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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의 실수 (요6:1-15)

본문

공부는 잘할수록 이익이고 세상에서는 많이 알수록 이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른다면 큰 손해입니다. 이 본문은 4복음서에 다 취급을 한 것으로 잘 아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요구하며 깨우치시려고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도가 더 중요합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여자와 아이들을 제외하고 5,000명이라고 나오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그냥 5,000명입니다. 넉넉히 2-3만명은 될지 모릅니다. 교회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습니다. 그리고 여자보다 아이가 더 많습니다. 분명한 것은 남자가 5,000명이상 모였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계수법을 사용했습니까 여자가 천시되던 시대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은 전쟁이 많아서 전쟁이 터질 때 칼을 뽑을 수 있어야 사람취급을 합니다. 옛날 군대에서 신체검사때 아이들에게 칼을 뽑아보라고 합니다. 칼집에서 칼이 뽑히면 합격입니다. 키가 작아 칼이 안뽑히면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계수법입니다. 여자분들을 멸시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지금도 전쟁이 터지면 여자는 힘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남자들 중심으로 되어서 국가에서도 인구 계산을 할 때 남자 머리수부터 셉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에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코자 했다고 나옵니다. 남자만 5,000명이 더 모였는데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하필이면 다른 제자에게 안하고 왜 빌립을 지목하셨을까요 열두제자의 움직임중에 빌립의 지성은 좋았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항상 염려되던 자였기 따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빌립을 시험코자 먹을 것을 주라고 했습니다.
1. 풀성한 능력의 주님을 모르면 부끄러운을 당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번개같이 빠른 빌립의 답이 나옵니다. “조금씩 먹이더라도 족히 200데나리온이 부족합니다” 얼마나 계산이 빠릅니까 금방 예수님 말씀이 떨어지기 무섭게 빌립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200데나리온은 장정이 6개월에서 1년간 일하고 적어도 500에서 10000만원 정도인데 갑자기 이것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설령 있다 할자라도 산이 있고 거리도 멀고 언제 음식 장만을 해서 옵니까 시간도 없습니다. 이 많은 숫자를 어찌 먹이겠나고 빌립은 정확한 수치를 분석,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나 풍성한 능력의 주님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빌립의 실수입니다. 빌립은 전능하신 주님이 명령하신다는 것을 잊었고 풍성한 능력이 주님안에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습니다. 성격에 나타난 기적들,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가 무너지고 예수님이 물위를 걸으시는 모습들 속에 아직도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학 가운데 생명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역시 빌립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사막을 걸아갈 떄 기후가 얼마나 덥습니까 일교차가 너무 심해서 밤에는 너무 춥습니다. 거기에다 물과 음식이 없는 절망 상태인데 차라리 애굽에서 노예생활 하는 것이 낫다고 느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실컷 먹고 12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시간상으로도, 거리상으로도 200데나리온이 부족한 실정에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축복으로 실컷 먹이셨고, 남은 것만도 큰 광주리에 12관주리 하고도 남았습니다. 누가 제일 부끄러웠겠습니까 빌립이었을 것입니다.
2. 현실만 보고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면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빌립의 두번째 실수는 형편을 잘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와 예수님이 오늘 여기에서 명령을 내리신 계획을 잘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절대 불가능을 해결하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단의 세력, 의사, 군인, 정치가 경제인도 바꿀 수 없는 사단의 일을 멸하러 오셨다고 요일3:8에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는 분명히 재앙을 받아야 되는데 그 재앙과 재난에서 해결받는 길을 대통령도 못하고 단지 주님이 하십니다 또한 질병, 고통은 누구나 맘대로 할 수 없으나 중풍병자가 일어나고 앉은뱅이,벙어리,귀신들린자가 고침을 받는 이 놀라운 일을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붙잡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주님이 계획만 세우면 못하시는 것이 없는데 그것을 빌립이 몰랐습니다. 빌립은 현실은 잘 보았지만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몰랐습니다. 많은 무리가 모였는데 예수님이 바로 능력을 베푸시지 아니하시고 빌립에게 지시해서 이들을 먹여야 된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필이면 빌립을 시험코자 불러내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질문하실 떄 빌립이 ‘왜 5000명이 넘는 남자들을 내게 맡기실까’라고 잠깐 생각해봐도 될 일인데 금방 대답이 튀어나옵니다. “조금씩 먹이더라도 200데나리온이 부족합니다. 또 200데나리온이 있더라도 어떻게 충분히 먹이겠습니까” 빌립 또한 실수를 한 이유가 무엇입나까 무엇 때문에 빌립이 주님의 계획을 모르고 실수 했습니까 자기 자신때문입니다. 빌립이 사는 지역을 빌립의 고향으로 강, 들, 집모양 등등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자기 자신, 자기 생각에 주님의 계획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현실을 정확히 판단하였으나 주님이 빌립에게 시키신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베드로가 파도를 쳐다보고 빠졌습니다. 주님이 계시는 줄 모르고 엘리야도 현실을 쳐다보다가 죽기를 각오한 것도 있었습니다. 우리는 빌립처럼 기도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버리고 하나님은 풍성히 주시는 분임을 믿고 기도를 하고 굶고, 뒹굴면서 간절히 하는 기도에만 응답해 주시는 악한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나이드신 어느 목사님은 40일 금식기도를 하셔야겠다고 하시더군요.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러면 창자가 꼬여 나갈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에 따라 응답하십니다. 무엇때문에 철야, 금식 기도합니까 금식기도할 때 가장 자신이 깨어지게 되고 하나님을 깨닫게 되며 자신의 자식과 지성이 꺠어집니다. 금하는 기준으로 응답하시지는 않습니다. 빌립은 주님의 능력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깨닫기만 하면 얼마든지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빌립은 고난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먹일 수 있느냐”했을 때 빌립이 잘 깨달았으면 좋았을텐데 큰 실수를 했습니다. 예수님은 넘치게 부으시고 생각만 해도 가득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3. 사람의 방법만 알고 하나님의 방법을 모르면 부끄러운을 당합니다. 빌립의 세번째 실수는 사람의 방법은 잘 알고 있었으나 하나님의 방법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는 길을 열어놓고 가라고 하지만 하나님의 한 일은 길을 열어놓고 가라고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든지 열어놓지 않고 허락하십니다. 어느 선교단체에서 전화가 오기를 목사님 전도를 해야 되는데 곤란한 일이 생겼습니다. 배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데 안전기획부에서 못들어가게 합니다. 기도해 주십시요 하고 기도를 부탁합니다. 철저히 못당해내야 이단이 못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잘됐다 싶었습니다. 그래야 장삿꾼, 창녀, 이단이 들어가지 못할 것 아닙니까 그래서 “기도가 필요합니다. 감사하십시요” 그렇게 말씀드렸더니 “목사님, 맞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은 문을 다 열너놓고 우리를 오라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면서 갈 때 그때 행하십니다. 홍해는 갈라져 있지 않습니다. 푸른 파도가 출렁이고 있고 애굽군인이 뒤에 바싹 쫓아오고 있는 큰 위기에 모세가 믿음으로 지팡이 들고 가서 지팡이로 치나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가장 물이 많을 때 요단강 건널때 “가라 가나안 땅에 네가 들어가라 했으니 가라”했습니다. 제사장이 발을 물에 담글 때 요단강물이 나갔다고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가라하면 누가 못갑니까 여리고가 무너지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돌아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손해되는 방법을 주지 않습니다. 손해가 되는 것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면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몇가지중 그들이 갈 때 전도의 문이 열렸고 주님의 부활을 고난 가운데 얘기했습니다. 마28장에 교회를 세우는 일도 교회가 없는 상태에서 시간을 정해 놓고 성령님충만함을 받기 위해 가장 모이기 힘든 시간에 모여 기도할 때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기억하십시요. 교회살림, 복음사업, 주의 일을 하나님은 항상 부족히 주시고 뒤에서 채우십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의 방법은 절대로 다 예비해 놓고 가라고 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일단 믿음으로 가실 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믿고 나아갈 때 요단, 홍해, 여리고가 갈라지고 무너집니다. 언제든지 그랬습니다. 모세는 얼마나 믿음이 좋았든지 홍해에 들어가기 전에 12제자와 땅을 나누었습니다.
얼마나 믿음이 좋습니까 땅을 다 나누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빋음으로 시작해서 단합하고 힘을 모아 기도하면 주님이 상상도 못할일을 행하십니다. 어린아니는 주님께 그저 갖다 드렸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자기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방법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빌립이 가진 생각은 불신자교와 같고 빌립이 가진 수준도 불교신자와 같습니다. 구원을 받았으나 빌립의 머리는 천주교신자와 같습니다. 오히려 못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 믿음가지고 사업을 벌이다가 실패한 선교단체는 그 이유가 무었입니까” 그들은 믿음이 아니었고 야망, 교만이었습니다. 기도가 아님 열심이었으므로 어려움을 겪는 겁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따라한 심령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앞에서는 하나님이 믿음으로 책임지십니다. 어린이에 대해 연구해 본다면 믿음이 좋은 아이는 아닙니다. 단지, 아이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예수님께 가져왔을 뿐입니다.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먹는 것으로 제가 중학생때 흉년이 들어서 배고프니까 보리떡을 많이 먹었습니다. 또 원문에는 물고기를 조그만 고기라고 했습니다. 버릴 수도 있고 소금에 절여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너 주는 조그만 물고기 2마리였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주님의 손에 쓰일 때는 능력의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마른 뼈다귀가 능력의 군대가 되었습니다. 별것이 아니자만 주님이 쓰시면 능력의 것으로 바뀝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에 3가지 반응을 살펴본다면 가장 기분이 좋았고 영관을 받은 사람은 어린아이였을 것입니다. 열광주리가 남았다는데 어떻게 했을까요 12제자에게 하나씩 주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에게 갖다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부모에게 가서 증명해 보였을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아이가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제일 미안했던 사람은 빌립이었을 것입니다. 집에 갈 때까지 고객 숙이고 다녔을 것입니다. 또 괜히 흥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임금 삼으러는 자들의 눈을 피해 산으로 도망하여 기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도 3종류의 신자가 있습니다.
첫째로는 인간적인 계산을 하고 인간의 방법을 쓰는 신자. 두번쨰로는 순진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자가 있고, 세번째로는 덩달아서 믿는 신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그런 실수를 하지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일생을 걸어갈 때 현실을 정확히 보고 세상도 정확히 판단해야 합니다. 밖에서는 몇배로 더 열심히 일하면서 하나님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실수하지 않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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