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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길 (요6:18-21)

본문

우리는 오늘도 앞으로도 행복하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행복을 얻기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을 위하여 먹고 일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는 행복에 대한 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행복의 정의와 개념은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이 말씀은 행복이 무엇이냐에 대해 우리에게 올바른 정의를 내려 줍니다. 여러분은 행복을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에게 행복이란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라톤 선수가 목적지에 남보다 먼저 도착할때에 최고의 행복감을 느끼듯이 사람들은 저마다 세우는 삶의 목표와 계획이 있으며 이것을 달성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제자들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많은 역경과 시련을 다 이기고 자신들이 바라던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에 무사히 도착했으니 절망이 변하여 변하여 소망이 된것을 체험헌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행복에 도달하기 까지 어떠한 문제가 우리의 삶속에 숨겨져 있는가 하는것과 우리가 인생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것인가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행복에는 시련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 하고 있습니다. 저물매 제자들이 바다에 내려가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가버나움으로 가는데 이미 어두웠고 예수는 아직 저희에게 오시지 아니하셨더니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요6:16-18)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마14:24) 이상은 우리에게 행복에는 시련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시련 없는 행복은 있을수 없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은 캄캄하고 어두운 한밤중에 큰 바람과 싸우며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야 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이 세상에도 밤을 만난 인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의 주위와 주변이 너무 캄캄하고 암담 하여서 어떻게 지내고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힘겹게 그날 그날을 살아 가게 마련 입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사람들은 시련을 당하게 되면 시련이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시련이 인생의 끝은 아닙니다. 시련은 인생의 행복을 위한 과정일뿐 입니다. 이러한 면을 가르쳐 주는 것이 출애굽기에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십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고난과 시련 속에서 광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이 사십년의 생활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가기위한 시련으 과정이었습니다. 욥의 시련을 잘 아실것입니다. 그는 아들 딸이 죽는 고통을 당해야 했고 사업에 실패 했습니다. 또한 육신은 친구 들이 알아 보지 못할 정도로 병들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욥의 생애에 고난의 저울을 준비 하셨다가 고난이 욥에게 다 찬후에 위로와 배가의 축복을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꽃꽂이를 할때 보면 꽃대를 직선으로 자르지 않고 대각선으로 자릅니다. 그것은 물을 흡수하는 면적을 넓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부족할경우 자른 부분을 불로 지집니다. 그러면 물은 더 잘빨아 들이면서 밑 부분은 썩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훈련 시키시는 방법도 마찬 가지입니다. 물속의 가지 처럼 자르기만 하면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부족한 사람은 불로 태우고 지지는 시련을 주십니다. 또한 많은 물을 빨아 올리기 위해서 꽃대의 면적을 대각선으로 자르는 것처럼 우리 삶의 커다란 시련은 많은 은혜와 축복을 얻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온갖 시련을 당하면서 건너갔던 갈릴리 바다는 지중해보다 400미터나 낮은 지형이므로 지중해에서 훈풍이 불어와도 갈릴리 바다 암벽 사이로 와서는 급강하 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돌개 바람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때 이 갈릴리 바다를 지나던 제자들은 시련의 풍랑을 피할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련의 풍랑과 고통은 피할수 없는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 군인들 훈련 여러분 제자들이 고난과 싸우며 갈릴리 바다를 건너 가던 것이 필연적 상황이었다면 여러분이 이세상을 살아 가면서 병마에 시달리고 자녀의 문제에 봉착하는 것 역시 필연적인 불행이요 고통인 것입니다. 그것을 자포 자기 하거나 피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못됩니다. 서리를 맞는 감이 맛이 드는 것처럼 시련을 당하면서 조금씩 인생을 살아 가는 사람에게 하나님 께서는 축복을 주실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당하는 시련 만큼 성숙하고 신앙이 깊어지며 행복의 의미를 알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시련이 찾아올때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1:2-3) 그렇습니다. 야고보는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낸다면 온전히 기쁨을 가지고 시련을 맞이 하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시련속에 처할때 참으며 인내 하라고 가르 칩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시험이 오면 참으십시오. 인내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며 이 인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께 상급을 주실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시련을 당하고 계십니까. 질병의 고통입니까. 경제적인 문제 입니까. 아니면 가정적인 문제입니까.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시험이 올때 기쁨으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의 역량으로서는 나에게 찾아오는 시험과 시련을 극복해 나가며 기뻐하고 인내 할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에게는 인내에도 한계가 있고 기쁨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는 인내 할 수가 있지만 어려운 시련이 계속되면 기쁨과 인내를 가질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시련의 중요한 해결책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할때 시련을 극복할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그렇게 가고 싶었던 가버나움이었지만 갈수 없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런 제자들이 시련의 광풍속에서 저희들이 가려던 땅에 갔더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련 속에서 행복을 되찾는 유일한 비결은 신앙에 있음을 보여 주는 말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앞에 당한 시련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 합니다. 돈 과 권력 그리고 명예등 세상의 방법으로 자기의 당면 한 문제를 해쳐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삶속에 영접 하는 길만이 시련의 광풍이 사라지는 길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한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나의 인생의 시련을 다 해결하여 주실수 있는 능력자라는 것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요한복음 11장 25절에 마르다에게 이렇게 말씀 합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오늘날 시련을 당하여 죽을것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죽어도 살겠고”라는 말씀 처럼 죽을것 같은 환경속에 서도 살길이 열린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앞에서 믿음만 가지고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시련의 사슬을 다 풀어 주실것입니다.
둘째로 현실을 받아 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내가 당면한 고난과 고통을 현실로 인정 하라는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 중에 보면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시련과 고통을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 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잘 살았는데  과거에는 잘 되었는 데  ”이렇게 현실을 인정 하지 못하고 며칠전에 몇달전에 과게에 조상 때에는 하면서 과거에 묻혀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긍정적으로 받아 들여야 합니다.
셋째로 순종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 40절에서 이미 죽은 지 사흘이 되었으니다시 살수 없다고 꼼짝않는 마르다에게 주님은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자 마자 마르다는 마음속에 순종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 무덤을 열었던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알수 있습니까. 순종이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영접 하는자 곧 그이름을 영접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권세를 주셨다고 했는 데 믿으면이라는 말은 순종 하면 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도 무덤의 돌을 옮겨 놓은 마르다의 순종이 기적을 체험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순종 하시기 바랍니다. 네째로 영접 한다는 것은 감사 한다는 말입니다. (골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굳은 마음으로 감사하는 생활을 넘치게 하라는 말입니다. 처음 시련이 올대에는 하나님이 고쳐 주실줄 믿고 감사합니다. 그러나 시일이 오래 될수록 감사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던 사람이 시련이 올때 감사 할수 있습니까. 바로 큰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성경이 말하기를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대신 짐을 져 주시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인류의 짐을 다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분이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의 조그마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습니까. 주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그 주님께서 여러분의 시련을 멈추고 행복의 자리로 인도 하시며 기쁨에 이르게 하실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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