 점점 그 강도가 강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듭 거듭 애기하지만 표적을 보여 주신 것은 표적만 추구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요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여주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라는 사실을 더 확실히 믿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저들은 수많은 표적을 보고도 예수를 믿지 아니했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표적을 보고도 저들은 믿지 아니했다. 참으로 우매한 저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 모든 표적이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었듯이 오병이어의 사건도 예수님 자신을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었다. 오병이어의 말씀 속에는 복음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성경은 모두 비밀로 감추어져 있다. 성경은 이 비밀을 푸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밀은 교회를 통해서 풀도록 하여 주신다. (엡3:9-10)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교회는 이 비밀을 성도들에게 풀어주어야 한다. 성도는 교회를 통하여 이 비밀을 깨달아야 한다. 비밀을 모르면 예수를 죽이고 더 이상 믿음이 자라지 않은다. 초림 때에도 이 복음의 비밀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를 죽였다. (고전2:7-8)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 하였으리라 " 초림 때에도 비밀을 몰라서 예수를 죽였듯이 마지막 때에도 우리는 복음의 비밀을 알아야만 한다. 적당히 예수 믿어 가지고서는 안된다 성도는 이 복음의 비밀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고전4: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 (마13:1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 계시록에도 4가지 비밀이 나온다 계1:20 = 일곱 촛대의 비밀.일곱 별의 비밀 계17:5 = 큰 바벨론 비밀. 17:7=짐승의 비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자들은 이 비밀을 알아야 한다. (암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 오병이어의 사건도 단순한 표적의 사건이 아니다. 예수님이 배고픈 자들이 불쌍해서 단순히 배를 채워주신 윤리적인 도덕적인 그런 말씀이 아니다. 여기에는 복음의 비밀이 들어있다.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과는 달리 주님의 행하신 일들을 기사와 이적이라 하지 않고 표적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표적은 어떤 한 곳을 목적으로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에서 모든 사건을 표적이라고 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오병이어의 표적도 오직 예수를 나타내기 위함이었다. 오병이어 표적을 살펴보면서 더욱 오직 예수 신앙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병이어 표적은 첫 번째:어디에서 일어났는가 (1-3절)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 이곳이 마14:13 = 빈들이라고 기록되었다. 막6:35 = 빈들이라고 했다. 눅9:10 = 벳새다라고 했다. 요6:3 = 산에 오르사 벳새다는 갈리리 호수를 가운데 놓아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곳이다. 이곳은 빈들이었다. 곧 광야를 뜻한다. 수많은 큰 무리가 예수를 따라서 빈들까지 쫓아왔다. 왜 큰 무리가 따랐는가 병자들을 고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따랐다.
그러므로 모인 무리들은 대부분 병자였을 것이다. 눅9:11 = 주님께서 병자를 고치셨다고 했다. 마14:14 = 병자들을 고치셨다고 했다. 육신의 병을 치료하여 주신 주님은 그들에게 오병이어의 놀라운 표적을 보여주시면서 예수 자신이 누구이고 이제 너희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가르쳐 알려주었다. (요6: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빈 들 = 광야 광야 = (에레모스) 황폐함. 고독한. 버려진, 황량한. 한적한 곳 벳새다 =고기잡이하는 집이라는 뜻이다 베드로. 안드레. 빌립의 고향이기도 하다. 디베랴 에서 바다를 건너 벳새다에 이르기까지는 사흘이나 걸려야 하며 빈들이나 광야를 지나야만 갈 수 있었다. 오병이어의 표적은 광야에서 일어났다. 오병이어 =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이다. 배고픈 자들에게 떡과 고기를 먹여주신 사건이 아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표적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알리고자 하신 것이다.
그런데 왜 광야 빈들에서 하셨을까 여기에 숨은 비밀이 있다.
예루살렘 화려한 성전에서 오병이어를 표적을 일으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광야로 가셔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일으키셨다.
그러므로 오병이어는 광야의 복음이다. 교회 역사를 보더래도 복음은 광야 같은 빈들에 있을 때 전해졌고 광야에 있는 자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졌다. 화려한 곳에는 복음이 들어갈 수 없다. 광야의 7가지 특징이 있다.
1. 렘2:6 = 사람이 다니지 아니한 외로운 곳이다.
2. 출17:6 =물이 없는 목마른 곳이다.
3. 사43:19 =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다.
4. 신32:10 = 짐승이 부르짖는 곳이다
5. 민20:5 = 경작이 안되는 곳이다. 6. 신8:15 = 뱀이 있는 곳이다. 7. 렘2:6 = 죽음이 있는 곳이다. 12사도들이 광야 같은 삶 속에서 복음을 전했다. 로마에 복음이 전해질 때 사도 바울이 광야 같은 삶을 살았다. 세상을 사랑하는 바울의 제자 데마 같은 자에게는 복음이 들어가지 못했다. 구라파에 복음이 전해질 때 초대교인 들이 광야 같은 삶을 살았다. 미국에 복음이 들어간 것은 영국 청교도들의 광야 같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광야 같은 속에서 살 때 복음을 전할 수 있다. 복음을 받는 사람도 영적으로 광야 같은 속에 있을 때 받을 수 있다. 호의호식하고 세상을 좇는 자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져도 받을 수 없다. 모세에게 말씀이 주어질 때 애굽의 왕자였을 때 주어지지 안했다. 호렙산에서 40일 금식 기도 끝에 주어졌다. 광야 같은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졌다. 예수님도 평생을 광야 같은 삶을 살으셨다. 짐승도 새들도 머리 둘 곳이 있었지만 주님은 머리 둘 곳이 없었다. 세례요한도 제사장 외아들이었지만 명예 권세 다 버리고 광야에서 지낼 때 하나님 말씀이 임했다. (눅3:2)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 성경 다음으로 유명한 책인 천로역정은 죤 번연 이 지었는데 죤 번연은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한 자이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11년 옥살이 하면서 광야같은 삶 속에서 위대한 책을 쓰게 된 것이다. "나는 약간 배운 것은 다 잊었지만 주님의 가르침만은 남아있다" 실락원을 쓴 영국 시인 밀톤도 눈물과 고통 속에서 글을 썼다. 17세에 이혼하고 1649년 눈이 실명 위기에 있었지만 밀톤은 실락원 쓰는 것을 멈추지 않고 썼다. 1652년 밀톤은 장님이 되어 버렸다. 밀톤은 비록 장님이 되었지만 주님이 함께 하는 영광을 누렸다.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계시록이 기록되었다. (계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 극심한 고통 속에서. 짐승도 살기 힘들다는 밧모섬 광야 같은 곳에서 세상의 마지막 될 일을 기록한 것이다. 왜 오병이어의 표적이 광야에서 일어났는가 성도 여러분 ! 복음은 광야에서 반드시 시작된다. 화려한 곳에서. 호텔에서. 양탄자 깔린 거실에서 나오지 않은다 복음을 전하는 자도 광야 같은 심령으로 전해야 하고 복음을 받은 자도 광야 같은 심령으로 받아야만 된다. 성도 여러분 ! 우리도 영적으로 광야 같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영적으로 광야 같은 자들이 되지 아니하면 복음을 받아먹을지라도 결국은 다 떠나 버린다. 유대인들이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았지만 떡만 배불리 먹고 모두 다 예수를 떠나 버렸다. 떠나는 그들을 보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 베드로가 "영생이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기오리까" 오병이어의 표적은 빈들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광야 같은 빈들의 삶 속에서 우리가 살아야 만이 우리에게 오병이어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오병이어의 역사가 무엇인가 모인 무리들의 배고픔을 기적적으로 혜결시켜 주는 그런 역사인가 그런 뜻으로만 보면 교훈적인 설교는 될 수 있을지라도 성경의 비밀은 알지 못할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배고픔을 혜결 해주는 그런 육적인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나타내기 위한 표적이었다. 예수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요6:35)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 영적으로 우리도 광야의 심령이 되지 아니하면 저 유대인들처럼 육적의 배부름을 위해서 예수를 따르게 될 것이다. 육적으로 계속 만족을 채워주지 못할 때는 서슴없이 예수를 떠나 버리는 자들이 될 것이다. (요6:26-27)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가 영적으로 광야 같은 심령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생명의 떡이신 것을 믿지 못한다. 광야 같은 심령은 외롭고 가난한 심령이다. "심령이 가난한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고 했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외치신 첫 말씀은 "천국이 가까웠다"고 했다. 예수가 바로 천국이다. 그 천국을 이 땅에서 소유하며 살 수 있는 자는 바로 가난한 심령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광야 같은 심령이다. 부족함이 없는 부한 상태로는 예수의 복음인 광야의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다. 물질로. 명예로. 쾌락으로 .이기주의로. 가득찬 마음에는 광야의 복음이 메아리만 칠 뿐이다. 성도 여러분 !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습니까 광야의 빈들에서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빈들에서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오병이어의 표적은 두 번째:어느 때 일어 났는가 (4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오병이어의 표적의 일어난 날이 언제인지 밝히고 있다. 유월절을 가까이 앞두고 일어났다. 유월절을 가까이 앞둔 어느 날 빈들에서 해가 질 무렵에 일어난 사건이다. 눅9:12. 막6:35 마14:15 = 해가 저물고 있다고 했다. 성경에서 이 때는 너무 중요하다. 하나님은 반드시 때가 이루셔야만 일을 행하신다.
유월절 =페스오버 (passoyer) =넘어갔다. 유월했다. 뜻이다 (히) 펫사 (pesach) 라고 함.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되던 날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이 날을 가장 성대하고 지낸다. 이 유월절이 복음적으로.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모든 인류가 죄에서 구원받을 것을 예표하는 그림자이다. 유월절은 1월14일 지켰다 (레23:5)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 이스라엘의 1월 달은 우리나라 3월 달과 똑같다.
그러므로 시기적으로 봄이었고 시간적으로는 해가 저물 때 일어났으므로 아마 6시-7시 사이이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동안 유월절을 3번 보내셨는데 첫번째 유월절은 예루살렘에서 보내셨다. 그때 무슨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요2:13 이후에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성전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유대인들을 향해 화를 내시면서 모든 장사꾼들을 다 내쫓으시고 "내 아버지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화를 내시면서 타락한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 오늘날 교회들이 선교다 구제다 하는 목적으로 장사를 하는데 절대 옳지 않은 짓들이다. 아무리 목적이 선해도 하는 방법이 성경적이지 못하면 우리는 하지 말아야 것이다. 예수님은 두 번째 유월절부터는 성전에 가시지 아니했다. 두 번째 유월절이 가까웠을 때 주님은 광야의 빈들로 가신 것이다. 그리고 오병이어의 표적을 나타내신 것이다. 세 번째 유월절은 마가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셨다.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모두 떡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떡을 향해서 주님은 내 몸이라고 하셨다. 지금 광야에서도 이 떡을 향해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다. 왜 하필 유월절이 가까워질 때 빈들로 나가셔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이셨을까 그냥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절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유월절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은 곧 주님의 죽으심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한번 성경 속으로 들어가서 주님의 마음이 되어 보자. 5절에 보면 예수님은 큰 무리가 예수께 몰려오는 것을 보고 계셨다고 했다. 그 무리들이 왜 모여들었다고 했는가 (요6: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병자를 고쳐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지금 엄청난 무리가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눅12:1= 큰 무리를 서로 밟힐 만큼 수 많은 무리라고 했다. (막6:3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 그 큰 무리가 병든 몸을 이끌고 오는 것을 보고 주님은 불쌍히 여기셨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계셨다. 예수를 믿고자 나오는 마음이 아니라 병만 고쳐 보려는 마음으로 나오는 그들을 보시고 주님은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을 치료해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으로 가르치셨다. 무엇을 가르치셨겠는가 우리는 5장에서 예수를 증거 하는 4중적인 증거를 살펴보았다. 그 모든 증거를 다시 가르치셨을 것이다. 그래도 잘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게 주님은 시청각 교육을 시키신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육을 위해 따르지 말고 영을 위해 따르고 믿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은 그들에게 아주 알기 쉽게 가르치시기를 원하신 것이다.
유월절은 봄 절기이다. (막6:39)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 봄은 천국을 예표 한다. 지금 유대인들은 빈들 광야에서 주님을 받아들이고 천국을 소유했어야 했다. 오병이어로 주님이 몸이 곧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을 믿고 예수를 따랐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병만 치료받고 육적으로 배만 채워 버리자 모두 다 예수를 떠나 버렸다. 떠난 자들 중에는 12제자들 말고 다른 제자들도 많이 떠났다고 했다.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 오죽하면 주님께서 12제자에게도 "너희도 가려느냐" 했겠는가 우리가 복음 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이런 주님의 모습을 보고 위로를 받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 이후로 주님은 6개월 동안 행방이 나타나지 않은다. 육신만 위해서 자신을 쫓는 무리들을 보고 주님은 이후로 복음의 방향을 이방인으로 돌려버린다. 그래서 나온게 바로 칠병이어 표적이다. 오병이어 표적이 유대인을 구원을 위한 표적이었다면 칠병이어의 표적은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표적이다.
그러므로 오병이어의 표적은 초림을 예표하는 표적이고 칠병이어의 표적은 재림을 예표하는 표적이다. 오병이어의 일어난 시기가 유월절 곧 봄 절기다. 오병이어는 푸른 잔디에서 이루어 졌는데 칠병이어는 땅에서 이루어 졌다. 이 땅은 헬라어 원문에는 딱딱한 흙을 말한다. 땅에서 이루어 졌다는 것은 봄이 아닌 가을을 말한다. 우리가 더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요한 복음 6장 이후에 예수님의 행적이 6개월간 어디에 가셨는지 알 수 없다. 요7:1-2 = 이후에 하고 초막절에 주님이 갈릴리에 나타나셨다. 초막절은 7월15일 부터 7일 동안 지킨다. 우리나라로는 9월 달이다. 이 6개월 동안의 일을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기록하고 있다. 칠병이어의 표적은 이 6개월 동안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럼 주님이 6개월 동안 어디로 가셨는가 유대인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자 주님은 이방인 지역으로 들어 가셨다. (마15: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 (막7: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
그러므로 칠병이어 표적은 이방인 지역에서 일어난 것이다. 유대인이 표적만 구하고 예수를 믿지 아니하자 예수님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바클레이는 "예수님이 최초로 이방인 지역에 발길을 ケ 것이다" 했다. (롬11: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 마15:21-28을 보자. 가나안 여인이 나오죠 예수님께 소리치죠 "주 다윗의 자손이여 !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 여인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태도는 너무 차갑죠. (마15:24)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 그리고 더 심한 말을 하죠 (마15:26)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 여기서 떡이 무엇입니까 = 말씀이다. 이제 성경에서 떡을 볼 때 찹살 떡으로 보면 안된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예수는 생명의 떡이다. 개는 이방인이다. 복음을 이방인에게 주는 것이 합당치 않다는 것이다. 가나안 여인의 대답을 보자. (마15:27) "여자가 가로되 `주여 !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 가나인 여인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았다. 죽을 수밖에 없는 악한 죄인이고 추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죄인인줄 알았다. 예수님은 이 가나안 여자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시로 가나안 여인의 딸에게 있던 귀신이 나갔다. 성도 여러분 ! 예수님이 귀신을 내 쫓아주는 걸로만 알면 안된다. 그렇게 해석만 해도 안된다. 귀신을 내쫓아 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껍질만 보면 안된다. 속을 보아야 한다. 떡과 물고기를 살펴볼 때 더 자세히 살펴보자. 우리가 이방인들로써 귀신에 잡혀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져서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은 것이다. 가나안 여인 사건 이후에 예수님은 모든 병자들을 고치시고 칠병이어의 표적을 이방인들에게 나타내었다. 생명의 떡을 거부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된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안 여인은 이방 여인이 아니라 이방 교회의 모습이다. 성경에 여자는 교회로 풀어야 비밀이 풀린다. 갈6장에서 여자를 교회로 풀었다. 가나안 여인의 이방 교회의 모습을 7가지로 보자.
1. 딸을 사랑했다. = 교회는 성도를 사랑해야 한다.
2. 예수를 보고 다윗의 자손이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 한 남자를 보자마자 다윗의 자손이여 외쳤다. 보통 신앙이 아니다. 교회는 오직 예수 신앙을 가져야 한다.
3. 예수께 절했다 = 오직 예수 신앙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
4. 소리를 질렀다 = 예수께 기도해야만 한다.
5. 개들이라고 해도 끝까지 매달렸다 =인내의 신앙을 가졌다.
6.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 믿음있는 교회 였다
7. 주님이 오실 때를 알았다 = 교회는 때를 알아야 한다. 지금이 어느 때 인지 알아야 한다. 밤인지.아침인지. 어느 때인지 알아야 한다. '결론' 저 유대인들은 유월절은 잘 지켰지만 무엇을 의미한지는 몰랐다. 유월절이 가까웠다는 것은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리는 때이다. 초림 예수를 거부한 유대인들은 재림 예수의 때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이방 교회는 초림 예수를 알았기 때문에 재림 예수의 때를 알고 재림 예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유월절을 모르고 무교절이 있을 수 없고 무교절을 모르고 초실절이 올 수 없다. 초실절을 모르고 칠칠절이 있을수 없고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도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를 모르고 그 어떤 것도 이루어 질 수 없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뜻을 모르고 유대인의 왕으로 삼을려고 했다. 육적인 세상 왕을 예수님이 거부하자 유대인들은 다 예수를 떠나버렸다. 더 이상 예수를 따라 다녀보았자 육적인 만족이 없을 것을 안 유대인들은 모두 다 예수를 떠나 버렸다. 성도 여러분 ! 저 유대인들은 광야까지 예수를 따라와서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았지만 예수를 끝까지 따르지 못했다. 오병이어의 표적을 육적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끝까지 예수를 따르지 못한 것이다 . 왜 오병이어 표적이 광야에서 일어났는가 영적으로 광야 신앙이 안되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광야의 빈들에서 이 표적을 일으키신 것이다. 우리도 영적으로 광야 같은 신앙을 가지지 못하고 육적으로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 육적 만족이 없어질 때 반드시 예수를 떠나게 되어있다 성도 여러분 광야의 신앙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광야까지 따라가서 예수님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지 못한 저 유대인들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유월절 어린양 예수가 가신 십자가의 길까지 우리 모두 가기를 축원합니다.
오 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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