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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떡을 사서? (요6: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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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들은 참으로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듣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서 상처받고 실패하고 실의에 빠진 사람들이 교회의 문을 두두리고 목회자를 찾아옵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목회자인 저도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시 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생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을 가르켜 알베르토 까뮈는 "부조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알베토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를 보면 신은 인간에게 끊임없이 산꼭대 기까지 바위 덩어리를 올리게하는 형벌을 내렸다고 신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에 많은 사람들이 삶에 지쳐서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그들을 구원하여 줄 구세주,메시야,하나님의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독교는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리는 종교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들은 지금 자신의 인생에 고통으로 인하여 간절히 주님을 사모하고 찾으신 적이 있습니까 아모스 예언자는 말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5:6) 간절하게 찾는 이들 앞에 예수 그리스도는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기억하여야 할 것은 많은 사람들은 찾았으나 실지 로 그분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을 때에는 아무도 주님을 알아보지못해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진정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축복을 하여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을 하고 있습 니까 지금 이미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축복하여 주시기를 시작 하였는데, 아니 이미 축복이 여러분들에게 주어졌는데 여러분은 아직도 깨닫 지 못하고 어리석게 주님을 찾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지금 이미 여러분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음을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이 오시기만 기다렸으나 진정 주님이 이세상에 오셨 을 때 그를 알아보며 주님을 맞이 한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진정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디베랴 광야로 몰려들었습니다. 남자 성인의 숫자만 오천명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광야에 주님을 만나기위해 몰려들었는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의 말씀에 심취하였습니다. 참으로 여러분 놀라운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아마도 저보다 젊었을 주님이 오늘날 처럼 마이크를 사용해 서 설교하신 것도 아니요 육성으로 그 많은 사람들에게 다들리도록 말씀하셨 으니 얼마나 큰 음성을 지니셨으며 특히 놀랄 것은 야외에 나가서 설교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목사가 아닌 사람은 설교자의 고뇌와 고충을 모릅니다. 여러분들에게 전달히는 한편의 설교를 준비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통의 시간을 보내며 이 설 교를 완성하는 지 모릅니다. 금요일,토요일이 다가오면 이미 무거운 긴장감이 저의 마음을 짖누르기 시작합니다. 이번주는 어떤 말씀을 어떻게 전하여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음 성을 듣게 할것이가 참으로 고통스러운 금요일과 토요일이 지나면 토요일 밤 그 설교문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다 잠이들고 또 잠이깨면 다시 기도하고 반복하며 하나님의 성령님깨서 역 사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설교자로써 많은 사람 들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설교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 설교를 다리를 꼬고 앉아서 듣습니다. 팔짱을 끼고 듣습니다. 눈을 감고 감상하듯이 듣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자세를 한번 눈여겨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 자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 인가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정성어린 설교 준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한 설교를 듣는 이들의 자세도 중요합니다. 저는 100명되는 사람가지고도 절절매면서 설교하는데 성인 남자만 5천명 을 모아놓고 주님은 설교를 하는데,그들은 주님에 말씀에 심취하다보니 점심 때도 넘어서고 저녁 때가 다 되어버렸습니다. 말씀을 끝내고 주님은 끼니도 거른채 돌아가려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들 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걱정하셨을 것입니다. '이사람들이 돌아가다가 지칠까 걱정이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요,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사람들이 돌아가다가 지칠까 걱정이다.' 미국 샌디에고라고 하면 경관이 좋고 기후 조건이 뛰어나 살기좋기로 손 꼽히는 곳입니다. 샌디에고 외곽에는 어마어마한 저택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곳 어느 집에 요란하게 전화벧이 울렸습니다. 대낮입니다. 안주인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한국전쟁에 참가했던 아들이 귀향을 알리는 전화였습니다. 어머니는 너무 기뻐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얘야,당장 집으로 돌아올 일이지 전화는 왜 거느냐 우리 모두가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속히들어 오거라.알았습니다,어머니. 그런데 집으로 가기전에 청원이 하나 있습니다. 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친구하나를 데려가고 싶습니다.아,그래 데려오려므나.그런데, 이 친구에게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전 쟁에서 부상을 당해 눈 하나와 팔다리 한짝씩이 없습니다. 오갈데 없는 친 구라 제가 데리고 살까 합니다.아무튼 데리고 들어오너라. 한달쯤 같이 살자꾸나.아니예요,좀더 오래 같이 있어야 합니다.그럼 일년쯤 같이 살도 록 하자. 천천히 돌려보내지 뭐.아닙니다. 일생동안 같이 살고 싶은데 요." 어머니는 대답하니다. "얘야,네가 전쟁터에 나가더니 꽤 감상적인 사람이 되었구나. 냉정히 생각해야지. 그런 불구자와 평생을 같이 지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란다. 처음에야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에 성심껏 대할 수 있겠지만 얼마 지나다 보면 거추장스러워질 때가 온단다. 무거운 짐이 되는 거지. 그러니 일생을 함께 지낼 생각일랑 말아라."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에 덜거덕하고 전화가 끊겼습니다.
몇시간이 지난 뒤 해군본부로부터 한 장의 전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귀댁의 아들이 유감스럽게도 센디에이고 호텔 12층에서 투신하였음을 통보합니다." 부상을 당했다는 친구는 바로 그 아들 자신이었습니다. '우리 집에서 나를 어떻게 맞아줄까 이런 내가 집에 돌아가도 되는 것인가'를 알아보기 위 하여 전화를 걸어본 이 아들은 어머니의 대답을 듣고 '그럴 줄 알았다'며 스 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엄언한 실화입니다. 사랑의 마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그 아픔을 헤아려 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점심을 지나 저녁이 되도록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돌아가는 백성의 마음에 들어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을 바라보며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지쳐서 고생하지 않을까 염려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사인 저부터 우리 모두가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곧 주님의 마음입니다. 주님의 마음이 무엇입니 까 자신을 낯춰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까 지금 예수님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어떻게 하셨을까 남북 전쟁이 일어났을때 아름다운 소녀와 약혼한 한 청년이 처음 군 인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들의 결혼은 당연히 지연되게 되었다. 젊은 군인은 광야전투에서 마침내 중상을 입게 되었다. 그가 사랑한 그 처녀는 그의 처지를 알지 못하고 그가 귀가할 날만 을 세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낯선 글씨체의 봉투를 받게 되었다. 봉투를 열어 보니 "내가 양팔을 다 잃었다는 사실을 말하는게 아주 어렵소! 나 스스로 쓸 수 없 지만 한 친구가 나를 대신해서 이것을 써주고 있소. 당신은 영원한 나의 사랑 이요. 그러나 나의 남은 여생은 다른 사람을 의지하며 살 수 밖에 없게 됐소.
그러므로 나는 당신과 맺은 약혼의 의무에서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소"라 고 쓰여 있었다. 즉시 젊은 처녀는 다음 기차를 타고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눈이 그와 마주치는 순간 그녀는 자기 팔 로 그의 목을 껴안고 그를 포옹하며 "나는 당신을 결코 버리지 않겠어요! 나의 양손이 당신을 도울 것이며 나는 당신을 돌봐줄 수 있어요.내가 당신을 보호하겠어요"하고 울먹였다. 그녀의 확고부동한 헌신은젊은 군인의 문제를 해결했으며 그에게 큰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 그처럼 우리가 비극적인 일에 사로잡혀 있거나 병으로 불구가 되었 거나 복잡한 문제에 얽혀 슬픔에 잠겨 있거나 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 을 돌볼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 계신다. 우리를 보호하시는 주님께 우리의 생을 드리자. 우리의 아픔을 헤아리시는 주님이 묻습니다. "어디서 떡을 사 이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저는 이 질문을 단순히 어찌할바 몰라서 묻는 주님의 질문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놀라운 능력을 베푸사 그들을 먹이시고 12광 주리에 가득하게 남기신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다면 왜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어디서 떡을 사 이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고 물으셨겠습니까 이 질문은 제자들에게 던진 질문이요,우리들에게 던지신 질문입니다. 우리가 배고픔에 허기져 스러질 때 주님은 묻습니다. "어디서 떡을 사 너를 베부르게 할까" 우리가 병들어 누었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디서 약을 구해 너를 고쳐 줄까" 우리가 돈이 없어서 사업이 망하게 되었을 때 주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디서 돈을 가져다 너를 도와 줄까" 우리가 지혜가 부족하여 실패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지혜를 구하여 너에게 체워줄까" 그때 우리는 말해야 합니다. 창조주 되시는 주님이시여 전능자이시여 당신 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만이 약하고 무능한 우리를 도와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여 날 도와 주소서. 주님여 이 손을 꼭잡고 가소서 약하고 피곤한 이몸을 폭풍우 흑암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인도 하소서 인생이 힘들고 고난이 겹칠 때 주님여 날도와 주소서 외치는 이 소리 귀기울이시사 손잡고 날인도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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